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웹진 《비평공간》 10호 『스티커』 (김선미 / 다산책방) 토론 2026년 6월 28일 발행 / 출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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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비평공간>은 최근에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 작품으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열 번째 시간인데요. 김선미 작가의 『스티커』지요. 김선미 작가는 『비스킷』이라는 베스트셀러 작품도 썼는데, 이 작품도 『비스킷』 못지않게 흥미로운 지점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비평공간을 하면서, 아동·청소년 문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상상력이나 문체나 사유나 주제나,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읽으신 소감이 다양하실 텐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무: 제가 청소년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서 <비평공간> 참여할 때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요. 일단 스티커라는 제목이 흥미로웠고요. 표지 그림을 봤을 때는 여자 아이들 간의 우정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저주 이야기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읽었는데, 독특하고 흥미로웠어요. 저주 이야기라고 하면, 예상되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서 좋았고요. 또 그렇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약간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제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서 주인공 시루의 마음을 따라가기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책을 덮고 나서는 생각할 거리가 많이 있는 책이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 저는 이번에 두 번째 참여인데요. 나무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청소년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 책을 읽을 때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가독성이 그렇게 있지는 않아서 읽기가 힘들었는데, 마지막에 다 읽고 나서는 힘이 좀 빠지더라고요. 처음에 읽을 때는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공평해 해야 될 교육에서조차도 경쟁을 유발시키는 신자유주의라든가, 다크웹에서 스티커를 파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 이런 것들이 많이 연상이 됐거든요. 그래서 청소년 소설이지만 그런 의미 있는 부분을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이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단순하게 처리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클로버: 스티커가 책 속에 나오는 증조할아버지 시대에서는 부적이었겠다 싶거든요. 부적이 스티커가 되고, 스티커 다음에는 또 뭐가 있을까, 제목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봤고요.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이분법적 사고를 하잖아요. 억압을 하고, 외면하려고 하고, 그런 감정을 가지면 죄책감도 갖고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는 청소년들의 질투심이나 공격성, 우울감, 이런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이 새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가 새로운 화두를 던졌구나, 처음에는 호감이 갔어요. 그런데 몰입이 안 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몰입이 안 될까, 생각을 해 봤는데요. 작가가 어떤 결론을 내기 위해 쫓기고 있는 것 같았어요. 작가가 본인의 프레임 안에서 계속 증명을 하려고 설명을 하더라고요. 하늘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뻔한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되는 것을 보면서, 혹시 김선미 작가가 교사 출신인가 찾아봤거든요. 그렇지 않더라고요. 도서관에서 빌리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높더라고요. 이 작품이 청소년들한테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망고: 사실 청소년 소설을 처음 읽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저는 몰입해서 읽었고요. 저주라는 낱말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흥미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고요. 친구들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나 욕구의 대립, 가치의 대립 같은 부분들을 저주라는 다리로 연결해서 풀어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말씀 중에 권선징악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저도 작품 후반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부분은 좀 아쉬웠습니다.
수박(채팅창): 저는 그냥 독자로서 다가오는 대로 말씀 드리자면요. 부정적 감정이라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하는 걸 배우지를 못해서 나를 호랑이로 (결국은 나 자신에게 저주 스티커를 붙이는) 만들었구나 싶었는데요. 제 자신의 부정적 감정에 참 편안해 졌어요. 카타르시스 ^^
포도: 저는 '스티커' 제목 들었을 때, 전에 읽었던 황보나 작가의 『네임 스티커』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14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제가 많이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네임 스티커』는 화분에다가 네임 스티커를 붙이면서 소원도 빌고 저주도 하는 내용인데요. 『스티커』가 저주의 스티커라고 해서 책을 읽기 전에는 『네임 스티커』하고 비슷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네임 스티커』를 너무 좋게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작품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회자: 『네임 스티커』하고 『스티커』하고 주제나 소재 면 외에도 비슷한 점이 있나요?
