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목걸이.
요즈음 왠지 나도 모르게 울컥 울컥하면서 잘 우는
울보가 되어있다.
나는 이러면 안되는데 여러번 다짐을 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아 민망할때도 더러있다.
나이가 많아지면 남성 호르몬 보다 여성 호로몬이 많아져
여성화 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오늘(8월26일) 아침 K.B.S에서 방영하는 황금연못의 마지막에
나오는 당신의 세월의 주인공을 보면서 나와 처지가 비슷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울었다.
대구에서 양복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반지없는 빈통,
그래도 이분은 빈통이라도 오랫동안 잘 보관해 내용물만 채우면
어느정도 옛날의 추억을 떠올릴수 있을것 같다.
나는 1977년쯤 울산시 유곡동에 한집안에 여러가구가 세(貰)을
살았는데 그중 한집에서 사택에 입주를 하면서 이곳에 구입해논
자기땅을 권해 구입하게 되었다.
이때 wife의 금붙이를 모두팔아 모자라는 부분의 돈을 충당하게
되었고 그후로 가슴 한구석에 큰 짐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중,
1994년 부터 1999년까지 강당 마을 리장을 하면서 그때보다 조금많게
보충을 해주었다.
농협에서 매월주는 수당을 상반기 6개월은 리장 협의회에서 관리해
년말에 수고했다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하반기 6개월은 본인들이
사용하게끔 협의회에서 관리해 한꺼번에 돌려준다.
3년을 그렇게해서 wife로 부터 미안한 마음에서 조금 벗어날수 있었다.
또,
뜻하지 않는 곳에서 어렵게 구입한 금붙이를 팔아야 되는 일이 생겼다.
1997년말에 I.M.F 때문에 국가에서 매입한다는 소릴듣고 한조각도
남김없이 모두 처분을 했다.
그래봐야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족지혈(鳥足之血:새발에 피) 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게 마련된 것이다.
나중에 T.V를 보니,
나라가 그렇게 어렵다고 난리들인데 지성인이라는 사람들 집에서
많은 달러와 금으로 만든 송아지가 나왔다는 소릴듣고
내 마음은 상당히 언짢았고 허탈했다.
그후(後),
아들이 제대를 해와 회사에 다닐때 첫 봉급으로 모자(母子) 둘이서
절을 표시하는 문양을 넣은 조그만한 반지를 만들어 지금까지
손가락에 끼고있다.
좋은 곳에나 나쁜곳에 나 때문에 사비(私費)를 사용한것은 아니지만
우리집에서 결혼식때 신부에게 해준 패물을 내가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때문이 아닐까?...,,
나는,
올해 시월이면 S.생명 보험회사에 가입했던 보험이 만기가 되어
몇 백萬원을 수령한다.
wife에게 메달만 남아있고 줄이 없으니 목걸리를 하라고 해도
"안해도 된다." 그러면 반지를 하라고 해도 반지낀 손가락을 내밀면
"이것만 있으면 된다." 하면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면 김치 냉장고가 오래 되었으니 조금 좋은걸로 바꾸어 보자고
제안을 해도 "촌(村)에서 우리집만큼 냉장고가 많은집도 드물다."면서
O.K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지난 날들의 일이 생각나
만감이 교차해서 일어난 행동을 보고 그제서야 언양에 가서
목걸이를 구입했다.
wife 曰 "요즈음 이렇게 굵게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사람이 살다보면 현금이 필요로 할때 제일 손쉽게 만들수 있다 아이가...."
이런 대답을 했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굵은줄도 아닌데.....
어찌되었든 팔고없는 금붙이를 조금 만들어 주니 내 마음은 한결 가벼운걸
어쩌나....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게 어려우니 마음만 있었겠지?
있는 사람에겐 돈도 아닌데.....
<칠순에 아내에게 꼭 주고 싶었던 선물.>
東方 徐希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