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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묘음보살(妙音菩薩)
들뜬 마음으로는 지혜로움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좌선이나 명상을 할 때 지혜가 나타 난다
마음이 답답하고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용히 앉아 주력이나 염불 참선이나 명상을 잠시 하게 되면 마음이 가라앉고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가 떠오를 것이다. 사람은 사람사람이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느끼고 소중한 줄 아는 것이 사람이다. 남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얼굴이 못생기고 가난하게 산다고 업신여기고 무시한다면 축생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독수리 새끼들은 두 마리 중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쪼아서 죽어 버린다.
부자로 산다고 가난한 이를 주눅 들게 하고 돈의 힘으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독수리와 같은 인간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남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하는 일이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가장 존중해 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진리 그 자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몸매와 미모에 대한 상품선전이 모든 광고를 장악하고 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사람은 사물을 보고 생각을 내고. 모양을 보고 마음을 낸다.
자기 미모만 찾는다면 자식을 훌륭하게 키울 수가 없다 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의 가치관이 전도 대 있기 때문에 훌륭한 교육을 보고 자랄 수 없다.
인간은 내면의 지성을 지닌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얼굴 보다 는 마음이 예뻐야 된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상식이 아닌가.?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보고. 읽을 줄 아는 그런 눈이 있어야 한다.
자기중심이 선 사람이 묘음보살이다. 겸손하고 공손하고 차별 없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비가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묘음보살이다.
선근 공덕,(善根功德) 남을 업신여기면 자기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생긴다.
남을 무시하면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이 생긴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선근이다.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은 마음이 참 공덕이다. 백 팔천 만억 나유타 세계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다.
부처님 광명의 지혜가 없다면 꾸려가기 어려운 세상이다.
모든 생명을 부처로 섬기는 불심"이 백 천 나유타 세계를 지키는 질서이다.
계향(戒香)-모든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것이 계향이다.
정향(定香)-안정을 취하는 것이 정향이다.
혜향(慧香)-안정을 취하면 지혜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혜향이다.
혜 탈향(慧脫香)-모든 문제는 지혜로서 회향 혜 탈향이 되는 것이다.
38. 안목(眼目)
삶. 이란 여러 가지 형태로 사람마다 다르지만 인생이란 삶은. 누구나 똑같은. 희로애락 에 불과하다.
그래서 만사만생이 연기요. 인연에 의해 생 하고 멸한다.
지혜가 짧으면 육안으로 보이는 모든 형상만 보아지고 본질을 보지 못한다.
같은 형상 모양이라도, 천안으로 보는 형상의 본질은 다르다.
법안(法眼)은 진리로 보는 눈이다.
혜안(慧眼)은 사물의 본질을 보는 눈이다.
불안(佛眼)은 깨달은 안목 지혜를 바로 보는 눈이다.
모든 것에는 본질이 있다.
이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지고 한 가치 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전도된 지견에, 혜안이 없으면 세상은 아수라장 되고 말 것이다.
삶에 가치가 물질이 전부라는 미혹함. 에서 깨어나 진리의 눈으로 본질을 보고 높은 안목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구의 모든 인종이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명실 공히 "오안"이 다 있다.
오안(五眼)=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肉眼. 天眼. 慧眼. 法眼. 佛眼.)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은, 육안에만 갇혀 탐욕의 무명 때문에 보이지가 않은 것이다.
미혹 한 마음.!
육안 (肉眼)을, 혜안으로 밝히는 공부가 불교 수행법이다.
하나의 열매가 열리는 까닭은, 한 톨의 씨앗에서 인연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 해와 달과 비바람 눈보라를 거쳐야 비로소.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안목이다.
그 공부가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의 수행 공부이다.
이 세상에 자기 것은 본래 하나도 없다.
또 아무리 많은 것과, 법적으로 등기되고. 금은보화를 소유하여도 갈 때는 종이 한 장도 가져가지 못한다.
공(空)에서 연기(緣起)하여 온 것이 나요,
수없는 욕망만 추구하다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나다.
생명의 존재는 해와 달과 땅과 바람 물. 이지.!- 재물이나 권력 명예가 아니다.
전생에서 타고 온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생에 오기 전에. 천지가 생기기 전에. 타고 온 나의 천성(성질)을 말한다.
어머니 한 뱃속에서 태어나도 언니와 내가 다르고. 형님과 내가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한 부모 배속에서 태어나지만. 업인중생(業人)각자 성격과 성품 성질머리가 다 다르다.
자신의 본질인 성품(性品)을 살펴라.
모든 일의 본질("물은 젖는 것이 본질이다")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본질을 보지 못하면. 늘 짜증내고 신경질 내며 화나고 성질만 내는 자기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급하고 서두르며 자기 고집에만 갇혀 살면 사랑을 주어도 사랑받지를 못한다.
자기 성격을 고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가 없고. 행복할 수가 없다.
편협하고 고질화 된 자기에서 허물"을 벗어라.
뱀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중생의 허물을 벗고. 부처의 옷으로 갈아입어라.
중생의 바탕이 「불성」이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루에 「반야심경」을 3번 이상 독경하는 노력을 한다면. 자기 인생" 자기 성격"을 바꾸어 부처의 길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어진다.
39.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을 어떠한 인연으로서 관세음이라 하는가.?
어느 곳 어느 때 든지 잘 맞게 응하고 서원은 큰 바다와 같이 깊어서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이다.
수 억겁을 천억 부처님을 받들어 모신 인연 공덕으로 부처님의 위 신력을 받으신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부르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소멸하여. 불속에서도 타지 않고, 물에 빠져 떠내려가도 관세음보살의 위 신력으로 물에서 건저 주시느니라.
위험한 절벽에서도 떨어지지 않으며 원수나 강도에게 참혹한 일을 당하려 할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거룩한 힘으로 흉악범을 물리쳐 주느니라.
흉악범이나 나찰이나 여러 가지 악귀들을 만나 드 라도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거룩한 힘으로 흉악한 범죄자들로 부터 보호해주고 그것들이 헤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억울하고 핍팍 을 받는 괴롭고 고통스런 일이 생기 드라 도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지혜의 힘이 나타나 모든 고통으로 부터 구해 주시느니라.
관세음보살의 위 신력은 신통하고 묘한 힘을 능히 갖추시고. 지혜의 힘까지 널리 닦아서 시방세계 어느 곳 이 든지.갖가지 몸으로 나타 내시여 도와주시고 구제해 주시느니라.
자비는 체(體)가 되고 .계행은 우뢰(電)가 인자한 마음은 아름다운 큰 구름이(雲) 되어 감로의 법 비를 뿌려 주시고, 번뇌의 뜨거운 불꽃을 소멸해 주시느니라. 관세음보살은 청정한 자비심으로 중생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 죽는 재앙에서 능히 믿고 의지할 보살이니라.
「천수천안(千手千眼) 천 가지 손으로 구해주시고. 천 가지 눈으로 보살펴 주시는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시다.
"모든 삶은 축복이다." 삶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은 축복을 나누어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바로 보신 부처님의 가르침 인간의 본성이란 힘이다.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기만 하면 모든 일과 모든 문제가 풀리는 힘과 용기 기회가 생기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모든 문제를 예측 할 수 있는 지혜. 통찰력이 생기는 힘이다.
그 것을 염송하고 부르고 쌓아 가면 삶이란 무한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한하고 슬기로운 부처님의 가르침 은 순수한 「마음」을 말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이 보다 아름답고 고우신 자비의 어머니는 없다.
40. 자비등불(慈悲燈佛)
선남선녀 여러분 선지식의 보살핌으로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마음에 평안과 자유가 얻어집니다.
선지식(善知識)의 지혜를 배워서 무명의 업장을 씻어내며. 선지식의 인욕 심을 닦아서
성냄과 분노 심을 잠재웁니다.
선지식의 선정으로 수행하여 모든 교만을 떨쳐 버립니다.
선지식을 공양하므로 마음의 부자가 되어 집니다.
행복은 불행할 때 가장 목말라하고, 누구나 아프고 병들어 있으면 죽음이 두럽 습니다.
부부가 싸우고 가정에 고함 소리가 나면 의미 행복의 여신은 달아납니다.
실수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성공한 이는 없습니다.
넘어지고 실수한 이가 성공할 때 많은 사람들이 더욱 칭찬을 보냅니다.
재산과 재물을 따라서 결혼한 사람은, 백발백중 불행하여지고. 마음과 마음으로 결혼한 사람은 가난해도 행복합니다. 황금의 욕망, 애욕의 욕구가 인생을 망치고 병들게 합니다.
돈과 재산은 삶의 필요한 일 부분이지, 생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는 진정한 자비입니다.
향락과 오락 산데리아 래드카페가 결코 행복이 아닙니다.
남편을 존중하고 아내를 섬기는 그런 마음이 선지식의 가르침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보살행이요
자신을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이 성불입니다.
남편의 생일을 챙겨주고 아내의 생일에 꼭 선물하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41. 진리(眞理)
불교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불교를 알거나 모르거나 점수의 차별이 없다.
불교는 누구나 자유롭게 규제 없이 믿고 따르며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의 생명 과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것을 여실히 일깨워 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진리와 방편,
불교의 그 많은 방편 중에 어떤 것이 진리 인가.?
진리란,?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국가 어느 종교를 믿든지 다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방편 이란,?
한 시대 한 민족 한 국가 한 종교 에만 해당 된다든지 더운 나라 추운 나라에만 적용 된다든지. 옛날에는 맞고 지금은 맞지 않은 것들은 모두 방편에 속한다.
불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지혜와 광명으로 인간을 제도하여 도와주는 것이다.
불교는 지혜 광명의 종교다
하고 많은 지혜 중에도 깨달음의 지혜가 제일이다.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십만 팔 천리 국토를 다 비추었다 하신다.
이 말씀은 모든 생명은 빛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진리의 말씀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삼계(三界)=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육진(六塵) 육근(六根) 육식(六識) 십팔천이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일생을 살아간다. 는 것이다.
우리 들은 빛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특히 전기가 없으면 온 세상 모두가 멈춰 버린다.
빛이 없으면 길을 걸어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집에 돌아가려다 넘어지고 부디 처서 상처투성이가 되고 결국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도 된다.
인간의 지혜란 이와 같이 전기불과 같은 것이다.
진리의 지혜가 없으면 인간의 삶은 암흑의 천지에서 허둥지둥 갈팡질팡 살게 대어지는 것이다.
