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봉(高峰)에서 바라 본 충주호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피워야 한다.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모이고 연결 노선버스 시간의
연계 상황도 꼼꼼히 살펴야 하는 것이 번개산행의 번거러움이다.
일반 여느 산악회의 일정에 따른다면 회비와 배낭만 달랑메고
지정된 장소에서 약속한 시간에 따라 움직이면 복잡한 마음없이 간편하다.
번개산행은 그런 경우와는 사뭇 다른 부지런함과 세심함이 추가된다.
일반 여느 산악회의 참가가 수동적인 자세라면 번개산행은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거다.
7시 20분이 출발시간이다(수원버스역).낼 모래 환갑인 늙은 아내가 신새벽 추위에 떨며
산행을 떠나는 서방의 조반을 괜시리 걱정한다.설 음식으로 남겨두었던 만두에 가래떡을
섞어 떡만두국을 차려 내놓는다.이른 새벽이고 금방 이부자리를 빠져나와 수저를
들자니 입맛이 곧바로 동할 리가 없다.식탁 한구석에서 멍하니 내 얼굴을 빼꼼히
지켜보고 있는 머루주가 도움을 청해보라고 어깨를 추어 올린다.순간 내눈에서는
작은 광채를 발했으리라.
그 친구 덕분에 이마에 땀까지 흘려가며 조반을 마쳤으니 약속한 버스역까지 부리나케
달려가야 한다.7시 10분까지 지각하지 말라는 청아대장의 싸인은 진작에 내려졌으니
민폐를 끼쳐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나를 포함한 다섯 사내들(청아,내명,회산,신바람,나)이
충주행 직행버스에 오른다(요금 9600원).빈 자리가 많이 남아있는 덕분에
다들 넉넉한 좌석에 몸을 맡긴다. 때맞춰 히타의 열기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새벽잠을 거른 다섯사내들은 곧바로 잠속으로 빠져든다(일종의 노화현상).
1시간 30분 남짓 시간을 들여 도착한 충주역,
들머리인 서운리로 이동을 하려고 충주버스역사를 나서서 좌측방향의 인도를 따른다.
택시승강장에 빈 택시들이 기다랗게 줄을 늘이고 손님을 기다린다.어지간하면
그들을 이용했으면 좋으련만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아 시내버스를 이용할 참이다.
줄지어 선 택시들을 뒤로하면 바로 삼거리 대로,2시방향 길 건너 정류소에 도착하면
서운리 행 버스가 있을 것이라고(묻고 또 물어).마침 9시 30분 쯤에 고대하는 버스가 이곳
정류소에 도착이 될 것이라고 교통안내 전광판의 빨간숫자가 반짝거린다.
동량면 소재지를 지나고서도 30여 분 이상을 충주호를 우측으로 끼고 이리구불 저리구불
오르락 내리락 털털거리며 낡은 버스는 용케도 난코스(?)를 잘도 헤쳐 나간다.
충주댐을 지난다. 갈수기로 인한 수량부족으로 맨땅의 속살을 드러낸 충주호,인적이
끊긴 선착장에는 적막만이 가득하다.잔잔한 호수는 코발트 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은빛 광채를 내뿜는다.시골길을 따라 노안을 유혹하는
좌산우수(左山右水)의 수려한 풍경은 가히 천하절경의 품격에 부족함이 없고
청풍명월 산자수명 찬사에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서운리 버스 종점에 이르니 순환임도 안내도가 우선 시선을 끈다.
임도 옆 순환임도안내도를 참고삼아 숲을 향한 임도를 따르다 보면
또 다른 안내도를 재차 만난다.
고봉에서 바라 본 충주호
그리고 그 옆으로 숲속으로 희미한 산길이 보인다.확실한 등산로를 찾으려면
우선 능선쪽을 겨냥한 후 마땅한 접근로를 모색해야한다.수 분후 산길은
조금전의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잠시 이동을 하면
좌측 비탈을 오르는 뚜렷한 산길을 만난다.산악회 표시기도 보인다.
점차 가파른 산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가랑잎으로 뒤덮힌 가풀막진 산길은
버석거리고 미끄러운 마사토의 시련이 기다린다.
