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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흩어지다
택시에서 내린 박철성은 주위를 둘러본 다음 발을 떼었다. 자띠네가라 역 근처는 상가가 밀집된 지역
이었지만 밤 1시가 넘은 시간이라 조금 한산해져 있었다. 3층 건물에는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었으나
현관은 어두웠다. 이쪽 지역에 화교 상가들이 많아서 아래층은 지난번 폭동 때 파괴되어 아직도 깨
진 유리창이 흉하게 드러나 있다.
현관으로 들어선 박철성은 곧장 2층의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의 전등이 깨져 있어서 어두웠지만 그는
거침없이 2층 복도로 들어섰다. 옆쪽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가 뚝 그쳤다.
203호실 앞에 선 그가 벨을 누르자 금방 문이 열리면서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갸름한 얼굴에 콧날
이 곧은 미인이었다. 박철성과 시선을 마주친 여자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오늘도 바빴어요?]
[바빴어.]
방으로 들어선 박철성이 문을 잠그더니 여자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여자도 두 팔로 박철성의 목을 끌
어안았다.
[오늘은 주무시고 가실 거죠?]
[일찍 가야 돼.]
그들은 선채로 서로의 옷을 서둘러 벗기고 나서 곧바로 침대에서 엉키었다.
40대 중반의 박철성은 검은 피부에 단단한 체격이었고 여자는 대조적으로 희고 가늘었다. 박철성이
힘차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는 자지러지는 듯한 신음을 뱉었다.
여자의 흰 사지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방 안의 불은 켜져 있고 창문도 활짝 열려져 있었지만 두 남녀
의 행위에는 거침이 없었다. 박철성이 여자 위에서 용을 쓰며 하반신을 부딪치자 여자가 절정으로 치
달으며 가는 비명을 토해냈다.
그러던 한 순간, 박철성은 뒤통수에 강한 타격을 받고 여자의 몸 위로 맥없이 엎어졌다. 그러나 여자
는 그것도 모른 채 하체를 서너 차례나 더 들썩이며 계속해서 비명을 내질렀다.
박철성의 몸이 꿈쩍도 않자 여자는 신음을 뱉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박철성을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그리고 뒤이어 여자는 예상치 않은 사태에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비명은 곧 묻히고 말았다. 억센 손에 입에 틀어 막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분쯤 후, 박철성과 여자는 각각 알몸인 채 묶여져서 방바닥 위를 뒹굴고 있었다. 여자의
입에는 테이프가 봉합되어 있었다.
그들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윤우일이었다. 윤우일이 표정없는 얼굴로 박철성을 내려다보았다.
[간단히 말하겠다. 너희들이 데려간 여자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
그리고는 소음기가 끼워진 베레타를 박철성에게 겨누었다.
[쓸데없는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여자부터 한 발씩 쏴주마. 하지만 사실 그대로만 말하면 둘 다 살려
주겠다. 그리고....]
윤우일이 주머니에서 만 달러짜리 뭉치 두 개를 꺼내 방바닥에 내던졌다.
[2만 달러다. 네가 협조했다는 건 비밀에 붙일 것이고, 또 이 돈도 주겠다. 그럼 넌 아무 일 없다는 듯
이 내일 아침 다시 대사관으로 출근하면 된다.]
빅철성은 자카르타 주재 북한 대사관의 무관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그의 중국계 정부였다. 한국어를
모르는 듯 여자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만 껌벅였다.
박철성의 눈동자는 어지럽게 흔들렸다. 윤우일이 베레타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물론 오늘 날이 새기 전에 일을 마치고 올 때까지 너희들 둘은 이곳에서 기다려줘야겠지. 만일 거짓
정보를 주었다면 둘 다 죽어줘야 될 테니까.]
[다시 한번 미국 놈들한테 연락을 하겠습니다.]
김평산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기훈은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자카르타 남부지역 보고르 방면으
로 가는 도로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공단은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아직 입주가 덜 된 데가 경제
불황으로 폐업한 업체가 많았기 때문에 밤보다고 대낮에 더 황량하게 보이는 공단이었다.