포도: 『네임 스티커』는 화분에다 그 사람 이름을 써서 붙이는데, 아이의 엄마가 무당이기 때문에 어떤 기운으로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티커』는 칠보 펜이나 그런 게 있으면 스티커의 저주가 이루어지는 건데, 저한테는 좀 설득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사회자: 전체적으로 소감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는 앞부분을 읽을 때 주인공 서술자의 이중성이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주인공은 저주 스티커를 판매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스티커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혐오해요. 다 멸망이나 오면 좋겠다, 그러거든요. 악한 인간의 이중성이 느껴지는데, 이런 스토리의 주인공이 착한 인물만은 아닌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예를 든다면 48쪽이요.
구매를 거듭할수록 저주의 강도도 점차 높아진다. 병원 동료 여러 명을 저주한 손님은 접착력 중하 스티커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접착력 최상 스티커를 구매했다. 돈이 충분하다면 최상 스티커만 사고 싶다는 메시지를 덧붙이면서.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경험을 몇 번 맛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힘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더 강력한 저주를 원하는 것일 테지. 그 힘이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깨뜨리는 것도 모른 채로.
자신은 저주 스티커를 팔아서 장사를 하면서도 그 스티커 때문에 망가져 가는 사람들을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어요.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
이미 깨진 마음은 저주를 아무리 쏟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저주로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주문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궁극적으로 상대의 끝을 보지 않으면 저주하겠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저주 인형이 세기를 넘어 애용되는 이유도 심장을 찔러댄 결과가 상대의 고통이나 죽음이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저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을 하고 있어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주인공의 이러한 이중적인 서술 태도가 스토리 안에서는 마치 악당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1인칭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청소년 소설’에서 이 인물의 변화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된단 말이죠. 여러분들이 작품이 권선징악으로 바뀌어가면서 힘이 빠졌다고 느끼는 이유가, 처음에 읽었을 때 이런 호기심이라든가 인물에 대한 매력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 몰입이 잘 안되었던 이유가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주인공 캐릭터 설정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보통 우리가 저주라고 하면, 저주의 힘, 저주가 작동하는 원리 그리고 그 저주로 인해서 악을 물리치는 식으로 진행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소재에 대한 물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감정을 갖고 풀어나가고 있거든요. 저주가 작동하는 원리도 어떤 정해진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시루 본인조차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하면서 알게 되는 과정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그런 부분이 독자 입장에서는 확 와 닿지 않고, 이랬다, 저랬다 그러는 것 같고요. 어떻게 했는지 다시 앞의 장을 찾아보게 되고 그런 면이 있었어요.
장시루가 어쨌든 친구나 부모 관계에서도 상처가 있는 아이인 것 같은데, 저주 스티커를 발행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 알바를 하는 형식으로 시작한 부분도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고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감정이라는 것도 소비적인 감정이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등,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독자로서 장시루를 응원할 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또 장시루가 완전히 나쁜 것도 아니어서, 소우주랑 함께 풀어나가는 모습은 응원도 하게 되고, 그래서 집중하기가 좀 어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늘: 저는 스티커가 상·중·하로 구별이 되어 있어서 서로 가격이 다른데, 접착력이 강할수록 비싸고 그 접착력에 따라서 저주의 강도가 세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우리 인간의 감정이 그렇잖아요. 마음에 미움이나 그런 것들이 많이 달라붙어 있으면, 빨리 털어내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잖아요.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키우다 보면 더 괴롭고요. 상대방을 계속 미워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그러한 감정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붕괴시키고요. 저는 저주 스티커의 강도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서 읽었거든요. 작가가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풀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회자: 감정이라는 것은 그냥 휩쓸려 들어간단 말이죠. 작가가 감정에 대해서 나름대로 깊이 있게 연구한 책 같은 느낌도 드는데, 작품 속에서 발행인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저주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기인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저주로 발동되려면 근원이 될 힘이 필요하다. 저주를 일으키는 근원적 힘이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였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과 증오, 미움, 시기, 경멸의 감정이 재앙으로 발생되는 게 저주이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했는데 뒤에 이어진 내용에 그만 뜨악하고 말았다. 이 책이 저주의 힘을 설명하며, 저주에 따르는 무시무시한 대가에 대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 쓰여 있는 말대로면 부정적인 에너지는 저주가 발동되면서 생기는 거고,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이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거네?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 (92쪽)
