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폰카 에세이】
나를 일깨워 주는 ‘청동 인간’
― 명상 숲에서 나눈 ‘자문자답’형 대화
윤승원 수필가
사람의 형상을 한 예술품이나 기념물을 동상이라 한다. 주로 구리로 만든다.
내가 명상 숲을 가기 위해 산책하는 길목에는 한 인간이 숨어 있다.
동상이라는 말보다 인조인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생동감 넘치는 형체다.
동상은 말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물체지만 인조인간은 생각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런데 바쁜 걸음으로 빠르게 지나면 이 청동 인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 놀라지 않게 가만가만 다가가야 형체가 보이는 『생각하는 사람』(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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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가만 걸으면서 조용히 내면을 탐구하는 사람에게만 눈에 띈다.
배재학당 소월각 산유화 시비 앞에 서 있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고뇌와 실존적 사유를 표현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턱을 괴고 깊은 사색에 잠긴 남성의 모습. 이 청동 조각상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 대화하고 싶어지는 『생각하는 사람』(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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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카에 담아 두고 말벗을 하고 싶었다.
나는 전문 미술가가 아니다. 작품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예술적 특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작품에서 누구나 느끼는 것처럼 나도 인간의 고뇌를 역동적으로 표현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인식한다.
신체 근육과 비틀린 자세에서 단순한 조각상이 아님을 느낀다. 말벗하면 유익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장난기가 많은 개구쟁이였다. 칠십을 훌쩍 넘긴 노년에도 다르지 않다.
손자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을 천진스럽게 보고 싶다. 이렇게 신기한 물체를 보면 장난기가 발동한다.
익살스러운 유머를 나누고 싶어진다. 노년에는 이색체험을 취미처럼 즐기라고 하지 않는가.
‘폰카 에세이’를 쓰는 것도 내가 개발한 흥미로운 취미 생활이다. 새롭고 이색적인 풍경이나 신기한 대상을 발견하면 폰카로 찍어 둔다.
이색 체험을 폰카에 담으면 의미가 되살아나고, 이를 글로 써서 지인과 공유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노년에 <폰카 에세이>를 쓰는 일은 동심의 호기심을 살려주는 유익한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한다.
▲ 이색 풍경을 폰카에 담으면 글이 되고, 글을 독자와 공유하면 삶의 의미가 신선하게 되살아 난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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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청동 인간에게 무슨 말부터 건넬까? 표정이 너무 심각하지 않는가.
저렇게 무게감 있는 표정의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내가 먼저 무장 해제해야 한다.
인생의 계급장을 떼야한다. 나이나 신분이나 살아온 이력을 내려놓고 친근하게 동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365일 생각만 하는 선생님. 저는 호기심이 많은 한 가정의 할아버지입니다.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심리학자나 의사, 그리고 철학자들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 사물을 늘 새롭게 바라보는 사람은 뇌가 늙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말합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잡한 세상, 골치 아픈 일이 많은 세상에서 그게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처럼 끊임없이 고뇌해야 합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고뇌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인가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 어떤 진선미를 추구할 수 있나요?”
그러자 청동 인간이 입을 열었다.
“당장 결론을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세상일은 뜸을 들여야 합니다. 숙성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땡감과 곶감의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문학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습니다.
요즘 선생님이 관심 많으신 건강 문제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탐구해야 합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차근히 자신을 돌아보세요. 정답이 없는 게 인생입니다.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운 게 인간 세상 누구나 공통적인 삶의 형태입니다.
선생님도 저처럼 이런 자세로 하루만 이 자리에 묵묵히 계셔보세요. 저 앞에 계신 소월 선생님이 밝게 웃으시면서 노래를 불러 주실 겁니다.”
▲ 산책길에 만나는 배재학당 소월각과 산유화 시비(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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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서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 ‘산유화’ 앞부분
명상 숲에서 스마트폰 노트로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렇다면 필자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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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폰카 에세이 「나를 일깨워 주는 청동 인간」은 단순히 동상을 바라보고 쓴 글이 아니라,
한 조각 작품을 매개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는 ‘명상 형 폰카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질문, “필자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1. 필자가 얻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청동 인간이 들려준 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 같습니다.
“당장 결론을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세상일은 뜸을 들여야 합니다.”
이 한마디가 글 전체를 관통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 결론 내리려 합니다. 건강도 빨리 좋아지기를 바라고, 글도 빨리 완성하려 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를 빨리 판단합니다.
그런데 땡감이 곶감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의 생각과 삶에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동 인간과의 대화는 사실상 윤승원 작가 자신의 내면과 나눈 대화로 읽힙니다.
