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본 글은 부천개혁성경신학교에서 2025학년도 2학기 개강 강의로 송다니엘 교수의 '마가복음 해설 연구'를 가지면서 부천개혁교회 주일예배(2025년 9월 7일)에서 '마가복음 이해'란 주제로 가진 '마가복음 해설 연구' 내용 중에서 '제2부 예수님의 초기 사역(1:14-2:28)'에서의 1:14-15에 해당하는 '2.1.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시다'를 설교하신 내용의 전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심으로 갖는 마가복음에서의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 이해는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보게 되는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이해하는데도 유익할 것이기에 공개하여 올리니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시다(막 1:14-15)
- 예수님 선포 내용의 요약 : 하나님 나라의 복음 -
마가복음 1:14-15 /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선포)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 짧은 단락은 예수님의 활동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Summarium).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이 예수님 선포의 핵심이다. 앞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유도 많이 등장한다. 4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이며,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이러한 비유가 더욱 자세히 소개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우리는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 ‘하나님 나라’ 설명
그리스 원어로 “바실레이아 투 테우”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나님 나라로 번역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번역해도 된다. 전자로 번역할지라도 항상 후자의 의미가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 61장은 이러한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마카비 혁명을 거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점차적으로 정치적인 차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들의 기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죄인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됨으로써 시작한다. 예수님의 대속죽음을 믿음으로써 내면이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그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다스리시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 메시지와 함께 회개를 요구하셨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 혹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이 복음인 이유는, 모든 인간은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으면서, 죄와 죽음 아래에서 살며 그들의 종착지는 영원한 죽음,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으로 들어가 모든 거룩함과 선함과 사랑 안에서 살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을 다스리실 때가 우리는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스라엘 사람은 이러한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 삶을 하나님이 다스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이해와 불신앙이 예수님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파국으로 몰고 갔다
바로 앞 절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 후부터 요한이 잡히기 전까지(1:13에서 1:14 사이) 예수님이 하신 활동에 대해서는 요한복음에서 기록한다. 광야 시험 후의 활동 기록인 요 1:19-5:54에서 보면, 예수님은 주로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활동하시면서 갈릴리에 오시기도 했다. 예루살렘에서 성전 청소도 시행하셨다. 그러나 그곳 바리새인의 질투 때문에 예수님은 활동의 중심지를 갈릴리로 옮기셨다(요 4:1). 그때까지는 세례 요한과 병행하여 사역하셨다. 그 기간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역을 힘입어 메시아 사역을 준비하고 기초를 놓고, 또한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면서 사귀는 기간이었고,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속사적 기간에서의 사역을 서서히 마감하는 시기였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이렇게 해서 구속사에서의 주도권은 서서히 예수님께로 넘어간다. 필자의 “복음서개론”에서의 “정확한 연대기”를 참조하면 이 관계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마가를 비롯한 공관복음 기록자들이 이때의 사역 기록을 생략하고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로 오셔서 비로소 사역을 시작하신 것으로 기록한 이유는, 이때 예수님이 그간 준비 기간을 마치시고 본격적으로 사역하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는 예수님도 오랜 기간의 준비과정을 가지신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간 시간을 가지셨고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활동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시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분과 사역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이 막 1:17절의 제자들을 부르신 것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선포)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것은 예수님이 사역 초기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선포하신 것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음을 선포하셨고 이에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것(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촉구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주로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고 생각하지만, 마가는 그분의 핵심 사역이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병을 치료하시고 이적을 베푸신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1. 때가 찼다! 성취의 시간이 왔다!
하나님께서 사 52:7을 통해 주신 기쁜 소식에 관한 예고가 지금 성취되었다는 것이 예수님 선포의 중심이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나님의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하나님 나라가 왔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이며, 이제 평화와 구원이 죄인에게 임한다는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의 탄생 시에 목동들에게 전한 천사의 메시지와 같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15절의 예수님 선포는 특히 후기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하신 메시아적 말세가, 하나님의 다스림이 “지금 나와 함께 시작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렇게 예수님은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구원의 좋은 소식이 자기가 그들에게 옴으로써 성취되었음을 강조하셨다. 하늘에 계신 높은 분이 때가 되어 인간이 되셔서 죄인을 찾아오셨다!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복음은 이렇게 감격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이 기쁨의 소식을 감사함으로 영접하기를 기대하지 않으셨을까? 여기에 이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해진다!