저주의 감정이 자연재해로까지 이어지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는 자연재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맞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주 스티커는 떨어져서 땅으로 스며들어. 저주 스티커에 깃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땅에 흡수되는 거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축적되다가 더 이상 땅이 품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거야. 작게는 진도가 낮은 지진이나 규모가 작은 해일이 일어나고, 크게는 산사태, 폭풍, 대형 산불, 진도가 큰 지진이 발생해.”(중략) “그건 너무 부당하잖아. 저주를 건 사람도 결국 저주의 부작용을 받는데. 뭐, 저주를 한 사람들은 당해도 좋다 쳐. 근데 왜 저주하지 않은 사람들마저 다 같이 벌을 짊어지라는 거야?”(93~94쪽)
저주가 발동되고 나면 단순히 그냥 저주한 걸로 끝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죠. 저주는 분명한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거예요. 감정이 폭발해서 증오의 감정으로 변하고 저주로까지 발전되고 나면 결국은 저주 스티커를 사게 되는데, 그 저주의 대가가 그대로 자신에게는 물론 인류 전체에게 돌아온다는 나름대로 감정 시스템 구조를 작가가 생각을 해서 이야기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게 이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시험이라는 거예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시험이야. 신은 단 한 명으로만 세상을 판단하지 않거든. 저주를 건 사람에게 죄 없는 사람들도 고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그런데도 저주할지 선택지를 주었지. 그 선택의 결과가 자연재해로 오는 거야.” (94쪽)
이 작품이 어떻게 보면 엉뚱한 작품일 수도 있고,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이 모아져서 증오와 미움의 감정이 되고, 그것이 저주의 감정으로 증폭되면 나중에는 자연재해가 된다는 이 발상을 아이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요. 감정이 자연재해로까지 발전해 가는 이 스토리가 여러분들은 어땠습니까?
클로버: 작품에서 장시루의 아버지가 환경 운동가잖아요. 그 장치를 해놓은 이유가 자연재해하고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연재해를 만든다고 하는 게,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더 강하게 부정하는 의미 같아서 설득력이 좀 없다고 느꼈거든요. 작가가 우리 사회가 억압했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제기를 한 것은 좋은데, 그것을 재해로 연결시켜서, 그 부정적인 감정 밑바닥에 죄책감 같은 것들을 작동하게 만든 것 같거든요. 왜 작가가 이런 발상을 했을까, 저는 사실 여기에서 맥이 빠졌거든요. 저주의 신이 나오는데, 왜 갑자기 신의 문제로 들어가지. 저는 긍정적인 감정이나 부정적인 감정이나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재해로 끌고 갔던 점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사회자: 이 부분이 판단이 좀 어려운데, 저는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비논리적인 것 같은데, 진짜인 것처럼 스토리를 끌고 가잖아요.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문체랄까, 작가의 서술 태도라는 느낌이 들어서 묘하기도 하고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모아져서 자연재해로까지 퍼지는 이 발상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어요?
포도: 스티커가 땅에 스며들면 없어진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우리가 저주하는 그런 감정이 땅에 스며들기 때문에, 그것이 계속 쌓이고 쌓여서 자연 재해가 일어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저주는 그렇게 일어나는 거야. 그렇게 이해했으면 좋겠어.” 작가가 그렇게 요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회자: 개인의 증오의 감정이 나중에는 세계를 함몰해버리는 자연재해로까지 이어지잖아요. 작가가 진짜 리얼한 것처럼 그리고 있거든요. 아주 진정성 있는 판타지처럼 밀고 나가는 작가의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우리 기성세대들이 느끼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청소년들의 무의식이라든가 그런 걸 건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늘: 저는 저주의 기운이 모여서 자연 재해가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어요. 영국에서 나온 좀비물 중에 『28년 후』라는 작품이 있거든요. 거기에서는 인간들이 분노 바이러스에 걸려서 좀비가 되는데요. 타인에 대한 분노가 재앙으로 연결되어서 생존의 위협으로까지 가는 내용이거든요. 『스티커』에서는 작가가 자연 재해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타인에 대한 분노와 저주 같은 감정이 모이면 어떤 형식으로든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은 좀비 영화에서 클리셰 같은 거라 저는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여고괴담이나 분신사바 같은 공포 영화를 좋아하잖아요. 타인을 저주하는 그러한 감정들도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폭력과 갈등, 경쟁들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 하늘 님 말씀 듣다 보니까 생각이 좀 풀리는 느낌이 드네요. 어찌 보면 김선미 작가의 특징인 것도 같아요. 『비스킷』도 보면 기가 죽어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메마른 상태의 비스킷으로 비유를 하거든요.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맥락에서는 조금 서툰 면이 있지만 사유도 있고, 입담이 좋거든요. 영화적인 장면을 그냥 문학으로 가져와서 사실적으로, 평면적으로 확 그려버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문학적인 문장으로 진짜 리얼하게 그려버리니까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거예요. 요즘 젊은 작가니까 당연히 이미지라든가 드라마, 영화 같은 것을 많이 보면서 감수성이 발달했겠죠.
