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로 읽는 東洋古典 - 三樂人-
三樂人
― 樂天·樂生·樂業 ―
安 秉 煜
崇實大學校 名譽敎授
孔子는 樂의 人이었다. 孔子처럼 人生을 사랑하고 즐겁게 산 사람이 없다. 그는 樂의 天才요, 樂의 達人이었다.
孔子의 言行을 기록한 論語의 第一章 첫머리는 '즐거울 樂'字에서부터 시작한다.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論語 學而篇)
"유붕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아." 학문을 좋아하는 정다운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切親한 學友와의 뜻하지 아니한 만남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論語에는 '樂'字가 여러번 나온다. '樂'字는 象形文字다. 古代 中國의 樂器를 본뜬 글자다. (..........) 나무로 만든 받침대(...........)의 중앙에 큰 북(...........)을 매달고 그 左右에 조그만 북(...........)이 네 개 달려 있다.
이 樂器를 신나게 두드리면서 즐거워했다. '樂'字의 原來의 發音은 '風流 악'字다. 음악은 곧 즐거운 것이다. '樂'(악) 즉 '樂'(낙)이다.
무슨 일이나 즐거우면 좋아하게 된다. 그러므로 '좋아할 요'字로 발전했다.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論語 雍也篇)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고 읽어야 한다. 知者는 쉬임없이 흐르는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泰然不動의 산을 좋아한다.
漢字는 一字一音을 原則으로 한다. '木'은 '나무 목'이요, '石'은 '돌 석'이다. 그러나 一字二音이 가끔 있다. 自動車(자동차), 車馬費(거마비)
대단히 드물지만 一字三音의 경우도 있다. '樂'자가 그 중의 하나다. '풍류 악, 즐거울 낙, 좋아할 요' 세 가지로 발음한다.
孔子는 이렇게 말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論語 雍也篇)
인간은 事物에 대하여 知와 好와 樂의 세 가지 段階, 세 가지 태도를 갖는다. 學問이건 藝術이건 事業이건, 知(know) 아는 단계보다도, 好(like) 좋아하는 단계가 더 좋고, 好의 단계보다도 樂(enjoy) 즐거워하는 단계가 가장 좋다.
音樂을 知的으로 아는 것과 心情的으로 즐기는 것은 天壤之差가 있다. 참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음악에 心醉하고 魅了되어 깊은 喜悅을 느끼고, 나와 음악이 渾然一體(혼연일체), 하나가 되는 自他一如의 恍惚境(황홀경)에 도달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樂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孔子는 음악을 대단히 좋아했다. 論語에는 孔子의 深奧한 音樂論이 나온다.
子在齊 聞韶三月 不知肉味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論語 述而篇)
孔子가 齊나라에 간 일이 있다. 그 때 孔子는 古代의 聖者였던 舜임금님의 높은 德을 讚揚(찬양)한 韶(소)라는 음악을 三個月 동안 듣고 배웠다. 孔子는 그 음악에 陶醉(도취)하고 沒入하여 여러날 동안 고기맛을 잊어버렸다. 음악의 至極한 즐거움이 이렇게까지 크고 좋을 줄은 미쳐 몰랐다고 孔子는 感嘆했다.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고 즐겼던 孔子.
그는 盡善盡美한 음악에 魅惑(매혹)되어 忘我의 境地에 도달했던 것이다. 이것이 眞正한 樂의 경지다. 樂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最高의 경지다. 樂이란 무엇이냐. 사물의 眞味를 아는 것이요, 그 精粹를 體驗하는 것이요, 그 核心을 깨닫는 것이다.
論語에는 樂에 관한 感動的인 文章이 많다. 述而篇에 나오는 두 개의 유명한 글을 소개한다.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楚나라의 葉公이 孔子의 弟子인 子路에게 물었다. "당신의 先生인 孔子란 어떤 분이십니까" 子路는 갑작스런 質問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孔子는 子路한테서 그 이야기를 듣고 子路에게 이렇게 말했다. "子路야,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니. 孔子라는 사람은 發憤忘食(발분망식), 學問에 熱中하면 食事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에 沒入합니다. 道와 眞理를 깨달으면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老境에 이르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나를 왜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니."
