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7월 1일 화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롯의 가족들을 소돔에서 빠져 나오게 하시고,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시어 그 성읍들을 멸망시키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약한 제자들을 나무라시며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아주 고요해진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9,15-29
“자, 소돔에 벌이 내릴 때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거든,
그대의 아내와 여기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가시오.”
16 그런데도 롯이 망설이자 그 사람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17 그들은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18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리,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19 이 종이 나리 눈에 들어, 나리께서는 이제껏 저에게 하신 것처럼
큰 은혜를 베푸시어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재앙에 휩싸여 죽을까 두려워, 저 산으로는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20 보십시오, 저 성읍은 가까워 달아날 만하고 자그마한 곳입니다.
제발 그리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자그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목숨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
21 그러자 그가 롯에게 말하였다. “좋소. 내가 이번에도 그대의 얼굴을 보아
그대가 말하는 저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소. 22 서둘러 그곳으로 달아나시오.
그대가 그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내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리하여 그 성읍을 초아르라 하였다.
23 롯이 초아르에 다다르자 해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24 그때 주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25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27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가 주님 앞에 서 있던 곳으로 가서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들판의 온 땅을 내려다보니,
마치 가마에서 나는 연기처럼 그 땅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29 하느님께서 그 들판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3-27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어부 출신이 많았기에, 그들은 호수의 거친 풍랑과 그것을 헤쳐 나가는 체험을 수없이 많이 하였을 것입니다. 풍랑이 일었을 때 잘해 나갔고 자신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풍랑을 이길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음에 마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마태 8,25). 그래서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목수이시기에 뱃일을 모르실 분이지만 그분의 능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고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인생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곧 위기와 죽음의 순간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느님께 온전히 신뢰를 둘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풍랑이라는 위기의 순간을, 신뢰를 가르치시는 소중한 순간으로 여기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8,26) 그분께서는 말로만 가르치시지 않고 행동으로도 가르치셨습니다. 풍랑 속에서 주무실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신을 지켜 주시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으셨기 때문이며 배를 저어 가는 제자들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였겠지만, 나중에 이 사건을 떠올렸을 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또한 부족한 믿음의 청원에도 응답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신 예수님의 배려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 시간을 기억하면서, 또 부족한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주님께 간구하는 우리의 청원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도 자라나기를 희망합니다.(김태훈 리푸죠 신부)
신앙의 가장 완전한 계기판은 두려움의 감정
전삼용 요셉 신부님
찬미 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운전을 하거나 차를 타본 경험이 있습니다. 운전석 앞에는 속도계, 연료계, 엔진 온도계 등 수많은 계기판이 있습니다. 이 계기판을 보고 우리는 차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만약 계기판이 없다면, 혹은 고장 났는데도 무시하고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판’ 하나를 알려주십니다. 바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입니다. 거친 풍랑에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자, 제자들은 공포에 질려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구해 주십시오!”(마태 8,25)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측정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마태 8,26)
계기판을 갖지 못해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살다가 파멸에 이른 사례는 역사 속에도 존재합니다. 17세기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2세는 막강한 해군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전함 '바사(Vasa)호'의 건조를 명했습니다. 왕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설계보다 더 많은 대포를 싣기 위해 배에 2층짜리 포갑판을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는 배였지만, 조선 기술자들은 배의 무게중심이 너무 높아져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마침내 배를 띄우기 전, 안정성 테스트를 했습니다. 30명의 선원이 갑판 위를 뛰어다니는 간단한 시험이었는데,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명백한 ‘계기판의 경고등’이 켜진 것입니다. 책임자는 시험을 중단시켰지만, 왕의 진노가 두려워 이 위험 신호를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628년 8월 10일, 수많은 환호 속에 바사호는 위풍당당하게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항구를 떠나 불과 1,300미터도 나아가지 못해 작은 돌풍을 만나 그대로 옆으로 넘어져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왕의 진노’가 두려워서, 혹은 내 안의 교만과 욕심 때문에 영혼의 계기판이 보내는 경고등, 즉 ‘두려움’의 신호를 애써 무시합니다. 작은 시련에도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안정성 테스트’를 겪으면서도 괜찮은 척, 강한 척하며 항해를 계속합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우리의 영혼은 바사호처럼 세상의 작은 돌풍에도 힘없이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두려움은 결국 나를 믿는 데서 발생합니다. 하느님이 자비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는 능력 있는 분이심을 믿으면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게 잘 됩니다. 1970년, 인류의 세 번째 달 착륙을 목표로 출발했던 아폴로 13호는 우주 비행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실패이자 가장 위대한 성공으로 기록됩니다.