드라마나 영화적인 장면에 익숙한 작가들은 그 감성을 과감하게 문학적인 장치로 가져와서 실제인 것처럼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청소년들은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마치 영화 보듯이 그렇게 빨려 들어가서 재미있게 느끼는 건 아닌가. 그러니까 이 작품은 정통 판타지이면서도 또 판타지 장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판타지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되게 리얼한 얘기처럼 느껴져요. 마치 SF의 장면들처럼 느껴지거든요. 이것이 바로 이 작가만이 갖는 개성이 아닐까 싶어요.
클로버: 저는 몰입을 방해했던 지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거든요. 장면묘사를 감각적으로 하잖아요. 장면 하나하나,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 뒷부분에 뜨개질 이야기도 그렇고. 이런 것들이 세세하게 나오니까 저는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청소년들은 마치 영화의 장면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을 것 같네요.
사회자: 요즘 워낙 드라마나 영화들이 발전해서 청소년들은 어른보다 더 많은 걸 볼 거란 말이죠. 당연히 이런 스토리 맥락이나 문체가 청소년들한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들의 영화적인 감수성을 자극할 때 대중성을 갖는 것도 같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정통 문학의 문체하고 영화적인 감성하고 뒤섞이면서 문학과 영화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지요.
작품이 독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데요. 자본주의의 맛을 톡톡히 즐기던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되잖아요. 자연재해로까지 발전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티커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을 해요. 그게 125쪽 정도에 나오니까, 이야기의 중간 정도거든요. 그래서 나는 깜짝 놀랐어요. 이 악당 같던 아이가 급반성 해서 “다 죽는 멸망까지는 아니야” 하는데 캐릭터가 너무 싱겁게 착해지잖아요. 그런데 반전이 일어나더라고요. 다시 또 스티커를 만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롤러코스터 타듯이 독자들을 실망시켰다가 다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영화적인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망고: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부분들을 상당히 잘 배치해서 건드려줬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55쪽에 보면 올바름에 대한 문장 하나가 나오는데, 너는 올바를 줄 알았는데, 이런 내용도 있었고요. 청소년들이 자기중심적이기도 하면서 상상도 많이 하지만, 인간의 생애 주기 중에서 굉장히 다채로운 감정을 혼란 속에서 많이 겪는 시기인 것 같거든요. 저는 이 소설이 청소년들의 감수성을 건드려주면서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쨌든 주인공이 저주 스티커를 만들어 팔면서도 자기 고민을 계속 하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선해지려고 하다가 다시 악당으로 돌아오는 그런 반전도 보여주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모습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60쪽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오거든요. “다들 자기만족을 위해 저주 스티커를 사는 것이다.” 그리고 145쪽에 보면 “추천한 저주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입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도 말하고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좀 씁쓸하긴 했는데, 개인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책임도 역시 개인이 져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자신이 조선족인데, 아버지가 동네 이장도 하고 권력이 있어서, 그 권력의 힘으로 친구를 괴롭혔다는 거예요. 60이 넘은 분인데, 그 친구가 죽었다는 것을 들었다는 거예요. 결국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면서, 후회되는 마음을 저한테 털어놓더라고요. 인간한테 이중성도 있지만, 내면에는 긍정적인 힘과 복잡한 감정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그 이야기를 글로 써서 상을 탔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은 많을 것 같거든요.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동정하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게 더 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되게 많아요. 그런 얘기를 쉽게 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 선함에 대한 자기 회복,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자: 이 작품이 악한 인간의 내면도 가감 없이 보여주잖아요. 결국은 스티커를 팔면 대가를 치러야 되는데, 증조할아버지는 스티커를 팔아 돈을 많이 벌었는데 나중에는 스스로 자성을 해서 스티커를 자기한테 붙이지 않습니까? 평생 저주의 노예가 되어서 검은 그림자의 삶을 선택한 거지요. 그런데 검은 그림자가 된 할아버지가 결국은 사람을 돕는 걸로 나와 버리잖아요. 흥미로운 작품인데 너무 쉽게 타협해 버리면서 계몽적으로 흐르는 느낌이 있어요. 할아버지한테까지 면죄부를 줄 필요가 있었을까. 작가가 화해라든가 그런 것들을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하더라도 작가로서의 뚝심이 좀 있어야 될 것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조금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인물을 탐구하고 또 인물을 내세울 때는 진정성이 있어야하는 건데, 좀 아쉬운 느낌이 들어요.
