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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혹시 지난주 말씀을 기억 잠시 해볼까요? 지난주의 주인공은 누구였죠?
네 갈렙 갈렙이 했던 유명한 말 한마디 이 산지를 내게 해주소서 어떻게 이번 한 주간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며 도전했던 혹시 그런 여러분들의 삶의 내용들이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유초등부 아이들에게 1월달 주제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제 1학년 올라가는 친구 가 있고 또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친구가 있어서 어린 아이들이죠. 그러다 보니 성경도 잘 모르고 집에 성경책은 있는데 그건 엄마 아빠 거지 자기네 게 아닌 그런 느낌.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이제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막 가르치다가 아까 전에는 이제 제가 그런 예를 들었습니다. 이걸 먹을 거라고 생각해 볼게요. 얘가 굉장히 신선하게 오래 가는데, 네 여러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이렇게 밥상에 딱 올려놨다고 생각을 해보자고요.
그 음식을 딱 보면서 얘는 진짜 먹으면 내 몸이 건강해질 것 같아 이거는 이런 맛이야 저런 맛이 날 것 같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죠.
근데 정보들을 많이 또 듣습니다. 야 이 음식에는 뭐가 들어 있고 뭐가 들어 있고 그런데 아무리 많이 쳐다보고 있고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어떻게 해야지 이게 내 게 되는 거예요 먹어야 됩니다.
그렇죠. 애들한테 그렇게 설명을 했어요. 우리 교회 지금 막내 역할을 하고 있는 수빈이한테
너 뭐 먹고 싶어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야?
그랬더니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오이래요 깜짝 놀라가지고 아니 치킨 피자도 아니고 오이야 그랬더니 오이가 먹고 싶대요. 그래서 얘 진짜 재밌는 애구나. 나중에 오이가 많이 나오면 제가 오이 한 개 죽인다고 그랬는데
근데 여러분 어린아이의 시각은 그래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내 눈앞에 있어도 어떻게 해야지 내 게 된다고요 먹어야죠. 그렇죠.
주일날 우리가 말씀을 함께 나누고 또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또 그 안에서 또 그 은혜를 나누는 이유가 뭘까요?
이 시간에는 제가 이렇게 선포하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받는 시간이에요. 그렇죠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또 우리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소개 정도 받는 시간이라고 보면 돼요. 이렇게 요게 지금 이런 성경책에 이런 맛있는 음식들이 있네요. 소개를 해드린 겁니다. 그러면 소그룹에서 이제 서로 나눔을 가지면서 분석을 하는 거예요. 이거는 보니까 이런 영양소도 있고 이런 맛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나누면서 더 우리가 먹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 겁니다.
언제가 더 중요해요? 이제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 예배는요. 여러분들 말씀은요. 삶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예요. 아무리 이산지를 내게 주셔서 야 그래 도전해 보자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결단해 보자 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은 먹었을지언정 그것이 삶에 적용되지 않으면 내게 되지 않는 거예요. 정작 지난주에 맛있어 보였는데 한 주 동안 전혀 먹지 않았어 그러면 결국엔 내 게 아니기 때문에 그다음 주에 와도 또 새로운 음식이 나와도 또 그런 모양으로 계속 지내다 보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나중에는 별로 성경에 능력이 없고 성경에 은혜가 없고 우리 교회 공동체의 예배에 기대가 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뭔가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작은 것 하나라도 내 앞에 있으면 그것이 나에게 주신 은혜의 말씀 은혜라고 생각하면 그걸 취득하시기 바랍니다. 섭취하셔야 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내 안에 들어가면 그것들이 영양분이 되어서 내가 성장하는 거예요. 도전하지 않는 자는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도전하면 결과는 두 개로 보통 나오죠. 성공이냐 실패냐 그래도 도전한 사람은 최소한 50%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도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빵 프로입니다. 빵 프로 무슨 일을 하든 쉽지 않죠.
