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때론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 격식보다 현장감을 살리니 약간의 단어 사용에 있어 양해를 구하고 들어감>
2000년 한 해가 마무리 되기 직전
군대 간다고 설레발 학교 선배한테 술 얻어 먹었다.
제대한 시학회(적어도 90년 중반 학번들로 정말 시를 사랑한 선배들이었다) 선배들 중 양형은 똥별에게
"씨바...머리가 길어 그것도 깎은 거라고 깎았냐? 크크크"
"아우~내가 다 몸이 싸해~"
다들 술 한잔 들어가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선배들 속 모습이 등장
"니미 난 말이다 전경나왔다. 저 시끼는 카추샤지...전경만 차출되지 말아라.
훈련소에서 자대배치 받는 날 "전투경찰"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정말이지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때까지 똥별은 전투경찰이 육군훈련소에서 강제차출 되는 지도 몰랐다. 그리고 '에이~설마~'하면서
선배의 한이 담긴 듯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퍼플님은 트라우마라고 명확히 지적했다. 나중에 안건데 트라우마 맞다)
189번 훈련병 모 지역 향토사단.
'앗싸리 고향이고 향토사단이다. 운 좋다'
운발도 이런 운발이 없다고 생각하며 6주를 보냈다.
그 중 특기 할 점이라곤 '부대장에게 보내는 소원수리' 중
"너거들이 절대복종 절대복종 하는데 군법이라는 위압으로만 강제하려 하지 말고 진정한 권위로 부하를 이끌려고 해라" 고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개념 상실한 훈련병 생각을 적었다가 중대장 면접(?)을 봤다.
"너 자기소개 보니 학보사 기자였다고. 음...그래 물론 군대가 군법이 다가 아니다 ~(한참을 설교 들었다)"
사실 이 때 사건이 정말 소문대로 걸림을 당했는지는 모른다.
자대 배치 받기 전날
"189번 훈련병! 전투경찰"
정말 하늘이 노랗다는 걸 이 때 처음 알았다. 평생 생각지도 못한, 길거리에서 닭장차 옆에서 쪼그리고 철판에 밥 먹는...
국가 권력이란 이름으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던 무리들. 검정색 진압복은 괜시리 사람 불쾌하게 만들던 그들.
그게 내 삶이 됐다.
충주 경찰학교로 호송되는 동안 "왜케 기가 죽었냐"는 인솔 의경의 말처럼 150명 남짓한 2409기 전경은 조용했다.
사실 상실감이 컸다. 믿었던 육군에게 팽! 당하는 느낌을 받은 아해들...전경이 무엇일까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 있었던 아해들
호송 전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노라며
"니미 나 자살할거다. 너거들이 뭔데 내가 싫다는데 상관없이 전경으로 강제 차출하냐.
특공대도 자기 안 가겠다고 하니 안 뽑아가던데 우린 뭐냐!"라고 마지막 소원수리를 적어봤으나 소용 없었다.
그 때 처음 몸소 체험했다. 국가라는 권력이 한 개인의 의지를 얼마나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지를.
"중대장은 사회 약자의 편입니까? 강자의 편입니까?"라고 전주역에서 되물었던 똥별은
2주 후 시골 한적한 곳에 숨어 있는 <2506전투경찰대>로 호송됐다.
그 살벌함...안 가본 사람은 모른다.
신병 왔다고 내무반에 들어가자 마자 존나 갈구기 시작한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내무반에서 고기를 잔뜩 구워서 회식하던 날.
옆에 자는 고참은 "씨바. 니미. 조도. 어주. 고양이 새끼 소 새끼 양 새끼"
그 비판의식 자랑하던 똥별도 원초적 두려움에 휩싸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챙이라는 교양기수가 인솔하기 시작했다. 병아리 새끼 졸졸졸 따라 다니듯 하지만 발은 백조보다 더 빨리 굴려야 했다.
안 쓰는 방패랑 방독면 곤봉을 보관하던 창고는 우리 신삥들 교양장소로 애용됐다.
챙...첫날은 참 인자했다. 담배도 주더라.
