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에 십자가를
달지 않은 교회는 이단인가?
제가 한국에
살 때 어느 방문자가 예배당 안에 들어오더니 한참을 둘러본후 하는 말이, “ 어어? 이 교회는 십자가가 없네요?, 밖에도 없고 안에도 없고요?” 하더니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뒤로
종종 십자가를 꽂지 않고 예배보는 교회는 이단이라든가, 교회 건물위에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잘못된 교회일 확률이 높다,
등의 표현들을 들은바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십자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셔서 죽음을 당해야 했던 형틀이며 사형집행도구였을 뿐이지 그것을 교회의 건물위에 두어야 한다거나, 모임에서 그 표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성경구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형집행 도구요, 방법이었으므로, 그것을 반드시 교회에 꽂아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예수님이 총에 맞아 죽었다면 교회 건물마다 꼭대기에 총을 한자루씩 매달아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요, 건물안에도
총을 하나씩 걸어 놓아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또 당시에 예수님은 칼에 목이 잘려 죽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칼에 죽었다면 교회 건물 꼭대기에 칼 한자루씩 매달아 놓고, 건물 안에도 칼 한자루씩 걸어놓아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칼로 목베임을 당하여 죽으셨다면, 십자가 목걸이 대신에 칼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하겠습니까?
십자가는
스타우로스(Σταυρος ) 로서 마태 27:32, 40, 42 빌 2:8 등 여러곳에서 나옵니다만 그 형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잘 정돈된 정십자 모양이나, 직십자 모양도 아니고, 통나무 위에 가로지른 막대기를 못질하였거나 묶은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팔을 쭉 편 모습이 아니라, 팔을 가로지른 나무위에 꼬게 하여 걸치게 하였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손에 박은 못으로만 몸 전체를 지탱케 하였다는
말보다는 겨드랑이가 가로지른 나무 위에 걸치게 하였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교회사상 십자가를 숭배했던 시대나 교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카톨릭 교인들은 십자가 상을 구매하여 갖고 다니기도 하며 교황은 그것을 들고 다니는데 좀
꼬부라진 모양의 십자가(왜곡된 십자가)를 갖고 다니기도 하고, 소위 앵크 십자가라는 고리달린 모양의 십자가를 갖고 다니는데 그것은 이집트 잡신교에서 흔히 볼수 있던
표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정교회를 들어가면 입구에 돌판에 새겨진
십자가상에 키스하며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양에 고대 기독교가 들어온 것을 추적하다
보면 그들이 성상(십자가상)을 숭배했던 기록들을 볼 수 있다고 브로드벤트는 순례하는 교회사에서 증언한바 있습니다. 십자가 형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결국은 성상 숭배라는 우상숭배로 나아감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은 가장 먼저 다비드가 예언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050년 전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약 1070년 전이었습니다. 다음의 구절에서 봅니다.
시편 22:17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인의 무리들이 나를 둘러쌌나이다. 그들이 내 손들과 내 발들을 찔렀나이다.
여기서 개들은 이방인들을 말하며 악인의 무리들은 불신자들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그들이 나의 손들과 나의 발들을 찔렀나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옷들을 나누고 제비뽑았나이다( 22:18) 하는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한가지 유의하실 것은 17절의 내 손들과 내 발들을 찔렀다는 성경 구절을 유대인들은 절대로 안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갖고 있는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은
대략 996개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 3-4개 만을 제외하고는 그 구절이 이렇게 읽어져야
합니다. 그들이 사자처럼 내 손들과 내 발들에 .... 있나이다. 사자처럼 손들과 발들에 있다는 말은 사자처럼 물고 있다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자처럼 물고 있다는 말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은 형태의 형벌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원어문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כ' סבבונ' כלב'ם
עדת םרע'ם הק'פונ'
כאר' 'ד' ורגל'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이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의해 보전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조작하여
보전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7세기경 시작되었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예언이 페르시아에서 십자가 형벌제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4백년 전에 예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형벌로 주목할 만한 역사 기록들은 주전 330년 경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레바논 두로 시돈 지역에서 2천여명을 십자가형에 처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십자가 형벌
사건은 역시 크랏수스 장군이 스파르타커스의 반란을 진압한 후 로마 부근에서 집행된 형벌에서 6,000여명이 처형된 사건이 주전 73년 경에 있었습니다. 노예들의 반란을 진압했던 크랏수스는 나중에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살해되었을 때 페르시아인들이 그가 노예매매로 돈을 많이 번 것을 알고 그의
시체의 입에 금을 녹여서 목구멍까지 금녹은 금물을 부어 넣어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마 크랏수스는 지옥에서 금을 입에 물고 다닐 것같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할만한 십자가 형벌은 주후 66년경으로 기억하는데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 예루살렘의 많은 바리새인들, 열심당원들 260여명이 십자가 형벌로 처형되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했던 사람들도 몇은 포함되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AD70년 유대전쟁이 끝나갈 때 예루살렘에 로마군대가 진입하여 거주민들 모두를 살육했으며, 약 110만명이 살육되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나무가 부족하여 십자가형에 처형하지 못하고 그냥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예루살렘은 피바다로 변하였습니다. 나무가 있는 한 모든 남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배척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은 형벌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 생각해봅니다.
