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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방해물들-3
기도의 열정을 회복하자.!!!
본문/딤전6:12절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그동안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되는 방해물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게으름은 죄성가득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게으름 즉 영적인 게으름을 우리는 버리고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생활에 있어서 이 게으름을 극복하지 못하면 신앙성장은 실패하고 주께서 우리를 부르심 그 부르심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게으름 중에서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게으름은 특히나 경계해야할 방해물입니다. 10년을 공부하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데 우리 신자들은 3-40년을 믿어도 진리를 모릅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진리에 이르기를 원한다. 라고 하였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라고 하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즉 신앙성장은 얼마나 우리가 진리 되신 예수님과 그 입에서 나온 말씀 즉 성경의 진리를 알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출석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신자들은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교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으나 진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을 해도 내가 믿는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주에 드린 말씀입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로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성령님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추구하는 영적 열심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것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제대로 삶 가운데 실천하는 자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엡6:18절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기도의 게으름에서 우리를 경고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절)
지각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말씀의 문맥을 살핀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의 영을 부으소서. 기도의 능력가운데 들어가게 하옵소서. 어떻게 하든지 기도의 삶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본문에 보면 그렇게 하라는 단어가 특별히 들어가 있습니다.
모든, 무시로, 항상, 여러 이런 표현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간구, 힘쓰며, 와 같은 상한 단어들이 계속 사용되고 있 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깨어 있으라” 라는 자극적인 표현 본문에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를 위하여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이를 위하여 게으름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마음이 무감각해져서 굳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그는 인간이 기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함에 따라 기도하는 것에 게을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큰 응답을 받기 직전까지 갔다가 무관심과 게으름에 빠져 기도를 중단하고 문제 해결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들이 교회와 신자들 속에 너무나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를 위하여 게으름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우리의 신앙을 회복하여 기도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본문 에베소서6:18절 전체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우리의 심령을 이끌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열심 있는 기도 생활
지속적이고 끈질기고 쉬지 않는 승리의 기도가 왜 필요합니까?
바로 우리의 대적 영적 방해자 사단 때문입니다. 사단은 교활하고 강합니다. 그는 쉬지 않고 우리를 대적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패하도록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살전5:18절)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는 것에 게을러지면 꼼짝없이 마귀의 덫에 결려들고 맙니다.
엡6:12-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血)과 육(肉)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 말씀 다음에는 그리스도인이 사탄과 그의 강력한 궤계(詭計)를 대적하기 위해서 입어야 할 전신갑주의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바울이 전하는 교훈은 본문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엡6:18절에서 그는 전신갑주에다 기도를 덧붙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안에서 지칠줄 모르고 쉬지 않고 지속적이고도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으면 전신갑주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무엇을 얻으려고 할 때 우리가 하는 기도를 통해서 얻도록 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많은 신자들이 영적으로 가난하고 무력한 것은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삶이 왜 이토록 무능력한가?”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너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얻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이땅에 수 많은 목사들이 저를 위시해서 이땅에 10만명의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그토록 수고하지만 왜 이토록 열매가 없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 적어도 수십억이상을 헌금해서 성전을 건축했으나 빚을 갚지 못하고 은행에 넘어가는 교회가 한해에 수십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큰 포부와 비전을 갖고 온 교우들이 함께 교회건축에 힘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몇 년도 못가서 교회가 은행에 부채를 갚지 못해 넘어가는 이 비극적인 현상을 무엇으로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게 오늘 교회와 목회자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거듭나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토마스 주남 여사의 기도의 열심 예화)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왜 사상에서 그토록 영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에서 맛없는 소금 같은 그런 존재로 변질되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자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사도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삶속에 기도가 제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신자들이 갑자기 유입되면서 교회가 처리해야할 일들이 더 많이 쌓여만 갔습니다. 그때 사도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까?
그것을 우리는 행전6장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 바울이 교회들과 개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근거하여 판단해 볼 때 그가 그들을 위한 기도에 많은 시간과 힘과 관심을 쏟은 것은 분명합니다.(롬1:9, 에11:15-16절, 골1:9, 살전3:10절. 딤후1:3절)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기독교 역사상 큰일을 이룬 신앙인들은 모두가 다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달랐지만 열심히 기도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똑같습니다.
