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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의 비밀소굴(秘密巢窟) |
사당을 미친 듯이 달려나왔던 주칠칠은 이순간 터벅터벅 정처 모를 |
곳으로 발길을 옮겨 놓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마치 칼날처럼 와 |
부딪히던 차가운 바람은 그녀의 얼굴을 마비시켰고, 은은한 아픔까지 |
동반한 채 마치 수백만 마리의 거미가 그녀의 얼굴을 기어가는 듯한 |
간지러움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고, 그녀의 |
발걸음은 천 근 만 근 터벅터벅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겨 놓고 있었다. |
이때, 앞에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집을 발견한 순간 그녀는 그쪽을 |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따뜻한 한 그릇의 |
국물과, 따뜻한 침대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본 것은 집이 |
아니었다. 그리고 따뜻한 한 그릇의 국과 침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집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상 하나의 무덤일 뿐이었다. 그 무덤은 부잣집 |
무덤인 듯 상당히 거대한 크기였다. 그녀는 다시 실망했다. 실망해서 크게 |
한숨을 불어냈다. 왜 그녀에게는 아픔과 절망만이 찾아온단 말인가!그녀는 |
그 무덤의 묘비 뒤에 웅크리고 주저 앉았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
오직 이 묘비 뒤만이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
때문이다. 묘비 뒤에 쭈그리고 앉은 그녀는 신발을 벗어 발가락을 |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발가락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었다. |
정처없이 미친 듯이 달릴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나 지금 묘비 |
뒤에 웅크리고 앉고보니 그녀의 가슴에는 다시 억울함과 원망스러움이 |
되살아 났던 것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심랑은 그녀를 |
미워했다. 그녀는 그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심랑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좋게 대하면서 나에게는 그렇게 차갑게만 대하는 걸까? |
그녀는 심랑이 미웠다. |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매우 잘해주는데 나는 왜 그들을 상대하지도 |
않았을까. 왜 나를 차갑게 대하는 심랑을 잊지 못하고 자꾸 그를 생각하는 |
것일까?) |
주칠칠은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싫었다. |
그녀의 마음은 사랑과 원망과 괴로움으로 어지러워 더이상 아무 생각도 할 |
수가 없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사람의 말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녀는 |
바짝 긴장하며 숨소리를 죽이고 그 말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그런데 |
어디서 들려오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니 그 |
소리는 무덤 속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
그 소리는 틀림없이 무덤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사람의 |
소리가 들려오다니...... 죽은 사람이 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인가. |
주칠칠은 깜짝 놀라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
재빨리 침착을 되찾고는 즉각 생각을 굴리기 시작했다. |
(혹시 이 무덤은 어떤 무리들의 비밀소굴이 아닐까?) |
그녀가 다시 눈을 들어 사방을 살피는 순간 이미 그 묘비 아래서는 발자국 |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 무덤 속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
하는 모양이었다. 방금까지 전신에 기력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던 |
주칠칠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장 남짓 떨어져 있는 돌하루방 뒤로 |
몸을 숨겼다. 그녀가 이렇게 번개같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본능적인 |
잠재력으로 뛰어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돌하루방 뒤에 몸을 숨긴 |
후 여전히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다. 그 묘비가 약간씩 |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시커먼 입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무덤의 입구에서 |
한 사람의 머리가 쑥 빠져 나왔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사람의 머리가 |
나왔다. 그 사람들은 양가죽으로 만든 겉옷을 걸친 대한들이었다. 먼저 |
뛰쳐 나온 사람이 건성으로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주위에 사람이 |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 그저 슬쩍 훑어 볼 뿐이었다. |
뒤쫓아 나온 사람은 주위를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 다시 그 묘비를 |
밀어서 입구를 닫아 버렸다. 묘비의 입구를 닫은 두 사람은 큰 걸음으로 |
묘비 앞에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서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중에 |
한 사람이 말했다. |
그 병신 녀석은 도대체 어떤 녀석이지? 기개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이러한 엄동설한에 우리에게 수십 리 길이나 가서 약을 지어오게 시키다니 말이오. 사람을 일부러 괴롭히려는 수작이지 뭐요? |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