하늘: 저는 청소년들이 작품의 인물들에게 공감을 했을 것 같아요. 지난 번 『급류』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도 장시루는 가정에 그다지 문제가 없는 아이거든요. 문제도 없는데 자기를 사랑하지 못한 존재였던 것 같아요. 작품에서 다크 웹에서 채팅하고 거래하고 그러는 게 리얼하게 나오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당근에서 콘서트 표도 사고 물건을 거래하는 것들이 굉장히 자연스럽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실제라고 이렇게 여겼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소우주는 남자애잖아요. 남자애인데 장시루보다 더 마음이 따뜻해요.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잖아요. 장시루는 가정도 그렇고, 뚜렷한 문제가 없는데도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데, 나중에 소우주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부모와도 결국은 화해를 하게 되거든요. 또 굉장히 특징적인 인물이 나오는 데 반만해가 있잖아요. 자본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인데, 그런 악당을 등장을 시켜서 조금씩 맛보기처럼 보여주는데 서사를 끝까지 끌고 가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결론을 너무 쉽게 맺어서 좀 맥이 빠졌거든요.
결국은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과 감정적 공유를 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저주 스티커를 팔게 되었고요. 저주 스티커를 팔면서 우주와 만나게 되고, 우주와 소통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물들에 대해 살리지 못한 결말 부분은 좀 아쉬웠습니다.
사회자: 작가가 영화적인 장면을 문학으로 구현하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엔딩이 궁금했는데, 증조할아버지도 결국 저주의 대가를 받잖아요. SF가 됐든 판타지가 됐든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거든요. 저주라면, 저주에 대한 원칙이 있는데, 그 원칙을 지켜야 된단 말이에요. 저주 스티커를 붙인 소장한 선생도 결국은 두 번째 저주 스티커를 자기 자신한테 붙여서 노예가 되는데요.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착한 사람이 되는 걸로 끝나는데, 시루도 대가를 받기는 받는데, 반만해랑 한 판 붙으려고 갔다가 결국엔 스티커가 자기 손등에 붙어버린단 말이죠. 손등에 저주 스티커를 붙인 아이가 돼버렸는데, 그것이 주는 상징이라든가 여운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이 나오지요.
내 손에 붙은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는 극상 스티커는 아마도 저주의 신이 내게 던진 도전장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순간이 당장 내일인지, 일 년 뒷일지, 할머니가 될 때인지 알지 못한 채로 내가 마음을 올곧게 쓰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의미일지도. 아마도 내가 바르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조금씩 끈적거리는 것들도 벗겨져 갈 것이다. “좋았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소우주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262쪽)
언제 대가를 치를지 모르지만, 당장은 해결책으로 선한 마음과 우정을 선택하는데요. 고립에서 벗어나요. 친구들한테 왕따 당했을 때의 분노라든가 그런 감정들이 없어져서, 손등에 붙은 저주 스티커가 어떤 방향으로 작동할지, 열린 결말 같은 느낌을 주지요. 그런 면에서 뒷수습은 그래도 어느 정도 된 것도 같아요.