(루터의 기도, 웨슬리 목사님의 기도생활, 찰스 피니, 등등
정말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사실 때 기도는 주님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 했으며 매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마가복음1:35절에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렇게 기도하기 전날 그분은 매우 바쁘고 활기찬 하루를 보내셨으므로 수면을 많이 취하여야 했지만 취침 시간을 줄여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이는 물론 잠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사복음서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사복음서에는 그분과 관련하여 “기도하다”와 “기도”라는 말이 적어도 25회 이상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 곳에서도 그분의 기도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도에 쏟아 부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기도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소위 교회 출석하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불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현재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끈질기게 승리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들이 많지만, 특히 부활하신 주님의 현재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기도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더불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속죄사역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로 완성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어 우리를 위해서 계속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대속의 사역이었으나 다시 하늘로 오르시어 주님의 사역은 대속사역 만큼이나 중요한 기도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 새로운 기도 사역은 주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어 놓으신 대속사역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을 하늘에서 중보하심으로 완성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히7:25절은 우리의 구원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위대한 사역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 말씀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즉 완전함에 이르기까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분은 완전함에서 출발하실 뿐 아니라 완전함까지 도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전폭적 완전함, 절대적 완전함에 이르도록 구원하십니다. 그분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죽으셨을뿐 아니라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히7:25절은 예수님께서 왜 지금 살아 계신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 것은 중보기도를 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하시는 주요한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이 진리를 사도 바울의 승리의 선언에도 발견 됩니다. 롬8:34절 그 유명한 승리의 선언의 말씀입니다.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만일 우리가 이런 현재적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려고 한다면 기도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열정적이고 지속적이며 끈질기게 하는 승리의 기도에 혼신의 힘을 바쳐야 합니다.
제가 우리 신자는 기도의 게으름을 물리치고 열심을 다해서 기도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서 속죄의 사명을 다 이루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계시어 하시는 주된 사역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이든지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 많은 기도의 깊이를 열고 더 많은 기도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나를 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서 교회와 지역과 도시와 교회를 위하여 중보기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 스럽고 능력 있는 사역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이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 누구든 이 사역에 기초를 두지 않고서는 그 다음의 사역이 어떤 것이든 실패하게 됩니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생활하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더 할 나위 없습니다.
특별히 질병이나 문제를 않고 있는 분들은 더더욱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위해서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서 중보기도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러나 수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려면 별도의 시간을 내어 조용한 기도의 골방을 만들어 주님과 함께 많은 시가도의 시간을 보내어야 합니다.
긍휼과 은혜와 기쁨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과 은혜와 기쁨을 주시기 위해 정하신 방법입니다. 히브리서4:16절 그 유명한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름다운 말씀가운데 하나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긍휼과 은혜를 구하여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가지 방법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이 이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물론 기도입니다. 은혜의 보좌, 즉 하나님의 임재의 지성소에 담대히 나아가 확신 가운데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시는 대재사장 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속죄재물로 대제사장으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히4:14-15절)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늘 저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긍휼이고,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긍휼과 은혜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지 못합니다. 하는 일들마다 늘 실패하고 맙니다. 기도는 긍휼과 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무한한 은혜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은혜는 구하기만 하면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혜의 충만함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분께서 주시는 은혜의 높이와 깊이, 그리고 길이와 넓이를 깨닫고 누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투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양은 기도의 양에 비례합니다.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은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축복이며 이 땅에서 구원의 축복을 마음껏 승리하며 누릴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힘입니다.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끈질기게 구해야 합니다. 지칠 줄 모를 정도로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기도할 때 그분은 일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온전히 베푸실 것입니다.(눅11:8)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구하기만 하면 강둑을 타고 흘러넘치는 강물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른땅과 같은 심령에 냇물처럼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은혜와 긍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셨고 그것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통로로 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쁨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현상의 변화보다 사실 우리의 마음의 기쁨과 평안입니다. 충만한 기쁨을 얻는 방법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쁨으로 충만함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 기쁨이 넘칩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 때 기쁨이 넘칩니까? 눈에서 맑고 빛나고, 입술에서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오고, 손을 움직일 때 주님의 사랑이 넘칩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왜 이토록 기쁨을 줍니까? 우선 기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응답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원인이 아니고 최대의 원인도 아닙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깊은 것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더 크게 역사하시어 주님에 대한 막연함이 실채가 더 확연하게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구하였는데 신속하게 그것을 응답해주셨다면 그것을 얻은 기쁨보다는 그것을 응답해주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더 크게 느껴지고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생각 속에 들어가 있는 사상이 아니라 실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복된 기도의 능력입니다.
