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0일 대전 약불사에서는 타종교 신도에 의한 불상 파괴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정신병 환자의 단순한 범행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으려 했다.
지난 12월 20일 아침, 연락을 받고 달려 가본 약불사(대전시 동구 대1동 66-4. 주지 양석철 스님)는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불상이 동강난 채 내팽개쳐져 있고 탱화는 찢기고--.
약불사 훼불사건 진상규명대회 개최를 위해 10여 일을 밤낮없이 뛰어다닌 한국 운불련의 박영조 회장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더군다나 범인은 성결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신도라고 하던데, 같은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세상 모든 이들을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도록 사랑과 봉사와 자비를 실천해야 할 종교인으로 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날로 대전불교사암연합회가 소 집되었고 이청봉(대전불교사암연합회 회장) 스님을 대책위원장으로 하고 한국운전기사불자 연합회, 대한불교청년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이 주축이 되는 훼불사건비상대책위원회가 긴급하게 꾸려졌다.
호되게 꾸짖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일인 지 비상대책위도 그렇고 스님들까지 어찌할 바를 모른채 재발방지를 위한 논의도 제대로 하 지 못하고 아무도 행동에 나서지 못한 채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범행을 이전의 다른 훼불사건처럼 단순한 정신병력을 가진 환자의 단독범행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 고 있었다. 이른 아침 한 시간 여 만에 일곱 분이나 되는 그 큰 불상을 밖으로 내팽개치고 법당 안의 기물을 모두 부수고 불까지 지르려 했는데... . 더군다나 범인이 잡혀있는 동안인 사건 3일 후(23일)에도 누군가가 약불사 담장 밖에 죽은 개를 던져놓았는데도 경찰은 더 이 상 조사를 미룬채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또 그냥 넘어간다면 그동안 자행되어온 제2, 제3의 훼불사건이 대전에서도 자행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것이었기에 박영조 씨는 청주운불련 등 11개지부를 비롯 재가단체에 이 사건을 알렸다. 모두들 그동안의 훼불사건이 심상치 않았는지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각 지부는 곧바로 각 지방언론에 이를 알렸고 청주방송에서는 취재까지 나왔다. 대불련은 현장 사진을 한 장 한 장 백지에 붙여가며 동학사를 비롯 인근의 사찰 알림판에 붙여놓음으로써 관광객이나 일반시민들에게 이 사건을 알려나갔다.
이 사실을 접한 시민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동안 있어온 갖가지 훼불사건에 적 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비로소 스님들도 동요하기 시작했고 비상대책위는 장고의 대책회의 끝에 영화 스님(보문산 여경암 주지, 비상대책위 사무처장), 경원 스님(중앙불교회관 관장)등 젊은 스님이 주축이 되어 28일 대전역 광장에서의 부처님 파괴사건 진상규명대회를 결의했 다.
그러나 26일 오후에 결정되어 하루의 준비시간밖에 가질 수 없었던 진상규명대회는 그만큼 어려웠고 급박한 것이었다. 원로스님들에 대한 담당기관으로부터의 끈질긴 회유가 있었고 만일의 사태에 대해 스님들이 주저하고 있었기 대문이었다. 이 때 한국운불련, 대불청, 대불 련 등이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고 박영조 씨는 몇 번이나 모든 책임에 대한 각서까지 쓰겠다 고 했다. 또 정부의 담당기관이 집회를 방해할 경우 전국운불련을 동원해 차량시위를 하겠 다고 엄포를놓았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들 당황했습니다. 훼불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디에 연락하고 어떻게 올바로 알려야 하는지, 전에 어떻게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있었던 훼불사건 자료를 모으고 일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자료를종합해 본 결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훼불사건은 더욱 빈번히 일어났고 아무렇지도 않게 덮 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국군중앙교회 예배사건처럼 편향된 종교행태도 수도 없이 보아 왔고 결국 정부와 불교의 관계가 매Rm럽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정부에 의해 훼불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이런 오만방자한 행동 을 부추긴 것입니다.
이번 진상규명대회를 통해 불교계 재가불자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었고 앞으로 훼불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또 어떤 자료들이 있는지, 이전의 자료까지 정리 확보된 것만해도 큰 수확입니다."
경원 스님은 이번 궐기대회를 알게모르게 지원한 큰 힘이었다. 그동안 한국운불련의 설립 때부터 8년째 지도법사로서 활동해오면서 대불련, 대불청등 젊은 재가불자들과의 돈독한 유 대가 있었고 그 자신 개어있는 의식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행사 당일 한국운불련 회원 500여 명은 오후 12시부터 7시까지 모든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운행 중지를 결의하고 전원이 궐기대회에 참석했다. 대회 시작전 장내 질서유지부터 거리행 진을 마친후 대회장 청소까지 운불련의 손을 거쳐갔다.
이날 동참한 사부대중은 청주, 부여는 물론 대전 인근 200여 스님을 비롯 모두 2,000여 명 가랑이 동참한 가운데 열린 대규모 궐기대회로 대전에서는 보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렇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회를 마쳤고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 및 타종교에 대한 화합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에 재가불자들이 앞장서서 단호히 대처할 '정법수호 재가불자연합회' 설립을 발기하였다. 이 시대의 호법신장 이 되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