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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승리와 향기와 불순물을 섞지 않음
천 영 대
성경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3~17)」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이뤄진다. 우리 주님께서 승리자가 아니고 패배자라면 우리 또한 패배자로서 패배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악한 자들을 대적하여, 심지어 사망의 권세까지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그 안에서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성경 번역, 대한성서공회 : 표준새번역에서는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개선행렬의 주인공, 곧 개선장군이시다. 이 성경이 기록될 무렵에는 로마가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때에 로마군 장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에는 많은 노획물과 포로들을 이끌고 로마로 돌아와서 개선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때에 개선장군은 앞에서 행차를 하고 포로들은 그 뒤를 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선장군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었고, 반대로 포로들은 그 개선장군이 영광을 얻도록 하는 전리품이 되었다. 고린도후서 기자는 이 내용을 고린도후서에서 사도들과 주님을 믿는 자들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 이 내용에서 주 예수님은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으로, 사도들과 주님을 신실히 믿는 자들은 그 개선장군의 포로로 비유해서 말하고 있다. 개선장군은 포로들을 포로로 잡은 자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로, 포로가 된 자들은 포로로 잡혀 그들을 포로로 잡은 자인 개선장군의 승리를 축하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자들로 말하고 있다. 이처럼 개선장군인 그리스도에게 포로로 잡힌 우리들은 사도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우리를 포로로 잡은 그리스도를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로 나타내고 증거하는 자들이다. 포로가 된 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고, 포로로 잡은 자의 노예가 되어 그 주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포로는 자신의 영광이나, 유익을 구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오직, 주인에게 복종함으로 주인의 뜻을 이루고 주인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 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 또한 우리 마음대로 하거나, 우리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아니고 주님께 복종하므로 그를 영광스럽게 해야 할 자들이다(고전 10:31).
우리 주님은 왕 중의 왕으로서 전쟁에서나, 일에서나 승리하는 분이시다. 요한계시록 17장 12∼14절에서는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라고 했다. 어린양이신 주님은 만주의 주이며, 만왕의 왕으로서 악한 열왕들을 이길 것이라고 했다. 주님뿐만 아니라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로서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도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개선장군인 주님의 개선행렬에 그의 포로로 참여하여 그의 전리품으로 그의 승리를 나타내고 증거하며 자신 임의로 하지 않고 개선장군을 따라 가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3장 19∼21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했다. 우리 주님은 이기는 자이며,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주님께 순종하여 그와 함께 주님의 길을 감으로 이기는 자들 또한 이기는 자이신 주님과 함께 아버지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참으로 복되고 놀라운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3∼15절에서는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악한 천사들, 곧 정사와 권세자들을 벗겨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 우리는 승리자이신 주님과 함께 함으로 우리 또한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포로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자들이 아니고 주님의 포로와 종(노예)으로서 우리를 포로로 잡으신 개선장군이신 주 예수님께 순종하며 사는 자들이 되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대한성서공회 : 표준새번역)”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그리스도의 행렬에 믿는 자들을 참가시킨다고 하는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개선장군이신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믿는 자들은 포로로 참여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개선장군의 전리품으로서 개선장군의 위대함과 그의 승리를 증거하고 축하한다. 그들은 개선장군의 포로로서,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로서 더 이상 자신들 임의로 생활하지 못하고 그들을 사로잡은 주님께 부속되어 그에게 복종하고 따라가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14장 4, 5절에서는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했는데, 이러한 사람들과 같이 사도들 일행은 주님께 사로잡혀 그의 포로가 되어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나타내면서 그의 뒤를 따라가는 자들이다. 사도행전 9장 1∼22절에서는 사울이라는 청년 나중에는 사도 바울로 변한 자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님께 사로잡혀 그의 포로로서 전에 했던 것과 같이 주님과 그의 교회를 더 이상 대적하거나 핍박하지 않고 도리어 주님과 그의 말씀을 전파한 것을 볼 수 있다. 이후로는 더 이상 자기 임의로 생활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사로잡은 주 예수님의 노예로서 그를 따라가는 자가 되었다. 빌립보서 3장 10∼14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붙잡으셨기 때문에 사도 또한 그를 붙잡으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 자신을 붙잡으셨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께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는 그를 붙잡으신 그리스도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하지 아니하고, 그 또한 그를 붙드신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 좇아간다고 했다. 사도는 그를 붙잡으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노예로 삼아 혹사하고, 학대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지극히 사랑하고 위함으로 그 또한 그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가운데서 그에게 순종함으로 그를 붙잡으려고 좇아갔다. 우리를 붙잡으신 주님을 우리 또한 붙잡기 위해 좇아가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자신의 힘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그에게 붙잡혀서 그의 길을 가는 자들은 자신들의 어떠함을 나타내지 않고 그를 붙잡은 자를 나타내고 증거한다. 주님을 믿고 그를 따라감으로 그와 닮은 자들은 그를 나타내고 증거함과 아울러 그 그리스도로 적셔졌기 때문에 그의 냄새를 풍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아니라,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로도 나타내고 증거한다. 고린도후서 2장 14, 15절에서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그를 믿는 자들을 이끌어서 어디에서든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냄새, 곧 향기를 나타낸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 계속해서 그를 따라가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적셔져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 그리스도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달콤한 향기도 있다. 