저는 생활 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낼 때가 자주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즉각적으로 주님 앞에 엎드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 순간 문제는 사라지고 내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마치 그분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내 몸을 만져주시고 내 삶을 주장해주시는 것을 확연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사실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이 실재하다는 이 놀라운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기도로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특권을 얻게 됩니다. 시편16:11절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는 미래의 복이 아니라 현재의 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줍니다.
여러분 중에 기도를 통하여 그런 기쁨을 맛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분은 기도로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충분한 기도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기도를 할 수 있게 된 중요한 힘은 바울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기도를 많이 하고 깊이 할 수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기도를 많이 하니까 기도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간절하게 바울의 기도이든 아니면 주님 앞에 간절하게
“주님! 기도의 깊이를 더 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기도의 능력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라고 계속해서 부르짖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과 단순히 내가 무엇이 필요해서 간청하는 간구의 차원이 아니라 주님과의 대화의 차원에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놀라운 임재를 실재로 맛보게 됩니다. 충분히 기도하지 않으니까 순간순간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만 하니까 주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몰두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이익을 남기는 투자
우리는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고통과 고난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해방되려면 감사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그런 모든 근심과 염려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안을 얻도록 그분이 정하신 방법인 기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4:6-7절)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구절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좋은 말씀이긴 하나 죽을 몸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는 너무 멀리 느껴지는 듯한 말씀으로 보여 집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요16:33절에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요14:26, 16:33절)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즉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간단합니다.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는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욱 간단하고 분명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기도로 통하여 평안을 약속하신 주님과 계속해서 만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면 고통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그분께 말씀을 드리는 기도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그 기도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늘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이미 얻게 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간단한 처방입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방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기 보다는 인간적인 생각과 내 노력으로 무엇을 해결해 나가기를 대부분의 신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평안함을 소유한 자 있습니까? 그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여러분 주위에 늘 불안하고 화를 잘 내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자 있습니까? 그 사람은 분명하건데 기도하지 않는 자입니다. 물론 성격적으로 어느 정도 느긋하고 그리고 조급한 것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성격적으로 화를 잘 내고 그리고 삶 속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좌불안석가운데 있기를 잘하는 사람들 주님에게 찾아오세요, 주님께서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지각을 초월한 즉 우리가 갖고 있는 이성과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그런 것 이라고 합니다. 평강이 그렇습니다. 그런 평강을 기도하는 자들에게 얻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더 인간적인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입니다. 일단 지금 당장 기도한다고 해서 효과가 안나타날 수가 많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럴 때 어느 순간부터 주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염려를 주님께 기도로 맡겨버리세요 그러면 우리는 두 다리 뻗고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기도는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최상의 투자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최고의 이익을 남기게 됩니다.
성령을 받는 기도.
첫째 시간에 우리는 영적 게으름 중에 하나가 성령을 알지 못하고 관심 갖고 살지 않는 게으름을 지적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할 교회와 성도가 성령에 관심이 없습니다. 소수의 교회마저도 성령을 추구하지만 기도해도 제대로 균형 잡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 충만함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할 떄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기도는 곧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을 눅11장에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할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응답을 받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성령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응답받고 아니고 가 중요 한 게 아니라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럴 때 응답 유무를 뛰어넘어 갈증을 느낄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함을 느끼듯이 성령님으로 인하여 마음의 갈증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엎드리면 엎드릴수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 속에서 더 많은 성령의 능력들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는 사람들이 과거 한때 기도의 삶을 살아갔으나 이제 기도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기도를 충분히 하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능성에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덮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가정에서 교회 안에서 무릎을 끓는 시간을 늘려 나가십시오.
기도는 의무인가? 특권인가? 즐거움인가?
