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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꿈
----강은희의 시세계
반경환
1.
꿈이란 무엇일까? 꿈이란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심리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실현시키고 싶은 어떤 희망이나 이상일 수도 있다. 꿈이란 실현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허망한 망상일 수도 있고, 소년의 꿈이나 신혼의 꿈처럼 아주 달콤한 환상일 수도 있다. 흔히들 심리학자들은 밤의 꿈을 인간의 욕망이 억압된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흔히 나쁜 꿈이라고 말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되거나 황금알을 낳는 암탉이 되고 싶은 꿈처럼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꿈을 우리는 망상이라고 부르고, 소년의 꿈이나 신혼의 꿈처럼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꾸는 꿈을 환상이라고 부른다. 밤의 꿈이나 망상이나 환상, 또는 한낮의 백일몽이나 몽상 등은 그것이 비록 구체적인 근거도 없고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꿈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불만족한 현실을 달래며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다. 어린아이의 꿈이나 학자의 꿈, 아버지의 꿈이나 엄마의 꿈, 정치인의 꿈이나 군인의 꿈, 시인의 꿈이나 화가의 꿈 등은 그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꿈들, 즉, 희망이나 이상 속에도 망상이나 환상, 또는 백일몽이나 몽상 등이 혼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한다면, 그것이 황제의 꿈이든, 시인의 꿈이든, 대사상가의 꿈이든, 그 모든 꿈들은 환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이고, 꿈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에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꿈은 희망이고 이상이며, 꿈은 우리 인간들의 행복을 좌우한다. 개꿈이든, 돼지꿈이든, 우리는 꿈을 꾸지 않으면 안 되고, 어린아이의 꿈이든, 학자의 꿈이든, 아버지와 엄마의 꿈이든, 정치인과 군인의 꿈이든, 시인과 화가의 꿈이든, 우리는 그 꿈이 있기 때문에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꿈이 있으면 전쟁의 참화 속이나 시베리아의 벌판 속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가 있고, 꿈이 있으면 대형빌딩의 붕괴와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가 있다. 꿈은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삶의 의지이며, 이 삶의 의지가 있는 한, 그 어떤 고난이나 가난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가 있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고독사와 자살, 그밖의 모든 병들마저도 꿈을 꾸는 자와는 상관이 없는데, 왜냐하면 모든 불행과 슬픔들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의지를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강은희 시인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고, 2022년 {서정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늘의 꿈을 깨우다}는 강은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며, 그녀의 {그늘의 꿈을 깨우다}의 시세계는 한 마디로 ‘말의 꿈’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그녀는 “지나간 시간은 아름다웠고/ 지나간 사랑은 더욱 아름다웠고/ 지나간 사람은 더더욱 아름다웠다”([시인의 말])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다“지나갔기에”에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의 추억과 기억은 상처뿐이고, 그 상처들을 다스리고 용서하지 않는 한 그녀의‘말의 꿈’은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손끝으로 세상을 읽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환한 세상에서도 환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
슬픈 얼굴에서도 슬픈 눈빛을 읽지 못하는
깨어진 글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살아났으면 좋겠다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말] 전문
말은 우리 인간들의 생명이고, 우리는 말로서 숨을 쉬고 말로서 밥을 먹는다. 말로서 세상을 읽고, 말로서 소통을 하며, 말로서 아름다운 시와 문화유산을 남기고 죽는다. “환한 세상에서도 환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 슬픈 얼굴에서도 슬픈 눈빛을 읽지 못하는/ 깨어진 글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말들을 찾아내어 말의 생명을 되살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강은희 시인의 생명이고, 숨소리이며, 그녀는 이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말로 예술품 자체가 된 삶을 산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말은 영원하고, 그녀는 ‘말의 꿈’을 꾸며 살아간다.
추억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로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사람이 아니다. 진짜로 가난하고 밥 한 그릇과 죽 한 그릇도 먹기가 힘들었고, 상급학교의 진학은 커녕 온갖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최하 천민의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에게는 추억이 없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등, 하교를 하는 것, 벚꽃이 만발한 날 손에 손을 잡고 부모형제들과 친구들이 꽃놀이를 가는 것, 수학여행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것,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대저택에서 사는 것을 ‘소년(소녀) 가장’처럼 바라보며 눈물과 콧물로 밥을 말아먹던 사람에게는 추억이 없고 재앙만이 있다.