달로 향하던 고요한 우주의 심연에서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는 다급하지만, 차분한 무전이 들려왔습니다. 산소 탱크가 폭발하면서 우주선은 생명 유지 장치가 망가진 차가운 깡통으로 변해버렸고, 세 명의 우주인은 지구에서 32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고립되었습니다. 달 착륙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순식간에 ‘지구로의 생환’이라는 절박한 사투로 바뀌었습니다.
그 순간 우주인들이 깨달은 것은 명확했습니다. 그 광활하고 차가운 우주에서 기댈 곳은 오직 자기 자신이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점, 지구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지식과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구의 관제센터를 신뢰하고, 그들의 지시에 온전히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휴스턴의 관제센터에 모인 수백 명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잠도 자지 않고 밥도 잊은 채, 오직 세 명의 우주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지성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그들은 고장 난 우주선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해결책을 찾고,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밤을 새워 계산했습니다. 온 지구의 시선이 그 작은 우주선에 집중되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세상 속에 파견된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사명을 안고 이 세상에 왔지만, 예기치 않은 인생의 폭발 사고를 만나 길을 잃고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공포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당황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오늘 아폴로 13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의지할 곳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이 세상에 파견하신 분,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말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리스도께서는 휴스턴의 관제센터처럼 우리의 모든 여정을 지켜보시며,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해 당신의 모든 사랑과 은총을 쏟아붓고 계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채워져야 할 공간이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믿음이 약하다는 부끄러운 증거가 아니라, 지금 바로 주님께 나아가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나를 알고 주님을 알아,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20년 3월 15일, 미국 전역에 락다운(lockdown)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저도 당시 뉴욕에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조용해졌고, 성당의 미사도 중단되었습니다. 음식점, 미장원, 박물관, 공연장, 심지어 어린이 놀이터까지 문을 닫았습니다. 병원에는 환자들이 넘쳐났고, 안타깝게도 곳곳에서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아립니다. 락다운은 우리에게 공포와 상실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성찰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멈추자, 자연은 살아났습니다. 하늘은 맑아졌고, 멸종 위기 동물들이 도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쁘게 추구하던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가?”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0년 3월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바친 특별 기도와 묵상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배 위의 제자들과 같은 인류에게 교황님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우리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외쳤습니다. ‘주님, 저희를 구하소서!’ 주님께서는 폭풍우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희는 모두 같은 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희는 지금 배에 함께 있습니다. 아무도 혼자가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저희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저는 신문을 만들며 생각했습니다. 절망을 나르는 종이가 아니라, 희망을 담는 지면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신앙의 위로를 담고, 사랑의 연대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에게 원고를 청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분이 기꺼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떤 글은 슬픔 속에서 피어난 감사였고, 어떤 글은 고립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기도였으며, 어떤 글은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배는 물에 잠기려 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다급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리고 바람과 파도를 꾸짖자, 모든 것이 고요해졌습니다. 우리도 코로나라는 풍랑을 통과해 왔습니다. 사회는 마비되고, 미래는 불투명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풍랑 속에서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느님은 고요히 배 안에 계셨고, 우리가 주님을 다시 바라볼 때, 고요는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은 그렇게 무질서의 바다 위에 놓인 조용한 등대와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시어 롯을 구하셨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느님은 기억하십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우리의 밤을, 고립된 병실에서 외롭게 떠난 이를 위한 우리의 장례 미사를, 그리고 마스크 너머로 건넨 사랑의 눈빛을 기억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구원의 길을 내어주십니다. 락다운 시기, 저는 종종 이런 문장을 신문에 실었습니다. “희망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끝이라고 느끼는 지점에서, 하느님께서 다시 시작하시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함께 있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기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글들을 통해 저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함께했기에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하는가!”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고요를 명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기억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희망과 믿음과 사랑을 가르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작은 풍랑 속에서도, 고요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당신 따르는 나이기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마태 8,26)
홀로만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때조차
믿음을 앗아가는 것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으시는
든든한 믿음의 당신께서
늘 바로 곁에 계시니
당신을 따르는 나이기에
더욱더 든든하게 믿나이다
홀로만으로는 도저히
희망할 수 없을 때조차
희망을 앗아가는 것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으시는
새하얀 희망의 당신께서
늘 바로 곁에 계시니
당신을 따르는 나이기에
더욱더 새하얗게 희망하나이다
홀로만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때조차
사랑을 앗아가는 것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으시는
뜨거운 사랑의 당신께서
늘 바로 곁에 계시니
당신을 따르는 나이기에
더욱더 뜨겁게 사랑하나이다
오늘의 성인
성녀 에스테르(Esther)
신분 : 왕비, 구약인물
활동연도 : +5세기경BC
같은이름 : 에스더, 에스데르, 에스델, 에스떼르, 에스터, 에스텔
구약성경 에스테르기에 등장하는 에스테르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잡아 온 유다인 중 하나이다. 그녀는 벤야민 지파 출신 아비하일의 딸로 부모가 죽은 뒤 수사 성읍의 왕궁에서 봉직하는 삼촌 모르도카이의 양녀가 되었다. 에스테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용모가 어여쁜 처녀였다.