포도: 저는 읽으면서 좀 설득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앞에서는 아무도 안 도와준다, 그런 서술이 있었는데 204쪽에 보면, 소우주가 “부딪혀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하는 말을 하거든요. 이건 아닌데, 하면서 좀 기운이 빠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장점으로 느꼈던 점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이게 왜 스티커지? 부적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아?”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왜 스티커인지가 뒤에 나오거든요. 궁금하거나 의아한 게 있으면 작가가 뒤에서 다 풀어주더라고요.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자: 나도 그 부분이 아쉬웠어요. 그렇게 힘겨운 애한테 직면해야 된다, 부딪혀야 된다, 하는 건 어른들의 관념적인 훈계하고 똑같잖아요. 그냥 같이 손잡고 울어주는 게 훨씬 나았을 텐데, 전체 흐름이나 맥락과 다르게 갑자기 이상한 어른이 등장한 느낌이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작가가 갑자기 노인이 된 것도 같았고요. 그건 아이한테 도움이 된다기 보다 아이를 더 힘들게 하는 거잖아요.
클로버: 저도 204쪽 그 장면에서 맥이 좀 빠졌어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작가가 청소년들이 가장 밑바닥에 갖고 있는 고민과 감정을 고민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가는 청소년들이 사실은 복수도 하고 싶고, 센 말도 하고, 좌충우돌 우리가 감 잡을 수 없는 행동들을 하지만 감정의 밑바닥에는 “난 혼자다. 나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 고립감을 느낀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소우주를 통해서 하는 이러한 말들은 학폭이라든가 그런 구조적 폭력에 노출돼 있는 상태의 아이한테는 쓸모없지만, 작가가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소우주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장시루도 폭력을 당하잖아요. 이유 없이 익명의 사람에게 폭력을 당하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엄마는 “안경 끼신 분 저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지목을 해서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시루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서 좀 황당한 거죠.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너 또 잘못했지” 식의 기성세대의 지적들에 대해 소우주의 대사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위로를 주려고 한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공감하면서 느끼는 작가의 위로인 거죠.
사회자: 화제를 조금 바꿔서요. 아동·청소년 문학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개인이 증오의 감정이 쌓여서 다수의 사람들한테 스티커를 보내거든요. 그래서 도처에서 사람들이 스티커를 붙인단 말이죠. 개인의 감정은 흩어져 있지만, 이게 다수가 되어서 모아지고, 나중에 자연재해로까지 이어지는데요. 이러한 맥락을 단순한 인과관계로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신유물론 철학적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신유물론 철학자들은 유령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도 사람들이 감각으로 느낄 수는 있으니까 일종의 감각객체로 봐요. 유령, 귀신 같은 존재가 분명히 사람들의 감정과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객체인 거지요. 저주도 하나의 감정인데, 저주에 사로잡혀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유령과 같이, 저주에 사로잡힌 감각객체가 된 존재들인지도 모르지요. 영화나 문학작품에서는 이들 감각객체에 실제 눈에 보이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거지요.
여기서 이 저주의 감정을 가진 감각객체들이 모아질 때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장면은 어찌보면 기후 위기와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어요. 사람들이 일으킨 문제가 모아져서 하나의 큰 지구 전체의 기후위기로 까지 연결되는데, 이렇게 전지구적으로 작동하는 기후위기,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대상은 워낙 단위가 커서 사람들이 전체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해서, 하이퍼 객체란 말을 써요. 어찌 보면 저주에 사로잡힌 유령화된 감각객체들이 전지구적으로 모아져서 감당하기 힘든 하이퍼 객체가 되어,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이렇게도 상상할 수는 있겠지요. 얼마든지 영화적인 상상을 할 수는 있는 거니까요.
증오와 미움의 감정을 개인들은 자신의 징후로 느끼지만, 각 개인이 느끼는 증오의 감정 같은 것들이 SNS에 모아지고, 학교로 모아지고, 알고리즘으로 증폭되고 이렇게 되면, 인터넷상이라든가 이런 데서는 거대한 객체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거대한 객체 네트워크는 어떤 세계 구조 속에서 축적이 되어서 행성 규모의 감정의 정동으로 번지는 폭발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작가들은 얼마든지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는 거죠.
