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해체대법(天魔解體大法)
부채꼴의 검막이 펼쳐지면서 삽시간에 열 여덟 명의 도사들이 두 개
의 검진을 만들었다. 현청은 그들 한복판에서 지휘했고 고명원을 한복
판으로 끌어들이고 신속하게 검진을 압축했다.
사람의 그림자가 어지럽게 날리고 검광이 번뜩이는 가운데 조밀하게
얽힌 검날이 광풍폭우처럼 고명원에게 떨어졌다.
구궁연환검진은 명(明)나라 말기 무당 장문인 황엽도인(黃葉道人)이
창안한 것으로, 구궁팔괘를 채택하여 만들었으며 소림사의 나한대진
(羅漢大陣)처럼 진식의 변화로 갇혀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검진이었다.
부구자(浮丘子) 대에 이르러 정반(正反) 구궁지식(九宮之式)으로 변화
시켰다. 반(反) 구궁검진을 더 보탠 것인데, 만약 두 검진이 일제히 펼
쳐지면 기정상생(奇正相生)으로 변화가 무궁하여 검진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위력이 있었다.
무당의 구궁검진은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고 백여 년 동안 겨우
세번 펼쳤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마지막 한번은 바로 일대 검성 매화
노인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매화노인은 홀로 그 검진 안으로
들어가 시험해본 것인데 천하에 으뜸간다는 매화노인의 신검절기(神劍
絶技)도 이 검진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고명원의 달려가는 속도는 번개같이 빨랐다. 그러나 그 도사들이 발
걸음을 한번 옮겨 디뎌 구궁방위를 밟고 몸과 검을 이동시키자 눈 깜
짝할 사이에 이미 검의 광채로 이루어진 막이 사방에서 하나로 뭉쳐
지는 것이 아닌가.
고명원은 속으로 깜짝 놀라 강호에 떠도는 구궁검진에 관한 소문을
떠올렸다. 무당은 이 검진을 진파(鎭派)의 신기로 인정하고 있으며 무
당파가 생사존망의 위기에 몰리지 않는 한 결코 가볍게 사용하지 않
는다고 했다.
고명원은 재빨리 궁리했다.
(현청이 장문인이 되자마자 즉시 검원(劍院)에 거처하는 열 여덟 명의
도사들로 하여금 검진을 펼치도록 할 줄이야!)
이 순간, 그는 현청이 현법을 보내 그가 산 위로 오르는 것을 저지하
던 때부터 지금 검진을 펼칠 때까지 자기 자신이 한 걸음 한 걸음 상
대방이 만들어 놓은 포석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쩍이는 칼날이 망막을 비추는 순간 깊이 숨을 들이켰다.
(내가 어째서 일시적인 분을 이기지 못해 그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려
고 하는가? 구궁검진은 깨뜨려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지만 해남파의
검진보다 오묘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크게 살계를 범할 필
요는 없다. 검남의 안위가 더욱 중요한데 내가 굳이 무당산에서 지체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몸을 허공에 날리고 있는 그 찰나에 많은 점들을 떠올리고 결
정을 내렸다. 돌연 그는 오른쪽 커다란 소맷자락을 앞으로 휘두르면서
호통 소리를 내지르며 우람한 몸을 허공중에 우뚝 세웠다.
그렇게 한번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허공에 세찬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는 상반신을 뒤로 젖히면서 허공에서 물구나무를 서며 잇달아 네
번이나 재주를 넘더니 붉은 그림자를 번쩍이며 비스듬히 단실 왼쪽으
로 내려섰다. 그 다음 순간, 고명원은 한 자루의 시위를 떠난 화살처
럼 검진을 향해 곧장 쏘아 나갔다.
사실에 있어서 전체 검진은 빈틈없이 뭉쳐져 있는 철통이 아니었고
얼마든지 빈틈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따라서 검진이 합해지는 그
찰나에 방어력이 비교적 약해지는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
고명원은 우레와 같은 호통 소리를 내지르며 잇달아 칠초를 펼치면
서 전신의 힘을 돋구고는 달려들었다.
그의 몸은 마치 하나의 쇠망치처럼 부딪쳐 가서 잇달아 네 자루의
장검을 부러뜨린 후에는 다시 검진에서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의 몸
에는 이미 다섯 가닥의 검흔이 남게 되었다.
현청은 고명원이 사납게 달려들다가 한번 슬쩍 일초를 펼치는 척해
보이고는 잽싸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자 일성을 대갈했다.
[쫓아라!]
전체 검진은 해일처럼 고명원이 빠져나간 방향으로 쫓아갔다.
