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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의 유래 *
Christmas(Christ-Mas)는 말 그대로 Christ의 Mass(그리스도의 미사)란 뜻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기독교가 로마에 전해지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이라는 가르침이 유포됐다.
그리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예수의 탄생과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의 이미지를
일치시킴으로 포교 대상이었던 이교도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이교도들이 "태양의 탄생일"로 지키던 12월 25일로 정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분화된 동방교회(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 탄생일로 규정하고 있다.
Christmas의 날짜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A.D.350년경부터 12월 25일로 채택되었으며
이는 로마에서 축제로 지키던 '태양의 날인 12월 25일'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기독교에 이교도 문화가 접목된 것'이라기보다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교회사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인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비기독교적인 요소들,
즉 성경의 기록이나 초대교회의 관습과 무관한 여러 풍습들도 함께 전해지게 된다.
예를 들면 촛불예배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 열매가 달린 초록색 담장(Holly),
크리스마스 캐롤 등은 이교도의 전통과 관습이 기독교의 관습에 영향을 미쳐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 크리스마스와 X-MAS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간단히 <X-MAS>라고 쓴 사인이 자주 눈에 띈다.
흔히 이 표기를 영어의 X로 생각해 <X-MAS>는 잘못된 표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X’자는 영어 알파벳의 ‘X’자가 아니다. 헬라어의 ‘Xristos’(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X’(크스)자로서 이 뒤에다 ‘MAS’자를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X-MAS>라고 쓸 수 는 있지만 읽을 때에는 반드시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것을 표기한 대로
‘엑쓰-마스’(아직도 이렇게 읽는 사람은 없겠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라고
읽는다면 원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게 되고 만다.
* 크리스마스의 상징들 *
1. 산타클로스
* 산타클로스의 유래
산타클로스는 270년 소아시아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에서 출생한
Saint Nicholas(聖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평소에 많은 선행을 기록했던 니콜라스는 미라의 대주교로, 그가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성자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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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이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였던 성 니콜라스의 전설은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12세기 초부터는 프랑스 수녀들에 의해
니콜라스 축일 하루 전날인 12월5일에 가난한 이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나기도 했다.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에서 비롯된 이런 풍습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산 니콜라우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이를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다. ‘산테 클라스’는 영어식 발음인 <산타클로스>로 변해
19세기 크리스마스와 함께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판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유럽 원조 <산타클로스>와 달리 불과 180여년 전에 미국인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며 "호! 호! 호!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 이후.
미국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산타클로스를
항상 웃는 즐거운 인물로 묘사한 <성 니콜라스의 방문>(Visit from St. Nicholas)이라는 시를
클레멘트 무어(Clement Moore)가 "T'was the Night before Christmas"라는 곡으로
작곡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산타클로스>의 모습의 효시는
19세기의 만화가 토마스 나스트(Thomas Nast). 그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긴 고깔모자를 쓰고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한
<산타클로스>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지금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이보다 후의 일로
1931년 코카콜라사가 겨울철 콜라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홍보전략으로
코카콜라의 이미지(메인 컬러인 빨간색)를 연상하게 하는 빨간 코트를 산타에게 입혀
백화점 홍보에 나선 것에서 유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
핀린드의 산타마을 '로바니에미'
미국산 <산타클로스>가 인기를 끌자 유럽에서도 이에 지지않고
<산타클로스>의 유명세를 이용해 이를 관광자원화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핀란드령인 북극 도시 로바니에미에 세워진 <산타마을>이 대표적인 예.
북극과는 불과 51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이 <산타마을>에는
<산타클로스>의 사무실이 있고 우체국도 있다. 북극의 오지에 설치된 이 우체국의 기능은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주는 것.
연중 <산타클로스>가 가장 바쁜 시기는 당연히 <크리스마스> 연휴.
전 세계 160여 개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온 수만 통(하루 배달량)의 편지에
12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비서 수십 명이 <산타클로스>를 도와
답장을 쓴다고 한다.
로바니에미가 <산타마을>로 유명해진 계기는,
지난 1927년 핀란드 라디오 방송국의 한 아나운서가
“산타클로스는 로바니에미 마을에 살아요”라고 말하면서부터라고.
이로 인해 우연히 탄생한 <산타마을>은 오늘날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산타마을>의 주소는
Santa’s Post Office FIN-96930, Artic Circle Finland이다.
2. 루돌프 Rudolf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리더 순록으로 묘사된 루돌프는
1939년 미국의 어느 백화점에서 홍보를 위해 그린, 코가 빨간 사슴의 그림에
'루돌프'라는 이름을 붙여준데서 생겨났다.
광고 카피라이터 로버트 L,메이는 어린시절 체구가 작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라
주위의 놀림감이 됐었는데, 그 기억을 바탕으로 코가 빨개져
동료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루돌프를 창작해 낸 것이다.