[난 대사관에 들어가 볼 테니까 놈들한테 연락은 오전 10시경에 하도록.]
자리에서 일어선 최기훈이 찌푸린 얼굴로 힐끗 벽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반이었다. 서미향을 잡아온
지 오늘로 나흘째가 되었지만 윤우일과는 연락도 되지 않은 것이다. CIA가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었지
만 초조한 쪽은 이제 이쪽이 된 것 같아서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숙소의 마당으로 나왔을
때 최기훈이 따라나온 김평산에게로 돌아섰다.
[내가 저쪽 상황을 자세히 알아볼 테니까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어.]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부장 동지.]
부동자세로 선 김평산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은 철통 같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최기훈이 벤츠에 오르더니 호위차량으로 벤을 뒤에 붙이고 숙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최기훈은 제38호실 소속 부부장이었다. 보위부 대좌로 이번 작전에 투입된 김평산은 공을 세울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자카르타 주재 무관으로 4년 반을 보낸 경력이 참조되어 선발된 김평산은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즉각
장군으로 진급이 될 것이 확실했다.
김평산이 주위에 둘러선 부하들을 돌아보고는 정색했다.
[곧 날이 밝는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
부하들에게는 잔소리가 약이다. 놔두면 군기가 풀린다는 것이 김평산의 신조였다.
벤츠와 벤이 도로로 꺾어져 보이지 않자 윤우일은 다시 적외선 스코프의 초점을 공장의 숙소에다 맞
추었다. 박철성의 말대로라면 숙소에는 12명에서 14명의 경비원이 있고 모두 자동화기로 무장해 있을
것이다.
공장의 숙소는 2층 건물이었는데 서미향은 2층 한복판에 위치한 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좌우
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면 경비원 숙소일 것이다. 거기에다 2층으로 오르는 양쪽 계단 입구에 경비
원이 하나씩 서 있었고 숙소 현관에 둘, 불이 켜진 아래층 방의 옆쪽 담 밑에도 하나, 바깥에는 둘이
보였다. 그야말로 철통 같은 경비 태세였다.
윤우일은 엎드린 채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엎드린 위치는 숙소에서 2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공장
의 5층 옥상이었다. 그러나 망원렌즈에는 경비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떠 있었다. 그는 경비원의 숫
자를 다시 확인했다. 망원렌즈에 잡힌 숫자는 7명이었다.
MP-5는 해클러&코흐사 제품으로 바나나형 30발들이 탄창에 발사 속도는 1분에 700~800발이며 소음
기를 끼웠을 때의 무게는 4킬로그램 정도이다. 명중률과 신뢰성이 높아 특수부대나 각종 테러작전에
가장 어울리는 자동소총이다.
윤우일이 숙사 옆쪽 공장 건물의 벽에 붙어 섰을 때는 2시 50분이었다.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어
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지만 숙사에서 내비치는 희미한 불빛으로 골목 밖에 선 경비원 둘이 보였다.
바깥 비원이었다.
그는 심호흠을 한 차례 내쉬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MP-5를 앞으로 겨누고 골목 밖으로 달려 나왔
다. 경비원들이 그를 발견하고 즉각 몸을 돌렸다. 둘 다 AK-47을 쥐고 있었다.
드르륵!
짧고 낮은 발사음과 함께 총탄 7, 8발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가자 두 경비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윤우일은 경비원들을 뛰어넘어 이번에는 옆쪽 담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담장 위에 손을 얹고 몸
을 솟구쳐 옆마당으로 진입했다. 다행히 경비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현관 앞으로 가고
없었던 것이다.
가볍게 안마당에 뛰어내린 윤우일은 오른쪽을 돌아 2층의 비상계단 쪽으로 소리 없이 달려 나갔다. 계
단 밑에 닿은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위쪽의 기척을 살폈다. 경비원은 2층 복도의 끝에 서 있을 것이
다.