이것은 熱烈한 求道者 孔子의 簡潔明快한 自畵像이다. 學과 道의 工夫에 專心專念한 孔子의 眞面目이 이 문장 속에 躍動하고 있다.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孔子는 이렇게 말씀했다. 素餐(소찬)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잠을 자는 가난한 생활 속에도 道를 追求하는 즐거움이 있다. 不正不義한 방법으로 누리는 富貴는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처럼 虛妄한 것이다."
東西古今에 熱烈한 求道者가 많았지만 孔子는 그 중에서 으뜸가는 存在다.
生卽樂. 산다는 것은 즐기는 것이요, 또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樂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인생은 悅樂의 饗宴場(향연장)이다. 神은 이 無邊廣大한 天地自然에 樂의 萬華鏡을 만들고, 無窮無盡한 美의 森羅萬象을 창조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닫는 遍歷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나는 三樂人을 강조한다. 첫째는 樂天이요, 둘째는 樂生이요, 셋째는 樂業이다. 우리는 天地自然을 즐기고 인생을 즐기고 일을 즐겨야 한다.
唐나라의 名僧 雲門大師는
日日是好日
이라고 말했다. 매일매일이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즐거운 날이 되려면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感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謙遜(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내 마음 속에 憎惡와 慾心과 驕慢(교만)이 가득할 때, 나는 결코 三樂人이 될 수 없다.
먼저 明心和氣人이 되어라. 마음이 밝고 和平해야 한다.
첫째 樂天人이 되어라.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밝고 아름다운 太陽을 바라보라. 태양은 나에게 밝은 빛을 주고 따뜻한 볕을 주고 活動의 源泉인 에네르기를 준다. 땅은 나에게 生命의 糧食인 五穀百果를 주고 하늘은 나에게 활달한 浩然之氣(호연지기)를 주고, 山川草木은 淸淨한 공기를 주고, 별은 아름다운 꿈을 주고, 花草는 美와 生命의 神秘感을 준다.
天地自然은 우리의 생명의 어머니다. 우리는 죽으면 한줌의 흙이 되어 땅에 묻힌다. 天地自然이 없으면 나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우리는 하늘의 아들이요, 땅의 자식이다.
둘째는 樂生人이 되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아름답고 幸福한 것이냐. 人生은 너와 나와의 깊은 만남이다. 나는 父母妻子와 兄弟姉妹를 만나고,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고, 다정한 친구를 만나고, 그리운 愛人을 만나고, 많은 衆生을 만난다. 나는 그들과 對話하고 사랑을 주고받고 喜怒哀樂을 같이 하고 同苦同樂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고,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의 生은 넓고 푸른 自由의 廣場이다. 우리는 이 자유로운 광장에서 부지런히 배우고 思索하고 探求하고 遊戱하고 旅行하고 創造하면서 나의 뜻과 꿈을 펼쳐야 한다. 우리는 자기의 人生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全力을 다하여 熱心히 살아야 한다. 그것이 人間다운 삶이다.
끝으로 樂業人이 되어라.
生卽動,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요, 活動하는 것이다. 활동이 없는 生은 죽은 生이다. 인생에서 직업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직업은 인생의 등뼈"라고 哲學者 니이체는 갈파했다.
직업은 生計를 유지하기 위한 基本手段이요, 社會人으로서의 役割의 수행이요, 하늘이 나에게 맡긴 天職을 完遂하는 것이다. 일은 인간의 神聖한 義務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자기의 才能과 力量을 발휘하고, 社會的 價値를 창조하고, 人生의 使命을 다한다. 일 속에 참된 기쁨이 있고 흐뭇한 보람이 있고, 生의 幸福이 있다. 우리는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矜持를 느끼고 일에 情熱을 쏟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고 한번밖에 없는 이 所重한 人生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樂天人이 되어라, 樂生人이 되어라, 樂業人이 되어라.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姿勢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