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SYRIZA)이 득표율 36.5%로 1위를 차지하며 27.7%에 그친 집권여당 신민당을 누루고 제1당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전체 의석 수 300석 가운데 과반에서 1석이 모자란 149석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SYRIZA는 ‘긴축 중단’을 전제로 일자리를 30만개 만들고, 최저임금을 현행 580유로에서 751유로로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빈곤구제 프로그램 확대와 공공재산 매각중단을 선언했다. 따라서 국내총생산의 170%가 넘는 3천억 달러의 국가채무를 탕감 받아야 한다는 SYRIZA의 주장에 맞서 정부 채무 조정과 예산 지출 삭감의 원상회복 등 신임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의 요구에 동의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IMF, EU, ECB 등의 트로이카와의 갈등이 예상된다.
SYRIZA가 내세운 공약은 '긴축 중단'이다. 국가 재정을 쥐어짜는 긴축 정책이 아닌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대규모 확대 정책을 통해 그리스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신민당과 유럽 각국은 '그렉시트(Grexit : Greece+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인한 혼란을 경고하며 SYRIZA의 승리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오랜 긴축 정책과 갈수록 치솟는 실업률과 빈곤에 지친 그리스 유권자들은 SYRIZA를 새로운 희망으로 선택했다.
그리스의 새로운 희망 ‘시리자(SYRIZA)’는 누구인가? 2004년 창당한 SYRIZA는 급진좌파연합ΣΥ.ΡΙΖ.Α으로 불리며 그리스 말로 “뿌리와 가지”를 뜻한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단일정당이 아니다. 단일정당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2004년 총선부터 수십 개의 좌파정당들이 모여 만든 연합정당이다.
SYRIZA는 2004 총선 이전에 공식 결성되었지만, 그 뿌리는 2001년의 <좌파의 단결과 공동행동을 위한 대화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공간>은 그리스 좌파의 다양한 조직들로 구성되었고,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코소보 전쟁과 사유화, 사회적 권리 등 1990년대 말 그리스에서 벌어진 몇몇 주요 이슈들에 대한 공동 정치행동을 함께 했다.
<공간>은 정치조직이라기 보다 참가한 정당과 조직들을 한데 묶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2002년 지방선거에서 일종의 선거연합을 만들게 했고, 노장 레지스탕스 투사 마놀리스 글레조스가 이끈 아테네-피레우스 광역 자치체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공간>은 몇몇 소속 정당과 조직이 유럽 사회포럼의 일부로 그리스 사회포럼을 창립하는 지반을 제공했다.
SYRIZA가 탄생한 결정적 계기는 2004년 총선과 함께 왔다. <공간>의 참가 조직 대부분이 선거 동맹으로 기능할 공동의 플랫폼을 발전시키고자 했고, 결국 2004년 1월에 급진좌파연합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2004년 총선에서 연합은 241,539표(3.3%)를 얻었고 6명을 당선시켰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아테네와 피레우스 등에서 성공적인 선거결과와 2007년 9월 총선에서 12만표를 더 얻어, 5,04%라는 예기치 않은 놀라운 득표를 기록했다.
2007년 11월, 알라바노스의 갑작스러운 Synaspismos 의장직 사임으로 인해 2008년 2월 Synaspismos의 5차 당 대회는 아테네 지방의원인 33세의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당 의장으로 선출했다. 그가 오늘날 그리스의 젊은 총리다.
SYRIZA도 위기는 있었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를 진행하는 동안 SYRIZA는 격렬한 내부 논쟁 와중에 지지율이 4.7%까지 하락했고, 2010년 6월에는 Synapsismos의 급진 사민주의 그룹 Ananeotiki(갱신하는 날개)이 분립하면서 SYRIZA에서도 탈퇴했고, 이는 SYRIZA의 의원을 9명으로 줄어들게 했다. 4명의 의원은 ‘민주좌파’라는 새 당을 만들어 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의 연정에 참여했던 정당들에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되면서, 2012년 5월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SYRIZA는 10-12%의 지지를 보여주었다. 2012년 3월에는 소수파인 단결운동(중도좌파인 PASOK의 분리 그룹)도 연합에 합류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총선에서 연합은 의석 수를 네 배로 늘렸고(52석), 신민주당 다음으로 제2당으로 올라섰고, 2015년 1월, 오늘날과 같은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의 진보정치에서 SYRIZA의 쾌거는 전설에 불과할까? 통합진보당의 해산,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 국민모임의 등장으로 진보정당 재편운동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국민모임은 29일 신당추진위원회 구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당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임종인 전 의원의 국민모임 합류와 천정배 전 의원의 합류가 점춰지고 있어 창당 움직임은 점차 가속화될 예정이다.
여기에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세력의 통합여부가 주목되고 있는데 “진보의 힘을 모으는 것이 정의당에 주어진 사명"이라며 진보진영 재편에 주도적으로 나설 뜻을 밝힌 천호선 대표의 발언을 통해 입장을 밝힌 정의당과 진보재편을 주장하는 후보가 유력한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점춰지는 노동당 선거와 맞물려 마냥 비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이번 주를 고비로 신당 창당 움직임과 통합·연대 가능성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각종 경제지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폐해의 심각한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의 양극화, 열심히 일하지만 빚만 늘어가는 근로빈곤층, 미래가 없는 청년실업자와 고용 없는 성장, 누리과정 파행과 무상급식 철회에서 보듯이 복지후퇴,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 등 거꾸로 가는 증세논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부분에서 자본과 정부여당의 폭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러할 때, 야당의 무기력과 대안부재는 대안정당의 희망을 품게 했고, 어쩌면 한국판 SYRIZA의 탄생이 임박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제 제대로된 대안정당을 원하고 있다. 이름만 복지정당이 아닌, 제대로된 복지정당 말이다.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돈이 없어도 마음 놓고 교육받을 수 있고, 치료 받을 수 있고,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균등한 기회가 부여되는,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철학을 가진 정당이라면 우리 국민들은 환호하고 지지를 보내지 않을까?
개인의 자유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인의 자유는 사회구성원간 경제적으로 평등할 때 가능하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만약 교육과 의료, 국가기간산업 및 사회공공재의 사회화(국유/공유)를 통한 무상의료와 교육. 기타 주거 및 생애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장애와 학력 또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와 고소득자에 대한 70% 이상의 '최고세율' 적용이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제도와 문화가 정착된 사회를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사회민주주의가 꿈꾸는 사회다. 신자유주의에 타협한 제3의 길이 아닌, 신자유주의와 대결하면서 그것을 넘어 사회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던 독일의 빌리 브란트와 오스카 라퐁텐, 스웨덴의 비그포르스와 올로프 팔메의 정신을 계승하는 '급진적 사회민주주의'라면 어떨까? 우리는 그 길을 향해 주저없이 가야 하는것 아닐까? 진보재편의 길에서 우리도 한국판 SYRIZA를 꿈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