윤우일은 빠른 몸짓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에는 불이 켜있지 않았지만 복도 쪽에서 흘러나온 불
빛으로 끝이 보였다. 계단 모퉁이를 돌아 한 걸음 내딛은 윤우일은 경비원을 발견했다. 벽에 등을 붙
이고는 이쪽을 향해 정면으로 서 있었다.
두르륵!
놀란 경비원이 앞쪽에 매었던 AK-47을 끌어당겼지만 이미 윤우일의 총에서 날아간 총탄이 경비원의
가슴과 머리를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맞추었다. 경비원이 쓰러지기도 전에 윤우일은 빠르게 복도로
뛰어들었다.
한걸음에 불이 켜진 방의 문을 열어젖힌 윤우일은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사내를 보았다.
두르르륵!
침대 위의 몸이 풀석이는 것으로 두 사내를 사살한 윤우일은 다시 방을 뛰쳐나와 옆쪽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잠겨져 있었다. 그때였다.
[습격이다!]
밤하늘을 찢는 고함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총탄이 날아와
벽에 부딪치며 요란하게 퉁겨 나갔다.
윤우일은 문을 열어 젖혔다. 세 명의 경비원이 마악 문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드르르르륵!
좁은 방 안이어서 휘갈려 쏜 MP-5는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그들을 맞춰 쓰러뜨렸다. 윤우일은 탄창
을 갈아 끼운면서 재빨리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앞쪽 유리창이 열려져 있었다. 한걸음에 창문으로 다
가간 그는 곧 창틀을 잡더니 두 다리를 늘어뜨렸고 이내 아래로 뛰어내렸다.
총성이 울렸을 때 김평산은 아래층 현관 옆 방에서 마악 잠을 자려던 참이었다. 침대에서 두 다리를
공중제비를 하며 일어선 그는 신발을 신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탁자 위에 내려놓은 권총을 집어들었
다. 그때까지 총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를 악문 김평산이 권총을 세워들고 방을 뛰쳐나갔을 때 부하 둘이 달려왔다. 현관 경비원들이었다.
[어디야?]
악을 쓰듯 묻자 경비원 하나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2층입니다.]
현관에서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김평산과 경비원 둘에다 옆방에서 뛰쳐나온 두 명까
지 다섯은 한 무리가 되어서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숙사 옆을 돌아 현관 쪽을 살핀 윤우일은 경비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시 뛰었다. 이제 총성은 그
쳐 있었으나 2층은 고함소리로 떠들썩했다. 지금쯤 문을 열고 자신이 도망친 것을 알았을 것이다. 현
관의 귀퉁이에 서서 안을 바라보던 윤우일은 안으로 뛰어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서너 개씩
밟고 뛰어오른 그는 곧 2층의 계단 끝에 닿았다. 복도에서는 아직도 고함소리로 떠들썩했다.
윤우일은 복도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복도에서 우왕좌왕하던 경비원 세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MP-5의 방아쇠를 당겼다. 경비원들은 대항도 제대로 못하고 30발 탄창에서 뿜어대는 총탄 세례를 받
으며 맥없이 쓰러졌다.
윤우일은 탄창을 다시 갈아 끼우며 조금 전 문이 열리지 않던 방 앞으로 돌진했다. 그는 잠시의 여유
도 두지 않고 방 문을 발로 차 열었다.
그 순간 총성과 함께 총탄이 날아와 앞쪽 난간을 맞고 어지럽게 튀어 올랐다. 윤우일은 이를 악물었
다. 이제까지 처치한 경비원의 숫자는 모두 열한 명이다. 박철성의 말이 맞는다면 남은 것은 이제 두
어 명이다.
[서미향 씨, 안에 있어요?]
윤우일이 악을 쓰듯 소리치고는 허리에 찼던 수류탄을 꺼내쥐었다. 그때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
렸다. 그는 윤우일은 눈을 부릅떴다. 순영이다. 그렇다면 서미향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이봐, 윤우일!]
그때 방 안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자와 아이를 살리려면 항복하라!]
그리고는 총성이 울리면서 순영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이런 미친놈!]