왕 형! 제발 그만 원망하시오. 그 녀석이 누구든 어떻든 우리 두목하고 의리 관계가 보통이 아닌 것 같지 않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두목이 여기까지 데리고 왔겠소? |
왕씨라 불린 사람이 말했다. |
흥! 만약 내가 그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병신녀석의 말을 들었을 것 같소. |
다른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
어떻든 하루 종일 무덤 속에 앉아서 술과 여자와 노닥거리는 일보다는 차라리 이런 기회에 한 번이라도 밖으로 나와서 시원한 바람을 마셔 보는 것도 좋지 않소? |
왕씨 성을 가진 대한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그렇소. 우리 이 기회에 한 번 세상 구경이나 실컷 해봅시다. 그 병신 녀석은 얼핏 보아하니 약을 먹지 않아도 죽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
두 사람은 서로 떠들고 웃으면서 주칠칠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
주칠칠은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진 다음 숨었던 돌하루방 |
뒤에서 일어나 묘비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들어 |
묘비를 밀어 봤다. |
그러자 가볍게 밀었을 뿐인데도 그 묘비가 이렇게 쉽게 열려질 줄이야! 그 |
묘비가 열리자 입구가 드러났다. 묘비가 움직이는 순간 주칠칠의 가슴도 |
동시에 움찔하고 움직였다. |
(도대체 어떤 녀석들의 소굴이지? 그리고 또 그 병신이라는 녀석은 |
누구지? 소굴을 무덤 속에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틀림없이 좋은 인간들은 |
아니 것 같은데. 죽든 살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나 보자.) |
이렇게 결심한 주칠칠은 천천히 그 입구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녀는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여자였다. 특별난 일이 없을 때는 |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라도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그녀가 지금 이순간 |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눈앞에 놓여있는데 어찌 그냥 모른 척 지나갈 |
수가 있겠는가! 강산은 쉽게 변해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래서 |
전해오는 것이다. 그녀의 상황이 결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지만 |
그녀의 성격은 여전히 고칠 수 없었던 것이다. 묘비가 약간 움직이는 순간 |
입구가 나타나고 그녀는 재빨리 입구 속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또 |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
안 돼. 이것이 어떤 사람의 비밀인지 좋은 사람 것인지 나쁜 사람 것인지 이러한 사실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왜 나는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려는 거지. 그래서 심랑이 나를 그렇게....... |
그녀는 쓸데없는 일에 끼어든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려 했으나 그 생각이 |
심랑에게 미치는 순간 그녀는 다시 마음을 바꿨다. |
(심랑! 흥! 왜 내가 지금 이순간까지도 그 녀석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
어떻든 더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까. 동굴 속에서 다른 위험을 |
맞닥뜨린다해도 별로 대수로울 것은 없지 않겠어.) |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걸음을 빨리하여 굴 속으로 번쩍 뛰어들었다. |
세상에 모든 비밀소굴이나 지하터널은 대부분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
음산하고 어둡고 곰팡이 냄새가 퀘퀘한 그런 분위기를 말이다. 그러나 이 |
지하통로가 다른 일반 지하통로와 다른 특별한 점은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
없고 기관 설치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이곳이 너무 은밀하기 |
때문에 다른 사람이 찾아올 염려가 없어서 지키는 사람을 세워두지 |
않았는지도 모른다. |
그렇지 않다면 이 비밀소굴의 주인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극히 |
오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곳을 알아낼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
지키는 사람을 세워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칠칠은 도대체 |
지키는 사람이 왜 없는지는 생각해 보지않은 채 묘비를 밀어 다시 그 |
입구를 막은 다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약 십여 개의 돌계단을 내려갔을 |
때 그녀는 조그만 대청에 이를 수 있었다. 그 대청에는 가구와 배치된 |
장식이 일반의 부잣집 객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주칠칠은 고개를 |
내밀어 대청 안을 살펴보았다. 대청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조금의 |
거리낌도 없이 그 조그만 대청으로 불쑥 들어갔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
두려움이 없었다. 현재 그녀는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
어쩌면 다른 사람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도리어 원하고 있었는지도 |
모른다. 그 대청 앞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주칠칠은 곧장 그 문으로 |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바로 이순간 그 문 안에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