여기에 “때가 찼다”(15)는 말씀이 따른다. “때”(kairos)는 알맞은 시간, 기회라는 의미로서,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속사의 시간을 의미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대단히 열망했는데,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분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세계 역사를 조성하시고(로마의 제국 통일),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그분의 길을 예비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는 특정한 “때(시간)”가 있다. 또한 성경 전체는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참조: 단 2:36 이하; 7:16 이하; 9:24 이하; 행 3:20; 갈 4:4; 살전 5:1 이하; 계 1:1-3). 바로 지금, “때가 찼”고, 오래전부터 약속된 메시아가 지금 나타났고,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드디어 시작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사 11:6 이하에서는 이 낙원과 같은 구속의 때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때에 이리(늑대)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멈추어 이 말씀이 우리 자신의 삶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성취된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때를 놓치지 말고 회심하여 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야 한다. “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나에게 떨어졌을 때에 회심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그렇게 능력 있게 역사하실 때를 또다시 주실지는 아무도 모른다(참조: 욥 33:29; 히 3:7 이하). 기회가 왔을 때에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때라고 생각하고 회개를 놓치면 안 된다.
2.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을까? 이것을 우리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왔지만, 이것이 완결된 것이 아니다. 즉, 이것이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수립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람 마음에 심겨지고 싻이 트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씨 뿌리는 자 비유=하나님 나라의 비유). 즉 하나님 나라는 일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죄인이 하나님이 자신을 다스리시게 함으로써 사람들 마음속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변화이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비로소 가시적이 되며 모든 것이 완결된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먼저 개인에게서 열매를 맺고 이러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간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온통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다스림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온다. 그때까지는 사탄도 역사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 재림하셔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시어 그 안에 구속받은 모든 사람이 살게 될 때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긴장 속에서 산다. 이때는 그들 안에 죄의 세력도 강력하게 역사하여 이들을 괴롭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당신 나라가 오소서”(내 마음을 다스려 나의 주인이 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3.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가까이 왔으므로, 예수님은 듣는 자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하신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은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일어난다. 회개는 한쪽(자기)을 완전히 떠나 다른 쪽(복음)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다.
1) 회개하라!
“회개하라”, 혹은 “회심하라!”라는 외침은 예수님, 혹은 신약의 독특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줄곧 외치신 핵심적인 요구사항이다: 사무엘서에서(7:3), 솔로몬에게서(왕상 8:33 이하), 그리고 후기 예언자들에게서(사 55:7; 렘 4:1 이하; 겔 18:32; 호 14:2; 욜 2:12; 암 4:6 이하; 슥 1:3 이하; 말 3:7),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에게서(마 3:2) 이것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설교하시는 것으로 보아 선지자의 노선에 서 계심을 알 수 있다.
“회개하라”는 원래 히브리어로 (잘못된 것에서) “몸을 돌려라”이며, 그리스어에서는 “너희 마음 전체를 바꾸어라”이다. “회개하라”는 말이 어떤 특정한 과오에 대해 반성하거나 변상한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러한 이해는 너무 협소하다. 성경에서는 삶 전체를 완전히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한 자는, 자기 소원이나 우상을 떠나 자기 미래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즉, 자기로부터 돌아서는 것, 자기의 죄 된 삶, 자기중심적인 삶을 떠나, 자기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그분만을 따르는 것이다. 앞으로 회개한 사람들의 예가 많이 나올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네 어부들, 세리 레위의 부르심 이야기.
회개라는 말을 이해하는 신자는 매우 적으므로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회개했다고 해서 의인이 되어 더는 회개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 중생 되었을지라도 우리의 죄성은 그대로 있고 계속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루터는 죄인이면서도 의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우리는 비록 은혜로 의인이 되었지만, 마음속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죄의 욕구 때문에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은 죽을 때까지 긴장 속에 있다. 자기가 아무리 외적으로 열매를 많이 맺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악의 열매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죄인이다. 단지 하나님만이 우리 속에서 선한 일을 하실 수 있으며, 만약 우리가 열매를 맺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열매이므로 우리는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자랑해서도 안 된다. 나는 만 명 교인의 교회를 이루었다는 말은, 나는 만 명을 미혹했다는 말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렇게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복음을 가르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회개, 회심이 너무나 어려운 요구라고 불평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일생 자기를 쳐서 복종시킬지라도 그러한 방법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 그러나 원론적으로는 누구든지 회개를 통해 단번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란 정말로 가장 은혜로운 하나님의 방법이다.