야간학교 등굣길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이다가
종잇장처럼 얇아진 엄마가
냇물같이 흔들린다
엄마 어디 아퍼?
어지러워서
다시 그 길로 돌아오기까지
하루는 젖은 얼굴로 길게 어두워졌고엄마의 얼굴이 낮달같이 하얗게 떠 보였다
가끔 엄마는 토마토 꼭지 냄새가
농약 냄새랑 닮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때 엄마가 일 나갔다 맡은 농약 냄새 때문에
어지러웠다는 걸 알았다
설탕 솔솔 뿌려 젓가락으로 꿰어 먹던
어린 날의 기억만 좋았을 뿐
가세 기울고 온전한 남루의 기억으로
토마토는 명치 끝부터 먼저 글썽여지는
엄마의 흔적이었다
텃밭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딸 때마다
하루살이 같던 그 시절
시간이 벌어다 주던 종이봉투 속 쌀알처럼
단단하게 부여잡았던
가난한 목숨들을 생각하게 한다
----[토마토 단상] 전문
강은희 시인의 [토마토 단상]은 추억이 아닌 재앙 자체의 시간이며, 가난이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고 일그러 트렸던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선“야간학교 등굣길에/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이다가/ 종잇장처럼 얇아진 엄마가/ 냇물같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엄마 어디 아퍼?/ 어지러워서”,“다시 그 길로 돌아오기까지/ 하루는 젖은 얼굴로 길게 어두워졌고/ 엄마의 얼굴이 낮달같이 하얗게 떠 보였다.”엄마는 가난한 이웃을 내몸처럼 생각하던 엄마였고, 엄마가 가게를 할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걸인들이 줄을 지어섰고, 엄마는 결코 그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소문처럼 집은 기울고 문간에는 창백한 바람이 서 있게”되었다. 왜냐하면“챙길 게 없으면 등을 보이는 게 세상이었”고,“덜어줄 게 없으면 등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게 세상이었기”([팔자는 볶는 것이다]) 때문이다. 반드시 그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진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가게를 접고 토마토 농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추억은 중독성 농약이자 어지러움증이 되었고, 추억은 야간학교이자 그림자의 눈물이 되었다. 추억은 가난이자 쥐똥이 되었고, 추억은 대사건이자 재앙 자체가 되었다. 어린 딸 아이는 정상이 아닌 야간학교를 다녀야만 했고, 엄마는 농약에 중독되어 토마토를 볼 때마다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고 구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난은 꿈조차도 꿀 수 없게 하고,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며, 그 모든 사회적 천대와 멸시를 다 받게 만든다. 강은희 시인의 첫 시집 {그늘의 꿈을 깨우다} 표제 시에도 그녀의 추억과 기억은 온통 상처--재앙뿐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고칠 수 없는 기억을 베고
왼쪽 벽으로 돌아누우며
한낮 잠이 든 여자는
빈 벽의 그늘에 눌려 꿈을 꾸고 있다
그네를 타고 있었다
멀리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다리를 접으며 되돌아오는
아무것도 없이 빈 채로 돌아오던 여자가
문득 꿈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어디쯤에서 멈춰 선 것인지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내 꿈은 쥐똥이다를 복창하던 수련회
아이의 꿈은 쥐똥으로 뭉개지고
더 큰 섭리를 쥐어주던 말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기억에서 끌려 나온 아이의 꿈이 오래도록 흐느끼고 있었다
바람은 틈새를 스쳐 갔으며 여자의 나이가 부풀려지고 있었다
밖에서 돌아온 남자가 조용히 여자의 꿈을 깨우고 있었다
----[그늘의 꿈을 깨우다] 전문
강은희 시인의 [그늘의 꿈을 깨우다]의“고칠 수 없는 기억”은 상처이고 재앙이며, 어린 시절의 그녀를 그토록 억압하고 짓눌렀던 사건일 것이다. 아무튼“고칠 수 없는 기억을 베고/ 왼쪽 벽으로 돌아누우”면“한낮 잠이 든 여자는// 빈 벽의 그늘에 눌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꿈 많은 소녀였지만, 그러나 그녀의 가정형편 상, 그 꿈을 추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네를 타고 있었다”는 것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멀리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다리를 접으며”“아무것도 없이 빈 채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 어떤 꿈도 도로아미타불의 헛수고로 그쳤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어른이 되어서도“내 꿈은 쥐똥이다를 복창하던 수련회/ 아이의 꿈은 쥐똥으로 뭉개지고”,“더 큰 섭리를 쥐어주던”어린 시절의 말들이 살아났지만, 그러나“기억에서 끌려 나온 아이의 꿈이 오래도록 흐느끼고 있었던”것이다. 꿈을 잃으면 인간은 소심해지고 작아지며,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룰 수 없는 꿈과 빈 벽의 그늘에 눌려 그 어떤 대책도 없이 오래도록 흐느끼고 있을 때,“밖에서 돌아온 남자가 조용히 여자의 꿈을 깨웠던”것이다.