작품에서 보면 다크웹을 이용하고 다크로드나 SNS를 통해서 사회 전체로 번져 나가잖아요. 작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썼는지 안 썼는지 모르겠지만, 하이퍼객체라는 개념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이 상징이나 판타지로만 읽히지는 않아요. AI 시대에 아이들의 단순한 감정이 인터넷 기록으로 쌓이고, 그것이 유통이 되고, SNS에서 확산이 되어서 그런 증오가 누적되면, 저주라고 하는 개인의 감정이 시간 속에서 계속 증식할 수 있지 않는가. 감정이 물질화되면서 진짜 지진과 같은 재난의 형태로 막 일어나는 거예요. 영화적인 상상력인 것 같으면서도, 정동의 네트워크 같은 것들이 행성 규모로 커진다는 것이 되게 흥미로운 상상력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문체라든가 입심이라든가, 진실인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버리는 서술태도라든가 그런 걸 보면 작가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 하이퍼 객체의 개념은 종교의 종말론과 같이 신이 심판을 하는 그런 개념하고는 물론 달라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저주 스티커로 인한 자연재해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시험’(94쪽)으로 나오기 때문에 하이퍼객체의 시선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조금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시선으로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클로버: 자연재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새로운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네요. 아까 작가가 노인이 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은 대목이 있었거든요. 갑자기 뜨개질이 나온다든가 김부각이 나온다든가. 그래서 이게 상징이 뭐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또 업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스님이 나온단 말이죠. 작품이 왜 복고로 돌아가지, 그랬는데 이것 또한 청소년들한테는 굉장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사실 요즘에 갑자기 뜨개질 문화가 시작되어서 전철 안에서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거든요. 김부각이라는 게 별거 아닌 옛날 간식인데도, 먹거리도 보면 옛날 풍으로 많이 돌아가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신선할 것 같기도 하고요. 작가의 힘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물질화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개인의 몸에 나타나는 증세나 아픔, 병 같은 것도 감정의 문제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이것이 물질화가 돼서 어떤 아픔으로 나온다. 더 나아가서 자연 재해라든가 코로나 같은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 개개인에서 시작될 수 있었겠구나, 그런 시각도 와 닿습니다.
포도: 감정의 물질화라는 말씀을 들으니까 작품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거든요. 작품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영상이 계속 흘러가는 것처럼 읽히잖아요. 아이들이 웹툰이라든가 영화라든가 평소 접했던 그런 류니까 더 흥미로웠을 것 같고요. 오늘 토론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는데, 작품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아동·청소년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우리들은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야 될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들을 하나의 징후로 느껴야할 것 같거든요. 청소년들이 왜 좋아하는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하늘: 선생님들 말씀을 듣고 또 하이퍼객체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니까 작품이 새롭게 보여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마지막에 손등에 스티커가 붙어버리잖아요. 그 끈적끈적함이 떼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물음표를 남기는 거 같았어요.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었고요. 추정경 작가의 『마음이 쉬어가는 곳 : 벙커』라는 책이 있거든요. 판타지적이면서도 어떤 심리적인 것을 벙커 안에다가 숨기는데,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구나, 하면서 굉장히 인상 깊게 본 책이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작품과 비교하며 읽게 되더라고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부분도 하이퍼객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고요. 우리는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작가는 상당히 고심해서 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것이 저도 자연재해였거든요. 저는 자연재해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주를 복수라는 단어로 바꿔서 생각을 해도 같은 맥락으로 들리는데요. 요즘 청소년만이 아니라, 감정을 표출하고, 복수하고, 응징하는 내용의 영화도 많고 sns상에서나 사회적 이슈,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잖아요. 그런 개인적인 감정이 사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자연 재해를 가져왔다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선생님들 얘기 들으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망고: 저는 오늘 토론에 처음 참여했는데요. 배우는 자세로 잘 들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왔는데 오늘 선생님들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꾸준하게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이 상당히 재미있었고요. 흥미로웠어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작가가 굉장히 입담이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장치나 소재들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점도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토론에 꼭 참여하겠습니다.