윤우일은 그렇게 소리치며 들고 있던 수류탄을 방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벽에서 등을 떼면서
방 안으로 몸을 굴려 들어갔다. 구르면서 한눈에 본 방안에는 모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서미향과 두
명의 사내였다.
드르륵!
한 사내는 굴러간 수류탄을 피해 벽 쪽으로 몸을 붙이는 중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악 허리를 굽혀 수류
탄을 집는 참이었다. 윤우일이 쏜 총탄이 벽으로 몸을 굽힌 사내의 가슴을 맞춘 순간 수류탄을 집어든
사내가 윤우일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드르륵!
다시 발사된 총탄이 사내의 몸통을 꿰뚫었다. 그런데 수류탄이 윤우일의 어깨에 맞고서 바닥으로 굴
렀다. 윤우일은 몸을 솟구쳐 일어섰다.
수류탄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그의 바로 발 밑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는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투척할
때 안전핀의 고리만 떼어낸 터라 터지지 않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서미향은 순영을 부둥켜안고 주저앉아 있었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자, 빨리 빠져나갑시다.]
윤우일이 서미향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잠시 울음을 그치고 있던 순영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어서, 서둘러야 해요.]
그때였다. 방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과 동시에 카카카캉!하고 날카로운 AK-47 자동소총의 총성이
울렸다. 윤우일이 한발 늦은 것이다.
윤우일은 가슴에 충격을 받고서 몸을 뒤로 떠밀리면서도 맞받아 쏘았다.
드르륵!
상대방과의 거리는 5미터도 되지 않았다. 윤우일의 총탄에 어김없이 가슴이 명중된 사내는 이내 복도
위로 나뒹굴었다.
[미향씨......!]
넘어지는 바람에 벽에 등을 부딪친 윤우일이 소리쳤다. 그런데 서미향이 이상했다.
[안 돼!]
다음 순간 윤우일이 절규하듯 악을 섰다. 윤우일은 안간힘을 쓰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가슴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서미향에게로 기어갔다.
서미향은 순영을 안은 채 머리를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순영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녀의
품에 안겨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순영아....... 안 돼!]
윤우일의 순영의 어깨를 움켜주었다. 순영의 가슴은 총탄으로 처참하게 찢겨져 있었다. 이미 숨이 끊
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초점없는 시선으로 천정을 보던 서미향이 길게 숨을 뱉더니 윤우일을 보았다.
[순영이........... 죽었나요.......?]
윤우일은 서미향의 상체를 두 손으로 안았다. 총탄은 서미향의 가슴에도 두 발이나 명중되어 있었다.
서미향이 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죽었나요....?]
[아.....]
[차라리..... 잘 됐어요......]
[.....]
서미향이 물기에 젖은 눈으로 윤우일을 바라보았다.
[이제........아빠를 만날 수 있겠네요.]
[미향씨! 정신차려요. 내가 곧 병원에......]
[당신을 사랑했어요.......]
[......]
윤우일의 말을 자른 서미향이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렇게 당신 품에 안겨서 죽는 것이 행복해요.....]
[미향씨!]
[순영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서미향은 이미 모든 기력을 상실한 듯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우일씨........ 안아주세요.......힘껏.....]
방으로 들어선 피터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털썩 빈자리에 앉
은 피터슨이 오웬을 보았다.
[북한인들은 모두 열네 명입니다. 그리고 서미향 씨와 아이까지 열여섯 명.]
그리고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지금 인도네시아 보안국에 다녀온 것이다.
[그런데 북한 대사관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측에 보안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외부에 노출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머리를 끄덕인 오웬이 터너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북한놈들한테는 치욕적인 일일 테니까. 테러단을 교육시키던 정예가 한 사람에게 몰살을 당했단 말
이야.]
[쥰 혼자서 한 일이 분명합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터너가 묻자 오웬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앉은 폭스에게 물어보게. 리비아 작전의 책임자니까. 리바이에서도 쥰은 이와 비슷하게 처리했
어.]
