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래퍼티Gerry Rafferty는 폴 매카트니의 열렬한 추종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로, 영화 <Good Will Hunting>에 그의 음악이 쓰여지면서 널리 알려졌다. 'Right down the line'은 '글래스고의 폴 매카트니'로 불렸던 제리 래퍼티의 1978년 솔로 데뷔 음반 <City To City>에 실린 곡이다. <City To City>는 제리 래퍼티가 밴드에서 독립해 자기만의 음악성을 추구한 결실로서, 이 음반의 빅히트는 브리티시 팝의 신호탄 구실을 했다.
제리 래퍼티는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수로 성공한 인물이다. 굳이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에서는 두 말이 필요 없는 '세련'과 '격조'의 높은 아우리가 서려 있는데, 그 배경에는 어린 래퍼티를 앞에 앉혀 놓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전통 포크 음악을 들여주었던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열여섯의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푸줏간, 신발 가게 등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 가던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음악에의 욕구를 접지 못하고 결국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The Mavericks, The Fifth Column 등에서 활동하던 팀이 그것이다. 제리 레퍼티는 1969년 스코틀랜드 남부의 글래스고Glasgow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크 듀오 험블범스The Humblebums*에 세 번째 멤버로 가입해 1971년까지 빌리 코놀리Billy Connolly의 비트 포크 기반 위에 독자적인 팝 센스를 접목시켜 2장의 걸작 앨범 <The New Humblebums>와 <Open Up The Door>를 남겼다.
그러다 빌리 코놀리와의 음악적 방향의 차이로 팀을 떠난 래퍼티는 1972년 솔로 데뷔 앨범 <Can I Have My Money Back>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앨범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하자 래퍼티는 고향 친구와 포크 록 밴드 스틸러스 휠Stealers Wheel을 결성,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란 곡으로 영국과 미국 차트에 진입해 잠시 얼굴을 비치기도 했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결국 밴드 해체의 아픔을 맞았다. 그러다 고향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작곡에만 전념하던 그의 실력을 아깝게 여긴 유명한 프로듀서 휴 머피Hugh Murphy의 권유로 다시 곡을 쓰게 되었고 결국 1978년 복귀작 <City To City>의 빅히트 부와 명성을 안았다. 이 앨범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영국에서는 6위까지 올랐다. 앨범 수록곡 'Baker Street'는 빌보드 싱글 2위까지 올랐고 'Right down the line'은 12위까지 올랐다.
스코틀랜드의 색소폰 연주자 라파엘 레이븐스크로프트Raphael Ravenscroft의 아름다운 연주가 심금을 울리는 'Baker Street'도 국내서 사랑받는 명곡이다. 런던의 유명한 거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 아름다운 발라드 곡은 재즈적이면서도 진보적인 팝 성향의 음악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3위와 2위에 각각 진출하는 성공을 거뒀다.이후 제리 래퍼티는 1979년 3집 음반 <Night Owl> 등을 통해 인상적인 활동을 펼친 것을 비롯해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그리고 2000년까지 모두 9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왔지만 좋아하는 술로 인한 간 손상 때문에 2011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The Humblebums
데뷔 앨범 <First Collection of Merrie Melodies> 이후 1969년 말 발표한 험블범스의 두 번째 앨범 <The New Humblebums>는 폴 매카트니와도 비견되는 희대의 멜로디 메이커 래퍼티의 영입으로 완성된 영국 어쿠스틱 팝의 결정적 명작이다. 존 레넌 풍의 보컬 스타일을 지닌 빌리 코놀리Billy Connolly와 소프트한 보컬을 소유한 제리 래퍼티의 융합은 비틀스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어쿠스틱 기타에 브라스와 우드윈드Woodwind(목관 악기)를 가미시킨 노련한 배치가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는 숲속을 걷고 있는 듯한 환상에 휩싸이게 한다. 전작에 이어 영국 포크계 제일의 프로듀서 Bill Leader가 참여했다. 래퍼티의 뛰어난 팝적 감각은 험블범스를 라이브 무대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내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빌리 코놀리의 비트 포크와 제리 래퍼티의 포크/팝 사운드의 결합에 의한 시너지효과가 험블범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잉태된 1970년 세 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Open Up The Door> 역시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전 두 작품을 지배했던 어쿠스틱 지향의 노선에서 급선회해 일렉트릭 악기를 적극적으로 채용한 이 앨범은 코놀리의 미국 풍 스웜프 록Swamp Rock과 후기 비틀스 사운드를 방불케하는 래퍼티의 곡들이 절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완전 무결한 포크록 사운드를 전개해 간다. 2장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Pentangles 등의 앨범 작업으로 유명한 Bill Leader가 프로듀스를 맡았다. <Open Up The Door> 앨범에 수록된 'Song for simon'은 폴 매카트니의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가져다 주는 정감 어린 포크송이다.
그런데 래퍼티와 코놀리 사이에는 불화가 싹트고 있었다. 래퍼티는 코놀리의 가볍고 건조한 위트보다는 좀 더 진중한 쪽이었고, 코놀리의 코메디는 험블범스 무대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래퍼티는 그걸 걷어내길 원했다. 결국 두 사람의 결별로 험벌범스는 1971년 해체됐고, 래퍼티는 스틸러스 휠로 옮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