지혜가 없으면. 곳곳에서 상처받고 부디 치며 넘어지고 다쳐서 평생을 상처투성이로 살게 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살다가 일생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넘어지고 패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무량광명이라든지. 무량대복이라고 하시는 말씀의 뜻은 인간의 지혜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불교는 미신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끝없는 인간의 깨우침 지혜를 말하시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달래려고 백호광명을 정수리에서 놓아 십만 팔 천리를 비춘다는 방편을 설 하시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등불을 밝혀 맞이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등을 밝히는 것이다.
거리마다 절마다 법당마다 인등을 밝히고. 촛불을 밝히는 것은. 불빛이 없는 암흑천지에서 부디치고 상처받고 넘어지는 중생들을 밝은 길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에서 인 것이다.
진리란! =암흑속에 어리석고 어두운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빛을 말한다.
어둡고 캄캄한 터널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려는 부처님의 끝없는 자비심을 말하는 것이다.
나라는 아집과 내가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어두운 터널에 머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혜란!= 조건 없고 생색 없는 자유로운 평등한 가치이다.
명품 인간! = 자신의 브랜드! 그것이 바른 깨우침이요. 바른 지혜가 될 것이다.
42. 부처님 십대제자(十大第子)
부처님께는 십 대 제자가 있다.
첫째 1. 지혜 제일 사리불존자.
둘째 2. 신통제일 목 견련 존자.
사리불 존자와 목 견련 존자는 부처님 보다 먼저 열반에 드신 분들이다.
그래서 세 번 째 마하가섭 존자가 상수제자가 되었다.
셋째 3. 투타제일 가섭존자.
부처님 열반 하신 후 오백나한을 모아놓고 아난다와 우바리 존 자를 경과 율의 초안자로 지명하고 부처님 경전을 결집하신 십대제자중 가장 수승한 상수제다.
넷째 4. 천안제일 아나 율 존자.
아나 율은 석가 족 출신으로 아주 똑똑하고 영민한 젊은이였다고 한다.
출가한 이후에 어느 날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자리에서 졸다가 부처님께 지적을 받게 되어 그 뒤부터는 잠 을 자지 않고 수행하다가 눈에 병이 났다고 한다.
눈병을 치료하든 의사 지바카가처님께 눈병사실을 알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눈은 잠을 먹이로 하니 잠을 자가면서 수행하라 이르셨다.
아나 율이 부처님께 여쭙기를 그렇다면 깨달음인 지혜는 무엇을 먹이로 합니까.? 하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깨달음이란 정진을 먹이로 한다. 그 말을 들은 아나 율은 설혹 눈이 멀드라도 깨달음을 위해서 정진을 먹이로 하겠습니다. 하고 발원하였다.
그는 결국 눈이 멀었지만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눈 열리고 하늘의 눈을 얻어 천안제일 아나 율 존자가 되었 다.
제오 5. 해공제일 수보리존자.
금강경에 나오는 주인공 제법이 공한 이치 공의 도리을 가장 밝게 아는 행공제일 존자다.
제육 6. 논의제일 가전 연 존자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논리적으로 다른 이교들과 논쟁을 할 때 불법을 가장 합리적으로 말하는데 가장 뛰어 난 논의제일 존자이다.
제칠 7. 설법제일 부르나 존 자.
부르나 존자는 그 어떤 사람도 불법을 비난하고 헤치려고 하는 그런 사람까지도 모두 다 교화하는 설법의 일인자였다.
제팔 8. 지계제일 우바리 존자.
우바리는 석가족의 수드라 노예 출신이다. 왕족 귀족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천민 출신이었다. 출가해서 부지 런히 정진하여 부처님의 십 대 제자가 된 분이다.
출가사문에는 빈부귀천 유무식이 없다는 평등한 도리를 나타내시는 편견이 없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제구 9. 밀행제일 라 후라 존 자.
라 후라는 부처님의 아들이다.
출가인의 대부분은 스스로 출가를 결심하지만. 라 후라 의 출가 동기는 이모와 아버지에 의해서 출가하였다. 어쩌면 강제로 출가한 것이기 때문에 어린 라 후라는 승단의 규칙이나 규범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말 썽을 피웠다. 자신의 아버지가 부처님이니 종횡무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 했다. 그런 소문을 들은 부처님 께서는 많은 염려를 하셨다. 한다.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시는데 마침 라 후라 를 만나 새 세숫대야에 물을 떠 오게 하여 부처님께서 직접 라 후라 의 발을 씻어드렸다.
너의 발을 씻은 물을 라 후라야 너는 먹을 수가 있겠느냐.?
아니 -.! 부처님 어떻게 그 더러운 물을 먹으라 하십니까.?
그렇다면 물을 비우고 깨끗이 씻은 다음 내일 아침밥은 이 세숫대야에 담아 먹으라 하였다.
아니 부처님!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을 담았든 그릇에 어떻게 더러워서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라 후라는 거절하였다.
그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은 세숫대야를 조용히 치우면서 말씀하셨다.
라 후라야 사람이 그렇다 사람의 몸은 누구나 다 본래 깨끗하지만. 그 마음이 물과 같아서 거짓말을 행하면. 발 씻은 물처럼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 라 후라지만 발을 씻 은 물을 담은 세수 대야를 비교해서 설명하시는 부처님 의이 말씀을 듣고 라 후라는 크게 깨닫고 뉘우쳤다.
아 그렇구나.!
계율을 어기는 일은 바로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요.! 몸까지 더러워 저서 사람들이 가까이하려 하지를 않는구 나! 그 이후부터 라 후라는 부지런히 정진하게 되었고 자신의 정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밀행하는 수행자가 되었다.
아들 이어서 십 대 제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수행 능력이 높아서 십 대 제자에 든 것이다. 요즘 세상에 자기 아버지가 부처님처럼 높은 위치에 있다면 거드름을 피우기 마련일 것이다.
제십 10. 다문제일 아난존자.
부처님을 오랫동안 시봉하고 부처님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알고 기억하는 제자다.
부처님께서는 스물아홉 살에 출가하셨고. 설흔 다섯 살에 깨달음을 얻어서 붓다가 되셨다.
그리고 4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다니면서 설법을 하셨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부처님이 성도 하신 하신 20년 후부터 여러 제자 중에서 선출되어 부처님을 시봉 하게 되었다. 부처님 멸도 후 대가섭을 중심으로 전을 결집할 때 부처님의 모든 법문을 기억해 내어 부처님 경전 결집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신 "여시아 "(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 다문제일 의 아난존자 다.
43. 詩
모내기/무불
텅 비였든 들녘 에.
연 초록 치마가 춤춘다.
모줄 대신 모내기 이 양기 따라.
질서 정연하게
연초록 치마가 나부낀다.
철 뻑 이는 황토 물 사이로.
포 기 포 기 시집가는 모.
온통 들녘 이 시집가는 잔치 날이다.
땅. 과 물.과 바람. 이 .
시집살이 밑천이다.
수답으로 가고 천답으로 간다.
긴 여름 땡볕. 장마 지나면 .
섬섬옥수. 열매가 주렁주렁 익으리
그 옛날 모심던 날.
엄마 젖은 진 흑 탕 손으로
젓꼭지 껴내어 동생 입에 물리든 .
곱디고운 엄마 모습이
그리워지고 그리운 날이다
44. 나(我)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 한다.
우리의 육신은 생로병사(生老病死) 한다.
우리의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 한다.
물질적인 것이든 생명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항상 하는 것은 없다.
무아.(無我)-아트만 -나라고 할 것은 없다.
나 다라고 할 때 나는 항상 남과 다름이 구별되는 것을 말한다.
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어느 수행자가 산 넘고 물 건너 온갖 난관을 거치며 수수 만 리 길을 걸어 스승님을 찾았다.
문을 열자 말자. 큰 소리로.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고 물었다.....!
수행자는 말문이 꽉 막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으니 스승은 아무 말도 없이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나라고 하는 것이 뭔가?
나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데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다시 찾아 스승님께 아뢰었다.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때그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그 이름과 역할도 다르다.
버스를 타면 승객이요. 마트에 가면 손님이요. 백화점에 가면 고객이요.
집에 가면 아내요. 친정에 가면 딸이요. 아이를 만나면 엄마요. 학교에 가면 학부 형.이다.
이렇듯 인연에 따라서 나라는 존재가 때에 따라 규정되어진다.
나-아트만. 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링컨」의 노예 해방을 통해서 자유가 인류의 양식이 되고. 인종차별의 잔악한 차별개념에 맞서 싸워 얻은 평등을 얻은 「만델라」는 이 시대의 평화주의자다.
그를 통해서 우리의 지난 역사를 참회하고 살펴 바야 한다.
문명에서 깨어나지 못해 파별싸움을 일삼고 양반과 상놈의 개 급을 만들어 양반의 자식은 잘못해도 용서가 되고 상놈의 자식은 조금만 잘못해도 형벌을 내리든 시대가 있었다.
배우고 깨어나야 한다.
「넬슨 만델라」가 남긴 말이다.
"눈에 보이고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훨씬 크고 아프다."
"남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은 잔인한 운명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어 내는가가 사람들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낸 다".
"인생에서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45. 자업자득(自業自得)
하나의 컵을 가지고 크다 적다 무겁다 가볍다 할 수가 없다.
크다 할 때는 적은 것이 있기 때문이요 적다 할 때는 큰 것이 있기 때문에 크게 보이거나 적게 보이는 것이다.
독립된 컵 그 자체로는 크다 적다 가볍다 무겁다 할 것이 아니다. 란 말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 이 모두 크다 적다 가볍다 무겁다 새것이다. 헌 것이다 차별을 두고 구분을 하고 좋다 싫다 를 연발하며 시시비비 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학교에서 꼴찌 하는 학생이 나오는 것이고 공부 못하는 학교 아이들 중에도 일등 하는 학생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하지마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할 「요소」"는 없다는 것이다.
목욕탕 안에서 옷을 입고 있으면 잘못된 행동이다.
목욕탕 밖에서 옷을 벗고 있으면 잘못된 행동이다.
누워있고 앉아있고 잠자는 것. 잠잘 시간에 깨어있는 것 모두가 그와 같은 이치다.
자는 것. 깨는 것. 그 자체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인연을 따라서 만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我). 나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없다. 는 것이다. 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깊이깊이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나(我). 나라고 하는 것은 진정 없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그와 같다.
친한 친구 동료가 죽었다. 친구의 부인이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살려니 힘이 들어 자그만 빠를 운영하였다.
친구인 그 남자는 친구부인이 어렵게 생각되어 도와준다는 의미로 퇴근길에 그 집에 들러 조금씩 술을 팔아주고 다녔다.
친구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르나 그 남자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행동이 나쁜 사람이다.
한 남자가 저쪽 입장에서 보면 좋은 사람. 이쪽 입장에서 보면 나쁜 사람이 된다.
