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기작(代慈屺作)-추사 김정희 시
[글쓴이 일도 박영진] & ●추사 김정희
시 모음-"수선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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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일도 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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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시 모음
●수선화-金正喜(김정희)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한 점의 겨울 마음이 송이송이 둥글어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구나.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못 벗어나는데
해탈한 신선을 맑은 물에서 정말로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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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謝菊)-김정희(金正喜)
고마운 국화
暴富一朝大歡喜 폭부일조대환희
發花箇箇黃金毬 발화개개황금구
最孤澹處穠華相 최고담처농화상
不改春心抗素秋 불개춘심항소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너무나 기쁜데
핀 꽃들 하나하나가 황금 구슬이구나.
가장 외롭고 담백한 곳에 화려한 얼굴
봄 마음 고치지 않고 가을 추위를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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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란(秋牧丹)-김정희(金正喜)
가을 모란
紅紫年年迭變更 홍자년년질변경
牧丹之葉菊之英 모란지엽국지영
秋來富貴無如汝 추래부귀무여여
橫冒東籬處士名 횡모동리처사명
홍색 자색 꽃으로 해마다 바꿔 피니
모란의 꽃잎, 국화의 꽃봉오리로구나.
가을날 부귀로는 너 같은 이 없으니
동쪽 울타리 처사라고 함부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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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중양절 국화
黃菊蓓藿初地禪 황국배곽초지선
風雨籬邊託靜綠 풍우리변탁정록
供養詩人須末後 공양시인수말후
襍花百億任渠先 잡화백억임거선
누런 황금 꽃봉오리는 선의 첫 경지 비바람
울타리 곁에서 청정한 인연 맺는다.
시인을 공양함은 맨 마지막 일이나
온갖 잡된 꽃에서도 가장 우두머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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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촌사벽(題村舍壁)-김정희(金正喜)
시골집 벽에 제하다
禿柳一株屋數椽 독류일주옥수연
翁婆白髮兩蕭然 옹파백발양소연
未過三尺溪邊路 미과삼척계변로
玉䕽西風七十年 옥촉서풍칠십년
한 그루 늙은 버들 두어 서까래 집에
머리 하얀 영감 할멈 둘이 다 쓸쓸하네
석자가 아니되는 시냇가 길 못 넘고서
옥수수 가을 바람 칠십 년을 살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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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1(送紫霞入燕1)-김정희(金正喜)
연경에 가는 자하를 전송하며
墨雲一縷東溟外 묵운일루동명외
秋月輪連臘雪明 추월륜련납설명
聞證蘇齋詩夢偈 문증소재시몽게
苔岑風味本同情 태잠풍미본동정
먹구름 한 오라기 동쪽 바닷가
둥근 가을달 설 눈과 함께 밝았습니다
소재의 시, 꿈,게송을 증거삼아 들어보니
태잠의 풍기는 멋인양 본래 같은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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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2(送紫霞入燕2)-김정희(金正喜)
漢學商量兼宋學 한학상양겸송학
崇深元不露峯尖 숭심원불로봉첨
已分儀禮徵今古 이분의예징금고
更證春秋杜歷添 경증춘추두력첨
한학을 헤아리고 송학도 헤아려 높고 깊어
봉우리 끝도 드러나지 않았지요
의례를 나누어서 금ㆍ고문을 증빙하시니
또 춘추를 증거하고 두력도 첨가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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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3(送紫霞入燕3)-김정희(金正喜)
混侖元氣唐沿晉 혼륜원기당연진
篆勢蒼茫到筆尖 전세창망도필첨
邕塔嵩陽拈一義 옹탑숭양념일의
都從稧帖瓣香添 도종계첩판향첨
원기는 돌고 돌아 당이 진을 답습하니
전자(篆字) 형세 아스라이 붓 끝에 옮겨 왔네
옹탑이랑 숭양이 일의(一義)란 걸 추켜드니
모두가 계첩에서 판향을 더한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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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4(送紫霞入燕4)-김정희(金正喜)
詩境軒中風雨驚 시경헌중풍우경
南窓埽破鳳凰翎 남창소파봉황령
江秋史去留完璧 강추사거유완벽
黃小松來搨石經 황소송래탑석경
시경헌 가운데 바람비를 놀랬으니
남녘 창엔 봉황 꼬리 발라서 깨뜨렸네
강추사는 떠났는데 완벽은 남아 있고
황소송은 찾아 와서 석경을 탑본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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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5(送紫霞入燕5)-김정희(金正喜)
樓前山日澹餘紅 루전산일담여홍
快雪粉箋說異同 쾌설분전설이동
萬里許君靑眼在 만리허군청안재
曾於扇底覓春風 증어선저멱춘풍
누대 앞 산의 해는 남은 붉빛 묽게 하고
분전지(粉箋紙)와 쾌설이 같고 다름을 말했지요
만리 먼 곳 그대에게 청안 있음을 인정하니