고명원은 줄곧 십여 장이나 달려나갔다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방
향을 꺾어 지붕 위로 뛰어 올랐다. 그 즐비하게 늘어선 지붕 위에서
지붕을 타고 서북쪽으로 달려갔다.
꽝! 꽝! 꽝! 꽝!
한차례 급박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지붕들의 끝쪽에서 다시
한 떼의 도사들이 검을 들고 쫓아오는 것을 보고, 길게 숨을 내쉰 후
지붕 위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꺾어 뒷산으로 달려갔
다.
고명원의 속도는 번개같이 빨라 잇달아 삼십여 채의 건물을 가로질
러 땅위에 내려섰다.
사방을 살펴보니 앞으로 삼십 장쯤 되는 곳에 소나무 숲이 보였다.
시원한 산바람에 그는 긴장이 약간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자기의 몸을 살펴보는 순간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
예리한 칼날에 찢겨져 너덜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살갗에 상
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낭패한 몰골이었다.
그는 자기가 일찍 물러서기로 작정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는 대광주리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얘야, 아직 별일 없지? 우리는 이제 산을 내려간다.]
고검남은 광주리 안에서 대답했다.
[저는 무사합니다.]
고명원은 소나무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무량수불, 고시주는 잠깐 걸음을 멈추시오.]
그가 몇 걸음 떼어 놓았을 때 귓가에 나직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
었다. 음성이 너무 또렷해서 마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하는 것 같았
다.
이십 장 밖에 체구가 왜소한 늙은 도사가 여유 있는 걸음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인상이 여유가 있었고 풍도(風度)가 표일(飄逸)하고 하얀
수염이 나부끼는 도사였다.
그런데 늙은 도사는 몇 걸음 옮겨 디뎠을 뿐인데도 이미 육 장도 되
지 않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고명원은 섬뜩했다.
(이 사람은 혹시 전설로 전해지는 도가(道家) 축척성촌(縮尺成寸)의 무
상신통력(無上神通力)을 펼친 것이 아닐까?)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도장께서 부르셨소?]
늙은 도사는 키가 여섯 자도 되지 않았다. 몸에는 푸른색 도포를 걸
치고 있었고 기다란 수염은 앞가슴까지 내려와 있었으며 이목구비는
온화하여 보름달을 연상시켰다. 선풍도골(仙風道骨)으로 보기만 해도
우러러보는 마음이 우러날 정도였다.
늙은 도사는 한 손을 들어 인사했다.
[시주가 바로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혈수천마요?]
고명원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강호의 별명이니 도장께서는 비웃지나 마시기 바랍니다.
도장의 선호(仙號)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는 반드시 이 눈앞의 늙은 도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는 늙은 도사의 두 눈에서는 신광이 흘러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전
언입밀(傳言入密)과 축척성촌의 신통력을 발휘한 것을 볼 때, 이 늙은
도사가 환신반허(還神反虛), 반박귀진(反璞歸眞)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천하를 통틀어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
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는 이와 같은 현문(玄門)의 고명한 도사
를 마주하자 온 정신을가다듬고 경계해야 했다.
늙은 도사는 빙그레 웃었다.
[빈도는 운중자(雲中子)라 하오.]
고명원은 두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 알고 보니 무림삼성(武林三聖) 가운데 장성(掌聖)이신 운중자 선
배님이시군요. 불초가 알아 뵙지 못하고 실례를 했습니다.]
운중자의 나이는 아흔 살이 넘었고 검성 매화노인, 금성(琴聖) 정무심
(鄭無心)과 더불어 강호에서 무림삼성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강호에는 무림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일곱 명의 고수들을 엮어서 말
하는 속담이 있었다.
< 고해이란인(苦海離亂人), 현문유삼성(玄門有三聖), 우내공이마(宇內共
二魔), 제회영남유(齊會嶺南幽).>
또 한마디의 속담은 다음과 같았다.
< 차라리 삼성을 만났으면 만났지, 영남유객(嶺南幽客)의 손에 걸리지
말아야 하고, 차라리 이마(二魔)를 만났으면 만났지, 고해이란인을 만
나지 말라.>
혈수천마가 처음 강호에 뛰어들 무렵 천하에는 육대고수밖에 없었고
그가 출현함으로 인해 칠대고수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그의 나이는 칠
대고수 가운데 가장 젊은 편이었고 강호에 출두한 것도 가장 늦었다.
그래서 그는 눈앞의 늙은 도사 운중자 앞에서 자신을 불초라고 칭하
고 상대방을 선배라고 높여 부른 것이었다.
