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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선생 단소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사당(좌측 희절사, 중앙 상단 문헌사) 입구 전경 |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본관은 봉화(奉化)다. 봉화(奉化) 정씨(鄭氏)는 본래 향리 가문이었으나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鄭云敬·1305∼66) 대에 와서 과거에 급제해 양반 가문으로 발돋움했다. 운경은 형부상서까지 지낸 청렴결백한 관료였다. 정도전은 후일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부실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
▲ 삼봉기념관 입구 전경 |
▲ 기념관에서 사당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 |
1396년(태조 5) 명나라가 정도전을 압송해 보내라고 했을 때 나이가 55세가 되어 갈 수 없다고 한 것을 보아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태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의 출생지도 개경의 삼각산(三角山)과 단양(丹陽)의 삼봉이라는 설이 있을 뿐 정확한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
▲ 홍살문 우측에 위치한 재실(민본재-民本齋) |
▲ 삼봉기념관 - 삼봉집 목판 전시 |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독서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운경이 경학의 대가인 이 곡(李穀)과 친했기 때문에 이 곡의 아들 이 색(李穡)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등 훌륭한 학자들과도 사귈 수 있었다. |
▲ 삼봉 정도전의 장남인 정진선생 위패를 모신 희절사(僖節祠) 모습 - 하단 좌측 위치 |
정도전은 1360년(공민왕 9) 과거시험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벼슬살이는 순탄하지 않았다. 공민왕이 신돈(辛旽)을 기용하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삼각산 옛집에 은거했으며 이듬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잇따라 숨을 거둬 영주(榮州)에서 3년간 여묘(廬墓:상제가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 생활을 하며 제자를 양성했다. |
▲ 정도전선생 영정과 위패를 모신 문헌사(文憲祠) 입구 전경 |
신돈이 제거된 후 성균박사에 기용됐으나 1374년(공민왕 24) 공민왕이 살해되면서 다시 정치적 파란을 겪는다. 그 때 정국은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가 대결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친명파에 속했다. 1375년(우왕 1) 원나라의 사신이 왔을 때 이인임(李仁任)은 정도전을 영접사로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내가 사신의 목을 베어 오거나 체포해 명나라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
▲ 삼봉의 사당에는 유종공종(儒宗功宗)이란 현판이 걸려있어... |
▲ 우측에 위치한 제기 보관 창고인 전사청 |
이 때문에 정도전은 나주 회진현(會津縣) 거평부곡(居平部曲)으로 9년간 귀양가게 되었다. 정도전이 정치적 회생의 기회를 잡은 것은 1383년(우왕 9) 함주(咸州)에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면서부터다. 혁명을 하기 위해 이성계의 군사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성계는 개혁을 주장하는 정도전에게 협력하기로 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
▲ 관리인에게 전화로 선생의 묘지 위치를 물어서... 기념관 좌측 방향 마을에 위치한 슈퍼를 끼고 돌면, 산자락이 나옵니다. |
이것이 조선 왕조 탄생의 전주곡이었다. 이후 정도전은 이성계의 후원을 받아 혁명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이후 작업에 더욱 가속이 붙었다.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옹립했다. 그리고 토지개혁을 실시해 구귀족의 생활 기반을 빼앗아 신귀족에게 주었으며, 1392년(공양왕 4) 7월에는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조선 왕조를 건국했다. |
▲ 적당히 차를 세우고 좌측 산자락으로 올라... |
▲ 처음에 만나는 묘지를 지나면 선생의 묘가 보입니다. |
조선 왕조가 개창되자 정도전은 왕명을 받아 새 왕조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17조의 ‘편민사목’을 만들어 발표했고 목은 이 색 등 반대파를 제거했다. 이후 이성계의 뜻에 따라 강비(康妃)의 아들인 방석(芳碩)을 세자로 삼았다. 이른바 조선 왕조의 설계자였던 셈이다. |
▲ 정도전선생 단소(묘지가 유실되어 정확한 위치를 모를 경우에 허묘[虛墓]와 제단을 만들어 놓은 곳을...) |
정도전은 한양 천도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경복궁 자리도 정도전이 잡은 것이다. 정도전은 풍수(風水)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무학(無學) 대사는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궁궐을 세워야 한다고 했으나 정도전은 반대했다. 그는 무학대사가 추천한 위치는 동향이며 터가 너무 좁아 왕도로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도전의 뜻대로 경복궁이 현재의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다. |
▲ 정면과 측면에서 바라 본 삼봉의 단소 |
정도전은 1398년(태조 7) 8월26일 방원(芳遠)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에 희생되어 숨을 거뒀다. 정도전의 죄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방석을 세자로 추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복형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조선 왕조 내내 신원되지 못했다. 그러다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그 설계자인 정도전의 공을 인정해 1865년(고종 2) 그의 관직을 회복시켜 주었다.