동에서 보면 서산이요. 서산에서 보면 동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무아」(無我) 요 「공」(空) 이라 한다.
더럽고 깨끗하고 옳다 그르다, 그 자체는 모두가 마음이 짓는 것이다.
존재 자체에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이것이 죄다 할 자성이 없다.
이것은 다만 어리석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문둥병 3조 승찬 대사가 2조 혜가스님을 찾아가. 저가 지은 죄 문둥병이 된 천벌 받은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그렇다면 자네가 지은 죄를 내 앞에 내어 놓으면 죄를 사하여 주겠네.!
밖에서 찾든 죄를 안 으로 안 으로 비추어 조견 (照見)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죄"란 것이 없습니다.
이미 나는 자네의 죄를 다 사하였네.!
「"불수자성수연성"」(不修自性隨緣性)스스로 성품을 가진 것이 없고 다만 인연을 따라 이루어질 뿐이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또한 불행하다.
사실이 그러한데 우리들은 잘못 알고 살아가고 있다.
남의 불행을 딛고 자기가 행복하기 위해 온갖 권모 슬 수를 다 쓰고 사는 것이다.
깨달은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우리들은 모두 연관되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엄격히 말하면 모두가 나의 일 부인 것이다.
다섯 손가락이 길고 짧지만 손이란 하나에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손가락은 각기 짧고 길고 다른 별개이면서 물건을 잡고 펴고 하면서 같은 역할을 하는 사실이요. 그것이 실상이다.
우리들의 삷 의 손가락처럼 서로 길고 짧고 다르지만 그르나 그것이 별개의 것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별개로서의 역할은 할 수가 없고 그 기능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하며 아껴줘야 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바라보고 돌보아주며 살아가야 한다.
어리석으면 눈을 뜨지 않고. 길을 가는 사람이다.
알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하면 스스로 무지와 무명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업자득」" 이것을 깨달으면 누구나 어려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46. 무소유(無所有)
중생의 죄는 본래 타고난 것이 아니다.
중생의 죄는 무지(無知)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다.
싸우고 폭행하고 분노하고 성내고 헌 담하고 짜증내고 차별하고 질투하는 모든 것이 무지하고 미혹한데서 일어나고 나타나는 것이다. 불법을 만나고 불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무지와 미혹에서 깨어나려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되면 모든 고통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된다.
나. 가없다.
나가 없다는 말은 나를 더 풍부한 나라는 것이다.
인연 따라 나 투는 풍부하고 넉넉한 나를 찾자는 것이다.
밥을 할 땐, 밥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택시를 타면 승객이 되지만 택시를 내리면 더 이상 승객은 아니다.
나라는 것은 나이지만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나 역 활이 달라지는 것이다.
국무총리라도 지하철을 타면 승객일 뿐이다.
지하철 안에서 국무총리라고 특권을 누리려 한다면 그것은 갈등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스님이 고향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 이지만 아버지가 절에 있는 아들을 찾아오시면 거사님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 관계규정의 도리다 .
사람과 사람이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인연을 바로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인연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나라는 뭔가를 웅 켜지고 있는 고집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자녀를 돌 볼 때 시기와 때를 잘 알고 돌봐야 한다.
애지중지 어릴 때 는 잘 돌봐야 하지만 독립을 시킬 때가 되면 냉정하게 독립 시켜야 한다.
사춘기를 넘어가는데도 어린아이처럼 귀엽다고 자립심 자립성을 키우지 않으면 때를 놓쳐버리게 되어 평생을 똥 치워 줘야하는 애완동물이 되 버리고 만다.
혼자 살 때는 처녀요 총각이다.
그때는 누구를 만나든 자유로운 범의 내에서 누구와 만나든 상관없다.
그르나 누구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 자기의 존재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부부란 규범에 맞추어 새로운 자기의 의식이나 행동반경이 설정되는 것이다.
처녀 때처럼 총각 때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면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왜 내 자유를 구속하느냐 처녀처럼 행동 하겠다 한다면 바로 그는 무지하고 미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과 자유는 규범과 책임을 동반 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
그와 반면...........
택시를 탓을 때 만 승객이지 택시를 내려는대도 승객을 고집 하면 안 된다.
우리들의 존재는 이렇게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스스로 독립되고 고정된 성품이 아니고 인연 따라 변화무상하게 나 툰 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문으로 불수자성 수연성 (不受自性受緣性 )이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 법"을 깨닫게 되면 모든 억매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어진다.
한을 품었든 감정도 풀어지고 이해하지 못했든 것들이 모두 이해가 되어 진다.
웅 켜지고 있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어진다.
나. 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 내. 것이라고 고집 할 것 또한 없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무소유의 정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7. 반야(般若)
사람들은 자기 환경과 입장에 따라 옳고 그름이 일어난다.
깊이 알고 보면 입장이 다를 뿐 옳고 그른 것이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다.
생각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고. 남녀가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우리들은 옳다 그르다. 높다 낮다. 싫다 좋다. 를 연발한다.
잘못 이해하고. 잘못생각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월의식 때로는 열등의식에 괴로워한다.
이러한 모든 착각과 어리석음이 온갖 갈등의 원인을 만들어 낸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확연히 알면 갈등의 괴로움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무상과(無相) 무아"(無我) 존재의 참모습이 바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이란 말이다.
이 도리를 모르면. 하는 일마다 힘들고 온갖 일들이 괴로움의 투 성이다.
그래서 중생의 삶은 일체가 고(苦)요. 괴로움의 고통이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확연히 적정열반 해탈의 자유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색불 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불이(不異)-다르지가 않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이 곧 공이요, 공. 이 곧 색이다.
무유정법(無有正法)-정해진 법이 없다.
동 에서 보면 서산이요. 서 에서 보면 동산이다. 남에서 보면 북산 이요 북에서 보면 남산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서산(西山) 이냐.? 동산(東山) 이냐.? 산 이냐.? 물이냐,? 그것은 서울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기차를 타라는 말씀이다.
색(色)-형상 에도 실체가 없다.
수(受)-느낌 에도 실체가 없다.
상(想)-생각 에도 실체가 없다.
행(行)-의지 에도 실체가 없다.
식(識)-아는 것에도 실체가 없다.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 느끼고 생각하고 의지해서 아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그래서 오온인 색, 수, 상, 행, 식, 이 다(色受相行識 )공"하다는 가르침이다.
제법이 공한도리.= 지난밤에 먹었든 그렇게도 시원한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에 담겨든 물이라. 구토하고 구역질이 나는 이 도리가 무엇인가.?
허 허 모두가 마음이 짓는- "일체가 유심 조"(一切唯心造)로구나.
불법이 중국에 있는 것도 아니요. 불경책 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이 한 마음속에 있구나.!
48. 사람이란 천재성(天才性)
모든 존재의 참모습은 「제법공상」(諸法空相)이다.
드러나 보이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중생들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보고 아는 것이 아니다.
마치 파도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크게 치고 작게 치고 길게 치고 짧게 치지만 바다전체를 보면 파도가 없어 저도 바다 속에 존재하고. 파도가 생겨나는 것도 바다를 연해서 일어난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이란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은 다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란 것을 알아차릴 줄 알아야 한다. 무상하기 때문에 파도가 저 마음대로 길게 변하고. 변하기 때문에 짧아지기도 하지만 바다를 여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행이 무상하여 「변」하므로 "불생불멸하고 "불구부정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感) 한다는 것을 깨우쳐 줌이다.
2차원(二次元) 이란! -평면을 말한다.
평면이란,-S 측과 Y측만 있고 높이가 없는 가로 세로. 만 있는 것을 말한다.
둥근 선 안에 개미를 한 마리 두고 그 개미가 선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오게 할 수가 없다.
개미를 나오게 하는 방법은 개미를 높이 들어 선 밖으로 집어내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3차원(三次元)이라 한다.
2차원(二次元)에서는 높이가 없으니 개미를 선 밖으로 옮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든 다면 우리들은 거의가 1차원(一次元)에서 살아가고 있다.
1차원(一次元)이란-,수직을 말한다. -오직 앞뒤만 있고 좌우가 없다.
그것은 마치 파이프 속과 같은 것이다. 파이프 속에서는 오직 앞뒤만 있지 좌우는 없다.
옆으로 비껴갈 수가 없는 오직 수직선이다.
두 개의 구술이 파이프 속에서 만나면- 피해 갈 수가 없다.
하나가 앞으로 가면 하나는 뒤로 가야하고- 밀고 당기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1차원(一次元)의 세계에서는 너를 밀어내야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밀려나면 나는 죽는다. 하는 강박 관념밖에 없다.
네가 죽고. 내가 살든지. 내가 죽고 네가 살든지 그 길밖에 없다.
여기에서..........!
2차원(二次元)의 세계를 만나면 -구술하나 가 살짝 옆으로 비껴 주기만 하면 된다.
파이프 속 관속이 (자기 고집. 아만. 아상,) 아니라면 옆으로 살짝 움직여 주면 불가능한 일이 해결방법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너무너무 쉬운 방법이 있지만 - 1.차원의 세계에서는 자기 아집에 갇히어 캄캄하여 방법이 없는 것이다.
1.차원을 높이면(반야. 지혜)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다.
알고 보면- 깨닫고 보면 상대를 이기고 지는 문제도 아니요.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차원 이해를 달리하면- 너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보람되게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되고.
차원을 달리하면 -나는 나되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얼마든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너 되로 자유롭고. 나 되로 자유로운 "제법의 이치"는 "만법이 공하다"는 도리를 하루빨리 깨치는 일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자기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마치 파이프 속 같은 수직의 1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을 보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게 되고. 사람을 유괴하고. 빗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부모형제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천인공노할 짓을 하는 것이다.
"반야심경 270"자 속에는 4차원(四次元)의 높고 무량한 지혜 광명이 들어 있다"
한 차원만 높이면- 생사가 문제 아니라. 인생전반에 걸친 모든 문제를 쉽게 풀어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인생 궁극의 목표인 무여열반 해탈지견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여열반 해탈지견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가슴 내 마음 내 피 속에 바다처럼 깊이 잠자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모두 1차원의 세계 「시비」에 걸리고 갇혀 살아가고 있다.
그르나 한 차원만 높이면 옳다 하지만. 옳은 것만 고집하지 말고 싫다 하지만 싫은 것을 고집하지 않아야 하는 도리를 알게 되어- 시비와 다툼 의 문제에서 해방 될 수가 있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깨달음의 세계. 제법의 공한 도리를 아는 깨친 사람의 세계이다.
범부의 세계가 1차원 이라면 깨달음의 세계는 2차원의 세계다.
범부의 세계가 2차원의 세계라면 깨달음의 세계는 3차원의 세계다.
