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본 기도 (마 10:1-4)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이 시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본 기도"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 야고보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다’는 뜻의 야곱을 뜻합니다. 에서와 야곱, 유명한 이름이니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야고보만 해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제1 야고보는 예수님의 수제자 세베데의 아들인 야고보입니다. 제2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 동생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입니다. 다들 업적이 많고 유명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3 야고보, 지금 말씀하고자 하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라고도 부르는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명단의 후미에 나올 정도로 지명도도 낮고 막2:14을 보면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한 것 말고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오늘 본문이 12제자 명단이겠습니까?
그러나 역사가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그는 한때 훌륭한 애국자였다. 그러나 그는 후일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12제자 중에 가장 기도를 많이 한 제자가 야고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고보는 얍복강에 목숨 걸고 기도하던 야곱 그 이름 그대로 살려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야고보에게서 기도의 비밀을 봅니다.
진정한 기도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1. 현실을 직시한 사람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열심당이란 당시 로마 지배하에서 로마에 항거하는 독립투사들입니다. 열심당원이라는 원어가 ‘셀롯’인데 이는 “열심히”라는 뜻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안 사람입니다. 나라가 처한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당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열심당원이 된 것을 한 번도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셀롯인 시몬이나 가룟 유다나 바라바도 열심당원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칼을 품고 다닌 것을 보면 많은 제자들이 열심당이나 혹은 거기에 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경고하신 한 마디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힌트가 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누구보다 현실을 직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생명 바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막2:14에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면 야고보의 형제인데 가족부터 돈밖에 모르는 로마의 앞잡이였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애통하겠습니까? 이처럼 성경만 알아서는 부족합니다. 현실을 알아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알아야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선교지를 알아야 선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나라를 알아야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누구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시사에 능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한 손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신문을 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왕보다 먼저 알고 전문가 중의 전문가인 왕의 책사보다 먼저 알았습니다. 언론만 보면 바보가 됩니다. 듣기는 먼저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처럼 아는 데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제자 생활을 하면서도 열심당원이었지만 성령 받고는 품고 다니던 칼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칼만 사라졌지 보는 눈이 사라졌거나 열심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대신 그 칼은 기도로 승화되었습니다. 즉 그가 현실을 직시했기에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2.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한 기록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12제자 중에 가장 기도를 많이 했고,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제자라고 사람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았는데도 그 행적조차 없다는 사실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한 위대한 일군들이 많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행 19장 20장에 나오는 아리스다고입니다. 아리스다고에 대한 기록은 박해받은 짧은 기록 말고는 없지만, 그러나 그는 항상 바울 옆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도, 무인도에 있을 때도 같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로서 바울의 승리는 이런 일군들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처럼 숨은 일군이 어디 있습니까? 발바닥 같은 존재입니다. 발바닥처럼 가장 무거운 일을 하면서도 가장 알아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기도 때문에 모두가 살고, 우리 기도 때문에 모든 것을 이루지만, 우리는 하늘의 상으로 만족해야지 그 이상을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기도입니다. 내 문제 남의 문제 사회와 나라와 국제간의 문제 등 답답하고 불가능한 문제들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는 것은 어떤 고통보다 그리고 어떤 노동보다 무겁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가장 귀한 일이고, 사람들을 세우거나 폐하던 예레미야와 같이 가장 큰일하는 사람이라는 긍지를 가질 때 비로소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기도에 행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앞에서 소개했듯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야고보였다”고 했습니다. 가장 기도를 많이 한 제자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전해오는 역사에 의하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시리아와 예루살렘에서 사역했습니다. 돌에 맞았는데 죽지 않자 톱으로 켜서 죽은 두 번이나 순교한 순교자로 지금 그의 시체는 로마로 옮겨져서 그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란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할 일을 잘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기도하면 자꾸 지혜가 생기고 도움이 생겨서 큰일을 해냅니다. 그것도 귀한 기적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직접 역사하시는 기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잠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했고, 15-17절에는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기도의 사람이 된 가장 귀한 이유는 무엇보다 기도의 대장이신 예수님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정한 기도자가 되기 위하여 눈을 열어 현실을 직시하고, 불타는 그 가슴으로 기도하고, 보이지는 않아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그 긍지 하나 붙잡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