들려왔다. |
공자께서는 상당히 주도 면밀하시군요. 공자의 부하들이 이곳에서 답답해 할까봐 이처럼 예쁜 두 명의 아가씨를 데려다놓고 그들을 보살피게 했으니 말이오. 대단하오! 정말 대단하오! |
주칠칠은 몸을 움찔 떨면서 옮기던 발자국을 즉각 멈췄다. 그것은 바로 |
김불환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
(저 녀석이 어떻게 여기에 있단 말인가!) |
이때 다른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김 형께서는 모르는 바가 있으신 것 같소. 공자께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공자께서 이렇게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만약 이곳에 그 정도의 즐거움도 없다면 누가 기꺼이 이곳에 숨어서 공자를 지원하겠소? |
그 목소리 또한 상당히 귀에 익은 것이었다.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 |
않았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주칠칠은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했다. |
마침내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번쩍 떴다. |
(아! 저것은 바로 좌공룡 그녀석이로군.) |
김불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
그렇겠지요. 만약 기꺼운 마음으로 이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곳에 있으라고 강요한다고 해도 슬쩍슬쩍 밖으로 빠져 나갔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과 술들이 준비되어 있으면 회초리로 때리면서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으려 하겠소. |
그에 이어서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
지금은 김 형께서 맛보고 계시지 않소. 명하야! 빨리 술을 따라 드려라. |
그것은 바로 왕련화의 목소리였다. |
그러나 이상한 것은 왕련화의 목소리는 조금도 힘이 없는 듯 무력하게 |
들렸다. 그리고 말을 끝내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잔기침을 |
해대는 것이었다. 주칠칠은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듯 고동쳤다. 그녀는 |
그 자리에 선채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 문은 |
여전히 닫혀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문 밑으로 약간의 틈이 벌어져 있어 |
불빛이 주칠칠이 서있는 그 조그만 대청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
멍청히 서있던 주칠칠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 문쪽으로 걸어가서 몸을 |
굽히고 머리를 밑으로 숙여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으로 그 안을 살펴보기 |
시작했다. 그 문 속에는 넓직한 방이 있었으며 그 방 가운데에는 동으로 |
만든 불화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불화로 옆에는 술과 |
안주가 가득 차려진 상이 놓여져 있었다. 김불환과 좌공룡은 바로 그 곳에 |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붉은 옷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렸으나 얼굴에는 |
상당히 요염한 기색을 띤 여인이 그 불화로 옆에서 그 불길을 |
부젓가락으로 휘젓고 있었다. 그 여자의 허리는 마치 뱀처럼 매끄러워 |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녹색옷을 입은 여자는 김불환의 가슴에 안겨 |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붉은 홍조가 나타나 있었으며 얼굴에는 미소를 |
띠고 있었으나, 한쌍의 눈은 눈물을 머금은 듯하여 도리어 상당히 |
혐오스럽다는 기색도 보였다. 도대체 왕련화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주칠칠이 이리저리 눈을 돌리자 비로소 한쪽 구석에 호랑이 가죽을 깐 |
침대에 되는대로 누워있는 왕련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잘 |
생긴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김무망의 말은 |
틀리지 않았다. 그 악마는 이미 부상을 당한 듯하여 보였다. 심지어 |
좌공룡이나 김불환도 모두 부상을 당한 듯하여 보였다. 좌공룡의 오른팔은 |
이미 붕대로 칭칭 동여 매어서 가느다란 천으로 감싼 채 목에 걸려 |
있었다. 그의 부상은 가볍지 아니 한 듯 보였다. 그러나 김불환의 부상은 |
그렇게 대단한 듯 하여 보이지는 않았다. 이때 김불환은 먹고 마시면서 |
쉬지 않고 짓꿋은 손짓으로 자기 가슴에 안겨 있는 여자의 이곳저곳을 |
주무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사람을 시켜서 자신이 먹을 약을 |
구해오라고 그랬단 말인가? 주칠칠이 방금 보았던 양가죽 겉옷을 걸친 |
대한이 말했던 병신 녀석은 당연히 김불환을 말하는 듯하였다. 주칠칠은 |
아무 생각없이 이리저리 거닐다가 왕련화의 비밀 소굴로 찾아 들리라고는 |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인간 세상에서의 일은 이처럼 아무도 예측할 수 |
없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가장 실의에 차 있는 것은 왕련화였고 가장 |
득의만만해 보이는 사람은 김불환 같아 보였다. 김불환은 크게 웃고 |
떠들고 있었으나 왕련화는 도리어 구석에 구겨박혀 있는 듯해 보였다. |
김불환은 가슴에 품은 녹의 소녀를 한참 쓰다듬더니 이번에는 다시 |
화롯불을 만지고 있는 허리가 뱀처럼 매끄러운 붉은 옷을 입은 아가씨도 |
끌어 당겨 양쪽 가슴에 한 사람씩 품어 안았다. 김불환의 가슴에 안긴 두 |
여자는 겉으로는 킥킥거리고 웃고 있었으나 그녀들의 눈빛은 김불환의 |
이러한 행동이 혐오스러운 듯한 기색을 보였다. |
이때 좌공룡이 언짢은 듯 입을 열었다. |
김 형께서는 상당히 즐거우신 모양이구려? |
김불환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네! 저는 상당히 즐겁군요.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소? 자! 령아(玲兒)야! 이 어르신 볼에 뽀뽀 한 번 해라. |
좌공룡이 냉랭하게 말했다. |