범부의 세계가 3차원의 세계라면 깨달음의 세계는 4차원의 세계다.
같은 차원에서 보면- 문제 해결의 방법인 공식은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어떤 문제든 한 차원을 높 혀서 보는 안목 그것이 바로 차원을 높이는 「반야지혜」(般若智慧)다.
행하고 주하고 앉고 서고 말하고 침묵하고. 자신의 인상 품격을 높이는 사람이 되라.
49. 염불과 기도(念佛祈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곳이다.
불생불멸하며 불구부정한 아름답고 영원한 세상이다.
끈임 없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끊임없이 사라지고, 더러운 것은. 더러운 대로 깨끗한 것은 깨끗한 대로 덜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
초 한 자루에 불을 켜면 차츰차츰 불꽃이 타서 연기로 사라진다.
결국 불도 생겨났다 없어지고. 초도 차츰차츰 불에 타 사라져 버린다.
초와 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무거운 분자는 땅으로 가라앉고.(地) 습(濕.)한 분자는 물. 기운으로 사라지고(水). 뜨거운 분자는 화기 속으로 사라지고(火).끄지 럼 연기 분자는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風)
地. 水. 火. 風. 네 분자가 다시 모여 하나의 원자를 다시 만들고 형상으로 나타나 다시 초가 되고 불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분자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가거나 달나라로 간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땅 덩어리 우주공간에 DNA로 체류하다가 새로운 연기 인연에 의해서 또 개발되어 생겨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람 축생은 (胎)탯줄로 태어나는 DNA를 가지고. 란(卵). 계란 고기 알 곤충 알 알로 부화하는 DNA로 태어난다.
태. 란, 습, 화. 유정 무정이 다 (胎卵濕化.有情 無情)그러하다고 배웠다.
불구부정(不垢不淨)-똑 같은 떡집에서 떡을 하여서 한 곳은 잔칫집에 배달하고. 한 곳은 초상집에 배달하였다.
임산부가 잔치 집 떡을 먹으면 좋고. 초상집 떡을 먹으면 부정을 탄다는 것이다.
마음의 인식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의 오해가 불러오는 어리석음의 소산이다.
인식과 착각의 소산이지 떡 그 자체에 무슨 결함이나 잘못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성 추행당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고 세상에서 매장된 사람으로 천시하고 천대하는 것은 인간이란 지성이 가지는 최악의 결점이요. 오산이요 어리석음이요 아집이란 무지가 가지는 지성의 죄악이다.
음식물 찌꺼기를 방에 두면 더럽지만. 논이나 밭에 두면 거름이 되고 작물에도 도움이 된다.
아름다운 연꽃도 언제나 흙탕물에서 잘 자라서 졸은 꽃을 피우고 연시를 맺는다.
사람이 본래 추한 사람. 착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 마음 씀씀이에 따라 더럽고 치사한 것이 드러나는 것이지 본래 나쁘게 태어나고 예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는 말이다.
길을 가다 보니 눈먼 장님이 나무 가지를 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눈뜬 시람 이 보니 장님이 매달려있는 발밑은 겨우 한자 차이도 나지 않은 땅바닥 위였다.
여보,-손만 놓으면 되는데 왜 그냥 매달려 안절부절못합니까.?
아니 뭐라고요.?
나를 여기 두고 간 사람이 나보고 손을 놓으면 천리 길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라고 꼭 잡고 있으라는 데요.!
손만 놓아버리면 땅 위에 두발을 딛고 편안히 설 수가 있는데.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손을 놓으면 죽는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모습이 바로 우리들 모습이다.
자기 생각의 아집에 갇혀 살고 있지나 않은지 냉철하게 자신을 뒤돌아보고 점검해 보는 연말연시가. 되길 바란다.
다가오는내일에는 눈뜨는 삶, 삶의 이치를 알고 살아가는 눈 밝은 사람이 돼야 한다.
지난밤 어둡고 캄캄한 밤에 마신물이 그렇게도 시원하고 달콤하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이 담긴 물이었다.
같은 바가지에 같은 물을 마셨는데 해골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나고 구토가 나는 것이다.
이런 이론과 이치는 신라 원효스님도 현재 우리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체 유심조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우리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연들에 부디 칠 때 우리들은 망각의 늪에 빠져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 잘못된 인식의 형상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론과 서론 이치로는 잘 알고 있다는 상식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혹하고 어리석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깨어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꿈속 꿈결인줄 모르고 미혹하여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모르니까.? 오류를 범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자기 자신도 차츰차츰 병들어 간다는 것이다.
불자는 염불과 기도로써 양식을 삼아야 한다.
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남은 재산이고 보류이기 때문이다.
돈과 출세 권력과 명예 인기 그리고 지성과 이성을 가지고도 풀어나가지 못할 때.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기도가 우리를 구원해 주고 도와주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이 우리들의 영혼에는 염불과 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50.부증불감(不增不減)
늘어날 것도 없고 줄어들 것도 없다.
많아졌다 적어졌다, 크다 작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높다 낮다. 길다 짧다. 를 전부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에서 주는 기네스 식을 사람들이 다 먹어 치웠다.
불감(不感)-음식은 다 없어졌다.
그렇다고 비행기 무개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는 것이 「부증불감」의 가르침이다.
모든 것을 부분적으로 나누어 보면 늘어났다. 줄어들지만 사실적으로 보면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아니 다란 말이다.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
집안에서 아이들 둘과 셋이 상금을 걸어놓고 오락게임을 한다.
시간이 되어 개임을 마치면 상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있고 상금을 가지지 못한 아이가 있다.
상금을 많이 가진 아이는 기뼈서 웃고. 상금을 가지지 못한 아이는 억울해서 울기마련이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그까짓 게 뭔데 아무것도 아니다.
왜 투덜거리느냐 나무라지만 그르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고 섭섭하고 심각한 것이다.
가정에서도 각자 자기주장만 하여 내 것이다. 네 것이다. 싸우고 다투게 된다.
심지어 부모님의 재산을 가지고도 서로 싸워 재판까지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르나 이웃이 엿보거나 탐내려 할 때는 부모님의 것이 모든 형제의 것이라고 힘을 합쳐 보호하고 지킨다.
애국자란 무엇인가?
나라 밖에서 보면 내 것 너 것 없이 모두가 조국과 민족의 것이다.
그르나 나라 안에서 보면 내 것 네 것 남의 것 하나하나 가 다 다르고 권리 주장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그르나 애국지사는 나라 밖이나 나라 안에서 나라 전체를 위해서 자기 목숨 자기 재산까지도 나라를 위해서
다 바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넘어선다.
이민족 저민 족 동서양을 넘어선다.
우주법계 삼라만상 나라와 민족의 구별을 넘어서신다.
일본과 한국이 전쟁이 나면 일본인은 일본인 절에서 우리들은 우리나라 절에서 각국의 승리를 위해 부처님께 기도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나라를 도와줘야 할까............?
아상 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는. 부처님 법을 온전히 알 수도 받아 드릴 수 도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의 울타리 안에서만 바라보고 원하는 것이 우리들이고. 그래서 중생인 것이다.
부처님은 인류전체를 보신다.
남한에서는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를 치우는데 골머리를 앓은데 이북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려 굶어 죽는 어린아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 들이 보신다면 다 같은 민족인데 나누어 먹으라고 하실 것이다.
부모가 볼 때 형제간에 장난감을 두고 싸움을 벌인다면 힘 있는 형을 타이르고 동생에게도 하나 주어서 같이 사이좋게 놀라고 할 것이다.
"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인가.?
다른 생명을 죽이게 되면 그 해악이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 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나만 생각하고 아내가 남편을 구박만 한다면 결국 자기 불행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에 살면서 자기 집안 자기 식구 자기 가족만 챙긴다면 나라가 망하면 결국 자기 집안도 파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가족 전체로 가족전체에서 사회전체로 사회전체에서 나라전체로. 나라전체에서 세계전체로 세계전체에서 우주 전체로 우주전체에서 생명 전체로 생명 전체에서 만물전체로 해와 달 강과 바람 산과 들 돌과 모래 까지도 아 오르는 일심법계 유주무주 고혼 까지도 돌보아 섬기며 원자 분자 소립자 요즘 발견한 힉스입자 까지도 무량한 자비심으로 돌보며 살아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있다 없다 유다 무 다 하는 것 까지도 공양하고 회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인식하고 「화두」를 들고 살아갈 때 나와 우주는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것이다.
우주와 하나 될 때. 비로써 무한하고 슬기롭고 영원한 「해탈열반」(解脫涅槃)을 증득하는 것이라 배웠으니 노력해야 한다.
"인식의 폭을 넓혀야 우주가 보일 것이다".
눈으로 만 보고 생각으로 만 보는 것이 아니다.
「반야심경」의 부증불감의 도리가 이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인연에 감사와 감사의 마음을 뼛속깊이 내야 할 것이다.
"제법이 공" 하다는 것이, 논리나 지식에서의 말이 아니다. 는 것이 믿어지는 가.?
맏 다고 느껴지고 가슴깊이 스며드는 환희심이 생긴다면 법"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부증불감(不增不感) -그냥 늘어나고 줄어들지 않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모두가 환상의 꿈일 뿐이다.
이러한 "제법의 공"한 이치와 도리를 알고 살면 시비할 것도 괴로워할 것도 싸울 일도 없는 평온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여한 사람이 될 것이다.
51.느르바 (깨달음 해탈)
노 할머니께 반야심(般若心) 이란 불명을 지어드렸다.
반야 심 보살은 올해 81세다. 그는 28세 청산 과부로 아들 둘을 공부시켜 둘 다 미국에 살고 있다.
6.25 전쟁 중에 3살 먹은 큰 아이와 배속에 있는 8개월 된 유복자를 두고 그의 남편은 전사하고 말았다 한다.
전쟁직후 그 시절의 삶이란 초근목피 하는 정말 배 곱은 시대였다. 남의 집 빨래청소 바느질 장사할 물건을 머리에 이고 한 아이는 손잡고 한 아이는 등에 업고 이 마을 저 마을 행상을 하면서 안 해본 일이라고는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봤다 하셨다. 여자의 힘은 약하지만 어머니의 힘은 천 배 만 배 강하다는 체험을 하신 분이다.
큰 아들은 장학금을 타서 미국 가서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 둘째 아들도 공학 박사가 되어 그도 미국에 산다. 고 했다. 큰 며느리는 제일 교포와 결혼하고. 둘째 며느리는 미국여자 라고 했다.
노 보살은 매일매일 절에 와서 1.000 배 절을 마치고 1시간 이상 또 관음염불 주력 정근도 하셨다. 하루는 나에게 자기 신세타령을 늘어놓으셨다.
