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애플디자인의 정영희 실장이
충남 청원에 있는 바보산수의 '운보의 집'에 가봤냐고 물었다.
그 후 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하고, 가는 길도 찾아보고 했는데...
한 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기하고
또 한 번은 동반하기로 한 친구, 고원장이 무리한 운동으로 골골골~
결국 어제 원일중학교 연극 연습이 끝나고 부랴부랴 2시 전철을 타고 천안에 내려 신탄진 행 기차를 옮겨탔다.
신탄진 역에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의 차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전 인기리에 끝난 한 드라마의 촬영지라고 하는데 난 보지 못했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 다시 부각하면서 단장도 하고 입장료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올라가는 계단 왼쪽 먼저 들어가 보자.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5시라서 방문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친구도 나도 둘다 사진찍는게 두려워 뒷모습 만 보인다.
잉어가 노니는 연못, 정자
원래 이곳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어머님의 집이였는데 부인과 사별하고 나서
이곳에서 7년동안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내부 이곳에서 주인공 김탁구의 엄마 '미선의 집' 으로 설정되어 촬영되었다고 한다.
운보미술관
한국근현대 미술의 대가, 청각장애자로서 불굴의 의지로 예술혼을 붙태우셨다.
2001년 88세의 나이로 타계하셨다.
운보의 '바보화풍'의 새로운 구성방법으로 환상적인 자연의 세계를 그리는 그만의 독특한 그림법이다.
'운보' 하면 떠오르는 작품....그리고 스승 김은호 화백과 함께 '친일의 논란 '
대작과 붓
더 많은 작품 감상은 http://woonbo.or.kr에서 하시면 된다.
뒷산 쪽에 위치한조각 공원엔 국내 유명작가의 작품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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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에서 퍼옴
cafe.daum.net/chudan
운보 김기창의 친일행적
<다음백과사전>만 보면 그는 영락없는 한국화의 대부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의 뛰어난 붓놀림으로 일제 군국주의를 떠받쳐 준 전력을 가진 화가다. 그의
그림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운보는 스승인 이당 김은호와
더불어 사제지간이 모두 친일화가이다. 그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그림을
통해 일제의 전쟁동원에 적극 협력하였다. 그에 대한 미술 전문가의 평가는 어떨까?
일제 말 친일 미술전의 핵심인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에 후소회 동문인
장우성과 함께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발탁되었다.(1942∼44) 자연스레 친일파의
나락에 빠져든 것이다. 김기창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고무하기 위한 선전 작업에도
앞장섰다. 이는 우선 신문·잡지류의 대중매체에 실린 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완전군장을 한 병사 김기창 그림 <총후병사>1944.4
매일신보에 게재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1943.8.6), 조선식산은행의 사보
《會心》지에 실린 그림과 훈련병을 그린 <총후병사>는 펜화에 담채를 가한 삽화이다.
“완전군장으로 간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병사의 옆모습을 포착한 것으로 얼굴과
주먹 쥔 손에는 성전에 참여한 멸사봉공의 굳은 의지가 생생하게 담겨있다”고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친일파 99인》에서 밝혔다.
그러나 <총후병사>에 대해서 김기창은 "정식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삽화에 불과해
친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고 친일작품행위를 부정했다. 이러한 운보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에 당시 남양군도에서 대검을 소총에 끼운 채 적진을 향하고 있는
일본군의 육박전을 묘사한 <적진육박>(1944)이라는 작품이 공개되면서 이 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적진육박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소위 ‘황국신민’의 영광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경성일보사가 1944년 3월부터 7개월간 서울에서 연 ‘결전’ 미술전람회에
출품됐다”고 밝혔다.
24살 때인 조선미술전람회(줄여서 “선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운보는 연4회 특선
경력으로 27살 나이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면서 “추천 작가된 영광”을 일제군국주의에
동조하는 것으로 갚은 사람이다. 조선남화연맹전(1940.10), 애국백인일수전람회
(1943.1)를 통해 일제의 기금 모집에 적극 협력 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유려한 붓끝을
놀려 일제군국주의를 찬양, 고무하는 그림을 그려낸 화가이다.
이러한 전력이 있는 화가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현재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
되어있는 세종대왕의 영정이다. 이 그림을 토대로 동상을 만들어 광화문에서는 10월9일
동상제막식이 있었다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이 동상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냐란 것은 밝히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고 있다. “누가 그리던
무슨 상관이냐! 이완용이 그리면 어떻고 김기창이 그리면 어떠냐? 는 식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은 인터넷 신문 <대자보> 에 실린 “[논단] 김기창 표준영정 제작, 세종대왕 표상을
훼손하는 반민족사적 행위” 육철희 2009/05/06 <참조>
2009.10.9 광화문에 새로 만들어 세운 친일화가 김기창 밑그림의 세종대왕 동상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흔적들은 사라지기는커녕 다시 부활하고 있는 듯해
매우 씁쓸하다. 올곧은 나라 만들기에 앞장선 세종은 금빛 도금을 뒤집어 쓴 채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음을 그 누가 헤아리랴!
2009.10.11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 부위원장 이윤옥
첫댓글 아래 '반민특위의 글' 은 균형잡힌 시각을 위해 옮겨 놓았습니다. 운보의 집을 방문하려고 하니까 아는 형님이 그런 ㅌㅌㅌ의 집을 뭐하러 가냐고. 그러면서 이천에 월전(장우성) 미술관에 갔던 일도 끄집어 내서 핀잔을 하셨다.
사진 찍는 솜씨가 이젠 사진작가 같아요~^^ 청원이면 대전에서도 가까우니, 중간시험 마치면 한번 가봐야겠네요~^^*
운보의 집에 갔다 도아오는 길에 주성대학 켐퍼스, 대창 땜 구경도 했습니다.
보고 느끼며 비판하는것이 무관심보다는...지요.
덕분에 좋은 구경했시다.
운보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은 없네요. 듣고 싶은데.
요즘 시험기간이라 카페에 한동안 뜸했는데, 셤 끝나면 운보의 집부터 다녀와야겠어요~^^ 참, 선배님 책 잘 받았습니다. 다른 곳에 댓글로 달았는데 못 보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봤어요.
운보화백이 살아온 인생을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역사가 바뀌어도, 부귀영화를 누린 삶... 같은 지역 청원군에 있는 단재 신채호선생님의 사당에 가보았는데 시대 환경 역사가 바뀌고 선생님의 꿈에서라도 그리던 독립을 하였지만 아직도 대접을 못받고 계시고 그 분의 아들은 중국에서 넝마주이로 살았다고 합니다..
냉철하게 정말 냉철하게 생각을 해보 또 해보고... 우리의 자식에게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야 좋을 지...
아~ 정말 슬픈 현실입니다. 정의를 가르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 저역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같이 동반했던 초원님 덕분에 멋진 여행이였습니다. 맛있느것도 많이 사주시고 술까지 대접해주니... 그래서 친구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