방금 그렇게 험악한 일을 겪었는데도 김 형께서 즐거우실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
방금 일이오? 헤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오. 김무망 그 녀석은 더이상 살아나기 어려울거요. 그 녀석이 이미 제거 되었는데 우리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필요가 있겠소? |
좌공룡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 그때 김무망 그녀석에게 한 번만 더 공격을 했더라면 그 녀석은 틀림없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김 형께서는 너무 도망가기에 바빠서....... |
김불환이 '히히'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
내가 도망가기에 바빴다면 좌 형께서는 도망가기에 바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그때 저는 왕 공자께서 이미 부상을 당하셔서 더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재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왔던 것이오. 좌 형께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까? |
좌공룡의 얼굴은 불그락푸르락 수시로 변했으나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
못했다. 김불환은 도리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이미 지나간 일인데 좌 형께서도 마음을 푸셔야죠. 령아야! 빨리 일어나서 노래 한 곡 들려 드리고 답답한 기분을 풀어 드려라. |
그 녹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저는 노래를 할 줄 몰라요. |
김불환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제기랄! 이런 장사를 하면서 노래도 할 줄 모른단 말이냐? |
뱀허리를 가진 아가씨가 얼른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
저 아이는 정말 노래를 못 해요. 제가 대신하면 안 될까요? |
누가 네년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느냐? 령아야! 노래를 할 줄 모르면 춤을 출줄 알게 아니냐? 어디 춤이라도 한 번 추워 보아라. 제기랄, 춤이란 게 별거냐. 마음대로 온 몸을 흔들어대면 그게 춤이지. |
령아라고 불리운 그 처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일어서서 |
손과 발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나무막대기나 |
허수아비가 비틀비틀 몸을 흔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
좌공룡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공자께서는 휴식이 필요한데 김 형께서 좀 조용히 해주시면 안 되겠소? |
김불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
왕 공자요? 헤헤. 어떻든 왕 공자도 오래 살지는 못할테니까. 숨이 붙어있는 짧은 시간이나마 좀 재미있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소? |
그의 말은 방 안에 있던 다섯 사람만이 아니라 문밖에 있던 주칠칠까지도 |
깜짝 놀라게 했다. 좌공룡의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그가 우물쭈물 |
말했다. |
김 형께서는 지금 우스갯소리를 하시는....... |
김불환이 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
나는 우스갯소리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오. |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는 어떻게 제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시는지......? |
그는 아무 일도 아닌 척 이렇게 물었으나 사실은 그의 안색이 변해 |
있었다. |
김불환이 말했다. |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
좌공룡이 말했다. |
공자께서는 비록 김무망 그녀석의 일 장을 공격당하긴 했으나 그 장력으로 어떻게 공자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단 말이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공자께서는 틀림없이 완전히 회복되실 것이오. |
김불환이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
과연 그럴까요? 나는 왕 공자께서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
좌공룡이 실색을 하며 말했다. |
김 형, 당신, 당신 미쳤소? 무슨 소리를....... |
나는 왕 공자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소. 나랑 내 기라도 해보시겠소? |
이 말을 들은 왕련화는 대소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 제가 언제 죽을지까지 알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구려. 저는 이곳에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는데 아쉽게도 관은 준비하지 못했군요. |
김불환이 말했다. |
그건 괜찮소. 왕 공자께서 죽은 후에 시신을 인의장에 보내면 인의장에서 당연히 알아서 당신이 들어갈 관을 마련해 줄거요. |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주 담담하게 말했으나 그말을 듣는 좌공룡은 |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
김 형, 김 형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요? |
김불환이 말했다. |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거요? |
등불아래 비치는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냉혹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
지금 이순간, 그의 흐릿한 눈에서도 늑대와 같이 날카롭고 악독한 빛이 |
뻗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좌공룡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