운중자는 답례하고 입을 열었다.
[시주는 너무 인사차릴 것 없소. 빈도는 이십 년 동안 무당산에서 내
려가지 않았소. 우내이마의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시주가 그토록 젊
을 줄은 생각 못했구려... 빈도는 무당의 제자이지만 이미 폐관한지 십
년이 되었소. 그런데 시주가 웬일로 홀로 상청궁에 뛰어들어 현천 장
문인의 법체를 훼손했는지 모르겠구려?]
고명원은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장성 운중자가 검법으로 무림에명성을 날리고 있는 무당파 사람일
줄은 몰랐구나. 그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또 한바탕 혈전
을 치뤄야겠군.)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불초는 현천도장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나 즉시 막역한 사이가 되
었지요...]
그는 간단하게 다섯 달 전에 현천도장과 기련산에서 만나 약속하게
된 일로부터 오늘 겪은 일들을 운중자에게 이야기했다.
운중자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 정말 그런 일이 있었소?]
[불초는 감히 목숨을 걸고 한 점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소이다.]
운중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빈도는 십 년간 본파의 일을 묻지 않았는데 본문에서 이와 같은 일
이 일어날 줄 어찌 짐작했겠소? 그런데 고시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
시주는 어째서 무당산에 남아 해명하지 않소?]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초의 아들놈이 어릴적부터 불구라서...]
운중자가 미처 뭐라고 말하기 전에 그의 등뒤에서 현청이 높다랗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숙, 빨리 혈수천마를 붙잡으십시오...]
고명원은 운중자에게 읍을 했다.
[불초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양해하여 주십시오.]
운중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고시주는 무당산에서 살인을 했소. 빈도는 무당의 제자로서 며칠 이
곳에 남아 주기를 청하는 바이오. 빈도가 책임지고 진상을 알아내어.
..]
고명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현청이 큰 소리로 말했다.
[사숙, 오행이검이 모조리 혈수천마에게 살해당했으니 결코 살인 흉수
를 놓아 보내서는 안됩니다.]
운중자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시주는 손에 피비린내를 너무 심하게 묻혔구려!]
고명원은 말했다.
[불초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훗날 불초는 반드시 다시 무당산으로 올
라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그는 대바구니를 받쳐 들고 소나무 밭으로 나
는 듯이 달려갔다.
운중자는 호통쳤다.
[고시주, 잠깐만!]
고명원은 몸을 날려 어느덧 소나무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등뒤에
서 운중자가 호통쳤다.
[시주, 실례하겠소.]
귀를 따갑게 하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고명원은 운중자와 사장의 간격
을 남겨 두고 있었는데 이미 무거운 힘이 등에까지 뻗쳐 와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을 느꼈다.
그는 버럭 일성을 대갈하며 몸을 수그리면서 일장을 비스듬히 쪼개
냈다. 기경(氣勁)이 사방에 가득 차면서 요란하게 소용돌이치며 출렁거
리고 허공에서는 우레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명원은 온몸을 흠칫했다. 붉은 장포자락이 한차례 파동을 일으키면
서 무겁고 사나운 기운에 밀려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서면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었다.
운중자의 푸른 장포 역시 높다랗게 부풀어올라 있었고 기다란 눈썹은
비스듬히 치켜올라가 있었다. 다시 왼손을 쳐들더니 일장을 쪼개내었
다. 그 위무당당하고 사나운 태도는 사람의 혼백을 앗아갈 정도였다.
[앗! 태청강기(太淸剛氣)!]
고명원은 놀라 외쳤다. 운중자의 푸른 도포는 한껏 부풀어 있었고 비
쩍 마른 얼굴은 자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떨쳐내는 널따란 소맷자락
안에 있는 한쪽 손도 짙은 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속으로 크게 경악했다. 전설에만 듣던 도가(道家)의 두 가지 신
공 가운데 하나인 태청강기가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
은 강기(剛氣)는 선천진기(先天眞氣)와 함께 도가의 무상신공(無上神
功)이었다. 아무리 탄탄한 것이라도 부수어버릴 힘이 있었고 패도(覇
道)적인 면에 있어서는 불문의 대반야신공(大般若神功)보다 더욱 위력
적이었다. 세찬 기운이 소용돌이침에 따라 귀 따가운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한 투명하고 엷은 자색 기운으로 이루어진 담벼락이 밀려오고
있었다. 고명원은 두 눈에 신광을 쏘아내며 몸을 빙글 돌리면서 왼손
을 휙 뒤집었고 어느덧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광주리를 뒤쪽으로 내
던졌다.