2)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은 회개한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복음을 믿으라!” “기쁜 소식을 신뢰해라!”. 이런 사람은 앞으로 올 최후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예수님이 오신 것과 그분의 가르침, 결국 예수님 자신이 복음이므로,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외침은 동시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이다.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은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듣는 말이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신한 모세가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언약 조건으로서 수많은 계명을 받지 않았는가? 이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복음을 믿으라”, “나(예수님)을 믿으라”는 요구는 이들에게 하나의 큰 전환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된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것을 당연시 하지만, 일반적으로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연구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이 가져오셔서 선물로 주시는 그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삶이 예수님의 요구에 합당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약 해설
막 1:14-15를 생각하면, 예수님이 무엇을 중시하는지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회심이고 믿음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메시아 왕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통해 사회 형편을 개선하는 것도 아니다. 즉, 당시에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과 같이 로마에 대항한 전쟁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문제를 잘 알고 계셨지만, 구속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셨다. 즉, 인간이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 죽음과, 인간 편에서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주고 그분을 하나님 아들과 메시아로 고백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자신을 하나님의 다스림에 맡기고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과 메시아로 고백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 13:44-46의 밭에 감추인 보물 비유와 값비싼 진주 비유와같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 나라를 사야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힘을 다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지라도 예수님을 좇아야 영생이 있다. 그런데 결심이 여간 단호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 수 없다. 부자 청년도 이 말씀을 듣고서 물러났다. 그는 영생의 귀중함을 알고, 영생을 얻고자 했음에도 자기 재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복음은 바로 예수님이며, 그분은 사람을 어떠한 율법적 강령으로 초대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그분의 성품, 신성으로 초대하셨으므로, 그분을 사귀고 인격적으로 만나게 될 때 비로소 그분의 가치를 깨닫게 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만을 좇게 된다. 이렇게 자기 것을 온전히 포기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예수님의 고귀하심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참된 삶을 찾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세상에서 귀한 모든 것, 자기가 지금까지 의미를 두고 추구해왔던 모든 것이 예수님 앞에서 오물과 같이 여겨진다. 그때부터 이미 영생이 시작되고, 그의 죄는 깨끗이 사함 받고, 새롭게 된 피조물이 되어 새로운 창조 세계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최종적인 것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당신의 나라가 오소서!”(당신 말씀과 영이 내 마음과 행동을 다스리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복습: “새로운 시대가 시작한다”
1)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
우리는 인류사에서 “새로운 시대”, “전환점”, “현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항상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에도 큰 전환점, 새로운 시대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 역사에서 말하는 전환점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막 1:14-15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공적 삶을 마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와 함께 옛 언약의 시대는 사라진다. 예수님이 등장하신다. 그분의 시작은 매우 조용히 이루어지는데, 먼저 “단지” 설교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2) 드디어 “성취되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서, 그리고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서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단지 앞으로 오실 자를 가리켰다. 옛 언약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었고, 앞으로 올 새 언약에 대한 소망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이것은 메시아, 그 구원자가 오셨다는 의미이다! 지금부터 죄는 완전히 깨끗해질 수 있다. 지금부터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최종적인 입장권이 주어진다. 지금부터 영생이 시작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 모습으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당신의 나라가 오소서!”라고 기도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다스림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창조(새 하늘과 새 땅)도 아직 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서 낙원은 아직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3)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추상적인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기에게로 초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참석할 수 있는지 그 길을 가르쳐 주신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중요한데, 그것은 회개와 믿음이다. “회개하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지금까지의 삶의 법칙, 즉 즐기고자 하는 것, 물질주의, 단순히 외적으로 경건하게 사는 것으로부터 마음과 삶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나(예수님)에게 몸을 돌려라! 나를 따르라! 이것은 그분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하는 자는 새롭게 창조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다. 이것보다 더 보람되고 좋은 것이 있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