어쨌던 산타클로스도 전설이지만
루돌프는 그 전설에도 나오지 않는, 광고에서 태어난 캐릭터였던 것이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 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로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 길이 기억되리"
3.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밤 하늘에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 있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고 처음 시작했다는 설이다.
Christmas Tree 꼭대기에 장식된 별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갈 때 길을 안내했던 별을 상징한다.
이후 독일에서 유행하던 <크리스마스 트리>는 19세기 초 북유럽국가들에 전파됐고
1841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에 의해 영국에도 소개됐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 펜실베니아 지방에 이주한 독일계 정착민들에 의해 소개된 후
곧 미국 전역에 퍼져나가게 됐고 공공장소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는 관습까지 생겨났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세기말 이후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풍습이 전래됐다.
4.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중에서 가장 즐겁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캐롤을 부르는 것일 것이다.
캐롤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주로 중세 불란서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圓舞)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캐롤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어서 캐롤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음악 이 캐롤인지 아닌지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그 곡에 버든(Burden)이라고 불리우는 후렴이 각 절의 가사 끝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 했는데
이것을 형식으로 보면 B, V1, B, V2, ... B의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캐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캐롤은 우리가 현재 아는 바 대로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한정해서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 시대의 캐롤은 다양하게 씌여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롤이 동정녀 마리아, 아기 예수, 등을
주제로 한 연유로 크리스마스 노래인것 같으나 실상은 부활절 캐롤도 있고,
고난절, 승천일, 성령강림 주일,... 등등 1년 교회력의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이 있다.
옥스포드대학에서 출판한 {The Oxford Book of Carols} 에 보면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 200여 곡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캐롤이 라틴어와 영어 두 언어를 섞어 쓰고 있는 것이 캐롤의 또 다른 특색이다.
"저들 밖에 ... 노엘, 노엘," "천사 찬송하기를... 글로리아(영광)," 등은 좋은 예이다.
15 세기에 있어서 캐롤은 대중적인 종교 가곡이었고, 불란서의 론도(rondeau), 비렐레이 (virelai),
발라드 (ballade)와 견줄 수 있는,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고정된 음악 형식이었다.
캐롤음악의 중요성은 그 음악의 화성에 있지 않고 선율과 리듬에 있다.
일반적으로 캐롤은 즐거운 노래로 된 것이 특징이고 대중에게 많이 불려지도록 되어 있다.
캐롤은 본래 교회의 절기 때 마다 부르는 모든 노래를 일컬었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 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로 Christmas eve song이란 뜻이고, 불란서에서는 노엘(Noll)이라고 한다.
노엘이란 말은 영국으로 건너와서 노웰(Nowell)이라 불려 졌다.
"단순하고 유쾌하며 부드럽게 유행되는 현대적이며 종교적인 노래"-
이 말은「옥스퍼드 사전」에 기록된 캐롤에 대한 정의다. 찬송가가 경건하고 엄숙하며
신학적인 요소를 지닌 반면 캐롤은 유쾌하고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성가이다.
서기 129년 크리스마스때 로마 총독 텔레스 포러스가 교회에 모인 신도들에게
<존귀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라는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에 부른
캐롤의 시초로 추측되고 있다. 이때를 계기로 5세기까지 크리스마스 때에는
의례 캐롤이 불려졌다고 한다.
초기에 불려지던 캐롤은 대개가 구전된 것이 많아서 가사나 곡이 일정하지 않지만
14세기무렵부터 악보로 옮겨져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으나 단순히 즐겁고
흥겹고 경쾌한 기분을 나타낸 노래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에서 부를 수는 없는 곡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징글벨>(Jingle Bells),
<싼타클로스가 마을에 오네>(Santa Claus is Coming to Twon),
<빨간코 루돌프>(Rudolf the Red-nosed Reindeer),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아이 위시 유 어 메리크리스마스>(I Wish You a Merry Christmas) 등이다.
5.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는 1843년이 그 시작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한 박물관에서 일하는 헨리 코올 경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좀 쉽게 선물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화가인 친구 존 호슬리에게 그림이 인쇄된 카드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헨리 코올 경을 위해 존 호슬리가 제작한 코올 호슬리(Cole Horsley)카드가
최초의 크리스마스 카드로 역사에 기록 되었다.
이 카드는 조빈스라는 사람이 석판 인쇄를 이용해 수천 장씩 만들면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인쇄술의 발달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카드가 저렴하게 판매되기 시작했다.