그때 피터슨이 끼여들었다.
[보스, 쥰이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복수를 하겠지.]
오웬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북한 놈들을 몰살시킨 것으로 끝내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그럼......]
눈을 크게 뜬 터너를 외면하고 오웬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서미향을 잡아가도록 정보를 준 놈을 찾을거야.]
[본부에서는 아직 쥰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돈을 가로채려고 이덕수와 카이바를 죽였다는 겁니다.]
[이번 사건을 그대로 보고하면 본부 반응이 달라질걸?]
눈을 가늘게 뜬 오웬이 터너와 폭스를 번갈아 보았다.
[이덕수의 아내와 딸을 구해내려고 단신으로 북한놈들 숙사로 쳐들어갔단 말이야. 과연 이덕수를 죽
인 죄책감으로 그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서미향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할까? 이덕수를 죽이고 서미향을 찾아가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억지를 부릴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하긴 그렇습니다.]
터너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터너와 폭스가 나가고 이제 방에는 오웬과 피터슨 둘만 남게 되었다.
오웬이 잇사이로 말했다.
[쥰은 어디에 있을까?]
[더 이상 우리에게 연락해 올 이유가 있겠습니까? 잠적했겠지요.]
[지독한 놈이야.]
오웬은 굳이 감탄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놈을 믿어, 죠지.]
[저도 믿습니다, 보스]
[이번 일은 집행부 놈들이 돈을 가로채려고 음모를 꾸민거야. 연락책 카이바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은
적어.]
[보스를 쏜 것은 집행부의 사주를 받은 북한 놈이 아닐까요?]
[그렇겠지.]
정색한 오웬이 목소리를 낮췄다.
[놈들은 날 죽이고 그것을 쥰의 범행으로 뒤집어 씌우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하지만 이젠 터너가 본부
에 다 보고했을 테니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북한 놈들은 전멸했습니다.]
[놈들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지.]
그때 피터슨의 휴대폰이 울렸다. 두 사람은 말을 멈췄다. 피터슨이 서둘러 휴대폰을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나 쥰이오.]
윤우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피터슨은 손으로 전화기를 가리켰다. 윤우일의 전화라는 신호였
다.
[아, 쥰. 당신 괜찮소?]
[방탄조끼 보내줘서 고맙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윤우일이 말을 이었다.
[이봐,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나?]
[무슨 부탁이오?]
[서미향씨와 순영이 말인데. 그 시신을 북한으로 싣고 갈 것인가?]
[글쎄, 그것은...]
[서미향씨는 한국 여권을 갖고 있어. 북한으로 데려가면 안 돼.]
[쥰, 그렇다면.....]
[당신들이 손을 써서 시신을 빼내 이곳에서 화장을 해주었으면 하오. 한국 대사관 대신 당신들이 보안
국에다 압력을 넣으면 빼낼 수가 있을 테니.]
[쥰, 화장시켜서 어쩌려고 그러나?]
[이곳 바다에 뿌릴거요. 절대로 북한에 보내면 안돼.]
윤우일의 목소리를 어느새 커져 있었다.
[그것이 그 여자의 영혼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오. 내 말 알겠소?]
그때 오웬이 손을 뻗었고 피터슨이 전화기를 넘겼다.
[쥰, 나 오웬이오.]
오웬이 대뜸 말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오. 우리 만납시다. 할 이야기가 있소.]
낡은 모텔 안은 소란스러운데다 에어컨도 고장이 나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렸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더운 바람만 몰려 들어왔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었다.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진 윤우일은 한동안 의자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숨도 쉬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언론에서 오늘 새벽의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걸 보면 북한 측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요청
했을 가능성이 많았다. 시체와 함께 다량의 무기가 발견되었을 테니 북한측은 난처했을 것이다.