새로운 일을 도전하거나 또 결단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지난주에 말씀을 전하고 나서 나름대로 뭘 도전해 보지 그냥 작은 것부터 한번 해보고 싶어서 이번 주 중에는 뭐 이렇게 다른 분주한 일들이 있어도 꼭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어떤 영상이나 책이나 이런 것들을 한 가지씩 하루에 한 칸씩 섭취해 보자.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 번 이렇게 하고 나니까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에 조금 뭔가 유의미한 게 남는 것 같아요. 아직은 과정입니다.
그리고 지난 설 명절 말고 그전에 우리 장인어른을 만났는데 갑자기 장인어른이 가끔 저를 푹푹 찔러요. 원로 목사님이신데 제가 요즘 일부러 가면은 아버님 기도해 주세요. 그러고 이제 기도를 제가 녹음도 막 이렇게 해놓거든요. 저희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저를 위해 기도해 줄 때 제가 그걸 녹음 못 해놓은 게 너무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가지고 장인어른 기도할 때 제가 일부러 막 녹음도 해놓고 요즘 그러고 있습니다. 장인어른이 갑자기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노 목사 기도해야 돼 네 기도해야죠.
근데 노 목사 내 마음에 손 들고 기도하래 갑자기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왜 손 들고요? 왜 왜 손을 들고 기도해야 되지 근데 아버님이 그러면은 아마 살 거야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무슨 말인지 왜 손을 들라고 하는지 그 의미는 모르겠지만 이걸 제가 100% 다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요즘 새벽 기도 드릴 때 일부러 요만큼 손을 들고 기도를 했어요.
근데 처음에는 이게 얼마나 힘든지 이만큼 손 들고 기도하는 것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근데 목적을 두고 이제 하다 보니까 5분 10분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좀 더 길게 이렇게 손을 들고 있을 때도 있어요. 어쩔 때는 막 이를 악물고 이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성도들의 기도가 세워지고 성도들의 삶이 세워진다면 하면서 믿음으로 한번 들고 손을 기르고 했는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저에게 유익함이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집중이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뭔가 이제 새벽에 이렇게 묵상하면 기도할 때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피곤하면 막 이렇게 졸리기도 하고 또 딴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랬는데 손을 들고 기도하니까 집중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혹시 기도가 집중되지 않는 분들 한번 손을 들고 기도하십시오. 목소리를 좀 높여서 기도해 보십시오. 요즘 화요일날 격주로 기도팀들이 모여서 기도를 해주고 계신데요. 제가 그 기도 모임에 참여하거나 또 그 옆에서 듣고 있거나 이러진 않았지만 저는 그 시간대에 왔다 갔다 할 일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듣다 보면 얼마나 일당 100이에요.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시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그 기도 모임 이후에 제가 조금 더 힘이 지금 나고 있는 것 같은데 여러분들이 느끼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러분 도전해야지 결과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냥 힘들다고 불편하다고 위험하다고 어색하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지난주 말씀에 이어서 이제 갈렙의 그 고백 이후에 지금 지금 계속 정복 시대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제 대부분의 땅들이 점령되기는 했지만 아직 많은 땅들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그곳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많이 있어요. 이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12지파를 불러 모아놓고 이제 땅을 분배하는데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이 여호수아 16장과 17장에서는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어떤 땅을 분배받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이 땅 분배를 마치고 난 이후에 요셉의 후손인 므낫세 자손들과 에브라임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와서 항의를 합니다. 그게 오늘 이제 내용이에요.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심으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 함이니이까
이거를 좀 이제 우리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고 이해를 하려면 창세기의 말씀을 조금 이렇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데요.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이제 생명을 다할 때쯤 되어서 자녀들을 모아놓고 유언 겸 축복을 하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그때 대부분의 아들들에게는 짤막하게 축복해 주시는데 유다와 요셉에 대해서는 아주 길게 축복하는 내용이 나와요. 야곱의 축복대로 실제 유다와 요셉의 자손들은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후손들에게는 아주 많은 땅이 분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자손들에게는 한 분깃만 분배했습니다. 한 분깃. 이때 항의를 해요.
