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侍中金富軾(시중김부식)과 學士鄭知常(학사정지상)은 文章(문장)이 齊名一世(제명일세)하여
兩人(양인)이 爭軋不相能(쟁알 불상능)하다. 世傳知常(세전지상)이 有(유) 琳宮梵語罷(임궁범어파) 하니,
天色淨琉璃(천색정유리)라. 之句(지구)하야 富軾(부식)이 喜而索之(희이색지)하여 欲作己詩(욕작기시)나
終不許(종불허)하다. 後(후)에 知常이 爲富軾所誅(위부식소주)하여 作陰鬼(작음귀)러니 富軾(부식)이
一日(일일)에 詠春詩(영춘시)에 曰(왈) 柳色千絲綠(유색천사록)이요, 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이라.
忽於空中(홀어공중)에 鄭鬼批富軾頰曰(정귀비부식협왈) 千絲萬點(천사만점)을 有孰數之也(유숙수지야)오.
何不曰(하불왈) 柳色絲絲綠(유색사사록)이요,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고. 富軾(부식)이 心頗惡之(심파악지)하다.
後往一寺(후왕일사)하여 偶登厠(우등측)이러니 鄭鬼從後握陰囊(정귀종후악음낭)하여 問曰不飮酒(문왈불음주)하고
何面紅(하면홍)고 富軾(부식)이 徐曰(서왈) 隔岸丹楓照面紅(격안단풍조면홍)이라. 鄭鬼緊握陰囊曰(정귀긴악음낭왈)
何物皮囊子(하물피낭자)오. 富軾曰汝父囊(부식왈여부낭)은 鐵乎(철호)아 하고 色不變(색불변)하니 鄭鬼握囊尤力
(정귀악낭우력)하여 富軾(부식)이 竟死於厠中(경사어측중)이라.
(해석)
시중 김부식과 학사 정지상은 문장에 있어서 한 때에 명망이 똑같아서
두 사람이 서로 시기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세상에 전하기를 지상이
임궁에 불경소리 끝나니
琳宮梵語罷 임궁범어파
하늘빛은 마치 유리알같이 말쑥하다
天色淨琉璃 천색정유리
*琳宮(임궁)은 금옥으로 장식한 집. 곧 불당이나 도원(道院) 같은 집.
의 글귀를 지었다. 김부식은 그 글귀가 너무나 좋아서 자기가 지은 것으로
하려고 “그 글귀를 달라.”라고 했다. 지상은 끝내 주지 않았다. 그 뒤에 지상은
부식에게 죽임을 당하고 음귀가 되었다.
부식이 어느 날 「봄을 읊은 시(詠春詩)」에 이르기를
버들 빛은 천 갈래 실이 파랗게 늘어졌고
柳色千絲綠유색천사록
복사꽃은 만점이나 붉게 피었다.
桃花萬點紅 도화만점홍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부식의 뺨을 갈기며
“천 갈래실과 만점의 꽃은 누가 세어본 것이냐? 어째서
버들 빛은 갈래갈래 푸르고
柳色絲絲綠유색사사록
복사꽃은 방울방울 붉도다.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
라고 하지 못하느냐?”했다. 부식은 마음으로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어떤 절간에 가서, 뒤를 보려고 뒷간엘 갔었다. 정지상 귀신이
뒤에서 불알을 움켜잡고 묻기를
“너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얼굴이 어째서 그리 빨가냐?”라고 했다.
부식은 천천히 말하기를
건너편 언덕에 단풍이 얼굴에 비쳐 붉으리라.
隔岸丹楓照面紅 격안단풍조면홍
정귀(鄭鬼)는 불알을 바짝 쥐며 말하기를
“이게 무슨 가죽주머니냐?”
부식이 답하기를
“네 아비 불알은 쇠주머니냐?”하고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귀는 더욱 힘을 들여 불알을 움켜잡아서,
부식은 결국, 뒷간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 홍찬유 선생님 번역본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