당시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통치 시대였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신하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벌이는데 취흥이 돋자 와스티 왕비를 불렀다. 백성과 고관들에게 왕비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비는 임금의 분부를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임금은 왕비를 폐위시켰다. 새로운 왕비를 찾던 임금은 에스테르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자신의 왕비로 삼았다. 에스테르는 삼촌의 명대로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당시 궁궐 대문에서 근무하고 있던 모르도카이는 우연히 임금의 내시 둘이 불만을 품고 임금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듣고 에스테르 왕비를 통해 임금에게 고하여 음모를 막았다. 그런데 하만이 재상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모르도카이가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 않자 그의 출신이 밝혀지고 하만은 왕국 전역에 있는 유다인들을 모두 몰살하기 위해 임금에게 거금을 약속하며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서 지정된 날에 유다인들을 모두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임금의 서신이 제국 내에 발송되었다.
곳곳에서 유다인들이 단식하고, 울고 탄식하며 크게 통곡하고 있을 때 에스테르는 모르도카이의 말을 전해 듣고 목숨을 걸고 임금 앞에 나아가 이 불행을 되돌리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하만은 더욱 기세등등해서 모르도카이를 매달 말뚝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모르도카이는 역적모의를 신고하고도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한 이야기를 들은 임금으로부터 최고의 영예를 받고, 하만은 오히려 자기가 마련해 놓은 말뚝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번 작성한 임금의 칙령은 취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스테르는 임금에게 청하여 반대 칙령을 내리게 하였다. 즉 유다인의 학살일로 정해진 그 날에 유다인들 스스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봉기해 그들에게 대적하는 무리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윤허를 받았다.
그리고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의 결정에 따라 하만이 유다인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주사위, 아카디아어로 ‘푸르’를 던져 정한 이날을 해마다 ‘푸림절’로 경축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푸림절은 원수들로부터 평안을 되찾은 날이고, 근심이 기쁨으로, 애도가 경축으로 바뀐 날이 되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쁨의 날로 지내면서 서로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축제로 지내게 되었다.
그 후 모르도카이는 왕국의 제2인자가 되어 동족인 유다인들의 평화를 지키고 그들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에스테르는 ‘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성 아론(Aaron)
신분 : 구약인물, 사제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아론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했던 출애급 사건과 이어지는 광야 여정 중 모세와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레위 지파의 첫 번째 사제이다. 성서에서는 아론을 모세의 형제이며 공동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사제 계급의 시조라고 하였다.
성 아론은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모세가 그의 동생이고(출애 6,20), 미리암은 그들의 누이였다(민수 26,59). 암미나답의 딸이며 나흐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한 뒤 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을 자녀로 둔(출애 6,23)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려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세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의 나이 83세 때였다(출애 7,7). 그러나 그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성서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벌인 파라오와의 담판에서 그는 모세의 대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 출애급 이후 광야 여정에서도 모세와 함께 공동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으며,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탄원을 듣고(출애 16,2)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자비의 구원을 선포하였다(출애 16,6).
시나이 산에 이르러 그는 야훼가 명한 대로(출애 29,4-9) 성대한 임직식을 통해 사제로 축성되는데(레위 8장), 그의 사제직은 여러 징표들을 통해 확인된다(민수 16장; 17,16-28). 또 바란 광야에서는 모세와 더불어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정찰대를 맞았으며(민수 13,25-29),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실행하기도 하였다(민수 14,26-38).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대부분 함께하였던 아론은 에돔 땅 경계 부근의 호르 산에서 모세와 자신의 아들 엘르아잘이 지켜보는 가운데 므리바에서의 물 사건(민수 20,12) 때 하느님이 선언하였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민수 20,22-29).