여러분 이 이스라엘에 몇 개의 지파가 있죠?
12개의 지파가 있습니다. 이 12개의 지파는 야곱의 자손들 로 구성된 12명의 아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12명의 아들이 이제 12개의 지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그중에 레위는 이제 성전에 봉사를 하고 그곳에서 먹고 살도록 그 지파가 이제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11개 지파가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가 빠졌는데도 12개 지파로 이야기하는 게 뭐냐면 요셉의 자손을 각 지파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한 개 지파씩 인정이 되는 게 배경이 창세기 48장에 있습니다. 요셉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 연로한 아버지에게 축복해 달라고 이렇게 데려갔을 때 창세기 48장 5절에 보면 르우벤과 시므온이 나의 아들이듯 이 에브라임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나의 아들이다. 이렇게 야곱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러니까 이때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각각 한 지파씩 이때 이것들이 배경이 되어서 인정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엄연하게 따지면 요셉의 자녀들이지만 이제 두 개의 지파인데 땅 분배에 있어서는 한 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니까 이 사람들이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요셉의 자손은요 요단 동편에서 이미 땅 분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난 그 중앙에 아주 비옥하고 넓은 땅도 분배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여길 때는 자기들이 볼 때 작게 여긴 거예요. 자기들의 인구가 많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실질적으로 많았어요. 그리고 더 큰 이유, 지금 이렇게 항의하는 이유가 뭐냐면 이미 가나안 족속들이 가꾸어 놓았고 일구고 살아가고 있는 그러한 논 밭, 과수원 집 이런 것들이 있는 땅, 그 땅을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으로만 보는 그런 눈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산림 산지로 되어 있는 땅, 그런 땅은 쓸모없는 땅으로 보이고 앞으로 그것은 힘을 들여서 개간을 해야 되고 또 싸워서 빼앗기도 어려운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볼 때는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더 많은 땅을 요셉의 자손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은 이 여호수아는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그런 항변을 잘 듣고는 책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들에게 도전합니다. 15절이에요.
여호수아에게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데,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요셉 자손에게 주어진 땅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개간되어 있는 활용하기 쉬운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그들은 더 요구하고 있는 것인데, 여호수아는 지금 그 땅을 더 달라고 말하고 있는 요셉의 자손들을 향해서 산림지대를 개간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산림지대는 개간을 하고 수고하면 그 땅도 옥토가 될 수 있는 그런 땅입니다. 여러분 후손들에게 우리가 뭔가를 남겨주려면 우리가 수고하고 우리가 헌신하지 않고는요. 옥토가 그냥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그냥 남들이 다 해놓은 거 쉽게 내가 먹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 그건 지금 이 세상이 주는 아주 세속적이고 그리고 뭔가 한탕주의적인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수고한 대로 먹고 마실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 받은 자들이에요.
내가 땀 흘려 수고하고 이룬 것을 사용하고 또 물려주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요셉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외면하며 핑계하면서 또 이야기합니다.
16절에 이어지죠.
요셉의 자손들이 말합니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난한 족속에게는 베사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라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그러니까 이제 자세하게 그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산지 거기는 거주하기도 넉넉하지 않고 또 지금 당장 살아갈 수도 없는 땅이고, 뿐만 아니라 그 땅에는 철병력을 가지고 저항하는 원주민들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도무지 우리가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땅이 아니지 않냐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배하셨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이에요. 믿음으로 보고 순종하고 나아가면 그 땅에서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여리고 성도 그랬고요. 수많은 그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사건들 속에서 그들은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서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 요셉의 이 자손들에게는 그 지파들에게는 이 믿음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으니 불평하고 핑계하고 또 상황만 앞세우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믿음이라는 건 뭘까요? 그냥 믿습니다 하면 믿는 건가요?