이 땅의 모든 종교를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다른 종교의 기도는 그들의 신이 죽었기 때문에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에 몇 분 기도해야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 기도한 몇 분의 기도시간에 했던 간구가 응답받았다면 왜 주님께서 살전5: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빌4:17절에서 “너희 모든 일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하라”고하셨을까요? 그렇다면 그 기도의 시간이 몇 분으로 끝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몇 번 여러분들에게 끈질긴 기도에 대한 계시적인 주님의 말씀을 들려드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토마스 주남 여사의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의 그의 간증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지도 않고 기도에 응답하시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 초기에 나는 기도하는 법을 몰랐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매우 끈질기게 기도했고 내가 구한 것은 받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지난 2년간 나의 모든 기도는 거의 응답되었습니다. 이제 주님과 나는 언제 어디서나 대화를 합니다.]
어떤 분의 간증입니다. 어떤 신자에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얼마의 기도를 하십니까? 그러자 그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합니다. 그리고 온종일 기도하지요”
그러나 이 부인과 같은 사람이 교회 안에 몇 명이나 될까요? 거의 없기 때문에 웨슬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죄 말 고는 두려워할 것 없는 기도하는 사람 300명만 내게 주십시오, 세상을 뒤집어 놓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기도는 의무입니까? 특권입니까? 아니면 즐거움입니까? 참된 기쁨입니까? 아니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까?
빌4:1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러나 그 하나님의 풍성함도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요하기 위하여 가난한자가 되시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요함도 주님 앞에 엎드릴 때에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36잘에서 포로가 되어 앞날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그들을 예전처럼 회복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희망찬 메시지 입니까?
그런데 에스겔 36장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7절입니다.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 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교회 다닌다고 응답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 받습니다. 구해야 받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해야 합니까? 응답 받을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교회를 보시면서 이상하게 여기셨다! 라는 표현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교회를 보시면서 이상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왜일까요? 왜 이상하게 여길까요? 이사야59:16절에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여기서 중재자란 말은 중보자 즉 기도하는 사람을 ㅋ말합니다.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를 보실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상하게 보실까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는데 정작 그 안에서는 형식적인 예배만 가득하고 이 땅에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온갖 것들을 기도로 통하여 받아 누릴 생각들을 하지 않고 종교놀음만 하고 있는 이 땅의 교회를 보실 때 얼마나 이상하게 여기실까요? 여러분 교회만 나오는 것이 정상 입니까?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찬송 부르고 예배드리는 것만이 정상입니까? 중재자가 없는 교회를 보시고 주님은 이상한 교회라고 하십니다.
교회 안에 기도의 능력 기도의 중요성, 기도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어떤 책에 보니까 기도에 대한 글을 쓰시는 분의 간증을 기록하고 있는 글인데, 그분이 이 책을 쓰면서 굉장히 어려움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기도에 대한 책을 쓸 때 뭔가 자꾸 뒤에서 잡아 당기는 그런 것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기도가 그리고 기도에 대한 책이 사단에게 엄청난 무기가 되기 때문에 온갖 행태로 방해할 것입니다.
저도 이 기도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도저히 하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매일 기도하라고 잔소리 하고 있는데 또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니 이것 해야 하나? 도대체 이 설교를 함으로써 어떤 변화하가 있겠나? 하는 불신이 내게 일어났습니다.
차라리 나 혼자 하고 말지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오늘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겠다고 했는데 다른거 하면 제가 뱉은 말에 책임이 없는 자가 되기에 억지로 앉아서 기도의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이 설교를 전할 때 성령님이 갑갑절로 역사하셔서 듣는 청중들로 하여금 기도하지 않으면 못 베기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 천국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로 소문나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은 웅변이나 열심이나 정통 교리나 에너지가 아니라 기도에 의해 평가됩니다. 즉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한다고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올바로 사역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선한 삶을 아무리 많이 살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선한 삶을 살지라도 선한 열매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꼭 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분들에게는 제자들이 주님에게 한 그런 기도가 필요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또 어떤 분에게는, “우리 함께 삼일간 먹지도 않고 기도에 힘씁시다.”
(에스더4:16절)
여러분의 위치가 어디든 진짜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를 부흥시키는 도구입니다. 그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방법입니다. 하다못해 자녀를 위해서라도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작은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기도가 필요 없을 만큼 큰 문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빌4:1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기도로 주님께 맡기고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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