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최초의 띄어쓰기는 존 로스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 호머 헐버트 선교사가 적극 권장하고 활용했다.
그 후 주시경 선생의 노력으로 독립신문은 띄어쓰기로 발행되었다.
주시경 선생은 띄어쓰기의 보편화에 기여하였다.
이응찬의 도움으로 한국어를 배운 존 로스가 1877년에 한국어 학습서인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 = 한국어 첫걸음)을 펴냈다. 로스는 1876년 4월경에 고려문으로 여행을 했는데 이때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신약성서 번역을 도와줄 이를 물색했다.
이때 만난 한국어 선생 이응찬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운후 1877년에 이응찬과 함께 한국어 학습 교재(Corean Primer)을 만들었다. 이 책은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특히 선교사들에게 한국말과 글을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간행되었는데, 한글 밑에 로마자로 발음기호를 표기하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한글 표기에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하였는데, 이는 영어의 띄어쓰기가 자연스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책에서 그는 “한글은 소리글자로 이루어져 자모만 배우면 누구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자”라며 한글의 우수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로스의 한국어 선생인 이응찬이 평안도 의주 출신이기 때문에 평안도 사투리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띄어쓰기(문화어: 띄여쓰기)는 글쓰기에서 필자가 글을 쓸 때 어절마다 사이를 띄어 쓰는 것을 가리킨다.
보통 공백을 사용하여 띄어 쓰는 것을 지칭하는 것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는 구두점 등으로 분할한 것까지 띄어쓰기에 포함한다.
한글은 창제시기부터 근대까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한글 최초 띄어쓰기 적용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스코틀랜드 국교회(장로교)의 선교사 존 로스가 1877년에 편찬한 '한국어 첫걸음'이라는 학습교재으나,[1]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 범위에서만 활용되고 대중화하지는 못했다.
국내에서 실제로 널리 활용한 시기는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 호머 헐버트로 그는 한글 띄어쓰기를 적극 권장하였다.
헐버트가 일했던 감리교 출판국 삼문출판사에서 인쇄하여 1896년에 창간한 '독립신문'에 본격적으로 띄어쓰기를 도입하였다.[2]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면서 띄어쓰기는 정착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한글 띄어쓰기 첫 도입은 로스 선교사”… “세종대왕의 거룩한 뜻 기독교가 실현” - 국민일보 (kmib.co.kr)
한국어 띄어쓰기의 시초 (wooriclass.co.kr)
한국어의 띄어쓰기 역사는 다음과 같은 주요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대 및 중세: 한국어의 초기 문헌에서는 띄어쓰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자와 한글이 혼용되었고, 문장 구조가 명확하지 않아 독자가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어 교육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띄어쓰기가 점차 도입되었습니다. 특히, 존 로스와 호머 헐버트 같은 선교사들이 한국어 교육에 기여하며 띄어쓰기를 권장했습니다.
주시경의 기여: 1907년, 주시경은 '독립신문'에서 띄어쓰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국어의 문법과 표기법을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띄어쓰기를 통해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세기 초반: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면서 띄어쓰기의 규칙이 정립되었습니다. 이 통일안은 한국어의 띄어쓰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현대: 현재의 띄어쓰기 규칙은 1988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라 사용되고 있습니다. 띄어쓰기는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독자가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