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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시인 오규원(본명 오규옥·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씨가 2일 오후 5시10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지병으로 타계했다. 66살. 언어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에서 광고 언어를 패러디한 사회 풍자, 그리고 관념의 개입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날(生) 이미지 시’까지 다양한 시적 모색을 해온 시인은 <한 잎의 여자>라는 시로 독서 대중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한 잎의 여자> 부분)
오규원 시인은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태어나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었으며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돼 등단했다. 1971년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에서부터 1975년에 낸 <사랑의 기교>에 이르는 초기 시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언어에 대한 고도의 자의식이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점차 상품 광고 문안과 대중문화적 기호들에 대한 비판적 관심으로 옮겨 간다. 다섯 번째 시집인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에 실린 시들은 상품 광고 문안을 패러디한 구절들로 현실의 타락한 욕망을 겨냥했다.
“1. ‘양쪽 모서리를/ 함께 눌러 주세요’// 나는 극좌와 극우의/ 양쪽 모서리를/ 함께 꾸욱 누른다// 2. 따르는 곳/ ↓ // 극좌와 극우의 흰/ 고름이 쭈르르 쏟아진다// 3. 빙그레// 나는 지금 빙그레 우유/ 200㎖ 패키지를 들고 있다”(<빙그레 우유 200㎖ 패키지> 부분)
한동안 출판사를 경영하며 <김춘수 선집> <이상 전집> 등 자신이 사사한 선배 문인들의 책을 내기도 했던 시인은 1983년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신경숙 함민복 박형준 장석남 강영숙 하성란 이원 천운영 윤성희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다.
1990년대 들어 시인의 시 세계는 또 한 번 커다란 방향 전환을 이룬다. 지병인 폐기종이 악화하면서 강원도 영월과 경기도 양평 등지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시인은 언어와 세계를 상대로 한 치열한 대결 대신 그윽한 관조의 세계로 접어든다. 도시의 혼탁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산중에서 힘겹게 투병을 하는 스승을 위해 제자들은 2002년 <문학을 꿈꾸는 시절>이라는 회갑기념문집을 헌정하기도 했다.
고인은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방송작가인 김옥영씨와 2남1녀가 있다. 발인은 5일 오전 8시. 빈소는 서울 강남 삼성의료원. |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죽고난 뒤의 팬티/오규원
''한잎의 여자'로 잘 알려진 중진시인 오규원 선생님께서 어제 저녁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지병인 폐기종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아직 향년 66세의 팔팔한 나이에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발인은 4일 오전 8시, 장지는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
빈소는 강남 삼성의료원 18호실. (02)3410-3151 입니다.
-옮긴 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