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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중용은 늘 일상에서 이루어진다. 일상은 그가 처한 상황이다. 부유하고 존귀한 처지에 있으면, 그 부유함으로 은혜를 베풀고 존귀함으로 미천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빈천하여도 그러하고, 야만스런 곳에서도 그러하고, 어려운 일을 겪더라도 그러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용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위가 높다고 하여 아랫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지위가 낮더라도 윗사람이 나의 출세를 도와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중용을 구현할 마당인 것이다. 그러므로 원망이 없다. 나는 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가 하고 탄식하지 않는다. 하늘은 왜 나에게 이런 큰 시련을 주시는가 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최선의 행동을 찾아 할 뿐이다. 소인은 그렇지 않다. 어려우면 올바르지 않은 방법을 찾아서라도 그 어려움을 벗어나려 한다. 그래서 항상 위태위태하다. 위태로운 짓을 하면서 요행으로 피해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군자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올바른 최선의 방법을 찾아 그 어려움을 타개하려 할 뿐, 소인처럼 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의 처신은 항상 쉽다. 그 자리에서 그 상황에 맞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몹시 어렵다. (*) * 이세동 옮김, 「대학 · 중용」(을유문화사, 2007), 193-194쪽. 위의 글은 이세동 교수가 「중용」 제14장 제1절에 대해 해설한 부분인데, 하도 그 내용이 적절하고 절실해서 초서해 놓는다. 가수 류필립이 아버지로부터 깊이 받은 상처를 자신이 좋은 아빠가 되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 말하자면 중용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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