믿음이라는 것은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믿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지신 것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런데 요셉 자손은 자신들이 가진 것만을 바라보면서 제비를 뽑아 받은 땅이 너무 작다고 불평 불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땅들이 산지하고 별로 쓸모없다고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약속으로 주어진 땅들이지만 그 땅에는 철병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가득하기에 공격하는 적이 있어서 정복할 수 없다고 핑계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믿음이 없음이 문제입니다. 받은 축복이 작은 것이 아니라 그 받은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작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죠. 아까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네라고 우리가 찬양으로 고백하였지만 정말 우리의 삶에서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요 그런데 믿음의 눈을 열지 않으면요. 나는 왜 건강도 안 좋고 나는 왜 물질적으로 어렵고 나는 왜 맨날 이렇게 산 같은 문제들만 닥치고 계속 내 앞에 있는 상황과 환경들만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정작 내 앞에 있는 좋은 선물을 받아놓은 것들을 시시하게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이런 요셉 자손에게 여호수아는 다시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17절과 18절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시작
그 산지는 내 것이 되 비록 살림이라도 내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내 것이 되리라. 가난한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내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아멘 에브라임과 므나셋의 지파는요. 결코 작은 힘이 있는 지파들이 아닙니다. 20세 이상으로 싸움 나갈 만한 인원이 에브라임에 4만 500명, 므낫세에 3만 2200명이나 된다고 성경은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미 어떤 지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순종만 하기만 하면 그리고 도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능히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환경을 탓하고 머뭇머뭇거리고만 있습니다. 이 이후에 자세하게 그 땅에 어떻게 어떻게 정복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서 또 생략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좀 안타까워 보이는 오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이 요셉 자손과 대조적인 인물 믿음의 사람 누구였죠?
갈렙 그와 한 번 다시 한 번 비교해 보자고요. 여호수아서 14장에 갈렙도 여호수아에게 요구했습니다. 지금 똑같이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돼요.
근데 갈렙은 헤브론 땅을 요구했습니다. 환경적으로 보면 갈렙은 나이가 벌써 85세 고령, 거기다 이 헤브론이라는 땅은 정복하기도 너무 힘들고 어려운 아주 강력한 성읍과 또 민족이 있는 그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충분하게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요구하고 그 땅을 실제적으로 공격하여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죠 믿음의 사람답게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바라봤다면 아마 갈렙은 그 말을 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85세 된 노인이 뭘 얼마나 힘을 쓸 수 있다고 정복 전쟁을 지금 자기가 앞장서서 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승리할 확신이 그 안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힘 있고 무서운 그 무기를 들고 있는 그 사람들이 겁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을 믿음으로 도전하였고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게 된 것이 갈렙입니다.
지난주 이 갈렙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마음의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어서 여러분 지금 2025년 시작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꿈이 있으십니까? 또 어떤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나의 연약함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조건과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 주시고 우리에게 사명 주신다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지금 나는 요셉의 자손과 같이 상황과 환경을 핑계하고 믿음의 눈이 아닌 내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태인지, 갈렙과 같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지 먼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하는 말 중에 불평이나 또 핑계가 많다면 지금 나도 모르게 내가 원치도 않는 요셉 자손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말을 하고 지금 크고 중요한 일에 헌신하고 도전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갈렙의 믿음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도전하는 인생, 도전하는 인생이 그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찬양팀은 준비해 주시고요. 우리 모두는 2025년 여러분들 앞에 헤브론이라고 하는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거리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적인 도전도 있고요. 또 우리 공동체적인 도전들도 있습니다.
먼저는 내 앞에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냥 무조건 제일 힘들어 보이고 제일 어려워 보이는 거 그게 내가 도전해야 될 거야 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냐 하나님이 정말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냐 분별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분별이 되었다면 이 산지를 내게 주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고 도전하는 겁니다. 그때는 상황과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떠한 상황이어도 하나님이 이루시면 이루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육신적인 연약함 우리 더욱더 믿음으로 기도해 보자고요.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여러분들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 수년, 수십 년을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실 때가 되면 분명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갈렉과 같이 믿음의 눈을 갖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광야에도 길을 만드시고, 사망에도 강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2025년 여러분들 개개인, 또 여러분들, 소그룹과 우리 부서들,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에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기대하면서 더욱더 믿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