첫 번째로 올라 선 봉우리는 비록 이름없는 무명봉 신세지만 번듯한 너럭바위에다
커다란 공룡알을 닮은 바위들이 노송들과 한 폭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충주호의 조망은 물론이려니와 산골자락에 움크려있는 산골마을의
전원풍경이 그림같다.가파른 비탈을 내려서면 고봉의 삐죽솟은 암봉의
날렵하고 다소 오만한 듯한 모습이 시종 산행심리를 부추긴다.
산길은 평이함에 특이하고 유별난 코스가 보태진다면 더 바랄게 없다.
간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짧은 시간이면 가능한 근교산책과는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준비와 마음가짐 그리고 자신의 체력까지 염두에 두고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올망졸망 바윗 길,크고 작은 노송들이 크고작은 화강암 바위사이에 터전을
삼았고 담대하게 머리를 묻은 대지 한구석이 극도로 협소한 곳이지만
아금맞고 억척을 부리며 어렵사리 뿌리를 내렸다.
오르고 내려서고 걷고 기고 갖은 풍악을 동원한다. 두 발로 직립보행의 전형적인 품새로
점잖을 가장하다가도 불시에 두 손과 두 발을 동시에 동원해야 하는
낮은 포복진행을 수반한다.지나가던 소가 비웃을 일이지만 가장 안전한 보행법.
잔뜩 겁먹은 태도와 비굴해 보이는 동작은 다소 우스꽝스레 보일 수도 있지만 최선의 자세다.
안전산행을 위해서는 말이다.한번 삐끗이 최소 1년간의 고통과 재활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울멍줄멍하게 바위들이 즐비한 고봉(高峰),마른 참나무에 장방형의 검은 명패가 걸렸다.
해발 459m,산자수명(山紫水明)하니 청풍명월(淸風明月)이로다.
고봉에서의 네 사내들
그림같은 에메랄드 빛을 발하는 충주호 그리고 그를 둘러 싼 수많은 산무리들,
다만 갈수기 탓에 허연 맨살을 드러낸 민낯이 산자락을 따라 기다란 띠를 이룬다.
고봉을 뒤로하고 올라야 할 수리봉과 주봉산이 손짓한다.받아 논 상(床)이니 서두를
이유는 없다. 서두르면 빨리 도착은 할 수 있겠지만 맛 난 것은 진득한 저작으로
미각의 즐거운 시간을 지속시킬 필요가 있다.절경의 조망대에서 인증 샷은 절대조건이다.
고봉에서의 내려서는 구간에 위험한 구간이 발목을 잡는다.훌쩍 가볍게 뛰어내리자니
한뼘거리만 벗어나도 천길 절벽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궁둥이를 자존심 상하게 바위 비탈에 비비작거리며 내려선다.지켜본 사람은 임의로운
우리 서넛 늙은 사내들 뿐이니 주위 살필 일은 없다.
하늘을 찌를 기세의 노송들이 울창하다.산자락에서는 구경하기 쉽지않은 친구들,
천적(인간)들의 손이 거의 미치지 못할 곳에 터전을 잡은 탓에 명줄을 오래동안
이어가고 있을 터이다.들머리에서 시작된 임도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흰 띠를 이루며
산속을 구불구불 에움길을 따르고 산등성이를 애면글면 힘겹게 넘어가고 있다.
허연 뱀장어 몸통을 닮았다.
울창한 노송 숲을 빠져나오면 바로 그 임도에 내려선다.수리재다.
수리봉을 오르는 길목에 번듯하게 세워놓은 대리석 빗돌이 수리재임을 알린다.
시작 들머리(서운리)에서 시작된 임도는 고봉의 산허리를 감돌고 휘돌아
이 곳 수리재를 넘어서 양아마을 지동리를 경유하며 충주호를 좌측 허리에 끼고
동행을 하면서 결국 서운리로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 트레킹 코스다.
전국적인 선풍의 기폭제가 된 제주 올랫길이 일으킨 여파가 이 곳에도 벤치마킹되고
있는 거다.
수리봉은 비교적 작은 참나무들과 여타의 잡목으로 조망은. 기대에 못 미친다.
워낙 고봉의 뛰어난 조망의 잔영이 가시지 않았음이리라.
참나무 마른가지 사이로 시종. 눈길을 끄는 에메랄드 호반의 미색은 일관되고 있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수리봉을 뒤로하면. 주봉산이 거대한 모습으로 성큼 다가온다.