이윽고 길게 숨을 뱉은 윤우일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7시 반이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
지 않았지만 식욕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젯밤 단 한숨도 자지 않았지만 눈꺼풀만 무거울 뿐 머릿 속은
맑았다. 이제 남은 일은 누명을 벗는 일이다. 윤우일은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전혀 의욕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북한한
테건 CIA한테건 돈을 던져 주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놈들의 전화가 왔을 때 돈을 주었다면 서미향과
순영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폴 터너가 부국장 니콜라스 케이지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밤 9시였다. 워싱톤 시간으로는 아침 9시였
다.
[폴, 감사는 취소한다.]
케이지가 굵은 목소리로 대뜸 말했다.
[그리고 버트 쥰의 자료도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알고 있도록.]
[그렇다면.....]
놀란 터너가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쥰을 내버려둔단 말입니까?]
[그래.]
케이지의 목소리는 지치고 짜증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놈을 내버려뒤, 폴.]
전화기를 내려놓은 터너는 한동안 눈만 끔벅이다 갑자기 풀석 웃었다. 버트 쥰은 이제 자유인인 것이
다. 자료를 삭제한다는 것은 풀어준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곧 버트 쥰이 2천 6백만 달러라는 어마어마
한 거금을 갖고 왕처럼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커피숖으로 들어선 토드 폭스는 곧장 안쪽 창가로 다가갔다. 한낮이어서 대형 유리창 밖은 환한 햇살
에 덮여 있었고 더위에 늘어진 행인들의 동작은 느렸다.
폭스가 창가의 테이블로 다가갔을 때 신문을 펼쳐들고 있던 사내가 머리를 들었다. 검은 피부에 눈 주
위가 희게 탈색되어 있는 것은 선글라스를 오래 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내가 앞자리에 앉은 폭스를 향해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북한 특공대가 전멸당했습니다.]
[보위부 소속의 해외 공작대요.]
폭스가 찌푸린 얼굴로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보안국 소속의 차농 대령이었다.
[대령, 북한 공작대를 몰살시킨 것은 우리가 아냐. 그놈이야.]
[그놈이라니? 누구 말이오?]
[우리가 당신들에게 수색 의뢰를 했던 그 한국놈.]
그러자 차농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 그놈이 여자를 구해내려고...]
[그래, 혼자서 습격을 했지.]
[설마...]
눈을 크게 뜬 차농이 바짝 다가앉았다.
[혼자서 어떻게 특수부대원 열네 명을.......]
[그놈은 살인기계야. 리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을 처리했어.]
차농이 눈을 끔벅이며 폭스를 보았다. 폭스가 정보를 주는 이유를 맹렬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차
농의 표정을 본 폭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놈은 이제 우리한테도 부담이 되어 있어요, 대령. 그래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부담이라니? 당신들이 놈을 고용한 것이 아닙니까?]
[아냐, 놈은 지금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어요.]
정색한 폭스가 머리를 저었다.
[놈을 제거 해야겠어.]
[제거하다니?]
차농은 눈을 더 크게 떴다.
[당신들이 말이오?]
[우리가.....?]
놀란 듯 주위를 휘둘러본 폭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대령, 당신이 나와 북한측과의 연락을 맡아주시오. 북한측에다 놈에 대한 정보를 드릴테니까.]
폭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북한놈들이 좋아할 거요.]
[한국대사관에서 서미향의 시신 인도를 요청해 왔습니다.]
최기훈에게 다가선 박철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아이 시신까지 같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만...]
[그놈들 미친놈들 아니야?]
최기훈은 핏발 선 눈으로 박철성을 보았다.
[한국 위조여권을 사용했다고 시신을 달라는 거야?]
[서미향이 한국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보안국은 시신을 넘길 예정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최기훈이 박철성을 노려보았다.
[윤우일의 수작이다. 그놈이 한국대사관에다 연락을 한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정색한 박철성이 한 걸음 다가섰다. 북한 대사관저는 지금 초상집이 되어 있는 터라 대사도 좌불안석
이 되어 외출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기훈이 사건 보고를 들은 것은 새벽 4시경이었는데 총성을
듣고 인근 주민들이 신고한 바람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현장을 장악했던 것이다.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최기훈은 그야말로 눈썹을 휘날리며 동분서주했다. 그에게 당장 시급한 문제
는 사건을 덮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평산을 비롯한 14명의 보위부 소속 공작원들이 몰살당한 것은
국제적인 수치일 뿐만 아니라 중무장한 병력이 자카르타 교외에 있었다는 것도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
항이었다. 박철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대사관은 서미향이 한국인이라는 증빙 서류를 보안국에 제출했습니다, 부부장 동지.]
