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기차와 모형기차
강 문 석
사람들은 어쩌면 기차를 좋아하는 속성을 지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수학여행과 같이 단체로 기차를 이용한 추억 한두 토막씩은 다들 향수로 간직하고 있을 듯하다. 처음 입사하여 하숙비를 아껴보겠다고 고향 김천에서 직장이 있는 대전까지 기차로 통근을 시도했던 것은 무모했지만 반세기도 더 지나 생각해보니 유익한 체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교통수단이라도 기차가 비행기나 선박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경우인지 모르겠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는데도 미니기차에 사람들이 몰리는 게 신기했다. 양산 미니기차는 840m 철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12분 걸린다. 인터넷 창에다 미니기차를 검색해 봐도 이곳밖에 안 나오니 양산에서 가까운 부산 울산 등지에서 젊은 엄마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몰려오는 것이리라. 꼬마 녀석들도 흥분하여 하늘과 사방이 탁 트인 기차에 오르며 열차가 달릴 때 앞뒤로 탑승한 또래들과 신나게 한번 소리를 질러보고 싶어 할 것이다.
어린이놀이터 미끄럼틀 같은 건 너무 짧아서 성에 차지 않았는데 기차는 아이들 눈으로 볼 때 까마득한 벌판을 돌아오고 있으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신이 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열광하듯 쏟아내는 함성은 함께한 부모들 마음을 흔들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한 장면을 순간적으로 카메라에 담는다면 미니기차 광고로도 제격일 터이지만 미니기차는 구조상 아이들의 이러한 기대를 충족해줄 수가 없었다.
4개의 객차를 5명씩 타도록 길게 연결했지만 안전장치가 전무하니 보호자가 함께 올라야했다. 그러니 어른들 틈에 아이들은 숨어있는 형국이라 자기네들끼리 얼굴을 서로 마주할 수도 없었다. 좌석표시도 나무젓가락 크기인 철재토막을 바닥에 용접으로 붙인 게 고작이었다. 개인별 안전띠가 없으니 기차가 출발하면 객차별로라도 좌우로 몸이 열차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보호대가 있어야했다. 하지만 안전설비는 거의 생략되었고 바닥에 디귿자 철제 손잡이만 붙어있었다.
아마도 앞뒤로 관리요원이 탑승하는데다 저속으로 운행한다는 판단 하에 승객 안전을 가볍게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사고는 늘 이런 방심이 불러오니 소홀히 지나칠 일은 못된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세월호가 침몰한 것도 이러한 안정불감증이 불러온 재난이 아니었던가. 기차가 한 바퀴를 돌아오는 구간 안엔 철도건널목이 설치되어 꼬마 탑승자들에게 안전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을 법했다. 사업허가조건에 들어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건널목 신호는 울리지 않았고 기차도 그냥 통과하고 말았다.
철길 옆으론 노루나 사슴 오리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꼬마들에게 대자연 속을 여행하는 기분을 안겨주고 있었다. 운행구간에 터널과 교량을 하나씩이라도 만들어 잠시 어둠 속도 통과해보고 덜컹거리는 철교도 직접 체험토록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 미니기차가 달리고 있는 황산공원은 오랜 세월 황무지였던 낙동강 둔치가 4대강 사업으로 되살아난 곳이다. 규모를 갖춘 오토캠핑장이 들어서고도 황량할 정도로 빈 땅이 많았다.