좋은 집에 좋은 환경에 한 아들은 의사요. 한 아들은 공대 교수이니 출세하고 성공한 두 아들이 편안하게 잘 모시니 이웃 사람들은 모두가 할머니는 인생에 성공한 어머니라고 모두 들 부러 워 한다는 것이다.
그르나 자기는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아무 할 일도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자들과도 친하지 못하고 이웃들과도 놀아 지지 않으며 며느리들과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모두가 불편하고 괜히 짜증이 나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밖에 나지 않으니 제발 자기를 한국에 좀 대려 달라는 것이다. 잘 먹고 좋은 생활하고 쇼핑하고 여행하고 부족함이 없이 부자로 산다고 하여도 마음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먹이고 입히고 잠제우고 공부시키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먹고살기 위해 안절부절 하든 시절이 어쩌면 더 행복하였든 것인지도 모른다. 고 하셨다. 두 아들이 효심이 지극하여 아무런 불편 없이 잘 모시고 용돈도 넉넉히 드리며 외식이니 영화니 파티니 여행이니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에 모시지만 어머니는 제미도 없고 심심하여 절에 나오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요 재미라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모든 어머니 나 친구들이 볼 때 가장 부러워하는 케이스의 할머니다.
큰 아들은 의사지. 둘째 아들은 유명한 미국대학교수지 그것도 미국에서 부자로 살지 할머니 만치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다. 그르나 당사자인 할머니 반야 심 보살은 결코 행복하고 즐겁지가 않으니 고생 데드라도 한국에 대려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모두가 보살님이 만드신 자업자득입니다. 하니.
예.? 뭐라고요.
자업자득 이라니. 내가 무엇을 아들에게 잘못했단 말입니까.?
배 골리지 않고 출세하게 하기 위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초근목피하면 서 두 아들공부 시켜 훌륭하게 키웠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자업자득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찌른다.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
두 아들이 나쁜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인 자기가 생각이 나쁜 어머니다.
착하고 어리석기만 하지 아들을 키워 보상을 받기를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며 키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 찰하고 출세하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자연적으로 행복할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의 소망이다.
마치 주식을 사서 부자가 될 것이다. 땅을 싸놓으면 나중에 지가가 올라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런 욕심으로 모든 어머니가 아들들을 키운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는 이즘의 부모들이 너무 많다.
법의 공한 이치를 모르고 자식을 키우면. 많은 실망과 절망 그리고 허망함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식은 자기 자식이 아니다.-라고 키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보살님 "저놈은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기도 하세요,!
내 말이 섭섭했는지 두 달간이나 노 보살은 절에 오시지 않았다.
두 달 후 노 보살이 절에 나타났다. 난 반가워서 인사를 여쭈며 안부를 물었다.
스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아니 왜요,?
이때까지 불법을 잘못 배워서 내 욕심 아심만 채우려 기도드렸지. 내 마음 깨치려고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법을 보는 자 나를 볼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제야 바로 깨달은 것이다.
"저 자식이 남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느껴지고 감사하여지고 모든 일이 재미있어지고 만사 모두가 즐겁드 라는 것이다.
아들 집이지만 남의 집이라 생각하니 청소도 해주고 싶고 설거지도 해주고 싶고 빨래며 온갖 허드레 일을 하게 데드라는 것이다.
왜.? 남의 집에선 공짜로 놀고먹고 자면 염치가 없으니까?
자식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이리 고마울 때가 없는 것이다.
나를 보살펴 주고.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때 가 어디 있느냐. 그 말이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니까.? 모두가 섭섭하고 아쉽고 불만족스러운 것이지 남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모두가 고마운 것이다. 이렇게 법을 바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열려야 비로써 바른 법을 깨친 불자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없다.-제행무상 공"의 도리를 알거나 이해하면 세상은 온통 즐겁고 살만한 세상인 것이다.
무엇이 기적이고 부처님 가피인가.?
탁자 위에 불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둔함에서 깨어나는 것이 바른 불자가 가는 길이다.
자식이 출세하여 나의 인생을 대변하거나 대신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살아가야 하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법을 바로 보는 것이요. 바른 법을 만나는 것이다.
바로.! 자식을 남으로 보는 바른 법"에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 일어나는 일이다.
자식을 남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고마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 「실지실견」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부처님이 가르침 「무유정법」 이 해탈 법"이다.
니르바.-깨달음 해탈, 바른 법에 귀의하고 눈을 뜨는 반야 보살인 어머니가 되길 이 아침에 기원 드린다.
52.우물 안 개구리
사람은 저 마다 인식의 주체 업 식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좋다 싫다 는 감정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고 고민이 생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을 보고 코로 향기를 맡고 몸의 촉감으로 싫다 좋다 괴롭다 즐겁다 을 감지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좋아도 고민이요. 싫어도 고민이란 말이다.
우물 안에서 우물 속에서 크다 작다. 길다 짧다. 를 이 무리 논쟁해 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다. 우물 밖으로 나와야 비로써 가부간의 논쟁이 필요가 없게 돼버린다.
괴로움 이란 것도. 괴로움이란 우물에서 우물 밖으로 나와 보면 괴로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물 밖을 나와 높은 산에 오르면. 더 넓은 시야에 크다 작다 하며 우물 안에서 논쟁한 일이 부끄럽다. 시비하고 서로가 거칠게 다투든 논쟁이 얼마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손가락을 따라 바라보고 걸어가야 한다.
아집의 우물에 빠져 아옹다옹 다투며 시비하고 내 것이다. 네 것이다 권모술수를 부린다.
우물 밖을 나와 버리면 괴로움의 시비 분별은 하잘것없는 어린이 소꿉장난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물 안의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양 앉아서 거드름을 피우고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고 약한 사람의 기회를 약탈하고 집단이기주의를 만들고 편 가르고 철조망을 치고 자신 밖에 모르는 아집에 빠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자기 아집 우물에 갇혀 한번밖에 없는 사바세계의 아름다움을 4분의 1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우물 안 인생이란.!
수다원과(須陀洹)과- 1차원의 세계 앞과 뒤만 있는 파이프 속의 유리구슬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뒤로 밀려서 죽는다는 강박관념 속 동동거리며 안절부절못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들이다.
불법의 지혜를 만나면 살짝 수학의 공식처럼 옆으로 살짝 비켜 준다면 나도 살고 상대도 산다.
앞과 뒤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할 때 좌우를 볼 줄 아는 지혜가 「반야바라밀」 제법의 공한 이치이다..
우리 중생들은 직선. 앞과 뒤만 있어 남에게 밀리어 물러서면 죽는 줄 알고 있다.
전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주는 철도 노조의 권리 주장이 이와 같은 이치라고 본다.
그 들을 좌우가 있다는 지혜의 공식. 삶의 공식 「반야」의 철학을 모르기 때문에 노조의 힘을 업고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치학자 종교인 경제인 지식인들은 설명하고 이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직선을 피해 갈 수 있는 교차로가 부처님의 「지혜바라밀」의 가르침이다.
잘살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권한이요 자유이기 때문에 묵살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천인공노할 죄악을 정의로 탈바꿈하여 추악함을 드러내는 일본의 아베사고방식이 세계평화와 자유를 깨는 가장 경계해야 할 사상이다. 러시아의 전쟁도 그와 같다.
분단된 나라의 한 많은 역사도 알고 보면 일본이 원인을 제공하고 기인한 것이다.
여당 야당 정치인 노사 간 서로가 한발 물러서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동체대비의 사상으로 힘을 모아. 다시는 이 땅에 외국이 침노하는 세상을 막아야 한다.
자신의 인식 주체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지 알고 살아야 한다.
자신의 업식. 아집과 고집이 주위를 불편하게 않은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좋다 싫다가 나만의 문제인지 가족 전체의 문제 인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왜.? 괴로운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우물 안에 갇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개구리 우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돼야 한다.
53.무(無)
인생을 진지하게 관찰하며 살아야 한다.
강아지가 뼈 따귀를 물고 종일 씨름한다. 참 바보같이 소득도 없는 뼈따 귀를 하루 종일 빨고 햘고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없다.
아니 부처님은 열반경에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왜 없다고 하시는 것인가.?
하고 의심을 한다.
이것은 의정을 일으키는 화두가 아니다.
부처님 말씀과 스승님 말씀을 따져서 분별하는 의심이기 때문에 천리 길 낭떠러지다.
무(無)-. 없다는 말은. 불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질문하는 제자의 요지는 있다 없다을 판가름해 달라는 묻는 사람의 알음알이로 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이다
부처님과 스승님의 차이를 두고 옳다 그르다 를 따지는 의문은 화두가 아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무(無).- 하는 순간 – 귀. 멀고 눈멀어 버린다.
여기에는 한 생각을 낼 수가 없다.
무(無).-없다 -이것이 무슨 소식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알음알이로 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없다니- 이 무슨 도리인가.? 내려놓을 레야 내려놓을 수 없는 간절한 의문이 바로 화두 다.
삶에 대해서 진지해야 한다.
배우를 닮고 예쁘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차타고 좋은 집에 산다고 전부가 아니다.
늙어 가고 병들고 날마다 늘어나는 주름살과 아무리 싸워 보았자 승패는 뻔한 것이다.
가는 세월과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고. 오는 시간과 오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다.
하여.!
불자는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순수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청춘. 건강. 출세. 재산. 행복. 은 꿈속의 환상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돈에 쫒기고. 출세에 쫒기고. 명품에 허덕거리는 환상인 꿈속에서 깨어나란 말이다.
눈을 뜨면 강아지가 살점 없는 뼈다귀를 하루 종일 햘 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눈을 뜨면.! 바로 한량없는 부처님의 가피를 얻게 되고 입게 된다.
자신이 바로 부처님과 다름없는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싫고. 따스한 봄이 좋은 것이 아니라.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고생이 락. 이요. 시련이 소풍이요. 고통이 뱃놀이이다.
일체가 불성이요. 일체가 불법이다.
무(無)-?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고 모나지도 않으며 둥글지도 않다.
분별도 없고 차별도 없으며 시비도 없다.
개에게 불성이 있다 없다 의 문제가 아니다.
무(無)-라 이 무슨 소식인가.?
자기가 알고 있는 학식 지식 식견 인식 생각의 알음 알 리로는 풀 수가 없다. 눈멀고 귀. 멀다
무(無) 수상행식무/ 무 안이비설 신의무/. 무 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 무명진 내지 무노사이다.(受想行識無 無眼耳鼻舌 信意無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 無明盡 乃至 無老死)
무주상(無主相)-내 것이 라 할 것이 없다.