아가 4장 10∼16절에서는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향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참으로 달콤한 향기, 그리스도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의 향기를 발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그리스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성숙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 신부로부터 그 마음을 빼앗을 정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2장 14, 15절에도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바 된 자들, 곧 더 이상 자신들 임의로 말하거나, 행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로잡힌 자를 따라 감으로 그와 같이 되는 데까지 자라 그에게 온전히 적셔져서 그를 나타내고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의 달콤한 냄새, 곧 그의 향기가 되는데 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사도일행은 어디에서나 그들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이기까지 했다. 전쟁에서 포로로 된 자들이 개선장군의 영광을 위해 향을 날랐듯이 그리스도의 포로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개선의 영광을 나르는 그리스도의 포로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면서 그의 영광을 위해 그의 향기를 나르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뿌렸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로 적셔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의 냄새를 풍겼다.
사망의 냄새와 생명의 냄새
사물에는 각각의 냄새가 있다. 그 냄새가 그 자신의 어떠함을 나타낸다. 그 냄새가 상대방을 거절하거나 피하게도 하고, 유인하거나 좋아하게도 한다. 썩은 사망의 냄새도 있고, 살아있는 향기도 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신 자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 중에는 죽은 자와 산자가 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속성과 냄새가 있고 산자는 살아있는 자의 속성과 냄새가 있다. 로마시대에 한 장수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에 그는 그가 포로로 잡은 자들을 이끌고 개선행진을 가졌다.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일부는 살아남기도 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자에게는 그들이 날랐던 향기가 되지 못하고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고, 살아남는 자들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다. 고린도후서 2장 15, 16절에서는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향기일지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좋은 냄새가 되기도 하고, 좋지 않은 냄새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음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육식요리를 할 때에 그 냄새가 향기롭고, 맛있게 다가오는데,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냄새가 좋지 않은 냄새로 다가온다. 개선행렬에서 나르는 향기가 그 행렬이 끝나고 죽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그 향기가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살아남는 자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놀라운 향기이다. 그런데 그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향기로,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냄새가 된다. 즉,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좋아하는 달콤한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대적하고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싫어하는 냄새, 곧 악취가 된다. 주님을 믿고 그 주님으로 적셔져 그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자들 또한 주님을 믿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반면에 주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에서 사망에 이른 냄새가 된다. 사도행전 13장 44∼48절에서는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했지만, 이방인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고 했다.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스스로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다고 자처하는 유대인 무리가 있는가 하면, 비록 이방인이지만,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그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로서 믿는 무리도 있다. 이렇게 같은 사도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지라도 유대인들은 사도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변박하고 대적했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찬송하며 믿었다. 사도일행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을 때에 그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은 그리스도의 향기이지만 어떤 사람들, 곧 주님과 그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주님과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다.
불순물을 섞지 않음
사도일행은 주님과 그의 말씀만을 전파했지만 어떤 무리들은 주님의 말씀에 주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을 첨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 고린도전서 2장 1, 2절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다. 고린도에 있는 자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적인 지혜나 말들을 혼합시킴으로 자신들을 나타내고 자랑하고 파벌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했다고 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만 알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고린도후서 2장 15∼17절에서는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포로로 그리스도로 적셔져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향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다. 이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적셔진 자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자들만이 이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수다한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불순물을 섞지 아니한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것으로서 심각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4장 1, 2절에서는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과 숨겨진 부끄러운 일들을 연결시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숨겨진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 곧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들을 섞는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33절에서는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사람에게 속한 가르침과 악한 일들이 함께 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부패시키는 것이다. 성경에서 누룩에 대해 악한 교리들(마 16:6∼12)과 악한 일들(고전 5:6∼8)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악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악하고 잘못된 것들을 혼합시켜 부패시키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6∼10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다. 이렇게 사도가 처음 전했던 복음이 진정한 복음이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과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그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사도가 처음 전했던 복음에 그것과 다른 어떤 것을 혼합하거나, 변질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