이를 악문 최기훈은 한동안 박철성을 노려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쪽에서 가로막을 방법이 없는 것
이다.
피터슨이 힐끗 백미러를 보았다.
[미행하는 차가 늘었습니다, 보스.]
[병신들!]
오웬이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 미행방법은 똑같군. 몇 대지?]
[두 대, 사무실을 나올 때는 흰색 혼다가 붙었는데 조금 전 로타리를 지났을 때는 검정색 한국산 소나
타가 추가 되었습니다.]
[이건 보너스 게임이군.]
차 창을 조금 열고 담배 연기를 뱉은 오웬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단 말이지?]
[도청할 수 있는 놈은 폭스 뿐입니다.]
[곧 알게 되겠지.]
자카르타의 중심가는 교통 체증이 심한데다 짙은 매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웬은 차창을 올렸다. 오
후 5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호등에 걸려 멈추었던 차를 발진시키면서 피터슨이 핸들에 놓인 무전
기의 버튼을 눌렀다.
[흰색 혼다와 검정색 소나타야, 알고 있겠지?]
[모타 사이클 두 대도 있습니다.]
스피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쪽에다 연락을 해놓겠습니다.]
그러자 오웬이 다시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놈들이 미끼를 물기는 했다.]
오웬이 윤우일과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은 한 시간 전이었다. 전화는 사무실로 걸려왔는데 오웬이 직
접 받았다. 사거리의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피터슨은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여유 있
는 태도였다.
그들이 순다 끌리빠 항 옆쪽의 낡은 건물 앞에 차를 세웠을 때는 저녁 7시 반이었다. 주위는 이미 어둠
에 덮여 있었는데 차량의 라이트에 비친 2층 건물에는 불도 켜지지 않았고 반쯤 떨어져 내린 간판만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무리하기에 적당한 장소야.]
차에 앉은 채 건물을 바라보며 오웬이 말했다. 간판에는 '자카르타 상사'라고 영어와 인니어로 쓰여져
있었지만 폐쇄된 회사였다. 머리를 든 피터슨이 백미러를 보았다. 뒤쪽의 건물들도 모두 어둠 속에 묻
혀 있을 뿐 불빛 한 점도 보이지 않았고 인적도 없었다. 공단이 옮겨가는 바람에 빈 건물들이 된 것이
다. 그때 발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놈들이 뒤쪽 건물로 흩어졌습니다. 모두 열두 명입니다.]
[모두 현지인들인가?]
피터슨이 묻자 곧 대답소리가 울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대답이 마음이 들지 않은 오웬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밖은 어둡다. 숫자를 센 것만으로도 다행이었
다.
[자, 슬슬 나가볼까?]
오웬이 말하자 피터슨이 심호흡을 하더니 자동차의 경적을 짧게 두 번 울렸다. 그리고는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액션!]
[회사 건물로 두 사람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전기의 볼륨을 낮췄지만 소리가 커서 폭스는 수신구를 바짝 귀에 붙였다. 차에서 내린 그의 코에 비
린 생선 냄새가 맡아졌다.
[건물 안은 불이 꺼져 있어서 탐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쨌든 놈은 잡은 거야.]
폭스가 소근대듯 말하고는 옆쪽 건물의 벽에 등을 붙였다.
[계속 보고하도록!]
무전기를 귀에서 뗀 폭스가 옆에 선 웨이건을 보았다.
[북한놈들이 윤우일을 당장에 처치하지는 않을 거야. 무기 판매 대금을 회수하고 나서 처리하겠지.]
[당연하죠.]