정도전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족보에는 경기도 광주(廣州) 사리현(士里峴)에 있다고 했으나 김정호의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과천현조에는 과천 동쪽 18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기사 내용 발췌 - |
▲ 삼봉 단소 뒤에서 바라 본 모습. 관리인에게 단소에 유품이라도 묻었냐고 물어보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
서초구청 홈페이지의 향토자료 내용을 일부 발췌하면...정도전의 묘지하철 양재역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m떨어진 우면산 끝자락 서초 동 산23-1번지에는 여러기의 묘가 있는데, 이중 하나가 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의 묘소로 추정되고 있다. 풍수지리학상으로 학이 날개를 펴고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는 명당으로 묘소는 학의 머리 부분에 있다. 이곳이 정도전의 묘소로 추정되는 이유는 각종 문헌자료와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 온 이야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지] 과천현 편에는 "정도전묘재현동십팔리(鄭道傳墓 在縣東十八里)", "양재역 재 동십오리(良才驛 在東十五里)"라는 구절이 있고, <봉화정씨족보> 에도 "정도전묘광주사리현(鄭道傳墓廣州四理縣)"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 마을 사람들로부터 대대로 전해 오는 구전에의하면 정도전의 묘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목관에 안치되어 있는 피장자의 유해는 머리 부분만 남아 있고 다른 부위는 발견 되지 않았다. 이것은 [태조실록]14권에 "정삼봉이 참형되었다"는 기록과 일치하고 있어 피장자가 정도전일 가능성이 충분하였다. |
삼봉집 목판(경기 유형문화재 132호) |
▲ 삼봉집(문화재청 사진) |
▲ 삼봉집 경판고(문화재청 사진) |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며, 조선개국의 으뜸공신인 삼봉 정도전(1337∼1398)의 시문과 글을 모은『삼봉집』의 목판이다. 정도전은 공민왕 11년(1360) 진사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고려 때 성균관 박사로 있으면서 정몽주와 함께 명륜당에서 성리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개국일등공신으로 문하시랑찬성사를 거쳐 삼도도총제사, 보문관대학사 등 중요한 직을 겸임하여 정권과 병권을 한몸에 안았다.
1396년 이후 명나라가 조선의 내정을 계속 간섭하자 요동 수복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실천하던 중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기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태조 2년(1393)에는 이성계의 조선건국을 찬양하는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 등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이나 경제와 백성들에 대한 사랑은 조선을 세우는 사상적·이론적·제도적인 밑받침이 되었다. 시호는 ‘문헌’이다. |
▲ 삼봉집 목판(문화재청 사진) |
원래『삼봉집』은 조선 태조 6년(1397) 정도전의 아들 정진이 2권으로 처음 간행하였으나, 세조 11년(1465) 안동부에서 6권 6책으로 재간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성종 17년(1486)에 8권 8책으로 발행하였으나 정조 15년(1791) 임금의 명에 따라 모두 14권 7책 분량으로 총 228판 목판으로 발행하였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5∼6권에는 중앙집권체제를 강조한『경제문감』과 7∼8권에는 조선시대 법전인『경국대전』의 모체가 된『조선경국전』그리고 9-10권에는『불씨잡변』,『심기리현』, 11∼12권에는 고려 역대왕의 치적을 실은『경제문감별집』등이 수록되어 있다. |
정도전선생 단소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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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189 화살표 ↑ 주변에 정도전선생 단소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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