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일 영화 <오필리아>가 7월로 개봉을 확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호주 출신 클레어 맥카시 감독은 작품을 통해 만나본 적이 없지만, 타이틀-롤을 맡은 데이지 리들리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보았던 얼굴이다.
오필리아 Ophelia.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여주인공이다. 남자를 잘못 만난 탓에 마음고생만 하다가 결국 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는 비련의 인물이다. 막판에 주연들이 깡그리 죽는 <햄릿>에서 유일하게 원죄 없이 목숨을 잃은 탓에 유럽형 청순가련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그녀의 무죄적 비극성은 많은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예컨대 랭보는 시 ‘Ophelia’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백설처럼 눈부신 아이로 묘사했고,
오 창백한 오필리아, 백설처럼 눈부시구나.
아이와 같던 그대가 물살에 떠내려가 죽었구나...
창백한 얼굴의 기사, 어리석은 미치광이는
그대의 무릎 위에 말없이 앉아있었지...
밀레이/워터하우스/카바넬 등의 화가들은 순백에 가까운 얼굴로 그녀의 무죄를 표현했다.
오필리아의 무죄성에 동의하기 위해, 너무 오래되어 가물거리는 유년시절의 필독서 <햄릿>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면...
<햄릿>은 5막 희곡으로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다. 덴마크 왕자가 부친을 독살한 숙부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물들이 (알게 모르게 지은 자신들 죄의 대가로)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으로, 각 인물들- 특히 햄릿의 내적 고뇌와 갈등이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언어 마술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다른 형식의 작품을 통해 줄거리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아래는 토마의 오페라 <햄릿>을 (오필리아 중심으로) 간략 정리한 것이다.
<햄릿> 줄거리
◈ 1막 ◈
덴마크 엘시노어 성. 햄릿 왕자는 혼란스러운 상태다.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른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왕비인 어머니가 두 달도 안 되어 숙부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닌데... 멘붕 중 수하들이 목격했다는 유령- 선왕을 만나 모든 것이 숙부의 계략임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한편 오필리아는 연인 햄릿의 무심함에 괴로워한다.
언제나 그대의 영혼 위에서 기도하는 슬픔이 우리의 행복을 마르게 하는군요! 왜 눈길을 피하시나요?
◈ 2막 ◈
언제부턴가 그는 손도 잡아주지 않아! 주춤거리고, 달아나고.
번뇌&고통에 빠진 연인을 보기 힘들어 오필리아가 궁을 떠나려하지만 왕비 거트루드가 나아질 것이라며 만류한다. 미친 척 행세하던 햄릿은 때마침 마련된 유랑극단의 궁정 공연에 쥐덫(곤자고의 암살자)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해 암살의 전모를 밝힌다.
◈ 3막 ◈
숙부 클로디어스 왕이 혼자 참회의 기도를 하고 있다.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햄릿은 기도 중의 살해는 천국행을 도울 뿐이라며 복수의 기회를 미룬다.
당신이 무릎 꿇고 맹세한 사랑의 징표인 이 반지. 더 이상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되겠지요?
연인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오필리아에게 햄릿이 수도원이나 가라며 모진 말을 뱉는다. 왕비 거트루드와 언쟁을 벌이던 햄릿이 커튼 뒤에 숨어 엿듣고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된다.
◈ 4막 ◈
봄을 맞아 열린 축제에 참가한 오필리아. 하지만 그녀의 마음엔 봄이 오지 않았다. 오필리아는 슬픈 노래를 부르며 차가운 물결에 몸을 맡긴다.
설령 그가 나를 잊었다는 소문을 듣는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마세요.
저기 그이가 있구나. 그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아!
그를 벌주려는 그대 윌리스여, 물의 요정이여! 그대의 갈대 사이에 나를 숨겨 다오!
◈ 5막 ◈
묘지 인근을 배회하던 햄릿이 오필리아의 주검을 목격하고 괴로워한다. 귀국한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즈는 클로디어스 왕과 음모를 꾸민다. 햄릿을 죽이기 위한 이중 안배의 독배를 거트루드 왕비가 마신다. 독에 발린 칼에 맞은 레어티즈가 죽기 직전 음모를 공개하고, 격분한 햄릿이 클로디어스 왕을 응징한다.
내 임무가 끝났구나. 오필리아여, 나 이제 그대를 따라 죽노라!
각색(脚色, adaptation/spin-off).
영화의 관계자를 살펴보다 보면 000 ‘각색’이란 용어가 자주 나온다. 각색이란 어떤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고쳐 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해당 영화만을 위한 전용 시나리오가 있지 않은 한 근원 작품이 있게 마련이고, 실제 개봉 영화의 절반 정도는 원작을 각색한 것이다. 이 원작을 어떻게(통째로/부분적으로/해체해) 가져오느냐에 따라 동일한 작품임에도 그 해석이 180도까지 달라지기도 한다.
한편 <햄릿>에 대해선 그간 튀는(?) 각색이 없었다. 1948년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을 비롯해 1990년 프란코 제피렐리 감독까지 10편의 <햄릿>을 선보였지만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연극이나 오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데, 아마도 셰익스피어란 대문호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수 있겠다. 저 유명한 ‘To be, or not to be...’를 젖혀두고라도
연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눈물 흘리며 가엾은 아버님의 시신을 따라가던 그 신발이 미처 닳지도 않았는데...하찮은 짐승이라도 좀 더 오래 슬퍼했으리라.