십자가는 형벌의 도구였지, 특별히 그것을 섬기거나 모셔두어야 할 물체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것은 편의상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표현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표현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의 교회가 그런 형상을 갖추어야 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또 누구 개인이나 교회가 그것을 지녔다고 해서 우상 숭배자이고 비기독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날 이슬람국가에서 십자가 표시를 보기만 해도 기독교인들로 판정하고 살육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을 구분하는 표시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때로는 쉽게 기독교인들을 알아보는 도구로도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참 의미를 생각해볼 때입니다. 그분이 그날에 나무위에 매달리셔서
고난 당하셨으나 지금은 그분의 영광이 하늘에 빛나고 그분은 하늘 보좌에서 앉아계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 못박힌채 매달리게 하며 그 몸을 지탱했던 것은 그 큰 대못 세개가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언제든지 내려오실
능력과 권능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몸을 십자가에서 지탱해준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대한 전적인 순종과, 그분의 우리 인생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 죽음과 극한 고통을 넘어선 사랑, 그리고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시리라는 굳건한 믿음이었습니다.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피흘리고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사함받은 사실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값없이 은혜로 죄을 사함받고, 은혜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이 매우 쉽고도 가장 고귀한 진리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님을 위해
헛되이 죽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4장 25절
그분은(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범죄함들을 인하여 넘겨졌고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2010. 3. 23 하토브
2016. 11. 22 엘리야후 약간의 수정
첫댓글 "예배당에 십자가를 달지 않으면 이단인가?"
위 제목이 실제로 의미하는 내용을 감안하여
다시 써 보았습니다.^^
한글 문법에 더 맞게 바꾸었습니다. 통상 하는 말을 문자로 옮겨놓았는데 한글 문법에는 정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의 비밀을 아는 자는... "아멘"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3-6)
오히려 십자가를 달면 십자가가 또 다른 우상이 되어 사실상 이단이 됩니다
위의 십자가 처형 사건들에 추가할 사실들은 1600 이후 일본에서 수십명의 천주교인들이 토쿠가와 정부에 반역하여 쿠테타를 시도하다 십자가 형벌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1915-20년간에 터키가 알메니아인들의 150만명을 죽일 때 약 20명 정도의 알메니아 소녀들 ( 대개 15-16세)을 발가벗긴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진들이 현재에도 존재합니다.
다음으로 오늘날에도 중동에서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수시로 죽일 때 몇 명이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십자가는 허황한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잔인 형벌입니다.
그러네요... 어차피 교회입구에 교회라고 이름이 붙여져있으니 못찾을 사람없을 것이구요. 없다해서 문제될거 없죠.
내년도에 모임장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십자가가 있는 간판이나 현판같은 것을 둘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큰 의미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교단에서는 교단의 마크를 사용하고 십자가도 병행하여 사용하는데 그걸 하고 안하고의 차이로 모임이 성패가 갈린다면 그것이 이상한 현상이 되겠지요.
20대에 서달석 목사님 모임에서 들었는데, 십자가는 저주를 의미한다고 저주를 목에 걸고 다니지 말며 십자가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더군요. 나이가 들어서는 십자가를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으로...그저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만...본인의 믿음이겠지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 말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여기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으나,
십자가 자체는 저주를 의미한다고 하니, 십자가 형상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