그러자 파크골프장을 여러 면 만들었지만 썰렁한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다 기초단체가 미니기차 사업까지 시작한 모양이다. 어린 자녀들과 양산미니기차를 탑승한 후 체험기를 올린 부모들이 웹사이트에 더러 보인다. 그러나 아무도 기차가 아이들 안전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은 하질 않는다. 너도나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니기차에 올라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는 찬사만 가득 쏟아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양산 말고는 전국적으로 미니기차를 운행하는 기초단체가 없는 것이 의아했다. 혹시 8년 전 운행을 종료한 일본 오사카성 미니기차가 그 답을 알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 고향을 생각하면 항상 기차역이 떠오른다. 소도시였는데도 경부선에서 갈라진 경북선이 안동까지 연결된 바람에 늘 도시는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는 태평양전쟁에 들어가는 대포와 탄환을 만든다며 점촌역에서 안동역까지 철로를 걷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바람에 한때 경북선은 김천과 점촌을 잇는 구간으로 단축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졌다. 연전 서울 삼청공원을 나서는데 기차박물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규모가 크지 않은 상가건물에 기차박물관이라니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모형열차를 만드는 기업이 자사제품을 판매하면서 박물관 입장료도 챙기는 사업장이었다. 모형열차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보편화된 취미생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모형기차를 수집하거나 디오라마를 제작하여 기차를 구동시키는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것이다. 디오라마는 풍경이나 사물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현해 놓은 미니어처로 벽면의 고글은 디오라마를 지나는 기차에 카메라가 달려있어 기차를 운전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 월트디즈니가 어린 딸들과 모형기차를 가지고 놀다가 영감을 얻어서 디즈니월드가 탄생했다는 일화는 꽤 알려진 편이다.
박물관은 3년 전 봄에 문을 열었고 기업에서 직접 제작한 모형기차와 설계도면 관련 분야 책과 수집품 등을 전시했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진데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하는 곳은 2층이란다. 기차가 모형으로 만든 풍경 속에 놓인 기찻길을 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는 기차는 2층 전시공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출발버튼만 누르면 기차가 달리게 된다. 외국 시골마을의 나무로 지은 집이 먼저 나타난다.
긴 의자에 앉은 노부부와 그 옆으로 밭을 일구는 농부들 앞으로 기차는 계속 달린다. 강가에서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을 보는 사람들과 강물에서 노는 물고기를 관찰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기차가 철교를 건널 때는 높은 철교 난간에서 번지점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점프를 해서 공중을 나는 사람도 보인다. 그 아래론 풀밭에서 소들이 풀을 뜯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농가 앞마당에서 젖소의 젖을 짜는 목동 옆에 송아지가 서 있고 그 앞을 기찻길이 달린다.
바위산 꼭대기에는 눈 쌓인 성이 있고 바위절벽을 오르는 암벽 등반가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디에는 꼭 있을 것 같거나 실제로 있는 자연풍경과 사람 사는 공간의 모형 속에 아주 작게 만든 사람과 동물과 식물의 미니어처를 이처럼 정교하게 만든 게 놀라웠다. 고정된 미니어처는 멈춘 시간이다. 멈춘 시간 속 움직임 없는 아주 작은 모형들의 손짓과 발걸음 심지어 눈길이 머무는 곳에도 각각의 사연은 들어있으리라.
모형은 이처럼 인간의 상상 한계를 넓혀주고 있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실제와 똑같은 모양의 모형기차가 기찻길을 달리기 때문이다. 박물관 기업에다 기회가 닿으면 3년 전 여름 다녀온 스위스 융프라우 3454m 철도역도 추가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1896년 톱니바퀴 철도를 시작하여 16년 만에 완공을 본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철도컨소시엄에 참석했던 일이 있었다.
행사는 정부부처와 부산시가 유치한 걸로 플래카드가 내걸렸지만 철도차량 분야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한 현대로템이 주도하고 있었다. 내가 앉은 원탁테이블엔 네팔 철도청에서 온 여자공무원 4명이 동석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때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17인승 경비행기를 불안하게 덜덜거리면서 타고 갔던 악몽이 떠올랐는데 드디어 네팔에도 철도를 깔기로 했던 모양이다. 네팔의 바르디바스에서 이나루와 구간 139km에 전기철도를 설계하여 2018년 준공한 인사가 정부에서 주는 ‘올해의 건설기술대상’에 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또 한 번 지구촌에 선진철도 기술을 보급하는 쾌거를 이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