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이 태어난 날로, 올해 탄생 100년이 된다. 그 말고도 100년을 맞는 작가가 여럿 있고 '100년'에 굳이 무게를 둘 필요가 있겠냐만은 이상에게 '100년'은 각별하다. 단순한 시간의 합이 아니라 매(每) 1년이, 그리고 100년이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남겼다는 이유는 그의 100년이 지닌 '현재성'이 여전히 신선하고 물음표를 달게 하고, 도전하게끔 한다. 오늘날에도 문학이, 연극과 미술에서, 그리고 음악, 영화 등 문화 장르를 막론하고 이상을 변주하는 배경이다.
이상은 무슨 상징처럼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1910년에 태어나 1930년대 서구 모더니즘의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듯 활동하다 그 세례주를 찾아 일본에 머물던 중 27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상은 경성이라는 도시를 탐하고 자유연애, 백화점, 다방, 극장 등 '모던(modern)'의 상징들이 풍미하는 시대에 몸을 맡긴 '모던 보이'였다. 이상은 전근대의 낙후와 봉건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시작점인 '구인회'에 나중에 들어갔으면서도 대열의 맨 앞자리에 섰다.
이상의 본명 김해경이란 이름은 강릉 김씨라는 핏줄을 잇고,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라는 정언적 명령이지만 1932년 7월 <조선과 건축>이란 잡지에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 아래 7편의 시를 내놓으며 '이상'이란 필명을 쓰면서 내쳐진다. 시 '오감도'에서 13인의 아해가 질주하는 '막다른 골목'은 모더니즘의 도주로였다.
그러나 이상의 '질주'는 시대를 너무 앞질러 갔다. 그가 1934년 7월 <조선중앙일보사>에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하자 항의가 빗발치고 아유가 쏟아져 결국 연재는 15회로 중단됐다.
이상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떨어지고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며 항변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와 모독 뿐이었다. 소설 <날개>의 첫문장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처럼.
다방 '제비'의 금홍, 화가 구본웅의 누이동생 변동림과의 동거도 잠시, 이상은 1936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간다. 그의 멘토이자 일찍이 이상의 천재성을 알아봤던 김기림과 함께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경에 불량선인으로 검거되고 얼마 뒤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1937년 4월 삶을 접는다.
생전의 이상에게 '우리가 가진 가장 뒤어난 근대파 시인'이라고 갈채를 보낸 바 있는 김기림은 그의 죽음에 대해 "제 스스로 혈관을 따서 '시대의 서(書)'를 쓴 이상의 죽음이 한국문학을 50년 후퇴시켰다"며 크게 슬퍼했다.
27살 얼룩진 삶을 살다간 이상은 죽은 순간부터 그리고 탄생 100년이 되는 현재까지 문화계 이곳저곳을 가로지르며 질주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문제적' 작가라는 동력 에 기반해서다.
이상은 문학에서 모든 연구방법론이 동원된 유일한 작가이면서도 작품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로 남아 있다. 이상에게서 주목하는 것은 그를 지배한 무의식, 정신적 토양, 전위적 불온성 들이다. 이는 오늘날 문학에서도 '화두'처럼 남아 후세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시인 이승훈은 이상에게서 "반리얼리즘적 태도, 실존의 현기, 추상성, 자아에 대한 회의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감수성은 이상의 계보에서 진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장욱의 단편 <고백의 제왕>, 김연수의 장편 <굳빠이, 이상>, 장용민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등 소설에서도 이상은 모티프로, 토대로 작가들에게 오마주가 되거나 그들을 자극한다. "
이상은 연극에서도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그만큼 해석의 폭이 다양하고 근대를 살면서도 탈근대를 지향했던 이상이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계속되고 있는 현대에 더욱 흥미로운 텍스트가 되고 있다.
지난해 방한한 실험극의 거장 리 브루어은 "이상의 모던한 예술적 감성은 현재 뉴욕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연상시킨다"면서 "만약 이상이 카프카 시대에 있었다면 그만큼 유명해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상, 열셋까지 세다>에서 비디오, 프로젝터, 인형극 등을 통해 이상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상의 분열된 자아와 불안한 자의식을 표현한 <상이(箱李)>(2007)는 이상과 현대인들의 공통된 불안한 내면을 비추었다.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오감도>는 '백수' 이상의 삶에 초점을 맞춰 오늘의 현실을 담아낸다. 백수 이상과 그 자아, 금홍. 세상 사람들과의 갈등을 통해 현대인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상 탄생 100주년 행사 중에는 서울과 파리에서 열린 <2010 Paris/Seoul 이상 다시 살다>가 눈길을 끌었다. 이상의 세계를 조명하는 세미나, 전시, 퍼포먼스 등이 어우러진 행사는 이상이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열려 있는 텍스트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동기획자인 엠마뉴엘 페렁은 "이상은 유럽의 아방가르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명백하며, 유럽과 한국의 문화적 유대의 시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내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木3氏의出發 (이씨의 출발)>은 건축가, 화가, 소설가, 시인으로 살며 하나의 '신화'가 된 이상의 삶과 예술, 나아가 그가 살아가던 1930년대의 모더니티를 다원적이면서도 치밀하게 탐구한다.
1930년대 '모던 보이' 이상을 지배한 정신은 '아방가르드(전위)'이다. 이는 시대의 통념을 파괴하여 '정신의 내적 필연성'에 따름으로써 다음 시대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는 그의 저서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에서 '정신의 3각형'이라는 비유를 통해 '전위미술'을 선구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시대의 정신생활이 형성하는 3각형 속의 저변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정점에는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런데 이 3각형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앞으로, 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며, 오늘 고독한 정점에 있는 예술가의 예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내일은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모레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칸딘스키의 정의는 시대를 앞서 아방가르드로 나아간 모던 보이 이상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고독한 정점에 있던 이상의 예술이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