<한전의 일방적인 합의 발표에 대한 보라마을 주민들의 성명서>
1.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은 46가구가 넓은 들판과 맑은 계곡을 끼고 대대손손 오순도순 살아온 자연마을입니다.
2. 우리 마을은 한번도 세상의 관심을 끌어온 적도 없이 조용하게 농사지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밀양 765kV 송전탑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3. 지난 2012년 1월 16일, 우리 마을 앞 논 102번 철탑부지로 용역 깡패들이 들어온 날, 이장을 지낸 이치우 노인이 분신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하루도 그 날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4. 그때부터 주민들은 송전탑을 막아내기 위해 마을 이장님을 중심으로 서울 국회 앞으로, 전국 곳곳의 시위 현장으로, 창원 도청으로, 안 가본데가 없이 다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7일, 보라마을의 보상 합의 소식이 우리도 모르게 텔레비전 뉴스에 뜨는 것을 보았습니다.
5.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전은 5명의 마을 대표를 선출해서 적법하게 합의를 체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은 2012년 3월 8일, 이치우 노인의 장례식날 선출된 현 이장님에게 송전탑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주민들간의 약속을 2012년 연말 주민총회, 2013년 연말 주민총회 등 총 3차례에 걸쳐 확인하고 현 이종숙 이장님에 대한 신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6. 지금까지 우리 주민들은 서울에 누가 올라갈 것인지, 농성장 당번은 누가 설 것인지, 아주 작은일까지 마을 주민 총회를 통해서 결정해왔습니다. 그게 우리 마을의 전통입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송전탑 보상 합의라는 엄청난 일을 갖고서 유일하게 협상 권한을 위임한 마을 이장은 물론이거니와 부녀회장도, 개발위원도 모르게 선출된 대표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아주 작은 일까지 회의를 통해서 결정을 해 왔는데, 이 중차대한 일로 대체 무슨 회의를 어떻게 거쳐서 보상을 합의한 것입니까?
7. 주민들 사이에서는 누가 앞장 서서 이 일을 추진했는지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습니다. 어쨌든 송전탑에서 거리가 멀고, 송전탑 인근에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거 더 해봤자 뭐하냐, 돈이나 받자’는 식으로 회의론을 유포하면서 이루어진 일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한 주민들 중에 주민등록만 되어 있고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사람, 송전탑에서 거리가 멀거나 송전탑 인근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다수인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8.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 ‘애초에 이야기된 500만원에서 두 배를 더 올리겠다, 누구는 네배인 2천만원을 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실제 입금은 2천만원도 1천만원도 아닌 5백만원이 들어와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9. 우리는 돈을 더 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온 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진실을 위해 싸우고 버티는 것입니다.
10. 적법한 주민총회와 대표선출, 주민들의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맨투맨 방식으로 소문만으로 이루어진 마을 합의, 그래서 마을 이장을 포함하여 지금껏 목숨을 걸고 싸워온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고립시켜버리는 마을 합의는 대체 누가 기획하고 주도하였습니까?
11. 우리는 이것이 분하고 억울합니다. 마을 주민들 간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고,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과 무관하게 우리는 이 후유증을 안고 남은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12. 공기업이 하는 일은 투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라마을의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주민들의 뜻을 왜곡한 불법 합의임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2014년 2월 10일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이장 이종숙 외 송전탑 반대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