저, 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
좌공룡은 김불환의 무공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방금 김무망과의 |
싸움에서 김불환의 무공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무공은 좌공룡 자신의 |
무공보다 높다고는 얘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
김불환의 얼굴에 나타난 잔인한 웃음이었던 것이다. 그 잔인한 웃음은 |
김불환의 징그럽게 생긴 얼굴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좌공룡 |
자신도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일평생 |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보다는 나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할 수 |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김불환보다 더 나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생 이처럼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잔인한 |
웃음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김불환은 천천히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왕련화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입에는 여전히 |
왕련화가 그에게 준 고기를 십고 있었으며 손에는 왕련화가 그에게 |
마시도록 준 술잔을 들고 있었다. 술잔에는 술이 가득차 있었다. 그가 |
비틀비틀 왕련화쪽으로 걸어가자 술잔에서는 술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잔 |
밖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잔인한 웃음을 띤채 눈에서는 |
흉포한 살기를 뿜어내면서 왕련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련화의 얼굴은 |
점점 창백하게 변해갔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
말했다. |
김 형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거요? |
김불환이 음흉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
좌공룡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른다치고, 왕 공자께서도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오? |
왕련화가 말했다. |
김 형께서 뭘 하려는지는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하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려. |
김불환은 냉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
무엇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요? |
김 형께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오! |
김불환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과연 똑똑한 아이라고 할 수는 있군. |
그러나 김 형과 나는 이미 친구가 아니오? 왜 꼭 나를 죽여야겠다는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소? |
김불환이 거칠게 바닥에 침을 퉤 뱉고 나서 징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
친구라고? 친구라는 게 도대체 몇 푼이나 값어치가 나가는 거지? 나 김불환은 일생 동안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소. 만약 나 김불환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는 아마 눈이 먼 인간이겠지. |
왕련화도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 |
그렇지만 김 형 당신은 지난 날....... |
김불환이 냉소를 하면서 말했다. |
지난 날에는 내가 왕 공자에게서 얻을 게 있었기 때문에 당신 가까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러나 이제 왕 공자 당신은 마치 죽은 개처럼 꼼짝을 못 하고 누워있는데 더이상 무엇을 얻을 게 있다고 왕 공자를 친구로 사귀어야 한단 말이오? |
제가 지금은 비록 약간의 부상을 입었으나 이 부상은 며칠 지나지 않아 나을 상처에 불과하오. 내 세력은 십성에 걸쳐 널리 퍼져있고 그 수하만도 천 명은 더 되오. 김 형께서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신다면 내가 이 부상에서 회복된 다음에 김 형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겠소? 김 형께서는 총명한 분이시오. 그런데 이러한 점도 생각을 하지 못하신다는 거요? |
문밖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주칠칠은 이러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 |
있으면서도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김불환에게 말하는 왕련화를 |
보고 속으로 탄복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시 김불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왕 공자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소. 그러나 나는 첫째,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고, 둘째, 내가 지금 당신을 죽여서 인의장으로 보내면 왕 공자가 부상에서 회복해서 나에게 줄 수 있는 이점보다 훨씬 더 많다고 생각되오만....... |
이렇게 말한 그는 말을 멈추고 한바탕 대소하고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
나 김불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이로운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궁둥이를 닦아 달라고 해도 나는 개의치 않고 해왔소. 나는 나에게 어떤 것이 이로운가만을 생각하오. |
왕련화가 눈을 부릅 뜨며 물었다. |
그렇다면 김 형께서 나를 죽여서 도대체 어떤 이로운 점이 있다는 겁니까? |