지금은 인정보다는 이성을 차리고 선왕을 추도하면서도 국왕의 할 바를 잊지 말아야 하오. 따라서 장례에는 축가, 혼인에는 만가를 노래하는 심정으로 왕비를 맞이한 것이오.
아무리 헤라클레스라도 개와 고양이가 우는 걸 막을 순 없지.
별이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도 왕비 없이는 살 수가 없구나.
영원히 흙에 묻힌 아버지만 찾고 있을 것이냐? 생명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이승과 저승은 통하게 마련이다.
네 아비를 죽인 그 독사가 지금 왕관을 쓰고 있느니라... 덴마크 왕의 침상을 패륜의 쾌락 속에 버려두지 마라.
제게 주신 선물들을 돌려드립니다. 다정한 말씀까지 보내주셔서 제겐 더욱 소중했지요. 그러나 그 향기가 사라졌으니 이젠 돌려드립니다. 마음이 변하면 선물도 초라해지는 것이니.
(오필리아와 함께 연극을 보며) 연극의 서문이 저렇게나 짧단 말인가. 마치 여인의 사랑처럼.
저 자가 영혼을 깨끗이 씻고 천국의 길을 준비하는 순간에 죽인다? 좀 더 끔찍한 순간을 기다려라.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는 순간에 해치우자. 시커먼 지옥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도록.
숙부의 침실론 가지 마세요. 정조가 없거든 있는 척이라도 하세요. 오늘밤만 참으면 내일 밤은 쉬울 것이고, 모레는 더욱 쉬워지죠. 습관이란 천성까지도 바꿀 수 있습니다.
영국 왕이여, 그대는 (햄릿을) 반드시 죽여야 할 게요. 그놈은 열병처럼 내 핏속에서 발악을 하고 있다오. 그대가 날 치료해야 하오.
다정한 내 누이. 내 뇌를 말려버려라. 5월의 장미, 그 새파란 처녀의 넋이 저렇듯 시들어버리다니! 하늘에 맹세코 저울대가 기울도록 실컷 갚아주마.
이런 주옥같은 대사들을 어떤 말로 대체하고 각색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 이번 맥카시 감독의 <오필리아>를 스틸 컷만으로 유추해보면...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렌즈의 초점을 햄릿이 아닌 오필리아에 맞춘 만큼, 또 여성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본 만큼 튀는 각색이 나올 수도 있겠다.
더불어 스타위즈의 여전사 레이- 데이지 리들리가 청순가련 오필리아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자못 기대가 된다.
첫댓글 오필리아 봐야겠네요
소프님 인스타 피드중에 예전에 밀레이의 오필리아 저 그림에 대해 글을 쓰신적이 있는데. .뒤져봐야 겠네요. 저는 워터하우스의 배 위에 정신줄 놓고 앉아있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ㅎ ㅎ
카페에만 글쓰시기 아까운신분 같아요~^^
잘 닦인 거울 같은 강이었네.
추억들이 마구 자맥질했네.
마음의 그물 멀리까지 드리웠네.
군데군데 비늘은 떨어져나간 헤지고 바랜 기억의 물고기들. 아름답지 않은 수확이었네.
떠나는 것들을 떠나보내지 않자 돌아올 것들도 돌아오지 않았네.
아프기로 하여라.
흠뻑 젖어 떨려오는, 아픈 시절은 더디게 간다.
계절이 강을 따라 몇 번 몸을 뒤채고 상처 여민 실밥들이 툭툭 터지는..
우~ 푸른 물살의 시간.
마음마저 벌겋게 녹슨 소녀 하나 강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소리없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쓸쓸하고 긴 강.
근심없는 왜가리 홀로 시간을 쪼고있는 강 저편은, 약속되지 않았다.
마음이 마음이 부옇게 일어나고, 어두워라.
먼 날 들에야 물기 툭툭 털어내고 갈 숲을 헤치며 걸어나올 그 꿈조차 어두워라.
끝나지 않은 생의 뜨거운 강.
마르지 않고 점점 거세어진다.
그림: The lady of Shalott / 존 윌리암 워터하우스(영국)1888.
-아주 오래전.. 워터하우스의 이 그림을 보고 끄적여봤던 글입니다. 2000년 초반쯤였으니 20년정도 되었네요. ㅎ / 낭만님 글을 보고 생각나서 한참 찾았네요.
떠나는 것들을 떠나보내지 않자 돌아올 것들도 돌아오지 않았네.
... 계절이 (강을 따라) 몇 번 몸을 뒤채고 상처 여민 실밥들이 툭툭 터지는..
우~ 푸른 물살의 시간.
와우! 느낌 있네요.
그 좋은 재주를 20년씩이나 묵히셨을까... 궁금하네요.
하긴 저 역시 딴짓하느라 허송세월 했지만 ㅠ.ㅠ
어머~~음악도 좋아하시고. 그림.글에 일가견이 있으시다니~
운동만 잘하시믄 소프님과 비슷한걸로 해드릴께요~~^^
항상 예쁘게 봐주시는 울님들. 이래서 종달 둥지는 사랑인가벼여~
^^ 잘 읽었습니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슈베르트 음반 내면서 쟈켓사진을 이렇게 했었죠.
하지만!!! 저는 카티야를 보내고 이렇게 바꿨죠. ㅎ
카티아에게는 비밀로 하셈.
10년도 더 차이나는 언니 때문에 물 먹었다고 삐칠지도...
@낭만배달부 아녜요. 알아도 됩니다.
카티야는 지가 젤 이쁜 줄 알거든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좀 겸손해져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