일찍이 부채 그림 아래서 봄바람을 찾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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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6(送紫霞入燕6)-김정희(金正喜)
百摹雨雪摠塵塵 백모우설총진진
又一九霞洞裏春 우일구하동리춘
顴右誌傳松下供 권우지전송하공
何如子固硏圖人 하여자고연도인
백 번 모한 우설은 모두 다 각기 각기
또 하나는 구하동의 막대 짚은 봄이로세
바른 관골 사마귀는 송하공양 전해오니
조자고(趙子固)의 벼루에 그린 것과 어떠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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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7(送紫霞入燕7)-김정희(金正喜)
東坡石銚今猶在 동파석요금유재
圖壓蘇齋書畵船 도압소재서화선
淮泗道中明月影 회사도중명월영
松風夢罷尙涓涓 송풍몽파상연연
동파 선생 석조, 지금도 남아 있어
그 그림이 소재의 서화선을 눌렀다
회사 땅의 길, 밝은 달 그림자
솔바람에 꿈을 깨니 여전히 아른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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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8(送紫霞入燕8)-김정희(金正喜)
三百年來無此翁 삼백년래무차옹
石帆亭上聞宗風 석범정상문종풍
團成八月生辰日 단성팔월생진일
祝嘏碧雲紅樹中 축하벽운홍수중
삼백 년이 가는 동안 이 늙은이 또 있으리
석범이라 정자 위에 종풍을 들었다오
팔월이라 생신 날에 모임이 원만하여
푸른 구름 붉은 숲 그 속에서 복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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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9(送紫霞入燕9)-김정희(金正喜)
自從實際覰精魂 자종실제처정혼
底事滄浪禪理論 저사창랑선리론
一世異才收勿騁 일세이재수물빙
十年浮氣掃無痕 십년부기소무흔
실지를 밟아 가서 정혼을 엿보는데
무슨 일로 창랑은 선리를 따지는지
한 세상의 이재(異才)는 달리려 들지 말고
십 년의 뜬 기운은 흔적 없이 쓸어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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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하입연10(送紫霞入燕10)-김정희(金正喜)
唐碑宋槧萃英華 당비송참췌영화
漢畫尤堪對客誇 한화우감대객과
拱璧河圖曾過眼 공벽하도증과안
雪鴻怊悵篆留沙 설홍초창전유사
당비라 송참이라 영화가 다 모이고
한화는 무량사상(武梁祠像) 손들에게 더욱 자랑할 만하네
공벽 같은 하도는 진작 눈을 거쳤는데
봄 눈에 찍혀 있는 기럭 발톱 서글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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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의불국사시후(題草衣佛國寺詩後)-김정희(金正喜)
초의의 불국사 시 뒤에 적다
蓮地寶塔法興年 련지보탑법흥년
禪榻花風一惘然 선탑화풍일망연
可是羚羊掛角處 가시영양괘각처
誰將怪石注淸泉 수장괴석주청천
연지의 다보탑이 법흥의 연대라서
선탑(禪榻)의 꽃바람이 한결같이 아득하이
이게 바로 영양이 뿔을 걸어 놓은 데라
어느 누가 괴석에다 맑은 샘을 쏟았는고
출처 :인터넷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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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추사고택-화순옹주 열녀문과 백송
# 추사 고택 인근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된 김정희 선생 유적지(遺蹟地)가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글과 그림,
글씨가 독창적이며 이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며 예술가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나고 일찍 글을
깨우치며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24세인 순조9년(1809)에 청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간 김정희는 청나라 제일의
학자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등을 만나 재능을
인정받고 이후 일생 교유하였다.
또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고증학에 관심을 가졌다.
귀국한 후에는 '사실을 밝혀서 진리를 추구한다'라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하여 학문을 완성해
나갔다.
김정희는 제자가 많아 "추사의 문하에는 3천의 선비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들 중에 19세기 후반
개화사상가로 이름을 날린 이들이 많다.
55세 때인 헌종 6년(1840)에 정쟁에 휘말려 제주도에
약 9년간 유배되었는데, 이 시기에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글씨체를 이루었다.
그의 글씨는 인기가 높아 청나라와 일본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헌종은 김정희의 글씨를 사랑하여 유배 중에도
글씨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 일대는 김정희가 나고 자란 고택과 그가 묻힌 무덤,
증조부 김한신의 묘와 증조모 화순옹주의 열녀문,
김정희가 청나라에서 가져온 백송, 그가 수도하던
화암사 등의 유적이 있어 그의 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예산 추사고택 (2)화순옹주 열녀문과
백송|작성자 좋은 사람 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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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https://cafe.daum.net/4fcl/G4Lf/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