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서평을 올려놓고 또 왔습니다.
이번 책은 제가 시각장애인들이 즐기는 장르문학 동호회 활동을 하며 읽었던 작품입니다. 그 동호회의 후기 게시판에 가면 이 감상과 똑같은 내지는 살짝 다른 글을 만날 수 있어요.
도서명: 요리의 신 전 32권
* 이 소설은 아이프리 동호회 코너에 있는 ‘독서천국’이란 곳에서 다운받은 작품입니다.
PS. 그 동호회는 자료를 공유하는 게 금지되어 있고, 가입하면 규칙적으로 감상과 후기, 댓글 등으로 활동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 소개글 서평
이 책을 선택한 건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일단 분량이 많다. 무려 32권. 아주 길고 긴, 그래서 만약 이 작품이 재미가 있고 취향에 맞는다면, 두고두고 최대 한 달, 최소 3주 정도는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계산이 선 것이다. 원래 몰입하기 시작하면 독파 속도가 좀 스피디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통 책을 미리미리 비축해 쌓아두어야 여가 생활이 풍성해진다. 다람쥐는 그나마 가을에만 월동 준비를 하는데, 본인은 1년 365일 내내 하는 셈이다. 물론 오직 분량만 보고 다운받은 건 아니다. 대충 70% 정도가 빠방한 양 때문이긴 하지만.....
사실 대장금 사극 드라마를 참 재미나게 봤다. 궁중 식문화와 식의, 음식으로 건강과 의학을 다스리는, 그런 장면이 꽤나 멋졌었다. 바로 그 후로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마침 그 요리를 테마로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 작품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이 소설을 바로 읽자고 생각한 건 또 아니다. 초반 1권을 읽다가 프롤로그에서 이렇다 싶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죄다 엎고 말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흥미가 끌리지 않아서 초장에 파일을 지운 경우가 좀 된다. 하지만 이 작품 ‘요리의 신’은 나름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본인의 욕구는 충족시켜줬다.
10년 회귀한 인생, 되찾은 요리사의 꿈
주인공은 29살의 조민준이다. 그러나 서장에서 금방 30살로 껑충 뛰게 된다. 20대와 30대는 시간이 다르다니까 1살 차이라도 훌쩍 뛴 거다. 그는 원래 교편을 잡았는데, 요리사의 꿈을 놓지 못하고 교직을 걷어찼다. 그리고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가 주방 잡일꾼부터 시작하게 됐다. 물론 가족들이 반대를 했지만 고집을 밀어붙인 것.
요리사는 조리복을 입은 모습은 근사하지만 힘든 직업이다. 여름에도 가스 앞에 서고, 겨울에도 찬물에 손 담그고, 여차하면 칼에 손가락 창상 입고, 운 나쁘면 불꽃에 화상도 입는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 꿈이 그렇게도 좋았는지, 교사라는 안정적 직장을 때려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마냥 잡일꾼 신세, 프라이팬은커녕 칼도 못 잡아보고, 조리대 앞에는 서지도 못했다. 민준은 진즉에 도전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그러다 30살, 채팅을 하다가 ID ‘요리교주’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꿈에 도전할 거냐고.
민준은 그럴 거라고 글을 남기고 잠이 든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진짜 10년 전으로 회귀해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이번에야 말로 요리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열리는 ‘그랜드 셰프’라는 요리대회에 나가는 것으로 그 시작을 끊는다. 전직 영어교사였던 점을 십분 살려 통역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설정.
이 대목에서 작가의 배려를 느낀다. 주인공을 미국에 보내려면 어학 능력은 탑재시켜 줘야 하는 거다. 괜히 주인공이 외국 길바닥에서 고생 안 하고 좋지 않나. 뭐, 주인공이 언어 문제로 고생하는 면도 재미가 지긴 하지만 본인이 영어를 못해서 그런가 주인공이 영어 빠방하게 하는 걸 보면서 대리 만족이 든다는 거.