김불환이 헤벌쭉 웃더니 말했다. |
적다고 할 수야 없지요. 왕 공자께서는 듣고 싶소? |
이왕 죽을 거라면 내가 죽음으로써 김 형께 도대체 어떠한 이로움을 드릴 수 있는지 들어나 봅시다. |
김불환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
첫째, 내가 지금 왕 공자를 죽임으로 인해서 왕 공자께서 주칠칠을 속여서 빼앗아 온 귀거리를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소. 그러면 그 많은 돈이 곧 내 돈이 되는 거지요. |
왕련화가 찬바람을 들이키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는 그 일도 알고 계셨소? |
김불환의 말이 이어졌다. |
두번째, 왕 공자는 지금 현상금이 붙은 사람이오. 내가 왕 공자를 죽여 인의장으로 보내면 현상금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의장 삼로 및 천하 무림인들로부터 의사(義士)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소. 나는 명예와 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소. 또 더 나아가서 심랑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왕 공자 당신이지 내가 아니오. 내가 만약 왕 공자를 죽여 없앤다면 심랑은 어쩌면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부드럽게 나를 '친구 고맙소.'라고 말해 줄지도 모르오. 김무망은 왕 공자 당신이 죽인 거요. |
왕련화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대단하군요.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요! |
김불환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당연히 대단하지요. 왕 공자 당신도 내 판단 능력에 탄복하는 거요? |
왕련화가 말했다. |
그러나 김 형께서는 제발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시오. 내 부하들 중에 고수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그들을 제외하고도 내 모친은 천하제일 고수라고 할 수 있는 분임을 말이오. 만약 김 형께서 나를 죽인다면 그들이 당신을 가만히 놔 둘 것 같소? |
왕 공자께서는 내가 왕 공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
만약 김 형께서 내 시신을 들고 인의장에 간다면....... |
김불환이 말허리를 잘랐다. |
그 점은 왕 공자께서 안심하셔도 좋소. 인의장에서는 현상금을 받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신분을 지켜주는 것을 절대 원칙으로 하고 있소.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누가 그 몇 푼 안 되는 현상금을 노리고 골치 아픈 일을 하려고 하겠소? |
왕련화는 힐끗 좌공룡을 바라보고 말했다. |
그리고 또 좌 방주께서 계시지 않소? |
그는 일부러 방주라는 두 글자를 힘주어 말했다. 이미 의자에 널부러져 |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 있던 좌공룡은 방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몸을 |
움찔하고 놀랐다. 왕련화가 죽게 된다면 과연 누가 좌공룡 자신을 도와서 |
방주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방주라는 두 글자는 |
즉각 그의 가슴 속에 탐욕이라는 불길을 일으키게 했다. 그 탐욕은 |
김불환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
대갈을 터뜨렸다. |
그렇소! 누구든 왕 공자를 해치려는 생각을 한다면 나 좌공룡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
그의 목소리는 방을 진동할 만큼 컸으나 김불환은 그를 돌아보지고 않고 |
다만 냉랭하게 말할 뿐이었다. |
좌공룡이 만약 총명한 인간이라면 얌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현명한 생각일 것이오. 좌공룡이 지금 이순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면 왕 공자 당신이 죽은 후에 오히려 그에게 더 이로운 점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오. |
왕련화가 말했다. |
좌 방주가 만약, 만약....... |
김불환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
만약 좌공룡이 총명하지 않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신과 함께 그를 없애버릴 수밖에 없소. 죽은 사람은 영원히 말을 할 수 없는 법이오. 만약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좌공룡은 지금 즉각 시험해 봐도 좋소. |
그는 몸을 휙 돌려 좌공룡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
한쪽밖에 안 남은 팔을 들고 지금 당장 시험해 봐도 좋소. |
그말에 좌공룡은 자신의 부상당한 팔을 바라보고서 맥없이 그자리에 털썩 |
주저앉고 말았다. |
김불환은 대소를 터뜨리며 손에 들고 있던 술을 입 안에 털어넣고는 잔은 |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때 그 방에 같이 있던 두 아가씨는 놀라서 |
구석자리에 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순간 붉은 옷은 입은 |
아가씨가 가슴을 쳐들고 일어나서 령아라고 불린 아가씨의 얼굴을 |
꼬집으면서 말했다. |
봐라! 애! 네가 김 어르신의 심신을 화나게 해서 이 모양이 되었잖니? 빨리 가서 김 어르신께 용서를 빌고 기분을 풀어드려라. |
세상 물정을 모두 겪은 이 여자는 과연 위급한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할 |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왕련화를 구하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
다만 왕련화가 죽게 되면 결국은 자신들도 이 방에서 나갈 수 없으리라는 |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왕련화는 비록 그녀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고마운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녀는 령아의 손을 잡고 궁둥이를 흔들며 흐느적흐느적 김불환의 |
면전까지 걸어가 령아의 겁에 질린 몸뚱이를 김불환의 가슴에 떠밀었다. |