시란 말들의 집이고, 이 말들의 집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집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순수함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며, 온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쓰는 사람만이 완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로서 숨을 쉬고, 말로서 밥을 먹으며, 말로서 꿈을 꾸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시인은 인간의 사회에서는 버림을 받고 신들의 사회에서는 크나큰 은총을 받는다. 강은희 시인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추억과 상처와 재앙을 다 치유하고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밖에서 돌아온 그 남자 때문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밖에서 돌아온 그 남자는 천사이자 구원자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여자의 꿈”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그를 읽은 이후]라는 시를 보면, 남자는 딱딱하게 익은 옥수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여자는“난 여린 게 좋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나 그 남자가 따온 열 개의 옥수수 중 여덟 개는 그 여자의 몫이었고, 그 남자의 몫은 겨우 두 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늘 모자란 그의 몫을 보며 그 여자는 사랑을 배우고, 사랑은 배려이고 용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그 추억, 상처, 재앙을
치유의 순간은
두 팔을 벌려 가슴에 안아주는
따뜻함으로 온다
----[어제를 치유하는 것] 부분
따뜻한 시선이 닿자 그늘이 살아 오릅니다
처음부터 그늘이지 않은 것처럼
세상에 붙박인 슬픔이란 것은 없기로 합니다
----[붙박인 슬픔은 없다] 부분
어떻게든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려니
-----쓰러진 국화를 일으키며] 부분
라는, 시들에서처럼 다스리며,‘말의 꿈’, 즉,‘시인의 꿈’을 완성해나가게 된다.“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의 민들레꽃처럼” 피어나는 세계, 슬퍼도 아름답고, 살아서 더욱더 눈부신 말들의 세계가 강은희 시인이 꿈꾸는 세계일 것이다.
좋은 날을 위하여 견디었다는 것이다
숱한 날들을 참고 버티었다는 것이다
어제의 눈물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환하게
꽃이 피어 있다는 말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전문
‘세계는 의지의 표상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공식을‘세계는 말의 꿈이다’라는 강은희 시인의‘삶의 철학’으로 대체해도 될 것이다. 시는 말의 꽃이고, 말이 그 고통으로 활짝 꽃을 피우는 것이다. 꽃이 피려면 죽을 만큼의 고통으로 그 고통을 미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좋은 날을 위하여”견디고, 숱한 날들을 참고 버티며”,“어제의 눈물을 잊지”않아야 한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고, 꿈을 꾼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정직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다는 것은/ 환하게/ 꽃”을 피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깊이를 내려놓은 저수지에 발자국이 남았다
투명한 빛들이 속살거리던 수면 위로
간지럼타는 산들이 까르륵거리던 날들
지나가던 구름이 멈춰
물오리 몇
깃털에 숨어 술래가 되고
겹겹이 동그라미가 쏟아지던
비 오던 기억을 뒤로한 채
하루하루 겸손해지는 비움의 작업 중이다
----[습작] 전문
산을 오르면 내려가야 하고, 물을 채웠으면 비워야 한다. 부를 축적했으면 다 주고 떠나가야 하고, 나를 괴롭히고 못 살게 굴었던 사람들이 있었으면 다 용서해주고 떠나가야 한다. 말의 꿈, 즉, 말의 꽃을 피웠으면 저수지에 남은 발자국처럼 잠시 흔적을 남기고 떠나가야 한다. 비운다는 것은 말의 꿈과 욕망을 비우는 것이고, 말의 꿈과 욕망을 비우는 것은 영원한 [습작]이며, 이 습작의 결과로 그녀의 삶이 완성된다.
인생은 말의 꽃을 피우는 것이고, 말의 꽃을 피우는 것은 최초의 세계, 즉, 비움의 세계로 되돌아 가는 영원한 [습작]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를 꽃 피우는 것이고, 하루하루를 꽃 피우는 것은 하루하루 겸손해지는‘비움의 철학’을 완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