밥 먹기, 오줌 싸기, 똥 싸기, 티비 보기, 잠 자기, 일어 나기, 세수 하기...신삥들은 챙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내무반에서 열외들이 깔깔대고 웃다가 장난질이다. 동기 한 놈이 맞장구 쳤다.
창고로 이동. 챙의 교양이 시작됐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미쳤냐?" 여까진 겁만 주는 줄 알았다
무릎앉아를 하되 엉덩이와 발 뒤꿈치는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 띄우란다. 뭐 이거 하루 하루 일상이 되면 할만하다.
동기 중 한놈이 패대기 당했다. 햇빛 간간이 들어오는 창고에 먼지는 빛에 반사되고 동기는 그렇게 개 패듯이 패대기 당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소대로 배치 받았다.
세상엔 맨 몸으로 맞을 수 있는 부위가 이토록 다양한지 새삼 눈을 뜨게 됐다고나 할까.
하루가 멀다하고 몸빵이다. 맞지 않으면 잠 드는 게 불안하다. 원초적 공포라는 게 이런 거다.
그렇게 맞고 또 맞고 닭장차에서 잠드는 게 익숙해 진다.
하루는 바로 밑 후임 놈이 "막 고참님, 갈비뼈가 너무 아픕니다. 어제 챙한테 맞은 게 어떻게 됐나 봅니다" 이런다.
중간 중간 경장, 경사, 경찰대 출신 경위 라는 간부 놈들이 '폭력근절'이라고 말 그대로 지랄을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랄이었다. 지들이야 사건 안나고 외부로 안 알려지는 것만이 승진의 지름길이고
1년 쉬러온 전경대서 몸 보신 하는 거다. 애들 관리? 관심 없다. 고참들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면 된다. 패도 알아서 패도록...
그러다 처음으로 '상황'이란 걸 나갔다. 비 오는 날 철야다. 경찰서 앞에서 시위대가 올지 모르니 밤새 철야다.
비 맞으면서 새벽에 선 채로 졸아보긴 또 처음이다. 그래도 시위대는 마주치지 않았다.
두 번째 상황, 내가 살던 시, 고딩 때 줄곧 지나쳤던 시청 앞이다.
골프장 건설 반대 하신다는 시골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시장좀 나와 보라고 오셨다.
도무지 왜 그 자리에 몇 개 중대의 전경대, 기동대가 출동했는지 모르겠다.
방패를 밀며 비키라는 어르신들을 보며 나와 내 동기들은 그저 할말을 잃었다.
'뭐야 씨바...내가 왜 이래야 하는데...내가 왜...왜...왜...'
고참들 "야 막내들 뒤로 빼!!!"라는 소리와 함께 몸싸움 벌이는 현장에서 나와 내 동기는 고참들이 막고 있는 대열 맨 뒤에서
서로들 울먹였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게 뭔 개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군대 지원해서 왔는데 왜 멀쩡한 일반인들과 싸워야 하는지....
마음이 아팠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더럽고 지랄 같은 기분을...
전경으로 제대하고 몇 년 동안 꿈꾸다 깼다.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다.
누구 말대로 '트라우마'다. 정신적 외상이다.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
상식만으로 살다가 군대 온 놈이라면 누구나 상처받는다.
지 아부지, 친구,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여야 한다. 때로는 강제진압도 하란다. 윗대가리들이...
윗대가리들이 까라면 까야하는 국가권력을 일개 전경 나부랭이가 거역한다고? 기자라면 전경 욕해서는 안 된다.
현장 상황이 격해질 경우 총만 없을 뿐이지 상황은 전투랑 똑같다.
더러는 인간인지라 방패로 찍기도 한다. 그런 싸가지 없는 놈들까지 대변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상황이고 국가권력이 시민을 향해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이후 기사에서 소소한 부분만 지적하는 기자를 볼 때 실망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적어도 국가권력이란 시스템을 안다는 기자라면 그 근본을 물고 늘어지길 바랐다.
전경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왜 그런 불상사가 나타나는지. 조금만 고민하면 되지 않았을까?
윗대가리 놈들을 물고 늘어지고 전경이란 코미디 같은 진압부대의 부조리를 지적할 수 없었을까?
안전집회 보장하겠다는 윗대가리 말에 "니들이 마련한 지휘체계나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을까?