그리고 자신도 몸을 비비꼬며 김불환의 가슴으로 뛰어 들어 두 팔로 그의 |
목을 끌어안고 교태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
제발 화내지 마세요. 우리 자매 두 사람이 어르신을 즐겁게 해드릴게요. 틀림없이....... |
그녀는 얼른 말소리를 낮춰 김불환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를 더 했다. |
김불환은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령아의 몸을 더듬더니 웃으면서 |
말했다. |
이년들. 몸이 제법 쓸만하구나. 이 어르신께서 네년부터 죽여줘야겠군! |
순간 붉은 옷을 입은 아가씨의 눈에 공포의 빛이 스쳐 지나갔으나 곧 |
코먹은 소리로 말했다. |
죽이려면 지금 당장 죽여주세요. 더 참을 수 없어요. 이 뒷쪽에 방도 있고 푹신한 침대도 있어요. 얼른 우리 가요. |
김불환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이 떠오르더니 말했다. |
좋다. |
말을 마치는 순간 김불환은 '팍! 팍!' 하고 두 여자의 얼굴을 힘껏 |
내리쳤다. 그러자 두 아가씨는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섰다. |
그녀들의 하얀 얼굴에는 다섯 손가락의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
붉은 옷을 입은 아가씨가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당신, 당신....... |
김불환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갈보년들. 이 어르신을 어떻게 보고 그 짓거리냐. 이 어르신은 네년들 같은 것들을 수천 아니 수만 명도 더 만나 보았다. |
붉은 옷을 입은 아가씨가 갑자기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이 미친놈, 병신, 이 아가씨 눈에 네 녀석이 조금이라도 찬 줄 알았단 말이냐. 이 아가씨 밑을 닦아줄 자격도....... |
그녀는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되는대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
김불환은 도리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하하. 좋다. 욕을 잘하는구나. 이 어르신은 일을 할 때 누군가가 욕설을 심하게 하면 할수록 더욱더 기분이 좋아지니까. 왕 공자를 죽이는 순간에도 그렇게 욕설을 퍼부어라. |
주칠칠은 먹은 게 목구멍을 통해 올라오는 듯했다. |
왕련화는 탄식하면서 입을 열었다. |
김 형, 당신과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눈을 씻고 찾아 보려고 해도 몇 안 될 거요. 나 왕련화가 오늘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그렇게 크게 억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겠구려. |
김불환이 통쾌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
그래도 왕 공자 당신은 사람을 볼 줄 아는군! |
그는 실눈을 뜨고 잔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그러나 지금 왕 공자 당신은 후회막급 하겠구려. 왜 개방 제자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는지, 또 왜 그 두 명의 대한을 나를 위해서 약을 구해오라고 밖으로 내보냈는지 말이오? |
왕련화가 가볍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
나는 지금 후회스러울 뿐만 아니라 상당히 애석해 하고 있소이다. |
하하하! 무엇이 애석하다는 거요? |
당신과 같은 인재가 오래 살 수 없다는 점을 애석해하고 있소. |
그 말에 김불환은 깜짝 놀란 듯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곧 크게 웃으면서 |
말했다. |
왕 공자, 당신은 이미 정신이 어떻게 되기 시작했소? 지금 죽게 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왕 공자 당신이오. |
왕련화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의 말씀도 맞소. 나는 곧 김 형의 손에 죽을 것이오. 그러나 김 형 당신도곧 죽게 될 것이오. |
김불환이 대갈을 터뜨렸다. |
입 닥쳐! |
왕련화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
김 형, 당신은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 중 가장 비겁하고, 흉악하고, 교활하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오. 그렇지만 나 왕련화고 김 형에 비해서 조금도 못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
김불한이 냉소를 터뜨리면서 말했다. |
그렇지만 당신은 내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소? |
나는 비록 김 형의 계략의 말려 들었지만 김 형 또한 내 잔재주에 말려 들었소. 김 형께서 방금 마신 그 술 속에는 이미 오장육부를 썩어 들어가게 하는 독약을 타놓은 상태였소. |
순간 김불환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모양 멍청한 |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쏟아나기 |
시작했다. 그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
왕 공자 당신은 나를 속일 생각이오. 하하!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만약 술 속에 독이 있었다면 내가, 내가 왜 지금까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는 거요? |
그는 고개를 쳐들고 웃어제꼈다. 그러나 그의 웃음소리는 울음소리보다도 |
더욱 듣기 싫은 소리였다. |
왕련화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
내가 탄 그 독약은 일주일 후에야 발작을 하게 될 것이오. 그 독약은 이 세상에 오직 나 왕련화 만이 해독을 할 수 있소. 김 형이 지금 나를 죽이게 된다면 일주일 후에는 어쩌면 김 형께서도....... |
김불환은 서있던 자리에서 펄쩍 뛰면서 외쳤다. |
왕 공자, 나를 속일 생각이오! 하하! 꿈을 꾸지 마시오.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을 죽여버리겠소. |
김 형께서 만약 믿지 못하신다면 김 형 생각대로 하시죠. 지금 당장 손을 쓰셔도 좋소. |
김불환은 왕련화에게 달려들어 번쩍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그의 쳐든 |
