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빌로니아 치하의 페니키아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바빌론을 다시 오리엔트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시조 나보폴라사르 Nabopolassar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는 제국에 반기를 든 세력에 대해 가차 없이 철권을 휘둘렀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바로 유다 왕국이었다.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고 그 유명한 바빌론의 유수가 시작되는데, 사실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네부카드네자르의 다음 목표는 티레였다. 티레 인들은 예전처럼 섬 쪽으로 후퇴하여 항전하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 전보다 더 철저한 준비를 한 듯하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포위전이 무려 13년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티레는 굴복 할 수밖에 없었다. 티레의 왕 에드바알 3세는 왕위를 괴뢰인 바알 2세에게 내어주고, 유다 왕국처럼 왕족과 상류층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페니키아판 ‘바빌론 유수’인 셈이다. 2천 년후,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번영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차례로 대국에게 굴복하는데, 페니키아의 도시들이 그 전조를 보여준 셈이다. 참고로 <에제키엘서>에서 나오는 ‘티레에 내리는 심판을 소개하고자 한다.
티로에 내리는 심판
제십일년 어느 달 초하룻날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티로가 예루살렘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아하, 민족들의 관문이 부서져 나에게 활짝 열렸구나! 나는 풍부해지고 그것은 폐허가 되는구나!’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티로야, 나 이제 너를 대적하리라. 바다가 물결을 밀어 올리듯 내가 너를 거슬러 많은 민족들을 불러올리리라. 그들은 티로의 성벽을 부수고 탑들을 허물어뜨리리라. 나는 그곳에서 흙을 쓸어 내어 맨 바위로 만들어 버리리라. 그리하여 그곳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물이나 펴서 말리는 곳이 되리라. 정녕 내가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티로는 민족들의 약탈품이 되고 뭍에 있는 티로의 딸들은 칼로 살해되리라.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기마와 병거와 기병, 그리고 많은 군대의 무리를 거느린, 임금들의 임금인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북쪽에서 데려오겠다. 는 뭍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살해하고는 너를 치러 공격 보루를 만들고 공격 축대를 쌓고 너를 향하여 방패들을 세우리라.
파쇄기로 네 성벽을 치고 쇠망치로 네 탑들을 부수리라. 그의 군마들이 너무 많아 그 먼지가 너를 뒤덮으리라. 뚫린 성벽으로 성안에 들이닥치듯 그가 너의 성문으로 들어올 때 기병들과 병거들의 바퀴 소리에 너의 성벽이 흔들리리라. 그는 말발굽으로 너의 거리들을 모조리 짓밟으며 백성을 칼로 학살하고 튼튼한 기둥들을 쓰러뜨리리라. 군사들은 너의 재물을 약탈하고 상품들을 노략하며 너의 성벽을 허물어뜨리고 호화로운 집들을 부수어 석재와 목재와 흙덩이까지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 버리리라. 나는 이렇게 너의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그치게 하고 수금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게 하리라. 내가 이렇듯 너를 맨 바위로 만들어 버리면 너는 그물이나 펴서 말리는 곳이 되고 더 이상 재건되지 않으리라. 정녕 나 주님이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주 하느님이 티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상당한 자들이 신음하고 네 가운데에서 살육이 자행되면서 들리는 네 몰락의 소리에, 어찌 섬들이 떨지 않겠느냐? 바다의 제후들은 모두 왕좌에서 내려와, 예복을 치우고 수놓은 옷을 벗을 것이다. 공포를 옷처럼 입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줄곧 떨며, 너 때문에 질겁할 것이다. 그리고 너를 두고 애가를 지어 부를 것이다. ‘어쩌다가 바다에서 사라졌나? 찬양받던 성읍! 주민들과 함께 바다에서 세력을 떨치며 온 육지를 공포에 떨게 하던 성읍! 그런데 이제 네 몰락의 날에 섬들이 떨고 네 종말을 보며 바다의 섬들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람이 살지 않는 성읍처럼 황폐한 성읍으로 만들고, 심연을 끌어 올려 큰 물이 너를 덮어 버리게 하며, 구렁으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옛 사람들에게 내려가게 하겠다. 그리고 구렁으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저 아래 땅, 태고의 폐허에 살게 하여, 사람들이 다시는 네 땅에서 살지 못하고, 네가 다시는 산 이들의 땅에서 일어서지 못하게 하겠다. 그리하여 나는 너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겠다. 너는 더 이상 있지 않아, 사람들이 너를 찾아도 다시는 영원히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이 시기 티레는 큰 정치적 변화를 맞는다. 강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습왕정이었던 정치체제가 바알 2세가 10년간의 재위 후 세상을 떠나자 5명의 재판관이 다스리는‘과두 정치’로 바뀐 것이다. 물론 신바빌로니아의 통제 아래에 있었고, 기간도 7년에 불과했지만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556년, 네부카드네자르가 세상을 떠나자 나보니도스 Nabonidos가 즉위했고,
이 시기에 티레의 왕정이 부활한다. 자세한 사정은 사료가 없어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런 권력교체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로 왕이 된 바알 아젤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왕가의 지지자들은 바빌론으로 가 왕족인 마할 바알을 왕으로 데리고 와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그 역시 단명해서 4년 후 세상을 떠났고, 동생이 히람 3세로써 20년 간 티레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 사이 신바빌로니아에서는 엄청난 격변이 일어났다. 종교에만 관심을 두고 정치에 무관심한 나보니도스 때문에 제국의 통치가 이완되었고 그 사이에 급성장한 페르시아가 놀랍게도 539년 바빌론을 함락시키고 새롭게 오리엔트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페니키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되는데, 다행히 페르시아는 괴물은 그전의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와는 달리 ‘착한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