코올 경의 카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일일이 편지를 쓸 것이 아니라 이렇게
대량으로 인쇄된 카드에 작은 장식들을 더해서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크리스마스 카드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국의 헨리 콜 경이다. 1843년 화가 존 캘컷 호슬리에게 도안을 의뢰해 처음 1000장을 만들었고 오늘날 10장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 장에는 대가족이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기는 모습과 함께 ‘행복한 성탄과 새해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이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카드 중 1장이 영국 경매시장에서 8822파운드(약 1590만 원)에 팔렸다. 이날 팔린 카드의 수신인은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의 친구인 메리 트립새크로 적혀 있지만 발신인의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
6. 구세군 자선 냄비
구세군의 자선 냄비는 아주 불행했던 상황을 이기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18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해안에 표류하던 한 난파선이 극적으로 도착을 했다.
취위와 굶주림에 떨던 사람들이 육지에 내려섰지만 누구하나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구세군의 한 사관(구세군의 성직자)이 커다란 냄비를 거리 한가운데 걸어 놓고
“이 냄비가 끓게 합시다”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돈이며 먹을 것을 그 냄비에 담아서
난파선에 탔던 사람들을 돕게 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구세군에서는
매년 냄비 모양의 모금통을 걸고 모금을 하고 있다.
7.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
결핵 퇴치 기금 모금을 위해 크리스마스마다 발행, 판매되는 봉인표이다.
우표와 유사한 형태로 발행되지만 우편 요금과는 관련이 없으며,
크리스마스철에 주고받는 우편물에 우표와 함께 붙여 기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크리스마스실 모금운동은 결핵계몽, 엑스선 검진, 결핵균 검사, 환자진료,
BCG 생산 및 결핵관리정책의 연구와 국제기술교류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유럽에 만연하자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인 아이나르 홀벨은, 우편물을 정리하던 중
크리스마스카드와 소포에 실을 한장씩 붙여 결핵아동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 아래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였다.
미국에서의 크리스마스실 운동은 1907년 E.비셀에 의해 윌밍턴 우체국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기 시작, 현재 세계적인 규모와 과학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처음으로 실을 발행하였고, 이어
1925년 일본이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1932년 12월 해주 구세결핵요양원장으로 있던 선교의사 홀(Sherwood Hall)에
의하여 해주구세요양원 이름으로 처음 발행되었고, 그가
1940년 스파이 혐의로 일제에 의해 추방되면서 중단되었다.
당시 황해도의 한국인 도지사의 협조로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인식부족으로
실이 결핵과 싸운다는 광고 내용을 보고, 한 무지한 여인이 가슴에 붙여도 차도가 없다고 하여
실을 산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하는 등의 에피소드를 낳기도 하였다.
8·15광복 이후 문창모 박사의 주도로 1949년에는 한국복십자회가,
1952년에는 조선기독교의사협회가 실을 발행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뒤 1953년 11월 대한결핵협회가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발행이 시작되었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우리나라 크리스마스실 도안을
세 번(1934년, 1936년, 1940년)이나 맡아서 작업했다.
1934년
1936년
1940년
<알림> '유익한 정보방'에
1932년부터 2012년까지의 크리스마스 실 70여장을 올렸습니다.
8.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산타클로스>의 선물과는 별도로 <크리스마스> 때 사랑하는 가족, 친지,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은 고대로마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고대로마에는 12월 17일 부터 24일까지 흥겹게 지내는 ‘쌔터날리아’라는 절기가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집안을 상록수나 상록 담장넝쿨, 촛불 등으로 장식하고 어린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종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풍습이 <크리스마스>가 기독교의 절기로 자리잡은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쳐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 누가복음에 기록된
동방박사의 아기예수 경배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렸고 이를 본받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9. 캐롤링(Carolling)
우리 나라에서 흔히 ‘새벽송’이라 불렸던 <캐롤링>은
19세기 초 영국에서 집집마다 방문 하면서 캐롤을 불러주는 관습에서 비롯됐다.
당시 영국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마을에서 사용될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11월말부터 시작하여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캐롤을 부르곤 했다고 한다.
<캐롤링>은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찬양으로 전했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에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기독교회에서 널리 전해졌다. 한국에서도 6.25후 이 풍속이 전래됐으며
80년대까지 중고등부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새벽에 교인 집을 찾아가
캐롤을 불러주곤 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이후, 조용한 새벽의 노랫소리가
비기독교인 이웃의 안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원성이 높아지자
새벽종소리와 함께 한국교회 풍속도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 추억의 새벽송이여!
10. 기타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색깔은 녹색과 붉은색이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 혹은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삶은 녹색으로,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붉은 색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날과 관련된 장식의 색은 이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붉은 포인세티아의 사용이나 크리스마스 화환은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첫댓글 2009년 유익한 정보방에 올렸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어 수정, 보완했습니다.
이곳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십여 명의 교인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년말에 상경할 예정입니다.
십여 명의 교인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성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축복이 가득하고 따듯하며 은혜로운 모습일 것 같아요. 선생님 반갑습니다..메리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