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축제>, 2022년 9월 17일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 정선아리랑
맹문재
1.
빗기운이 산마루를 넘어오거나
싸락눈이 처마를 들이치는 날이면
장소팔 고춘자의 라디오 만담이 끝나거나
시집간 딸들이 보고 싶은 날이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2.
내가 취직하려고 타지의 공업학교로 떠난 뒤
할머니의 그 흥얼거림을
들을 수 없었네
큰손자 걱정될 때마다 할머니는
얼마나 불렀을까?
먼 곳이어서 들리지 않았지만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내 작업장으로 왔네
3.
나는 하늘나라에서도 흥얼거리는 할머니의 그 노래를
셋방을 얻으려 다니는 골목에서 불렀네
칭얼거리는 아이를 재우는 동안에도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에도
아버지를 잃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불렀네
늦은 귀갓길에서도
풀 수 없는 하루를 서러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근심하며
불렀네
맹문재
시집으로 『사북 골목에서』『기룬 어린 양들』『책이 무거운 이유』 등 있음.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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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실(시)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정선축제)
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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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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