긴장한 듯 주위를 둘러본 웨이건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오웨 씨는 그냥 처치할 것 같은데요.]
[그래줘야지.]
앞쪽의 빈 건물을 바라보며 폭스가 뱉듯이 말했다.
[오웬이 살아 나가면 우리가 곤란해진단 말이야.]
호흡을 가다듬은 오택수는 짙은 어둠 속에 윤관만 보이는 2층 건물을 노려보았다. 건물은 뒤쪽이 바로
바닷가여서 도주로는 없다. 가로가 30미터에 세로가 1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건물의 출입구는 앞뒤로
각 한 곳뿐이었고 창문은 앞뒤 쪽이 각각 여섯 곳이었지만 옆쪽은 없다.
이윽고 오택수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것을 신호로 오늘 오전에 중국에서 날아온 해외 공작반 요
원들은 일제히 건물로 달려갔다. 모두 10명이었다. AK-47 자동소총을 앞에 총 자세로 겨눈 오택수도
부하들의 뒤를 따라 달렸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들은 소리 없이 달려가 셋은 부서진 정문으로 뛰어들어갔고 나머지 다섯은
일제히 창문을 깨부수고 몸을 던져 진입했다.
오택수와 부관 임정국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아래층은 제압된 후였다. 그러나 부하들
이 휘두르는 플래시 불빛에는 부서진 집기만 드러날 뿐 오웬과 피터슨 그리고 윤우일의 모습은 보이
지 않았다.
부하 셋이 2층의 계단을 달려 올라갈 때 뒷문에서 플래시 불이 번쩍이며 신호가 왔다. 바다 쪽의 뒷문
으로 돌아간 부하들이었다.
[이상 없습니다.]
뒷문 쪽에서 부하 하나가 소리쳤다. 오택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이상이 있
어야 놈들을 잡는다는 말이 되었다. 부하들은 건물의 아래층을 완전히 장악했는데 3개의 방은 다 비어
있어서 뒤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오택수는 계단 쪽으로 노려보았다. 2층으로는 다섯이 올라갔다. 그는 2층에서 총성이라도 울리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때 계단으로 부하 하나가 플래시를 휘두르며 달려 내려왔다.
[2층도 비었습니다.]
순간, 오택수는 머리끝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고는 눈을 치켜떴다. 함정이다.
[철수! 모두 건물 밖으로!]
그가 버럭 소리친 순간이었다. 바로 눈앞의 낡은 소파가 번쩍 치켜 들리는 것 같더니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리고 이어서 귀청이 떠나갈 듯한 폭음이 울렸다. 오택수는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
는 것까지는 의식할 수 있었다.
건물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밤하늘로 솟아올랐을 때 폭스와 웨이건은 건물에서 40여 미
터쯤 떨어진 빈 창고의 벽에 기대서 있었다.
[아앗!]
놀란 웨이건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 때 대낮같이 밝아진 주위로 건물의 잔해가 쏟아져 내려왔다. 둘
은 벽에 몸을 붙여 잔해를 피했으나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상실했다. 건물은 완전히 폭파되어 가벼운
잔해는 아직도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고 뼈대만 남은 벽 안에서 북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이, 이런.......]
눈을 부릅뜬 폭스가 헛소리처럼 입을 열었을 때였다. 불길 때문에 주위가 환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옆으로 다가선 사내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윤우일이었다. 그는 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는데 표정없
는 얼굴이어서 마치 불길을 배경으로 나타난 유령처럼 느껴졌다.
[아앗!]
그제야 윤우일을 발견한 웨이건이 놀라며 허리춤에 끼워놓은 베레타의 손잡이를 서둘러 쥐었다가 그
자세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두 눈이 윤우일에게 잡혀 있는 듯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마치
뱀 앞에 놓인 쥐 모양이었다.
[열다섯 발을 다 쏘아 죽일 테다.]
윤우일이 잇사이로 말했다. 순간 폭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이 작전에 참가했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지만 이런 공포감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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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히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수는 신원스레
감사히 읽습니다...
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