한동안 오름과 내리막이 얌전하게 이어진다.
삼거리 안부인 새목이에 이르니 반듯한 이정표가 반갑다.오른쪽으로는 양아리를
가리키고 맞은 쪽 직진방향은 주봉산이 0.7km가 남았음을 알린다.이제 주봉산 정상은
턱밑이나 다름없다.
관모봉과 순환임도 그리고 충주호
가뿐 숨을 요구하는 가풀막을 오르면 산길은 갈랫길을 내놓고 선택을 강요한다.
지등산의 네 사내들
산행을 시작한지 다섯 시간을 넘겼다.여유롭고 유유자적한 산행길이였지만 피로감이
닥쳐 올 무렵이면 대개 마음은 바빠지기 마련이다.난이도가 떨어지는 구간인지라
다들 발걸음을 재우친다.맨 앞에서 진동한동 잰걸음을 치는 청아대장의 발놀림이
가볍다.산길은 넓은 밤나무 단지 옆 농로로 들어선다.우측 산기슭 전체가 밤나무 밭이다.
산길은 그 곳 왼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지등산의 뾰족한 멧덩이가 홀로 반갑게
손짓한다.가뿐숨을 헐떡이며 오른 지등의 정수리에는 정상빗돌과 작은 돌탑 그리고
삼각점이 심어져 있다.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남한강의 수면은 은빛으로 가득하다.
동량면 소재지가 평화롭게 조망되고 강 건너 계명산의 거뭇한 실루엣이 위압적으로
다가온다.지등산을 뒤로하고 건지리마을 방면으로 향하면 밤나무 밭은 갑작스레
사과나무 밭으로 바뀐다.이 곳은 온통 사과나무밭 천지다.
세멘트로 포장이 된 농로를 따르면 길 오른 쪽으로 무선기지시설물이 보인다.
젊은 사내 두 명이 작업중이다.동량면 소재지 방향으로의 산길을 물을 참이다.
저희들은 승용차를 몰고 왔고 이 곳 지리를 잘 모른다는 답변만 내놓는다.
그렇다면 무선기지 앞에 보이는 산불초소 앞으로 해서 곧장 산길을 따르면 빤히
바라다 보이는 동량면 소재지로 수월하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네 사내들이 포장임도를 따르자고 한다.옳은지고! 군자대로행이라 했겄다.
건지리 마을은 인적이 끊긴 마을 처럼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하겠다.동지섯달 추운 농한기에
바깥으로 드나 들일이 드물 수밖에,그렇다고 마을회관도 텅비어 걸어잠그고
밥값 못해 안달이 난 개새끼들만 악머구리 끓듯 한다.
마을을 벗어나려면 대로 변까지 이음길이 있기 마련인데 길은 끊기고 덤불과 마른 덩굴이
발길을 붙잡는다.길을 잘못 들은 것이다.턱 밑으로는 차도가 얼씬거리는데
되짚어 길을 찾을 이유가 없지싶다.허둥지둥 목표물인 차도를 타겟삼아 진둥한둥
잰걸음을 친다.도깨비풀씨가 바짓가랑이며 옷에 범벅으로 잔뜩 붙어있다.
아침에 이용했던 노선버스(312번)의 오후시간을 용의주도하게 살핀 청아대장 덕분에
오랜 지체없이 털털버스의 신세를 지게 된다(17시 쯤).
수원행 직행버스 출발시간이 18시 30분이다.한 시간의 여유가 있다.
마지막 퍼즐조작에는 허둥지둥 헤메고 혼란을 겪었지만 허리띠를 풀어헤치고
출출해진 허기와 간절해진 갈증을 해소함으로써 고통의 미학의 한 페이지 행간에
시행착오의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련다.
하산길에서 바라 본 계명산
.
첫댓글 산행기를 읽으며 지나온 산길을 되짚어 본다
항시 번개산행은 묘미가 있으면서 생활의 활기를 불어 넣는다
일종의 삶이며 생활의 한 방편인 셈이다
며칠후면 가야할 예산의 봉수산 산행후 붕어찜이 기다려 진다
봉수산에서 연기피워 급한 소식 전할 일은 없을테고...애꿎은 붕어가시나 발라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