무법상(無法相)-내가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은 강아지가 하루 종일 헛고생하는 거와 같다.
무(無)-왜 없다고 하였는가.?
그 답은-바로 꿈에서 깨어나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엣 조사스님 의 간절하신 가르침인 활구요 수행자의 「생명선」(生命線)이다.
54.나라는 존재
나라고 하는 존재는 우주법계 삼라만상 세계의 일 부분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70억 분의 1 이다.
무한한 우주 가운데 나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티끌인 분자중에 입자에 불과하다.
동시에 내가 인식하는 이 세계라고 하는 것은 내 자그만 마음속에 그려진 세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자기의 세계를 가지며 그리고 있다.
이 우주는 똑같은데. 자기 아집에 갇혀 광활하고 무한한 세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인식의 세계에 갇혀 남과 다르게 그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 할아버지가 그리는 세계하고 지금 청소년이 그리는 세계가 다르다.
우주는 해와 달 그리고 바다와 산바람과 구름으로 과거와 현재를 같이 한다.
할아버지는 현재의 아이들을 이해 못 하고 현재의 청소년은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이 우리 모두는 한 이불속에 살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철저하게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의 정답은 없다.
자기 식 되로 보고 느끼고 받아 드리기 때문에 마음의 표현이 팔만사천 방편설이 된 것이다.
자기가 아는 만큼의 세계가 보이고. 느끼고 받아들여서 행, 불행을 구분한다.
이 세계는 넓고 무한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자기 입자에 꼭꼭 숨겨져 담겨 있다.
나는 이우주의 일부고 이 우주는 다시 나의 일부이다.
이것이 정말 묘한 도리다.
부처님이 발견하신 화엄경의 도리-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일 이 삼 사 오 륙 칠 (1.2.3.4.5.6.7)-. 일. 월. 화. 수, 목, 금. 토)(日月火水木金土)일곱자 7이다 .
세계는 한 없이 많은 티끌로 구성되어 있고 한 티끌은 한 세계의 일부로 자리 매김하여 한 티끌 가운데 이 세계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작은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법성게의 가르침이다.
이 우주와 세계는 내 마음 가운데 있다.
일체라고 하는 말. 일체라고 할 때 나와 세계를 통 털어서 하는 말이다.
"색. 수, 상. 행. 식".(色受相行識)
색.(色)-이 세계와 우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구성되어 있다.
수,(受)-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촉감을 느낀다.
상.(相)-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여래장에 저장하여 분석하고 가려서 다 시 끄집어내어 쓰려고 생각한다.
행.(行)-정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행이다.
식.(識)-좋다 싫다 나쁘다 기쁘다 의결과를 분별한 마치 컴퓨터의 프로그램 같은 역할이 식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남에게 베풀 때 행복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이를 도울 때 자신 감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우주관 은 어떠하고. 당신의 세계관은 어떠한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어 내는 가가 사람들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넬슨 만델라」.
55.바르게 보라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담배를 피워왔든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업 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이 내 마음에 다가와 충동을 일으키는 가.?
내 마음에 닥아 와 휠링 하는 감정이 밖앗 경계에서 오는 여건이나 환경이 조성되면 흥분으로 내 마음에 반응과 충동을 일으켜서 업식을 만들어 낸다.
반응하고 생각하고 의지를 불러일으켜서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그래서 또 다른 업 식이 쌓인다.
그 행위의 결과물로 과보가 따르고 그 따른 대가가 업보가 된다.
업 식이 「컴프트」 프로그램이 더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이다.
나쁠지 좋을지는 아직 모른다.
나"라는 독립된 실체는 없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인식하고 하는 모든 것은 결국 「오온」(五蘊)에서 받은 것이다.
"색. 수. 상. 행. 식"(色受想行識).이다.
몸이 나이가 들고 성장해 가면서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가면서 변한다.
생각이 변하고 인식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감정처리도 변한다.
생각이 다르고 보는 시야가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감정을 억제할 줄도 알고. 조절할 줄도 아는 성숙한 인간. 좋은 인품으로 얼마든지 변해 갈 수 있다.
불법에서 말하는 「열반」(涅槃). 지고한 행복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들은 욕구가 있고 바라는 바가 있어서 그것이 이루어지거나 목표가 성취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한다.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울해하고 기분이 나빠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기분이 좋아 팔짝팔짝 뛴다.
바라는 바 이루진 것은 언제든지 다시 변하여 나를 버리고 떠나는 「유루복」(有漏福)이다.
바라는 바에 전혀 내 마음이 구애받지 않은 적정열반이 「무루복」(無漏福)이다.
행도 없고. 불행도 없는 세계. 내 욕구에도 구애받지 않은 세계. 어떤 경계에도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 마음이 평정하고 고요한 "「열반적정」"만이 지고한 행복에 속한다는 가르침이다.
어떤 조건이 나 환경 경계에서 얻어지는 행복은 영원하지가 않기 때문에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바라는 되로 이루어진 행복은 언제나 떠나버린다는 "제법무상"(諸法無相)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 부디 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부. 행과 불행이 되풀이되는 윤회로부터 훌훌 벗어 날 수 있는 세계가 「열반」"의 세계라 한다.
바르게 보라..........
바르게 보면 복"이 쌓인다.
고마운 줄 아는 사람이 먼저 행복"하다.
몸을 잘 관리하면 오복"(五福)은 저절로 들어온다.
마음을 복"(福) 되게 활용하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
56. 선시(禪詩)
비우니 맑다
유유한 강물은 저 맘 되로 흐른다.
해가 떠도 흐르고
해가 저도 흐른다.
꽃이 필 때는 나비들과 흘러가고.
매미가 올 때는 바람과 같이 흘러간다.
멈춤도 없고
걸림도 없이. 유유히 흐른다.
흐르다
돌 뿌리에 체여서 푸대접 하면
유유히 멤 돌아 채워져 흐른다.
夏"안거를 맞으며
걸망 속에 담아두었든 모든 것을 다 비웠다.
이제 걸망 속에 남은 건
칫솔 하나 수건하나 뿐이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이 마음
70 년 쌓아온 업 식들을 비우고 나니 이렇게 홀 가분 할 수가 없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새벽이다.
나비야 청산을 가자.
가다가 해 저물거든 꽃에서라도 자고가자.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잎에서 라도 자고 가자.
==
맑고 맑은 샘물이 감로수가 되어 팔만장경을 맛본다.
부처님이 무엇을 좋아 하시는지 나이 칠십에야 알았다.
57.영생불멸(永生不滅)
세계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로 두 갈래 길로 나누어 저 있다.
자유와 평등. 행복을 목표로 하지만 각각 보고 판단하는 시야가 다르다.
개인을 우선으로 하는 자유와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평등사상이 둘로 늘 대립한다.
불이(不二)- 불교는 둘로 나누지 않은 다.
이 세상은 모두기 인연으로 이루지기 에 그 본성은 하나라는 것이다.
인연(因緣)-간접적인 인(因).과. 간접적인 조건 연(緣). 이 모여서 인연이 되어 진다.
예. 을 든다면 성냥불을 그어서 버렸다.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만 결과는 다를 수 있다.
그때 그 주의에 인화물질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에 따라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을 들 수 있다.
인화물질이 있었느냐. 그냥 시멘트 바닥이냐.. 에 따라서 원인은 제공했지만 조건이 달라지면 그 결과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한 가지로 보거나 한가지로 설명하고 판단해 버리면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로 인해서 사회나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사회나 세계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만법은 양자가 동시에 작용한다는 부처님의 위대한 발견인 것이다.
선과 악, 시와 비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나를 가지고 고집하고 판단하고 좋다 싫다 된다. 안 된다 를 논하여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깨우침이다.
불교의 본질은 선과 악이 따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따로 없다고 보는 안목을 말하는 것이다.
동일한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르고. 그때 감정 기분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 보는 놈의 무엇인가".?
저 마다 끼고 있는 업 식의 안경에 따라 검게도 보이고 희게도 보인다는 것이다.
육근(六根)-안, 이. 비. 설. 신. 의(眼耳鼻舌身意)
육경(六境)색. 성. 향. 미. 촉. 법. (色聲香味觸法)
육식(六識) 이식. 비식. 신식, 의식=.(耳識 鼻識 身識 意識)
제 칠식(七識) 의식-말라 식을 말한다.
제 팔식(八識)은 -아뢰야식을 말한다.
58.인생(人生)이란 대박
식물이 자라서 꽃이 피면 반듯이 열매가 맺는다.
그 열매는 또 다음에 싹이 트고 씨앗이 된다. 有.라는 것은 열매와 싹이 함께 존재함을 말한다.
결과의 단계가 열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출발점은 씨앗을 원인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열매와 씨앗을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것이 불교의 연기 관이다.
씨앗이 있으므로 열매가 맺어졌으니 씨앗의 작용으로 잎 피고 꽃피고 열매가 맺으며 씨앗의 작용으로 인한 열매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듯이 또 다시 싹이 튼다는 것이다. 싹이 튼다는 것이 生.이다.
미래 겁이 다하도록 백 천 만억 겁으로 되풀이 되는 것이 생명이란 윤회다.
모든 생 (生).의 출발점은 애(愛).다. 애(愛)로 인해서 욕구가 일어나고 욕구에 의해서 결과물이 남고 결과물이 남아서 습관이 되어 지고 습관이 또 다른 욕구를 불러오게 된다.
이것을 애연취(愛緣取) 취연유(取緣有) 유연생(有緣生) 생연(生緣)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 를 불러온다는 가르침이다. 애(愛).란 현재의 모든 원인을 제공한다. 모든 생의 원인은 애(愛)로 비롯된 것이다. 애(愛) 로 인하여 모든 갈등이 일어나고 욕구를 통해서 행불행을 관찰하고 체득한다.
그 갈등의 원만한 순환 를 슬기롭게 이끌어 갈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 성인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순환의 깨우침이 「대박」이다.
어린아이가 뜨거운 물을 손으로 잡으려 한다면 막아야 한다.
상처 나고 다치지 않게 미리미리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장치를 하여 놓은 것이 지계(知戒)이다.
계율(戒律)은 속박이 아니라 안전하게 이익을 증장하여 주고 손해를 방지하게 하여주는 생의 바른 길잡이가 "대박"이다. 보고 싶다 가지고 싶다 만나고 싶다 하는 갈망은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것을 애(愛). 라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수(受). 라 한다.
수(受)-부시 돌을 부디 처서 일어나는 불꽃을 "수 라 한다.
애(愛)-부시 돌의 불꽃을 붙게 하는 것이 솜이다 그 솜을 "애 라 한다.
아무리 부시 돌에 불을 일으켜도 솜이 없으면 불이 붙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솜이 있으면 불이 일어나 큰 불이 된다.
