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3(목) 사순절 둘째 날 묵상(출애굽기 1:9-11)
공포증(phobia)
그 왕이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욱 불어날 것이고, 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리는 공사 감독관을 두어서, 강제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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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왕조는 가나안과 빈번한 왕래를 해 왔습니다. 중왕국(11-12 왕조, B.C.E. 2060년~B.C.E. 1782년)이 쇠퇴한 후 혼란기에 이집트 동부 나일 삼각주 지역에 가나안에서 온 셈족을 비롯하여 이민족이 급증하였습니다. 기원전 1720년경 이 이민족들은 아바리스(Avaris)에 수도를 정하고 15-16왕조를 창건합니다.(기원전 1663년~기원전 1555년) 이 시대를 힉소스 시대라고 합니다.
‘외국인 지배자’라는 뜻의 힉소스(Hyksos)는 셈족이 중심을 이뤘고, 하이집트와 중이집트를 약 108년 동안 통치합니다. 이 사건은 이집트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고, 이방 종족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심을 갖게 만듭니다. 따라서 아시아와 연결되는 동부의 삼각주는 늘 경계대상 1호였고, 바로 거기가 이스라엘 후손이 모여 살던 고센지역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파라오는 고센 땅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공짜 노동력’이 상실될까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힉소스 시대의 아픈 전쟁과 식민지의 기억을 회상시키면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억압에 의한 강제 노동이 시작됩니다.
고센 땅의 대규모 건설 토목 공사는 동부 삼각주 지역 평민 출신 프라메세(Pramesse)가 기원전 1305년 제19왕조를 창건하고 람세스 1세가 되고, 이후에 대규모 정복사업과 아바리스 북방에 여름 왕궁을 신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람세스 2세의 새 수도 건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를 발판으로 시리아와 가나안 일대를 정복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왕은 아마도 람세스 2세일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뛰어난 유적을 보며 화려하고 멋진 고대 도시를 상상하겠지만, 이것은 지배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공포증에 근거한 강제노동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어쩌면 낯선 것에 대한 공포증, 염려증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겉으로 적당한 이유를 대는 많은 일들이 공포증(phobia)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 마음을 잘 붙들어 주소서. 염려와 공포가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타, 억압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지닌 욕구가 더 아름다운 것들로 승화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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