그는 기운을 알맞게 썼기 때문에 그 대광주리는 유유히 여섯 장이나
날아가더니 평온하게 소나무숲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마음속에 거칠
것이 없어지자, 고명원은 온몸을 활처럼 구부리고 마치 한 마리 노한
사자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고슴도치처럼 온통 곤두세우고 오른손을
쳐들더니 급히 후려쳐냈다. 한 조각의 핏빛 노을이 즉시 그 뺨에 서렸
고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나직한 부르짖음에 호응하여 그가 쪼개낸
손바닥도 핏빛으로 물들었다. 강경하기 이를데 없는 강기의 공격을 받
은 그는 아직 완전히 연성하지 못한 혈강마공(血剛魔功)을 펼친 것이
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신에서 마치 스증기가 증발하듯 엷고 붉은 안
개가 피어올랐다. 두 줄기의 세찬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히자 별안간
커다란 음향이 울려 퍼지고 모래와 돌들이 마구 튀며 바람 기둥이 사
방으로 소용돌이치면서 흩어져 나갔다.
운중자의 그 비쩍 마른 몸은 소용돌이치는 기경에 날려갈 듯이 장포
자락이 펄럭이고 기다란 수염을 마구 나부끼더니 두번 몸을 흔들거렸
으나 끝내 똑바로 섰다. 그의 눈보다 흰 눈썹이 천천히 아래로 드리워
지고 눈빛도 형형하게 오장 밖에 서 있는 고명원을 바라보는데 그 표
정은 엄숙하기 이를데 없었다. 사방으로 튀고 있는 흙먼지가 가라앉자
운중자는 고명원이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나 안색이 창백하고
입가에 실낱같은 핏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운중자는 오만하게 웃었다.
[하! 하! 하! 고시주, 당신은 이미 중상을 입었으니 무당산에 남도록
하시오. 무당의 적이 된다는 것은 결코...]
고명원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
[으하하하! 당신의 그까짓 태청강기로 나를 붙잡아 둘 수 있겠소?]
운중자는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를 보고 그가 정말 화가 났음을 알았
다.
(혈수천마는 기기이능(奇技異能)이 퍽 많다고 했다. 혹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절예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태청강
기가 그 어떤 것이라도 부수어 버릴 수 있으니 완전히 연성하지 못한
혈강으로는 결코 적수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속으로 섬뜩해져서 한 가닥 진기를 끌
어올리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빈도는 사람을 핍박하고 싶지 않소. 아무쪼록 시주 스스로 무당산에
남아 주기 바라오. 진상이 모두 밝혀지기까지 빈도는 시주의 안전을
책임지겠소.]
고명원은 냉랭히 웃었다.
[이 고모는 강호에 출두한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 하기 싫은 일
을 억지로한 적이 없었소. 오늘 당신이 한사코 나를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면 별수 없이 옥석구분(玉石俱焚)의 결사전을 벌일 수 밖에 없
소... 그렇게 되면 정파로 자처하는 인물들이 무서운지 아니면 사파이
교(邪派異敎)로 간주되고 있는 사람이 무서운지 알게 될 것이오.]
운중자는 움찔했다.
[무량수불, 시주가 그렇게 고집을 피우겠다면 빈도로서도 더 할 말이
없소. 정사 양파는 자고로 서로 대립해 왔으며 좀처럼 병립하지 않았
소. 오늘 시주가 멋대로 하겠다면 빈도 역시 상대해드릴 수밖에 없
소.]
물론 그도정사지쟁(正邪之爭)이 벌어지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끝나자마자 두 소맷자락을 살짝
쳐들며 전신의 현공을 돋구고 상대방이 일격을 펼치기를 기다렸다.
고명원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당신들 정파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짓거리를 보았소. 노도
사, 당신도 인자한 척하지 마시오. 태청강기로는 내 목숨을 빼앗지 못
할 것이오.]
운중자는 무겁게 호통쳤다.
[그렇다면 실례하오!]
그 말이 끝나자 한줄기의 엷은 자색빛이 그의 얼굴에 피어올랐고 두
소맷자락이떨쳐지는 곳에 매서운 휘파람 소리가 급격하게 울려 퍼지
면서 자색 몽롱한 한 줄기 기주(氣柱)가 돌풍처럼 나는듯이 부딪쳐 갔
다.
고명원은 몸을 움츠리면서 호통을 내질렀다.
[훌륭하오!]
한 손을 세우고 왼손을 떨쳐 그 기주를 맞아 잇달아 삼장을 쪼개 내
자 자색 기운이 넘실거리며 쏟아졌다.