세상에 애증(愛憎)의 불꽃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욕망의 불꽃으로 스스로 타서 자멸하는 사람이 많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59.희(喜)기쁘다
좋아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난다.
관심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
한 여자가 엄마라고 불러지고, 여보 당신 아내라고 불러진다.
한 여자가 나쁜 년 이라고 불러지고 여편네라고 불러진다.
밖에서 불러지는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아야 한다.
옆에서 담배 연기가 나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그 연기와 냄새에 코를 막고 구토를 하고 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사람을 보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한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털이 빠진다고 싫어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똑같은 사람이 이라도 보는 사람의 "업식"(業識)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좋다 싫다 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다는 말이다.
모든 것의 뿌리는 "업식"이다.
업 식을 종자"라 하고 또는 현재말로 DNA라 표현한다.
씨앗으로부터 싹이 트고 열매를 맺어 또 다른 업 식인 종자 "법성"을 만든다.
식. 연 명색. 명색연 유입. 유입연 촉. 촉연 수. 수연애. 애연취. 취연생. 생연 생로병사 라 한다.
(識.緣.名色 名色緣.有入.有入緣.觸,觸緣.受.受緣愛.愛緣取.取緣生.生緣.生老病死)
업식(業識)"이란 수수만년을 쌓아오고 형성되어 온 과거의 "습이다.
그 습"으로 인해 자신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고 좋다 싫다를 구분하고 만들어 버린다.
"무명 과 무지"(無明無知)- 가 업식"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견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의 행위가 일어나면 또 새로운 업 식의 종자를 만들어 미래의 원인을 만들게 된다.
느낌을 알아차려야 한다.
감정을 절제"하고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
관법(觀法)-「위빠사나」-알아차림-선정으로 욕구의 솜털에 불이 붙지 않도록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 정념"(正念)이다. 가만히 무심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뚜렷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 뚜렷이 밝아 저 "수(受)를 알아차린다.
고려청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치를 살피고 질곡의 삶을 거친 도공의 눈빛과 마음 영혼을 상상하여 볼 줄 알아야 한다.
천년의 역사를 볼 줄 알고 격이 다르고 격조가 높은 고고함의 정신을 느끼고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무지 하면 「고려청자」를 개밥그릇으로 쓰는 우를 범하는 무지한 중생이 돼버린다.
나. 라는 존재도 고려청자와 같아서 시방세계에 두루 한다고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신다..
고려청자처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사회와 가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사회나 가정에 큰 기쁨을 주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보잘것없고 슬대 가없는 개 밥그릇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나도 부처님처럼. 고려청자처럼.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사는 지고한 가치를 지닌 존재란 말이다.
온 우주 법계에 나라는 존재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우주와 지구에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켜 모든 만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위대한 사실의 발견이다.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통해서,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데 온 우주가 영향을 받는다고 하셨다.
이보다 더 속 깊고 진실한 가치 발견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의 업식 종자를 개량할 수 있는 위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이 도리를 알면 자신의. 내 마음의 국토가 달라질 것이다.
들리는 소리 모두가 부처님 법신의 소리요. 부처와 동일한 자성에 감탄하고 살 일이다.
60. 계.정.혜./삼학(戒定慧.三學)
삶. 이란 애(愛). 을 불러오는 목마름이다.
애(愛) 는 끝없는 갈증을 불러온다.
그 갈증에 목말라하고 오늘내일 그리고 끝없는 내일을 향해 물을 찾아 떠난다.
사랑이란. 미명하에 모두가 갈증에 목말라 미끄러운 길을 운전하고 뛰어가고 걷고 있다.
애(愛)-우리는.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
사랑이 아니면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아무런 의미와 제미가 없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고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에 지쳐서 몸서리가 처도 사랑을 위해 살아간다.
사랑의 욕구가 일어나면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을 취(取).라고 한다.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그 결과가 남게 된다.
결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듯이 좋다 싫다 의 원인이 생기고. 그 원인으로 해서 또 다른 결과를 만든다.
결과의 열매 그것을 유(有)라 한다.
결과인 열매가 생기면 그것은 새로운 싹을 트게 만들어 새로운 싹이 트므로 그것을 생(生).이라 한다.
오늘에 일어나는 끝없는 욕구인 목마름 은 지난 과거생의 업 식의 원인이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밖 앗 경계 매일매일 부디 치는 생활의 일상이 「오온」"으로부터 받는다.
똑같은 사람이 찬비를 맞으면 그 느끼는 감정과 생각.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것은 두 사람의 업 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 업 식을 -종자 라 하고 씨앗이라 한다.
씨앗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밭에 똑 같은 물을 주고 키워도 꽃의 색갈이 각각 다르게 피는 것이다,
업식(業識)인 – 식(識). 은 어디서 오는가.?
식(識). 이란 씨앗 이전의 것. 그 근본은 무지"와 무명"(無知無明)이다.
한 생각에 사로 잡혀 꽉 막히는 것이 무지(無知)"이다.
한 생각 질투와 시기 분노에 꽉 막혀 치를 떠는 것이 무명"(無明)이다.
현재 우리들의 삶은 애(愛).이다.
애(愛). 는 갈증을 늘 가져온다. 애.(愛) 는 갈증을 먹고 산다.
애(愛)는 기쁨도 많지만. 아픔과 고통이 늘 따른다.
말과 행위를 절제하는 것이 계율(戒律).이다.
계율을 지키면 품격이 살아나고 품성이 좋아지고 인품이 고고하여 존경받고 사랑받는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성질이 일어나고 성깔이 모가 나고 성격이 괴팍하여 싫어한다.
계율은 사랑의 신호등과 같아서 적정한 활로를 소통하여 주게 되는 지혜"다.
사랑하므로 사유할 줄 알고. 사랑하므로 깊이깊이 관찰하여 애증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고 깨어나는 선정을 닦으라는 가르침이다.
사랑은 시기와 질투를 먹고 자란다.
자신의 업 식 성격을 잘 알아차려서 혐오와 증오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부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녀 직업 친구 동료 모든 분야에 똑 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자기를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자기 성격 성품 인 업 식을 알게 되면 무지와 무명으로 부처 다시는 실수하지 않은 밝은 지혜로 살아질 것이다.
무지를 타파하고 존재의 위대함을 알게 되면 사랑에 대한 평범하면서도 숭고한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막연한 것이 사랑이 아니다.
무상과 무아를 체득한 사랑을 가질 때 비로소 완전한 사랑을 체득한 사람이라 하리.
사랑에도 계. 정. 혜. 삼학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61.각(覺)
깨달음이란 것에는 실체가 없다.
깨달음 이란 보배구슬과 같은 결과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자신의 업 식이 옹고집처럼 색안경 편견 부정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 한다.
상대가 본래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자기 생각 판단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고정 시켜 버리는 오류에 있다
세상은 모두가 함께하는 서로서로 엉 켜서 조화롭게 관계를 유지 하며 소통하며 경의 롭 게 사는 세상임을 아는 것이 바른 깨달음 이다
진리와 도(道) 깨달음 은 현상과 현실을 떠난 것에서 찾는 다면 그는 허상을 쫒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부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불상에는 부처가 없다
부처는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62. 고락불이(苦樂不異)
건강진단을 받은 후 의사가 말한다.
사모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는데요,!
예.? 깜짝 놀라 긴장하며 바라본다.
“유방암”입니다.
열에 열 명은 지래 겁을 먹고 하늘이 무너지는 감정을 느낄 것이다.
아니. 왜?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이 생긴단 말인가.?
부모님 선대는 왜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을 유전한단 말인가. 하고 원망과 불안함에 떤다.
알고 보면 그 병은 옛날부터 이어져 왔든 것이지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오늘이라도 이 병을 발견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말이다.
만약 오늘도. 이 병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간다면 그 병은 점점 커져 갈 것이다.
오늘 알았다 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최고다.
오늘 내가 알았다는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왜?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이 생겨났는가를 원망만 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다.
알았다는 것이 바로 깨어남이다.
몰랐다면 치료를 할 생각도 안 할 것이다,
알았으니 치료를 잘하고 건강을 잘 챙기면 낮 는 다는 보장도 확실히 있는 것이다.
알았으니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지 몰랐다면. 병은 점점 깊어만 갈 것이다.
어떻게 치료해야 될 것인가 를 생각해야지 운명을 탓하고 팔자를 탓하고 유전을 탓하면 병을 더 악화시키고 괴로움만 더 커질 뿐이다. 삶의 현실을 바르게 인정하고 인지하며 생활하는 사람이 되란 말이다.
이 세상에 병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병 없이 죽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생. 이란 병과 고통 괴로움의 연속이다.
남편이 술을 먹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 않고 시어머니 잔소리 모두가 괴롭다.
모든 괴로움이 온통 밖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친구 때문에 상사 때문에 동서 때문에 이다.
모든 원인이 남에게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때문에"라는 전도된 생각으로서는 절대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은 다.
왜?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는데. 어떻게 괴로움을 치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괴로움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은 착각 일으키는 어리석음에서이다.
원인을 남에게 두면 남편이 술 먹지 말아야 하고 아이들이 공부 잘해야 되고 시어머니 잔소리가 없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상대에게서 밖에서 해결방법을 찾으려 하는 것은 잘못된 몽상이다.
고(苦)-라고 하는 것이 "성 스러운" 진리다.
왜?-고와 락 (苦樂)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여 아이를 얻으면 즐겁다.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으니 괴롭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괴롭다가 물건을 찾으면 기쁘다.
물건이 없었다면 괴로움도 없고 기쁨도 없다.
고와 락은 동전의 양면"이요. 고와 락을 오고 감이 윤회"다.
정견(正見)-바르게 보라. 정사(正思)-바르게 사유하라 정어(正語)-바른말을 하라
지혜(智慧)이다
정업(正業)-바른 행동을 하라
정명(正明)-바른생활을 하라
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을 하라가 지계(持戒)이다
정념(正念)-바르게 생각하라.
정정(正定)-바르게 깨어 머물러 있어라.
선정(禪定)이다.
계, 정. 혜.-삼학 팔정도(八正道)가 道의 길로 가는 바른 수행의 길이다.
63. 업식(業識)
친구가 부인과 함께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려 기차를 탔다.
친구는 직장인이라서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 맞추어 기차를 타다 보니 부주 돈 축하 금을 챙기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보고 여보 당신 축하 금 가져왔어
아니 나는 당신이 챙겨 올 줄 알고 지갑도 안가 저 왔지.?
이때에 보통 열에 열사람 자기 부인에게 역정을 내면서 집에 놀면서 무엇을 했기에 지갑을 챙기지도 못하고 나왔느냐며 온갖 허물을 들추어내기 일쑤다.
