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
황남대총은 고신라 적석목곽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이다. 아니 우리나라 고분고총 가운데에서 가장 큰 규모로서 짧은 지름 80m, 긴 지름 120m, 남분 높이 23m, 북분 높이 22m에 달하는 대형 표형분이다. 남분을 먼저 축조하고 얼마 후 북분을 남분에 연결시켜 축조하였다. 남분에서는 60세 전후의 남자 유골이 금동관과 함께 출토되었고, 북분에서는 화려한 금관과 함께 가락바퀴 및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이 적힌 은제 허리띠와 가락바퀴가 출토되어 피장자가 여성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황남대총은 부부의 능으로 추정된다. 또한 남분에서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여자의 유골 일부가 발견되어 순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황남대총은 현재가지 발굴이 완료된 적석목곽분 가운데 가장 고식(古式)의 고분이다. 그래서 일부에서 이를 두고 신라 김시왕조 세습을 이룬 첫번째 왕인 내물왕릉으로 비정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적석목곽분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이 견해는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구분된다」는 견해를 전재로 하는 것인데 현재까지 여섯 기의 적석목곽분을 발굴하여 5개의 금관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꼭 왕이 아니어도 대형의 적석목곽분을 만들고 금관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시에는 화백회의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이것은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권력이 분산된 상황에서는 누구나 대형고분을 축조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여성이 묻힌 북분에서는 금관이, 남성이 묻힌 남분에서는 금동관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여자의 신분이 남자보다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여왕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내물왕릉은 결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 금관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
<2008. 4. 27>
첫댓글 어찌 이리 마음이 편할까? 옛날엔 무덤이 꺼려졌는데. 세월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