손은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
왕련화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는 왜 손을 쓰지 않소? |
김불환은 쳐들었던 손을 도리어 자기의 얼굴에 도로 철썩 갖다 붙였다. |
그는 몇 번 자기 뺨을 후려갈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모두 너의 주둥이 탓이야. 못된 소리를 지껄여 왕 공자를 놀라게 하다니 너는 맞아야 되. 맞아야 되....... |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는 왜 하필 자기자신을 괴롭히시오? |
김불환은 갑자기 그자리에 털썩 꿇어 앉더니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
왕 공자, 대인은 소인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 합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시고 방금 제가 했던 행동은 다만, 다만, 일 장의 장난을 하고자 했던 것에 불과하오. 왕 공자, 제발 내 몸에 들어간 독을 없애주시오. 내가 왕 공자를 한평생 받들어 모시겠소. |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는 나에게 김 형을 구해달라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주일 후에나 가능할 것 같소이다. |
김불환이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
그렇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왕 공자의 상처도 아물지 않겠소? |
왕련화가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
그렇겠지요. |
김불환은 손을 들어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왕 공자, 당신의 부상이 완케되면 당신이 나를...... 나를 놔주겠소? |
하하 당연히 놓아 드려야죠. 그러나 제 말을 믿고 안 믿고는 김 형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실 일이오. |
김불환이 고개를 계속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
일주일, 일주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요. 왕 공자께서는 지금 당장...... 제발 부탁이오. |
왕련화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내가 지금 당장 해독약을 드린다면 그 대신 나는 다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 아니오. |
김불환이 대갈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
왕 공자, 내가 당신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당신의 체면을 봐서요. 당신은 지금 내 손아귀에 잡혀 있는 몸이오. 얌전히 좋은 말로 할 때, 내 몸에 있는 독약을 제거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
왕련화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김 형께서 만약 제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
김불환은 지금 이순간, 왕련화를 죽일 수도 그렇다고 일주일 후 왕련화의 |
부상이 완쾌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는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 |
왕련화를 손아귀에 쥐었으나 도리어 왕련화에게 역습을 당하고 말았다. |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은 호랑이보다도 더 위엄이 있었으나 지금은 |
쥐새끼보다도 더 가련한 모습이었다. |
주칠칠은 방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았다. 그녀는 |
놀랍기도 하고, 화도 나고 우습기도 했다. |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
(김불환 저 놈의 악독한 심장과 철면피와 같은 얼굴은 가히 |
천하무쌍이라고 할만 하구나. 아, 세상이 비록 넓다고 하지만 저런 인간을 |
다시 찾아보기는 힘들거야.) |
만약 김불환을 여우라고 한다면 왕련화는 늑대라고 할만 했다. 또 |
김불환을 악마라고 한다면 왕련화는 마왕이라고도 할만 했다. 주칠칠은 |
다시 생각했다. |
(저 마왕이 지금 부상을 당해 꼼짝 못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얼마나 |
좋은 기회인가? 만약 이런 기회를 내가 잘 이용하지 못한다면 나 주칠칠은 |
이름을 갈아야겠지.) |
이때, 왕련화의 가볍게 웃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
김 형께서는 왜 거기에 꿇어 앉아 계십니까? 제 앞에 꿇어 앉아 계시니 제가 마음이 불편하구려. |
좌공룡의 아첨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
예, 예. 그렇습죠. 왕 공자 말씀이 맞습니다. 김 형 당신은....... |
김불환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
좌공룡, 당신이 아첨하기는 때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소? 당신이 아첨한다고 왕련화가 당신을 그대로 놔둘 것 같소? |
좌공룡이 이마에 식은 땀을 손으로 훔치면서 말했다. |
나...... 나는 방금 김 형이 위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
김불환이 말했다. |
잊지 마시오. 지금 이순간에도 당신의 목숨은 내 손아귀에 달려있소. 내가 당신을 죽이고 싶다면 언제라도 간단히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오. |
좌공룡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
더듬거렸다. |
나, 나는...... 나는....... |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활짝 |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한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와 곧장 김불환을 |
덮쳐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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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