물론 요리대회니 만큼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다. 먼저 회귀 전 민준이 동경했던 천재 요리사 카야 로터스. 이력도 특이하게 빈민 출신, 시장에서 다종 다양한, 전 세계의 온갖 음식을 접하고 자란 최연소로 우수한 요리사. 미각도 장난이 아니라는 거. 둘째 요리계의 엘리트 집안에서 자란, 요리계의 진골 귀족 앤더슨 루소. 그리고 미국인이지만 중국 요리에 맛을 살리는 데 능한 클로이 정. 제빵 실력 짱짱하고 상냥한 곰 같은 흑인 싸나이 마르코. 그 외에도 기타 등등이다.
대회니까 심사위원도 아주 깐깐하다. 평가에 따르는 독설이 장난 아니다. ‘이건 요리도 음식도 아닌 쓰레기’라는 평가부터 시작해 살벌한 혹평의 난무. 읽으면서 덩달아 쫄았다. 왜 저리 성깔이 까끌까끌 사포 같나 싶어서. 실제 요리사가 저런 성격이면 무서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경쟁자와 오싹오싹한 심사위원 앞에서 꿈만 많은 초짜 요리사 민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과를 미리 얘기하자면 살아남는다. 적어도 예선 탈락 안 하고, 나름 발전도 하고 인정도 받고, 금방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 비밀은 민준의 ‘능력’ 때문. 회귀 후 주인공에게는 이상하고도 괴상한, 원래 민준에게는 없던 능력치 보정이 생긴 것이다. 바로 요리 레벨이 보인다는 거! 과연 꿈을 놓친 전적이 있는 전직 영어교사 조민준, 그는 이번에야 말로 요리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요리 레벨’ 운운하는 대목에서 솔직히 ‘엥?’ 했다. 이거 판타지 현실물 같은데, 갑자기 웬 게임 같은 설정이란 말인가?
여기서 좀 깼지만 사실 판타지가 논리와는 거리가 좀 있다. 그렇게 막 따지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몇 없기에 그냥 그러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럼 이 소설의 장점을 소개한다. 첫재, 요리와 셰프가 주제인 만큼 온갖 다양한 음식이 등장한다는 거. 탕수육 같은 중식에서부터 리조또 같은 이태리식, 초밥과 같은 일식, 한국적인 고등어 구이. 본인이 여태껏 먹어보지 못한 요리도 참 많이 나왔다. 참고로 본인 수준은 탕수육, 고등어 정도. 조리 과정도 꽤나 세세하고 음식의 질감이나 맛을 표현하는 것도 썩 구체적이라 읽으면서 시식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종의 대리 만족인 셈이다. 더 중요한 건 말이다. 본인이 요새 몸의 긴축감축의 그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거다.
봄 지나고 여름 되면서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그때마다 늘 하는 연례 행사. 간단하게 말해 다이어트. 몸매를 가꾸고 외모를 예쁘게 하고, 건강을 위한 몸부림. 이 시기가 되면 먹는 걸 줄이거나 경계하거나 참는 게 다반사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는 맛나는 게 참 많다. 그게 가장 큰 문제. 치킨도 있고, 떡볶이도 있고. 아무튼 그래서 다이어트 기간인 바, 요즘 절제를 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참고 있는 ‘식’에 대한 욕구를 이 책이 좀 달래줬다. 읽기만 해도 욕구 충족이 되더라. 물론 달펭이나 거위의 간처럼 그닥 먹고 싶지 않은 미식 요리도 있지만.
누군가는 다이어트 중에 요리책이나 요리 방송을 보면 더 유혹이 생긴다고 하던데 다행히 본인은 대리 만족을 느끼는 체질인 모양이다.