아론의 죽음에 관해서는 민수기 33장에서 보충되는데, 그가 죽은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 되던 해 다섯째 달 초하룻날이었고, 그의 나이는 123세였다(민수 33,38-39). 이스라엘의 온 집안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30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민수 21,29).
성 시메온 살로(Simeon Salus)
활동년도 : +6세기경
신분 : 은수자
지역
같은 이름 : 살로, 살루스, 시므온
성 시메온은 친구인 성 요한(Joannes, 7월 21일)과 함께 사해 근방의 사막으로 들어가서 29년 동안이나 회개생활을 하였다. 그는 실로 겸손 자체라 할 정도로 겸손의 덕을 닦았다. 그 후 그는 시리아의 에메사에서 잠시 동안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때 '살로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말은 '미쳤다'는 뜻의 그리스어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미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수많은 특은을 허락하셨다. 그의 사망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88년의 대지진 이후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복자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활동년도 : 1713년 ~ 1784년
신분 : 교수, 수도자, 선교사
이름의미 : 하늼어 광대(= 주니페로)
1987년 9월 17일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Carmel Mission을 들렀다.
이 때 교황은 Junipero Serra의 무덤에 헌화하였다.
1988년 9월 25일 교황은 이 프란치스칸 복음 선포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Junipero Serra는 1713년 11월 24일 Majorca의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Miguel Jose Serra였고, 그 가정은 겸손한 농부의 가정이었다.
Miguel이 15세가 되던 해에 그는 Nuestra Senora de los Angeles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칸 수련착복을 하였다.
1713년 Miguel은 서원을 하였고 그 때 Junipero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31년부터 1734년까지 Junipero는 San Francisco Palma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가 된 후 초기 몇 년간 그는 학생 프란치스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742년 Junipero 형제는 Jajorca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전통있는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1749년 그가 25세 되던 해에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49년 4월 13일 Francisco Palou와 함께 Junipero는 Marjoca를 떠나 멕시코를 향하였다.
10월 18일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San Juan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부터 그는 멕시코까지 여정을 계속하였다. 그때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났다.
다행히도 그는 Vera Cruz에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멕시코시를 향해 갔다.
그는 멕시코시에 1750년 1월 1일 도착하여 마침 맞게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선교사로의 그의 첫 번째 체험을 했던 곳은 Pame 인디안들과 함께 한 Sierra Gorda에서였다(1750-1758).
그는 Jalpan에 파견되었고, 이 때 집중적으로 선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나서 San Saba de la Santa Cruz (오늘날은 Texas의 Menard County임)에서의 새로운 선교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멕시코시의 선교학교로 돌아갔다.
이 여정은 어렵기도 했지만 위험스럽기도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럭저럭 하는 동안 Junipero는 수련장직을 맡았기에 멕시코시에 머물러야 했다.
1767년 Junipero는 캘리포니아의 Loreto로 파견되었다.
캘리포니아에 대한 스페인의 식민지배 야욕 때문에 Junipero는 북쪽 San Diego로의 여정을 떠나 1769년에 도착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Junipero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에 첫 번째 선교 거점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선교의 여정은 북쪽 Monterey쪽까지 계속되었다.
1771년 8월 24일 Junipero는 San Carlos Borromeo에 두 번째 선교 거점(이것을 Carmel mission이라 함)을 세웠다.
이 선교 본부는 캘리포니아에서 Junipero가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본부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 후에 San Antonio (1771), San Gabriel (1771) and San Luis Obispo (1772)에 다른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1773년 Junipero는 멕시코로 돌아가 총독에게 새로운 선교를 위해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멕시코로 가는 길에 그는 몸이 많이 아팠다.
그가 멕시코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총독에게 제출했을 뿐 아니라, "representacion"이라는 캘리포니아에 관한 최초의 법적인 문서의 초고를 썼다.
1774년 그는 Carmel Mission에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선교사로서 그곳에 번창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일하였다.
이 때 다시 새로운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San Francisco (1776), San Juan Capistrano (1776), Santa Clara (1777), San Buenaventura (1782).
Junipero의 건강이 1784년에 많이 악화되었다.
그 해 여름 그는 결핵과 오래 누적된 과로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784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하였기에 온 피로로 탈진 되었던 것이다.
그는 35년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Carmel Mission의 성당 묘지에 묻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