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제국
외르겐 브레케 저/손화수 역 | 뿔(웅진문학에디션) 2011
노르웨이 작가 외르겐 브레케의 첫 장편소설 '우아한 제국'은 2011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추리소설로 북유럽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역사와 해부학, 문학이 어우러지고 '고서'라는 독특한 소재를 중심으로 시대와 장소(미국, 노르웨이 등)를 넘나드는 짜임새 있는 구조와 탄탄한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긴박감을 더하고 마침내 복잡하고 랜덤하게 던져진 스토리들은 퍼즐처럼 실체를 드러낸다. 소설의 힘은 스토리다. 그것을 매치고 후려치는 재주가 비상하다. 게다가 우아하기까지.
이 소설의 중요 키워드는 3가지다.
"소시오패스(Sociopath)", "애드거 앨런포 (Edgar Allan Poe)", "해부"
헐리우드의 미국식 액션과 현란한 핏빛잔치에 익숙해져 온 이들에게 이 노르웨이 소설은 차원이 전혀 다른 인간의 잔인함의 극한을 선사한다. 현대인 100명 중 4명이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통계에서 보듯 자신의 성공과 합리화를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늬인간에 대한 생각들을 상기시킨다.
사이코패스가 전두엽의 이상으로 타고나는데 비해, 소시오패스는 학습과 반복에 의한 경험으로 굳어진다고 한다. 범죄적인 재능을 타고 났거나 어린 시절 잔인한 취미가 있었고,연애 경험이 많은데 비해 기간이 짧다는 특징을 나타낸다는데, 옆사람 다시 봐야 하는건지.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이자 편집자였는 그는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괴기소설, 추리소설의 선구자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죽음도 그의 작품들 만큼이나 미스터리하여 그의 정확한 묘지 위치 조차도 논쟁이 되고 있고 사망 원인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우아한 제국의 인물들은 포의 사망 원인을 세간의 그것과 다르게 해석들을 하고 있는데 소설 속 사건들과 맞물려 연막을 치고 해결을 미궁속으로 몰고가는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부에 관련된 것은 그림 3장을 보면서 ~
보통 생닭을 다듬을 때 가죽을 벗겨내고 그 밑에 허연 지방을 제거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그 짓을 인간에게 하며 그 목적이 더욱 잔인하다. 그 동안 봐왔던 세작가의 세 작품이 가지런히 매치가 된다. 시대별로 보면 첫번째 그림은 '헤라르트다비트(Gerard David)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이란 작품이다. 언듯 의학행위가 아닌가 보여지는 이 그림은 1498년 브뤼주 시청사에 걸어놓고 공무원들에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걸 목적으로 제작된 일종의 극약 계도용이다.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는 부패한 시삼네스(Sisamnes)라는 판사를 산채로 가죽을 벗겨 죽였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도둑질한 자는 손목을 베고, 살인을 한 자는 산채로 불태웠다. 15세기 네덜란드에선 비리공무원을 그림처럼 산채로 피부를 벗겨내는 생피박리형에 처했다. 헤라르트는 플랑드르 대표적인 화가 한스 멤링의 뒤를 이어 브뤼주의 공화가가 되었다. 공포에 질려 눈을 뜨고 있는 판사의 팔다리 가슴까지 총 4명의 전문 도살자들이 섬세하게 가죽을 벗겨내고 있는 모습은 섬뜩한 리얼리티를 자아낸다. 왼쪽 다리에 위치한 남자는 과거 가죽 좀 벗겨봤다는 듯 칼을 입에 물고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장인의 숭고함까지 엿보인다. 그 옆 보조하는 소년만이 관객을 바라보며 허탈한 눈빛을 보낸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림밖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권력의 시녀라고 불리는 사법부의 위상이 요즘들어 더욱 흔들리는 때, 온갖 부정과 부당함이 난무하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시끄럽다.
이런 그림... 좀 들여다봐야 한다.
두번째는 해부 그림하면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렘브란트의 작품 "툴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다. 1632년 겨울 어느 날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어느 병실에서 유명 외과의 니콜라에스 튈프박사는 길드회원들을 모아 놓고 첫 해부학 공개수업을 진행한다. 7명의 참관자들은 서걱대는 차디찬 메스소리와 함께 드러나는 신체의 핏줄하나 근육하나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그림하나로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화가다' 를 외치며 일약 '스타화가'로 급부상하게 된다.
마지막 그림은 미국의 사실주의 작가 토마스 이킨스(Thomas Eakins, 1844-1916)의 1875년 작품인 ‘더 그로스 클리닉’(The Gross Clinic)이다. 제퍼슨 의과대학의 은퇴를 앞둔 70세의 노교수 사무엘 그로스 박사가 강의실에서 외과수술을 집도하는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심리적 사실주의풍의 그림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리얼리스트로 사진을 통한 지식의 확장과 사물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유명했다. 미술을 공부하면서도 의과대학에 등록하여 해부학 수업을 들으며 신체와 인체 해부지식을 공부했고 그의 그림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76년 센테니얼 전시회에 그림이 사실적이고 선정적이라 전시를 거부당했고, 그 이듬해 토마스제퍼슨 의대 동창회에서 고작 200달러에 구입해 대학연구소에 기증했다. 훗날 2006년 크리스탈 브리지 미술관에 6800만 달러에 팔리며 토마스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게 된다.
