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일관(信義一貫) 공선사후(公先私後)라는 조어(造語)는
신의로 일관하며 자기 스스로 주어진 역할 안의 범위에서 무엇인가 이루려는 집착의 성과를 바라며 해결하려 하는 것이 공적인 우선함이고 사사로운 마음의 심경을 헤아려 나만의 자존감으로 내 것을 찾아 지키려는 것 또한 뒤따름일 것이다.
이는 고려대학교 창업자 김성수 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작금의 시대적 정치 사회 교육 도덕적 상황들을 지켜보노라면 신의에 앞서 공(公)과 사(私)도 구별하기 어려운 집단 이기주의의 팽창으로 말미암은 무리들은 각자의 배금주의(拜金主義)에 빠져 국민 생활을 호도 빙자한 나머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요지경 속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반칙과 배반을 일삼는 건 다반사요 핑계와 회피 기만함들로 가장한 진면목들은 인간 함들에 있어서 정실이란 염려에 이르기까지 해 보이는 듯 해서이다.
솔로몬의 지혜까지는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혜로운 지혜를 위한 올바른 판단과 선택은 은혜로운 영광으로 축복이 되어지는 삶들이 실현되는 공의(公義)로운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의 동정(動靜)은 그 누구라도 시작점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가정으로부터 또한 학. 교육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신문화의 지식과 전달되어지는 사고들은 이해와 관철들 속에 살며 살아가며 동행 동반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물론,
함께 사랑하며 기억하고 정을 나누는 일상의 그 모든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함에 있어서 매우 소중하고 가치가 있어야 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는 인간 박정(薄情)함들은 그 쉽고 허다한 방법과 도구들의 유용함들도 뒤로한 채 안부공생(安否共生)의 정의로움마저 잊고 사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긴 기다림과 갈구하는 희망함은 목전의 안일함과 끊임없이 구가되어 오는 택배의 산물들만도 못한 지척 지인(知人) 가족 형제 부모들이니….
잘난 체 거만하여 문턱 높은 어려운 사람이 되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소일의 소통함으로 자신을 낮추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인지의 선도자(先導者)가 되면 안 되는가?
여름의 끝에서,
태풍(颱風) 10호의 산산(shanshan)은 이웃 섬나라 일본 열도를 강타 연일 산산이 부서지는 피해를 가져다주고 있어서 큰일이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불볕더위와 태풍 간접 영향권에 의해서인지 요 며칠 갑자기 국지적으로 내리는 소낙비는 짓궂게 퍼붓는 날들의 연속이다.
여름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웬 소나기가 이렇듯 내리는 건 아마 그 무더운 여름 끝의 분노라도 불러일으켜 남기려는 땡깡같아 보인다.
여름아 가라!
여름아 여름이 어서 가그라!
가만 조용히 말이다.
계절의 아쉬움과 제철 과일들의 등장은 어김없는 절기들의 세월함 일 것이다.
울긋불긋 영롱한 능금들의 자태와 검붉은 포도 그리고 딱딱 말랑한 살굿빛 복숭아는 여름의 뒤에서 가을을 선보이는데 각축들이다.
팔월의 마지막 주인 수요일 저녁
온 가족 함께 즐겁고 보람이 있는 만찬의 행복들로 편안해지시길 기원해 보면서
무던한 여름날 한 시진(時辰)에서라도 그리움들을 상기해 보는 나눔의 정들을 통해 보는 이 밤은 어떠할까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