둘째로 인간의 노력과 그에 대한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는 부분이다. 조민준은 초반에 시스템적인 부분이나 요리 레벨에 기대는 감이 없지 않았다. 조리 점수가 높은 요리를 더 우선적으로 쳐주고, 낮은 요리는 약간 아래로 까는 태도. 혹은 자신의 한계를 레벨로 측정해서 정하는 모습. 레벨 8은 8점짜리 요리가 최선이라는 식의 관념. 그러나 다른 셰프들과 어울리고 티격대고 싸우고 격려하면서 요리의 가치는 조리 점수가 다가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된다. 좋은 요리가 꼭 잘한 요리가 되는 건 아니고, 잘한 요리가 반드시 좋은 요리로 평가받는 건 아니라는 것. 조리 점수는 그저 기술적인 부분일 뿐, 하나의 척도일 뿐, 그것이 요리 자체를 판별하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
이 진리는 꼭 요리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모든 일에서 다 적용되는 공식이다.
한편 민준은 시스템의 힘으로 인해 ‘절대미각’이라는 무슨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설정을 가졌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 즉, 절대적인 혀를 가졌다는 걸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거다. 그 바람에 요식업계의 전설적인 거장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절대미각이 본래 주인공이 가진 능력이 아니라는 것.
그저 사람들이 가졌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이게 제 혀로 느낀 게 아니라 시스템이 다 알려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이 점은 민준의 역린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주인공은 각고의 노력 끝에 시스템의 힘이 없이도 절대미각과 비견되는 혀를 개발하게 된다. 노력에는 장사 없다는 말을 실천하다 못해 증명한 셈이다. 이 대목이 상당히 인상에 남았다. 보통은 시스템에 계속 의지하며 숨기고 마치 자기가 진짜 절대미각을 가진 것처럼 행세할 텐데.....
마지막 셋째, 이 소설의 장점은 은근히 성장물이라는 점이다. 요리사로서의 성장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적인 성숙함까지 의미한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에는 여러 요리사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동경의 대상이자 연인이 된 카야. 친구이자 라이벌이자 동료인 앤더슨. 친구이자 상담사 역할도 하는 클로이. 요리계의 거장 레이첼. 야망을 위해 독하게 하루 일정을 관리하는 뉴욕의 셰프 쥰. 평범한 재능을 가졌지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하비에르. 그 외 일일이 다 쓰자면 몇 날 며칠은 새야 하는 수많은 조리사와 제빵사와 서버와 소몰리에 등등.
그들은 서로 경쟁하고 상대방의 자질에 눌려 좌절하고, 그래도 서로를 믿고 자신을 믿고 이겨낸다. 보통은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본인도 그 기분을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밤잠 줄여가며 달리고, 미련하다 싶을 만큼 박아도 손에 쥐는 건 얼마 없는데, 아니 그조차 때로는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 옆에 누구는 너무 쉽게 쥐고, 놀 건 다 놀면서도 시험은 100점이고. 그럴 때는 내가 너무 못난 것 같고, 상대적인 박탈감 들고, 쫓아가기도 버겁고. 그런데 어떻게든 한 번은 이겨보고는 싶고. 아니, 그 옆에서 동등하게 같이 걷고 싶고. 이런 갈등 구조를 꽤나 잘 묘사하고 풀어간다는 인상이 들었다. 마냥 요리 만화 같지만, 또 마냥 유치하다고 할 수 없는, 휴머니티가 녹아 있는 작품이랄까.
단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간혹 출몰하는 오탈자가 있겠다. 이게 연재물을 스크랩한 거라 그런 것 같다. 또 다소 낯선 전문 용어를 들 수 있겠다. 퓌레, 소스 비슷한 느낌의 되직한 무언가. 탄두리, 양념을 발라서 겉면이 탄 건 아닌가 싶게 바싹 익힌 조리법.
요리에 대한 지식이 얕은지라 이런 표현이 좀 낯설었다. 딱 읽어놓고 이해를 못해서 열심히 상황을 보며 대강 감을 잡곤 했더랬다. 그래서 위에 두 가지 예시에서 본인이 내린 정의가 맞는지 틀린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영 이해하지 못할 외계어는 아니라 큰 뒷탈은 없다.
아무튼 그런 점만 빼면 좋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적당히 무걱고 또 적당히 가벼운, 미식과 요리의 향연. 그리고 꿈의 향연. 그 맛깔나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