운중자는 고명원이 일장을 후려칠 때마다 한 모금씩 선혈을 토해내고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낼 적마다 발이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서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상대방의 손에서 전해오는 기경은 마치 장강의 커다
란 물결처럼 넘실거리며 몰려드는데, 한 가닥 한 가닥 갈수록 거세고
웅후해져서 삼장을 쪼개 내게 되었을 적에 그 자신이 쏟아낸 태청강
기는 마치 금성철벽에 부딪친 듯, 앞으로 뻗쳐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튕겨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색의 기경이 덮쳐오는 것을 본 운중자
는 깜짝 놀라 전력을 다해 이장을 후려치고서도 여전히 감당하지 못
하여 휘청거렸다. 이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조금 전 고명원
은 운중자의 태청강기를 얻어맞고 피까지 토했다. 이미 몸에 내상을
입고 기세가 쇠해진 징조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약함에서 강함으로
변했고 잇달아 세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낸 후에 쏟아낸 힘은 갈수록
억세져서 거의 태청강기를 후려쳐 흩어 놓을 지경이었다. 이와 같이
괴이한 형상에 운중자만 속으로 깜짝 놀란 것이 아니고 막 당도한 현
청과 무당의 제자들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얼굴에 경악의 빛을 띄우고 멀리서 고명원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자국이 움푹 움푹 파이고 일장을 후려칠 때마다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면서도 운중자를 향해 다가가는 광경을 숨을 멈추고 바
라보았다. 고명원은 잇달아 삼장을 후려치고 연이어 세 걸음을 다가서
더니 갑자기 험상궂은 웃음을 웃으면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그리고 두 손을 수평으로 뻗쳐내면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번
에는 앞서의 삼장보다 매서워 장력은 그야말로 산이라도 물리치고 바
다라도 뒤엎어 놓을 것 같았다. 운중자가 뻗쳐 낸 태청강기는 그 일장
을 얻어맞고 거의 다 흩어지고 겨우 엷은 한 겹만이 남아 그의 몸앞
을 가로막고 있었다.
운중자는 몸을 흔들거렸다. 턱 밑의 기다란 수염은 마치 예리한 비수
에 잘려진 것처럼 뭉텅 잘려져 나갔고 몸에 걸치고 있는 청포 역시
쫙! 쫙! 소리와 함께 거세게 밀어대는 장력에 찢겨져 나갔다. 그는 발
밑이 허전해지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핏빛같이 붉은 기주(氣柱)
와 엷은 자색의 태청강기는 마치 한 곳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들
두 사람의 간격은 이장인데 고명원이 성큼 걸음을 내딛자 운중자와의
간격은 이제 여덟 자도 안 되었다.
네 개의 손과 팔이 수평으로 뻗쳐지고 그들 두 사람은 서로 대치한
채 서 있었다. 이미 내공을 겨루는 상태에 이른 것이었다. 고명원의
두 손은 불타는 듯 했으나 안색은 창백한 잿빛을 띄우고 있었고 왼쪽
뺨의 그 커다란 흉터는 더욱 끔찍하도록 붉어졌다. 그의 상체가 천천
히 앞으로 숙여지면서 그의 눈에 감도는 예리한 살기는 더욱 짙어졌
다.
운중자의 그 비쩍 마른 몸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고명원의 육중
한 몸과 대조되어, 비쩍 마르고 왜소한 운중자의 몸은 금방이라도 짓
눌려 납작해지고 말 것 같았다.
상대방이 사장을 쪼개내자 운중자는 이미 감당하지 못하고 열세에
몰렸다. 상황은 갑자기 내공을 겨루는 상태로 변하고 말았는데 운중자
는 물러서지 않고 애써 지탱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장력을 돋구자 그는 항거하기가 어려
웠고 몸안으로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듯하여 살갗에 소름
이 끼치고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했다. 갑자기 몸이 얼음 구덩이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피를 토하여 내공을 증
가시키는 야릇한 재간이 도대체 어떤 이름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
었다. 별 수 없이 수십 년 동안 닦아 온 현공을 모조리 돋구고 애써
항거했다.
고명원은지금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맞은편의 운중자가 보여주
는 끈질긴 내공에 그 역시 야단났다고 생각했으며 자기가 위험을 무
릅쓰고 신공을 펼친 것을 후회했다.
원래 그가 사용한 것은 마교에서도 가장 악독하고 야릇한 천마해체
대법(天魔解體大法)이라는 신공이었다. 이것은 적과 동귀어진(同歸於
盡)하는데 사용하는 것인데 몸안의 모든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려 벼락
치듯 일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