아래 그림들은 인체 하나를 둘러싸고 여러 대중이 있는 구도는 비슷하나 사실 내용과 용도는 모두 다르다. 다만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피부를 벗겨내고 해부를 하고 해부교실을 구상하는 내용들이 그림들 처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의 몸은 우주의 전체를 담고 있다' 그 만들어진 이치와 원리가 오묘막측하여 신의 위대함이 절로 느껴지는 실로 귀한 생명이란 말이다. 그 어떤 것보다 한 생명이 가치있다 한 말,
나의 성공과 만족을 위하여 남을 짓밟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한경쟁의 시대
어쩌면 사회가 소시오패스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치닫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아한 제국은 나만의 성이 되어선 안 될텐데 말이다.
The Judgment of Cambyses - Gerard David 1450
The Anatomy Lecture of Dr. Nicolaes Tulp-Rembrandt 1632
The Agnew Clinic - Thomas Eakins 1875
첫댓글 박하님, 좋은 글 읽고 가요. 어쩜 요즘 사건사고들을 보면, 사이코패스가 아닌 소시오패스에 의한 인의적병에 의한게 아닌가 싶네요.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 ~
한 주 안봤더니 보고 싶네, 담주엔 꼭 뵈요, 주위를 둘러보면 소시오패스 증후가 보이는 인물들이 없지 않아요
첫 번째 그림과 두 번째 그림의 피부를 벗겨낸 속살의 색깔이 다르죠. 둘 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그림이라고 전제한다면 첫 그림은 살아있거나 혹은 갖 죽은 사람의 것이고, 아래는 정말 해부용으로 처리한 시신의 색깔이죠. 즉, 해부학 시신을 렘브란트가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보아집니다. 그림을 비교해보는 작은 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해부학 하고나서 감자탕 먹으면 대박이죠. 감자탕에 나오는 고기의 색깔이나 냄새가 딱 해부용 시신과 같다는 것. 박하님 언제 감자탕 먹으러 가요.
해부에 대해 잘 아시니 역시나 잘 보시는군요, 첫번째 그림은 산 사람(게다가 판사)이구요 부정부패의 형벌로 피부박피의 고통을 느끼고 있어요, 세번째 맨 아래 그림도 산 사람이긴 하나 마취 중이고 수술 중입니다. 두번째 렘브란트의 그림이 온전한 해부 장면으로 죽은 시신을 그린겁니다.
화가들이 허투루 그리지 않지요. 해부학으로 인체의 근육과 골격 피부까지 알아야 사람을 온전히 그릴 수 있어 산사람의 신체뿐만 아니라 시신도 많이 연구했다고 해요. 토마스이킨스도 해부학에 엄청 심취했던 작가구요 각종 스포츠 그림과 사진들을 보면 매우 과학적이고 뛰어납니다. 감자탕 콜~
역사 해부 랜덤 퍼즐 살인 (특히 연쇄여야) 좋아하는 구도입니다^^
정신이 아니라 육체를 한층 한층 벗겨내는 좀 엽기스러울 수도 있으나 경희솔님 댓글이 미소짓게하는군요
다 벗기고 척추를 감상하며 빠져나온 육물까지~~^^
박하님 글 반가이 펴봤어요 책 저도 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소시오패스의 살벌한 연쇄살인, 피부를 벗기고 목을 베고 웬만한 호러영화보다 책이 주는 상상력이 더 강합니다. 역사,문학,해부학을 아우르며 시대와 대륙을 넘나드는 스펙타클 매력만점 추리소설입니다. 심장약하신 분껜 권해드리기 뭣합니다 ㅎㅎ 오늘 부턴 '흑사관 살인사건'읽고 있어요^^
오오 팍 땡깁니다. 감사~
에다가 댓글들이 더 군침 돌게 하는데요.
감자탕 말이십니까 ㅎㅎ
감자탕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댓글들의 향연이 맛깔스럽다는 말이었습니다. --;;
산채로 가죽을 벗긴다 -.-;; 섬뜩하네요~ 근데, 정말 우아하게 벗기는 군요;;
박하님 글 기다리고 있었어요~~ ^0^*
소설 속에서는 우아하게 안벗겨요,좀투박하게 더 잔인하게, 예를 들자면 닭고기 껍질 벗길때 껍질 밑에 허연 비개있잖아요 사람도 그런게 있어서 범인은 넓은 가죽이 목적이라 그런 비개들을 따로 모아 버리고 팔 다리 피부는 안쓰고 등짝 피부만 써요. 음...넘 리얼한가
요즘 우리나라에 이런 벌을 가해야 할 사람들 아니 공무원들 많지요.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