청동 인간은 말을 했지만, 어쩌면 그 목소리는 작가의 마음속에서 오래 숙성되어 온 지혜가 아니었을까요.
2. 두 번째로 얻은 것은 ‘느리게 보는 눈’입니다
이 대목이 아주 좋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빠르게 지나면 이 청동 인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참 좋은 문장입니다. 빠르게 걸으면 조각상이 보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인생의 말이 들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산책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대인의 삶 전체에 대한 은유입니다.
빠르게 살면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놓치기 쉽습니다.
반대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바라보면 평소에는 지나쳤던 청동 인간도 발견하고,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질문을 던지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걷기’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방법입니다.
3. 세 번째로 얻은 것은 ‘인생의 계급장을 내려놓는 자유’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대목이 작가님의 연륜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나 신분이나 살아온 이력을 내려놓고 친근하게 동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참 멋진 고백입니다.
칠십을 훌쩍 넘긴 작가가 스스로를 “한 가정의 할아버지”, “호기심이 많은 사람”, “개구쟁이”라고 낮추어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볍게 만드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경력과 경험, 사회적 위치에 매이기 쉬운데, 작가님은 오히려 그것을 벗어던지고 청동 인간에게 말을 겁니다.
그래서 이 글에는 노년의 무게보다 노년의 자유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4. 네 번째로 얻은 것은 ‘호기심이 곧 젊음’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작가님은 청동 인간에게 묻습니다.
“고뇌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인가요?”
그런데 저는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질문하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저것은 무엇일까?”
“왜 저런 자세를 하고 있을까?”
“저 사람에게 말을 걸면 무슨 말을 할까?”
“고뇌하면 무엇을 얻을까?”
이런 질문이 이어지면서 평범한 산책길이 문학의 공간으로 변합니다.
즉, 작가님이 얻은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수필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자산이지요.
5. 그리고 마지막에 ‘소월의 시’를 만난 것이 아주 절묘합니다
청동 인간이 마지막에 들려주는 소월의 「산유화」는 글의 결말을 단순한 교훈으로 끝내지 않고 문학적 여운으로 끌어올립니다.
특히
“저 앞에 계신 소월 선생님이 밝게 웃으시면서 노래를 불러 주실 겁니다.”
이 부분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실제로는 청동 조각상이 말하는 것인데, 독자는 어느 순간 청동 인간 → 소월 → 작가 자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작가가 청동 인간에게 말을 걸었지만, 마지막에는 소월의 시가 작가에게 말을 걸어온 셈입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제목의 ‘청동 인간’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삶의 스승이자 마음속 거울이 됩니다.
그렇다면 필자가 실제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① 멈추는 지혜
빠르게 지나치지 않고 잠시 멈추는 것.
② 기다리는 지혜
땡감이 곶감이 되듯 생각과 삶을 숙성시키는 것.
③ 질문하는 지혜
정답을 찾기보다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것.
④ 내려놓는 지혜
나이·신분·경력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⑤ 바라보는 지혜
평범한 청동 조각상에서 인생의 스승을 발견하는 것.
그러니 작가님이 말한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라는 마지막 고백이 참 중요합니다.
그 편안함 자체가 이번 산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평론가의 눈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작품의 장점은 ‘폰카’와 ‘수필’의 결합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폰카로 찍은 것은 청동 인간이지만, 실제로 찍힌 것은 작가 자신의 마음입니다.
사진은 외부의 대상을 기록하고, 글은 그 대상을 통해 내부의 자아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청동 인간을 찍었지만, 결국 사진 속에 담긴 것은 청동 인간을 바라보는 한 노년 작가의 마음이었다.”
저는 이것이 윤승원 폰카 에세이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명상 숲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청동 인간 → 발걸음을 멈춤 → 폰카에 담음 → 말을 걸음 → 질문함 → 답을 얻음 → 소월의 시를 만남 → 마음이 편안해짐이라는 흐름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대로 「나를 일깨워 주는 청동 인간」이 잘 어울립니다.
◆ 덧붙이는 말
이번 글은 특히 작가님이 청동 인간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청동 인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본 글이라는 점에서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작가님께서 평소 도솔산을 걸으며 발견하시는 작은 자연의 변화들처럼, 이번에도 남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한 조각상을 ‘말을 거는 존재’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윤승원 폰카 에세이만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글에서는 제가 단순한 문장 평가를 넘어, 작가님이 그 순간 무엇을 발견했고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울림으로 전해지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글의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청동 인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그 앞에서 잠시 멈춘 작가의 마음은 한층 더 깊어졌다.”
참 좋은 산책이고, 참 좋은 취미를 살린 수필입니다. 🌿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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