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탄 노래
문 정 희
마음을 파들어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내일 모래 저녁답쯤에는 지평선이 보일까. 그리움이 끝난 그곳에는 타버린 나무들이 무더기 무더기 쓰러져 있을까. 얼마나 까아만 화산재가 쌓여 있을까. 슬픔의 벼랑마다 누가 서 있어서 밤마다 이토록 시를 쓰게 하는 것일까.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이도 많건만 내 마음은 얼마나 깊어 그대 하나 묻기에도 한 생애가 걸리는 것일까. 끝 모를 모래 바람 부는 것일까.
- 시집〈남자를 위하여〉민음사 -
남자를 위하여 - 예스24
남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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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집 〈남자를 위하여〉 민음사 / 1996
아포리아 역
올 여름엔 휘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앉아 부처처럼 부채처럼 바람을 배워야지 왜 부처를 배워야 하나 내가 부처라는데 그런데 나는 늘 뜨겁기만 해서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어서 부처처럼 부채처럼 시원한 그늘을 배워야지 노마드*도 한낱 유행이라 세계의 공항들은 이미 장터처럼 붐비고 나를 찾고 싶어 떠나왔다는 얼치기들이 버린 차표로 대도시 쓰레기 반을 채운다네 하나같이 닿은 곳은 아포리아**역 결국 은자(隱者)가 새로운 길일지도 모르지 올 여름엔 홀로 휘늘어진 버드나무가 되어 부처처럼 부채처럼 일가(一家)를 이뤄야지 앉아서 천리 길 당도해야지 * 자기를 부정하며 끝없이 떠나는 방랑, 유랑민. ** 통로가 없는 것, 길이 막힌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 시집〈응〉민음사 / 2014 -
응 - 예스24
독자적 개성으로 무장한 시의 화신국경을 초월하는 세계적인 반항자 문정희 시인범속한 묘사, 즉각적인 감각으로 우주적 메타포와 결합하다여성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문정희 시집 〈응〉 민음사 / 2014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 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암각화를 새기는 것이다 그것이 대단한 창조인 양 눈이 머는 것이다 바람에 온몸을 부딪치며 쉬지 않고 바위에게 흰 손을 내미는 것이다 할랑이는 지느러미가 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순간마다 착각의 비늘이 돋는 것이다
- 시집〈카르마의 바다〉문예중앙 -
카르마의 바다 - 예스24
문정희 시인의 신작 시집 『카르마의 바다』가 문예중앙시선(020)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문정희 시인이 지난 2011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체류하던 시기에 온몸으로 빚어낸 ‘물의 시집
문정희 시집 〈카르마의 바다〉 문예중앙 / 2012
아직도 모르겠어?
어떤 물음에도 대답은 저 무덤! 그 하나야 종교보다 깊고 거대한 침묵 천년 사원보다 영원하고 쓸쓸한 발설 이것이 처음이자 끝이야 무(無)를 발명한 사람도 그랬어 잃어버릴 게 없다는 것! 지금 사랑할 일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시인은 사라져도 시는 계속 태어날 것이며 해는 여전히 뜰 거라는 것 아직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