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칼잡이
민서현(본명 민옥순)
칼 하나 품고 나가는 사내가 있다
한쪽 귀가 잘려나간 절벽처럼
벽은 허물고 칼날은 세워
날카로운 모서리의 각을 뭉툭하게 잘라낸다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는 일에 익숙한 그는
칼 한 자루로 밥을 먹은 지 사십 년
칼끝에 달린 밥 때문에 칼을 놓을 수 없는 사내는
거래처가 날리는 약속어음에 표창(鏢槍)을 맞았고
때론 적의 급소를 가차 없이 찌를 때도 있었지
돌아와 보니 칼 맞은 자국이 세군 데
밤새도록
그 상처 때문에 끙끙 앓다가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아침을 깨웠다
무딘 칼로 나갔다가는 칼 맞기 십상이어서
저녁이면 피곤한 몸으로 다시 칼날을 세운다
칼집을 나온 칼의 행방은
급소를 겨냥한 전투가 답습한 돌진이다
허나, 가끔은 칼자루를 놓쳐
제 칼에 발등 찍히고 손을 베일 때도 있었지
느닷없이 막다른 길에서 적을 만날 때도 있었지
바람에게 멱살 잡히고
는개에 묻힌 어둠조차 잘라낸 새벽녘
오늘은 결전의 날, 애초에 아무는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는 듯
다시 벼린 칼을 맞는다
치환될 수 없는 상처의 분점이 날카롭다
기울고 깎인 해가 하늘 끝에 걸릴 때에야
그는 무딘 칼을 품고 돌아와
낡은 피를 빼내는 그믐달의 무릎에 피곤을 벗어놓는다
앞뒤도 분간할 수없는 지난밤처럼
그의 중심은 날선 발밑에 고정되어 있다
볕뉘 잠잠해지는 밤이면
이빨 빠진 칼이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