수박(채팅창): 작가님은 상당한 고통 속에서 쓰셨겠지만 읽는 독자인 저는 고통스럽게 안 쓰신것 같아서 (이런 표현 실례...) 편안하게 카타르시를 표출했습니다^^ 무겁지 않지만 무거운 얘기라 좋았습니다^^
사과: 저는 아이들 수업이 있어서 늦게 참여했습니다. 앞서 선생님들이 어떤 말씀을 해 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점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저는 표지가 되게 좋았고요. 눈에 확 뜨이더라고요. 책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같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주의 내용은 가벼웠지만, 저주의 결과는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로까지 연결이 되거든요. 굉장히 대비되는 구조였다고 느꼈고요. 직업에 대한 것도 약간 그랬어요. 우주의 부모님이 갖고 있는 직업, 취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보면 사소하고 가볍게 느껴지는데 또 한편에서는 저주 스티커를 만들어서 저주를 내리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거든요. 양극화된 모습으로 읽혔고요.
종교에서는 기도가 우주의 기운을 바꾼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모아져서 기운을 바꾼다고 하는데, 저주도 그런 식으로 영향을 미쳐서 기후 위기, 자연 재해로 연결이 된다는 작가의 발상이 되게 놀라웠어요. 이러한 사소함으로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네.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나중에 절에 봉인을 하는데, 이 봉인이 풀리지 않을까, 그래서 스피커 2가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어른들이나 아이들한테나 다 재미읽게 읽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주의 내용들도 “아, 나도 이런 사연 있는데” 그런 생각도 들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내용들이고요.
사회자: 저도 정리할 겸, 한 말씀 드리면요. 하이퍼객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개념어가 있는데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파동처럼 물결치는 시간성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일반 객체 사물하고 인간하고 비교하는데,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다르더라고요. 지금까지는 너무 인간 중심에서 세계를 보았잖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 법칙이라는 것도 인간이 본 과학 법칙이란 말이죠. 인간의 관점에서 따져본 거라는 생각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세상이 이렇게 망가졌기 때문에 조금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이제 보려고 하는 거죠. 그렇다고 인간을 배제하려는 건 아니고요. 사물 객체하고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 그런 연구를 하는 것 같아요.
신유물론 철학자들은 오히려 객체를 더 우선시하는 것 같아요. 객체는 인간보다 더 오래 지속돼 왔고, 인간과는 다른 속도로 변화하고, 그리고 객체는 인간 없이도 운동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른 시간을 갖고 살고 있고 다 인간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존재들이 간섭을 일으켜서 파동이 증폭되는 거지요. 그런 식으로 각자 객체와 인간들의 시간이 서로 겹치면서 증폭될 때 기묘한 현상도 일어나는 거다. 객체들의 시간들이 자꾸만 만나다 보면 기후위기 같은 이상 현상도 생기는 거라고 보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AI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인간의 시간하고 하나의 사물 객체로서 AI 시간하고 다르다는 거예요. 인간은 수년간 학습을 해야 하지만 AI는 초당 수십 억 연산을 통해서 막 수백 권 책도 읽어내지 않습니까? 인간의 시간과 AI의 시간이 간섭을 일으켜서 물결치는 시간성이 만나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관념이 깨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노동의 리듬도 깨지고, 글 쓰는 사람들은 창작의 사유나 창작의 리듬도 붕괴돼서 새로운 방식의 창작이 일어나고, 사유하는 속도도 바뀔 거다. AI도 일종의 하이퍼 객체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거죠.
인간 중심주의 이후의 세상에서는 이와 같은 큰 하이퍼 객체들 속에서 인간이 흔들리는 존재로 살아가는 거다. 그래서 모든 기묘함, 공포, 환각 같은 무서움, 이런 하이퍼 객체들이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는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현상이라고까지 보는 거예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공부를 아주 많이 한 사람들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까지 발전해 온 철학을 다 학습하고 난 다음에 또 이러한 새로운 철학을 이야기하는 거지요.
지금 아동·청소년들은 AI를 직접 경험하며 문명 전환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기성세대들은 근대의 시간 속에 갇혀 그렇지 못하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AI의 시간성하고 마치 물결치듯이 파동처럼 서로 간섭하고 겹치면서 엄청나게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도 있고,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스티커』는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주는 작품이어서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고요. 두 달에 한 번씩 진행하는 <비평 공간> 꾸준히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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