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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밥을 내오는 시간이 꽤나 늦어지고 있다. 그 사이 우리 부부의 침묵은 더욱 무겁고 두터워졌다. 나는 밥집을 잘못 찾아든 것을 후회하다 못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나저러나 모처럼 밥을 먹자며 사무실 앞까지 찾아온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도 먹지 않고 외출한 아내는 아마도 지금 배가 몹시 고플 것이다. 그러자 나의 뇌리에 한 달 전 아내를 촐촐 굶겼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아내와 함께 여행이랍시고 어디를 다녀온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습관처럼 오로지 홀로 배낭을 둘러메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곤 하였다. 아내와는 외국은커녕 국내여행도 한 일이 없었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그 버릇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한 달 전, 나는 무슨 마음이 생겨났는지 느닷없이 아내와 함께 온천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내일 모레 주말인데, 별일 없지?”
내가 불쑥 아내에게 던진 말이다.
“……?”
나의 뜬금없는 말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들렸는지, 아내는 대답 대신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소백산에 다녀왔으면 하는데, 당신이랑…….”
“예에?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당신 이제는 남의 다리에 고약도 다 붙이네! 내가 무슨 등산을 가본 일이 있기나 한가요?”
“등산을 가자는 게 아니라…….”
나는 마침 그날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뒤지는데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가 눈에 들어왔다. ‘유황과 불소를 다량 함유한 온천물에 닿은 순간 실크를 만지는 것 같은 매끄러운 피부……’라는 글이 시선을 끌었고, 온천과 연계된 ‘소백힐링 녹색나눔숲’도 마음에 들었다. 뿐만 아니었다. 바로 인근에 소수서원과 선비촌이 있고, 희방사와 부석사도 자리한다. 이 정도면 1박2일 가족 여행 코스로 그저 그만 아니겠는가.
나는 소백산 등산이라면 이골이 나도록 다녀왔다. 초여름 철쭉 산행과 혹한기의 눈밭 산행은 소백산이 으뜸이다. 그렇지만 소백산을 등산 목적이 아닌,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 나름으로는 아내를 배려한 여행계획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맛집’도 검색해보았다. 정년퇴직한 남자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과 설거지를 하는 시대라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는 내가 아내에게 조금은 보상을 하는 것이 될 듯했다.
아내는 1박2일 여행을 떠나자는 나의 말을 듣고 들뜨거나 기뻐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남편이 무슨 꿍꿍이속으로 불쑥 여행 제의를 하는지 의구심만 커지는 모양이었다. 이 남자가 정년퇴직을 한 뒤로 생활리듬을 잃고 비실비실하더니만……! 그 꼬락서니에 무슨 끔찍한 흉계라도 꾸민 것은 아닐까, 무슨 몹쓸 병에라도 걸려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것일까? 아내는 나를 두고 그런 걱정을 하는지도 몰랐다.
조금도 마음 내켜 하지 않는 아내의 고집으로 결국 우리는 1박2일 소백산 여행은 접고, 하루 나들이로 대신하기로 했다. 아내인들 온천리조트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하룻밤을 쉬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촌, 양가 규수와 호랑이의 전설을 안고 있는 희방사,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無量壽殿) 등으로 유명한 부석사를 왜 찾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아내는 나의 ‘1박2일 여행’ 제의에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나 보았다.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돌출행동에 대한 불안과 불편함이 은근히 가슴을 짓누른 것도 같았다. 남편의 평소 행동거지와 너무 동떨어진 여행 제의에 “발병이 날까봐 겁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하루나들이’도 분에 넘친다는 것이다. 결국 아내의 뜻대로 우리는 물돌이동으로 이름난 영주(榮州)의 무섬과 예천(醴泉)의 회룡포를 하루에 다녀오기로 했다.
하지만 이 나들이는 부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파열음부터 자아냈다. 목적지인 경북 영주와 예천을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나는 길을 재촉하느라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 아침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후딱 때우는 게 내 방식이다. 그런데 아내는 비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계속 차를 몰고 가자고 했다. ‘자린고비’ 아내는 이웃 동네 할머니들이 열고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들고 가자는 것이었다.
“김밥을 꼭 사들고 가야 해?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 손맛이 대단하다고요. 다른 김밥하고는 맛이 달라요.”
“이렇게 비좁은 골목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다니! 제깐게 아무리 맛있어봤자 김밥 아닌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이면 후딱 시간도 줄일 텐데!”
“아, 그렇게 졸갑증이 나요? 그리 짜증나면 바로 갑시다. 내가 모를까봐, 당신의 그 ‘유별난 병’이 또 발동하나 보네!”
아내는 나의 ‘유별난 병’을 떠올리며 아주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동네의 세 할머니가 어울려 문을 열어 인기가 높다는 그 김밥을 싫어했다. 아내는 할머니들의 손맛이 곁들여져 맛이 좋다고 했지만, 나는 그 ‘할머니 김밥’에 ‘과민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지은 밥이 아니면 잘 먹지 못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지은 밥에 습관처럼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내의 말대로 나의 ‘유별난 병’이었다.
나는 아내가 짜증을 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차 핸들을 꺾어 골목길에서 빠져나왔다. 아내는 밤새 잠을 설친데다 배도 고팠던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곧장 자동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우리 부부가 좀처럼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아무 밥이나 잘 먹지 못하는 나의 ‘유별난 병’ 탓이 클 듯하다. 나는 밥이 싫으면 분식으로 때우면 되지만 아내는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우리는 남해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려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꺾어들었다. 아침밥을 걸렀으니 배가 고팠다. 아니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는 동안 우리 부부는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아 배가 더욱 허전하게 느껴졌다. 김밥을 사지 못한 아내는 얼굴이 새초롬하다 못해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아내는 아무 밥이나 잘 먹지 못하는 나의 ‘유별난 병’에 오늘 하루도 얼마나 더 질려야 할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으리라.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꺾어든 뒤 처음으로 만난 칠서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면 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우동 한 그릇 후딱 비우면 배를 채우고 시간도 절약이 됐다. 나는 아내에게 먼저 화장실에 들렀다가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나는 우동을 파는 점포 앞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갈뿐 받지 않았다.
나는 아내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차를 세워둔 곳으로 되돌아 가보았다. 주차장 울타리 쪽의 등나무 그늘 한편에 아내가 쪼그린 채 앉아있었다.
“뭐야, 사람 실컷 기다리게 하고! 우동 안 먹어?”
“…….”
“내말 안 들려?”
“우동, 생각 없어요.”
“순두부, 비빔밥, 뭐 다른 걸 먹든지!”
“…….”
“왜 대답을 안 해?”
“아무 것도 생각이 없다니까!”
아내는 김밥을 사지 못한 때의 새초롬하다 못해 얼굴색이 하얗게 바뀐 그대로였다. 아내는 한 번 토라지면 그것이 하루 종일 이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내의 하얗게 바뀐 얼굴이 무섬마을과 회룡포에서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성천에 걸려 있는 긴 외나무다리와 ‘물위에 떠있는 전통마을’ 무섬, 뿅뿅다리로 건너가는 ‘육지 속의 섬’ 회룡포에서도 아내는 그 얼굴 그대로였다. 덩달아 우리는 배를 촐촐 굶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