전경출신들 중에 인간적인 싸가지 없는 놈들을 제외하고
자신이 경험했던 지랄 같은 군생활 상처는 아무는 데 한참을 간다.
극단적으로 더러는 정신병을 더러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전경 출신들은 강제차출 안 당해 육군간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도살장 끌려 가는 소 마냥 질질질 전경으로 강제차출 된다.
그렇게 길게는 2년 국가권력이란 이름으로 진압용(더러는 방범, 음주단속, 법정 경비, 벚꽃놀이 경비, 해변 경비 등 잡일 포함)으로 이용된다. 자기 의지? 웃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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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말할 수 있지만 제대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어디가서 이 당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트라우마는 그런 거다)
조금 두서 없이 말이 길어졌네요. 트라우마라는 말을 개인적 경험으로 적어봤습니다.
전 지금도 현장에 있는 전경들 보면 알싸해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고 근원을 깨부셔 주길 이 사회에 바랍니다.
첫댓글 전경중에도 경찰서 담당은 더 낫죠. 의경은 지원해서 가기 때문에 까라면 까라는게 억지로 통용되지만..경찰학교에서조차 전경들은 의경들에게 무시당하고... 의경들은 시험을 봐서 결국 지방가서 뺑뺑이 되지만 전경은 전경대 가면 끝이죠. 의경 기동대보다 전경대가 훨씬 구타도 심하고 힘들다고 들었어요. 제 친구중 하나는 제대하고 거의 은둔형 외톨이가 되서 방에서 안나오고 성격도 폭력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정말 순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단 한명의 사례일 수도 있지만 이런 트라우마로 평생을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저도 예비군 4년차를 넘겨가지만 가끔 꿈에 군시절이 나오면 놀라서 깹니다.
전 지원해서 들어갔지만 들어가서 부터 의경 없어진다는 말이 들렸죠. 아직까지 안 없어지고 있지만..지원해서 갔는데 빽있는 애들은 결국 전출가더라구요. 빽도 없고 참아서 고쳐보자라고 했던 저는 동기와 차기수 후임 4명중에 3명이 전출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화가 난다기보단 이해가 되더군요. 2차휴가 갔다오자마자 바로 아래 후임이 전출가고 구타했던 바로 위 선임이 기율대가서 홀로 중간기수라고 끌려다니면서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맞아요~저는 부대가 특이한 곳이라 경찰서나 지구대 파견나갔다가 데모있으면 바로 투입되는 곳이어서.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전경이나 의경들과도 친했죠. 짜증은 매한가지죠. 오히려 이상한 군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경할서내 샤워실이나 계단이 구타의 현장이 되기도 하고. 일반인들 상대하기도 어렵고. 한번은 술취한 분 상대하다가 직원 (머리숱없는) 머리채 뜯겨서 싸우고 난리였는데 다음날 던킨도넛 몇박스 들고와서 사과하더군요. 주취자분들 대하기가 제일 어려워요.
아..저보다 선배님이시네요 ^^: ( 506이면 정읍에 있죠? ㅋㅋ제 동기가 거기 출신인데 공단끼고 구보하다 죽을뻔했다는.. ) ---------- 전 509 나왔거든요.. (뭐 경상도지만..^^; ) 챙들에게 갈굼당하고 시위 나가면 이유도 모른채 진압하고.. 훈련으로 피똥샀는데.. 사역으로 보듬어주는.. ^^: .......... 아..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정도는 사역병 꿈을 꾼다는... ^^:
저는 1중대였는데. 부대건물이 면에 있었는데 게다가 미친 직원이 한명 있어서 그 직원 기분 나쁠땐 장비차고 면 한바퀴를 돌아야 했죠. 아침 6시에... 낙오하면 전 소대원 소각장 집합. 방독면 쓰고 돌렸을 땐 ...정말 딴세상에서 뛰고 있는 기분이더군요. 어쨋든 평생 괴롭힐 것 같습니다. 이놈의 트라우마는...
ㅋㅋㅋ 동대문 1001이요? ^^: 1대 분들 엄청 고생하시던데... (제가 간 날이 검열 기간이라.. ^^: )
챙...밭 챙밭챙밭~ 언제들어도 두려운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