자기 바쁜 것만 알고 미리미리 준비성이 없느니 그래가지고 집안에 무슨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잔소리에 화를 내고 온갖 타령을 늘어놓는다.
이때에 현명한 남자라면 아 그래서"
이미 닥친 상항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부부간에는 항상 이해가 먼저 되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격이 높은 부부라 할 수 있다.
모처럼 맞는 휴일 아이들과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갖다가 사소한 이견 충돌로 싸우는 가정이 많다고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구정 설날 고향을 찾게 되고 부모님 선물도 준비하게 된다.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아내나 남편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하고 의논하여서 정하는 현명한 부부가 되길 바란다.
출가 사문이랍시고 어머니 양발 한 짝 사드리지 못했다.
돌아가신 후 어머니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에 저려오는 아픔이 크다.
그래서 오늘은 큰 마음먹고 시집갈 때 축하 금 한번 주지 못한 여동생 둘과 제매 둘 그리고 남동생 둘, 제수 시 둘 모두에게 넥타이 하나 스카프 하나 식을 진주시청 관광홍보실에서 쌌다.
나도 이제 늙어 고향 갈 길이 바빠 오는 것인가 생각되어진다.
경봉(鏡峰) 노스님께서 어느 날 일기장에서 오늘 후원 방에서 나의 수의를 만든다 하니 어찌. 그렇다.!
이제 까지 받은 부고가 아흔 장인데 모두 다 홀연히 떠나가고 소식이 무소식이네. 허. 허.
가는 것이냐.? 사는 것이냐.?..... 쯧 쯔,
바다는 넓고 한없이 크다
부처님의 가르침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사해바다에 비유한다.
그 진리의 물을 다 마실 수는 없지만.! 커피 수 푼으로 한수 푼만 먹어도 그 물을 다 마신 효과가 있다 하셨다.
어떻게.? “아 - 짜다 ”
그 바닷물의 양은 적어도 그 짜다는 맛은 똑같다는 말씀이다.
천지간에 많은 사람. 그 마음은 똑같다. 는 말씀이다.
사랑하고 아껴주고 인정해 주고 이해하여 주고 칭찬하여 주면 싫어할 사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나쁘게 보는 것은 나의 잘못된 업 식의 색안경이란 것을 항상 알아차리라는 말씀이다.
내 생각대로 안 되니까. 그 사람이 미운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잘못을 빌어야. 꼭 용서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그를 보고. 직장. 상사. 동료. 형제. 친구. 이웃. 사회. 세상. 을 보고 원망만 하고 자기는 변하지 않고 상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세상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다".
상대도 마찬 가지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상대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종교다.
알고 보면 모든 관점은 나의 업 식이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무아"(無我)-꿈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이 나"다.
"무상"(無常)-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 것이 인생"이다.
64.만사진리(萬事眞理)
산에 는 비도 오고 눈도 내린다.
어느 때는 잎이 피고 어느 때는 꽃이 피고. 어느 때는 잎이 진다.
사람들은 눈 덮힌 산이 아름답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새와 사슴은 먹을 것이 없다.
아름다운 것은 늘 겉으로 위장하는 요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꽃과 꿀로 유혹하여 목마르게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열매를 얻는다.
돈을 얻으려 일터에 나간다.
유리하고 조건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권모 슬 수를 쓸 수밖에 없다.
농협에 다니는 거사가 매일 매일 108배를 내가 거처하는 법당에 와서 절을 하고 간다.
왜.? 절을 매일매일 하느냐 물어보았더니 승진하려고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요,!
부처님께108배 절하고 기도하면 승진시켜 준다고 누가 그래요,?
아니.!. 그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망설인다.
그는 대학을 나온 인 테리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가진 나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싶으면 직장에서 벌어지는 허드레 일을 제일 먼저 하라.
주의를 의식하지 말고 부처님께 절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솔선하는 직장을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누가 본다고 열심히 하고 보지 않는다고 게으름 피운다면 그는 승진에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나 동료 직원의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는 생기면 제일 먼저 보시하고 도와주라.
그렇게 하는 것이 승진하는데 올바른 바라밀 기도이지 직장에서는 아무런 선행도 솔선하지 않으면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려는 욕심으로 기도 하는 것은 부처님 절대 도와주지 않은 다고 하니. 그는 멋쩍어하며 돌아갔다.
내가 섭섭할지도 모른다.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믿으면 복이 오는 것이 아니다.
욕구에 사료 잡혀 집착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 무지에 속하는 것이다.
직장에 제일 먼저 출근하여 3년만 청소를 담당하면 그는 남보다 빠르게 승진하여진다.
직장의 허드레 일 어려운 동료를 돕는데 앞장서서 솔선 하면 자연스럽게 칭송과 존경을 받는다.
헌신과 봉사 허드레 일에 솔선하는 것이 복을 받을 자격과 복의 종자가 싹이 터서 좋은 열매를 얻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특정한 가치나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무지와 무명 어리석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른 깨달음이다.
한 생각과 집착에 사로 잡혀 전전 긍긍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깨우침 이란.?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내 것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집착할 바가 없고 나라고 하지만 나라고 할 것이 없다 하시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옳다 할 것도 없다
이것이 무아. 무소유, 무아집인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깨쳐서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들 모두가 돈에 집착하고. 물질과 권력 출세 사랑 명예에 집착한다.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이 기도요 수행인 줄 잘 모른다.
텅 빈 줄을 알아야.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도리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스러워 지는 것이 행복이다.
자유스러워 지려는 것이 수행이다.
움켜쥐려 하지 말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허드레 일을 잘하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온다.
모든 공공의 리드 자리는. 헌신과 봉사로 구성되어 있음이 만법의 진리임을 알기 바란다.
65. 마음(心)
마음 이란! 모든 도인들의 숙제다.
어디에서 나타 났다가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늘 가지고 머무르고 작용하지만 그림으로 그리거나 색으로 칠하여 나타 낼 수가 없다.
육조 스님에게.........
이조 승찬 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괴로워서 살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을 좀 고처 주십시오.!
그래.
그렇다면 그 괴로운 마음을 나에게 내놓으면 고처 주겠네.!
..........?
그 말에 문득 홀연히 깨달았다 한다.
마음의 본질은 청정(淸淨)이다.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법신(法身)의 자리다.
기쁨도 성냄도 없는 원만(圓滿))의 자리다.
마음 마음 하는데 마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마음의 본체는 한마디로 청정(淸淨)이다.
마음은 모양이 없으니 무상(無常) 이라 한다.
마음은 또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마음이다.
좋은 일 선한 일. 나쁜 일 악한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또한 마음이다.
천박하게 쓰는 것도 자기마음이요 존귀하게 쓰는 것도 자기 마음이다.
마음의 쓰임에 따라 성인도 나오고 중생도 나온다.
그래서 마음을 천백억 화신(化身)이라 한다.
마음의 본성은 "청정"(淸淨)이다
마음의 고향은 "무상"(無常)이다.
마음이 하는 일은 "작용"(作用)이다.
66.가족사랑
가족을 사랑하고 보살피며 살아가라,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서. 평온하고 안락한 자신을 만들어 가라. 자신의 가정"에 항시 마음의 눈을 뜨고, 바쁘고 두서없이 살아가는 가족을 평온한 낙원"에서 쉬게 하라. "힘들고 지친 가족에게", 맑고 고운 미소와 따뜻함으로 맞이하는 주부"가 되어라.
그와 같이 자신의 마음을 챙기면" 순간마다 찾아드는 기쁨과 행복감에 삶"의 보람"을 찾을 것이다.
이 모든 여유는", 한 잔의 차(茶). "차. 를 마시는 일상"에서 얻을 수 있다.
한 잔의 차". 를 마시면 스스로 마음이 다스려져서, 온전히 존재하는 자신의 여유를 볼 수 있어진다.
차. 달일 물"을 끓이고, 다포"를 펴며 다기(茶器)"를 정돈하다 보면. 어연듯 자기도 모르게, 무심"으로 들어가 착한 마음 선정(禪定)"에 들게 된다. 마음이 챙겨지는 따스한 차(茶), 차. 한잔이 "실참"의 수행자가 대어지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생활의 기쁨을 모르고, 마음 밖에서 얻어진. 환락. 여건과 물질에서 행복을 찾는 다면. 그는 끝없는 망상"과 집착' 번뇌"와 갈등"에 목마른. 들판에 버려진 하이에나 같은 인간이 될 뿐이다.
"아름다운 삶"이란 결코 화려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시간, 차". 한잔의 여유와 따스한 온기 차향(香)에서 순수하고 청결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한 잔의 차. 속에 "삶'과 인생"의 경이로움이 묻어나서. 지금 마신 차. 그 차".그 차". 한잔 속에 행복의 기적이 숨어" 있음도 느껴질 것이다.
"한 잔의 차. 속에 구름이 담겨 흘러가고" 아직 오지 않은 따스한 봄날" 춤추는 나비도 담겨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챌 수 것이다. 차. 잔속의 구름을 마시고, 찻잔 속, 속에 담긴 봄 봄"의 여신을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다선일미(茶禪一味) 요."
선다일미(禪茶一味)라 한다.
바쁘고 쫓기는 삶"의 일상에서 조용히. 차. 한잔을 마시는 의미는 새로운 여유는 자신의 성찰로 자각의 지혜로 묻어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삶"에 여유로움이 저절로 수행정진"이 대어지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환경의 속물"이다.
가정의 환경은 오직 주부"의 손길과 너그럽고 순수한 넉넉한 마음에 달려있다. 하루 한번 차. 를 달여 마시는 시간이. 곳. 마음 다스리는 시간이다.
차. 마실 준비의 과정으로 자연스러운 선정"에 들게 되고, 고요함으로 온전한 자성"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차" 한잔의 여유는 불성의 "무진법문"(無盡法問)을 되새기는 108 참회기도" 도 되는 것이다.
조용히 여유롭게 마시는 차" 차. 한잔의 시간이 자연스러운 동(冬) 안거(安居)가 되는 것이다.
분주"한 마음을 접고. 하고 싶은 일도 잠시 쉬어라.
차" 한잔 마시는 마음의 여유가" 고뇌"의 매듭을 풀리게 하고, 마장장애"(魔障障礙)를 스스로 물러가게 하기 도 한다. 차"달여 마시면 인생"의 새로운 기적"을 만나기도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불자라면 혼자서. 조용히 하루 한번. 차 마시는 여유로움의 시간을 꼭. 가지시길 바란다.
보편타당하고 보편적인 것이 바른 진리다.
깨달음의 목적은 보편타당한 인생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