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아픔을 만인에게 알리려고 꽃으로 탄생한 상사화를 보며 불갑사를 향해 걷는다. 조용히 내려앉은
햇살과 가을로 접어든 풍경이 향기롭다. 기념될 물체나 축제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아치를 기억에서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사진도 찍는다. 그런데
조금 아쉬움이 머리를 스친다. 꽃이 만개하여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은 아직 피지를 않고 있다. 그놈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비웃듯 실망시키고 있다. 조금 걷다 보니 산비탈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자랑스럽게 뽐내고 있는 놈을 보았다. 세상을 향해 막
꽃망울을 터트려 웃을 준비를 한다. 그렇게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꽃 대공을 쭉 내밀고 우리가 반가운지 말을 건다. 자기는 홀로 한
사람이라도 보겠지 하는 생각에 외롭게 이곳에서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녀석을 보는 순간 생명의 신비로움을 더욱 느끼게 한다.
자기를 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그 고통을 참으며 웃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참을 서서 보았다. 탄생이란 단어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탄생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상사화는 우리나라, 일본, 대만 등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여러해살이 유독성 식물이다. 완연한 봄이
되려는 4월이면 아직 채 녹지 않은 땅을 녹이며 그 속에서 노란 새싹이 솟아오른다. 얼핏 보면 마치 군자란 같이 보이는 새싹은 금방 무럭무럭
자란다. 그런데 6월이 되면 힘없이 사르르 죽어버린다. 서늘한 기운의 바람이 부는 9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이 죽었던 자리에 꽃대가
솟아오른다. 그리고 연보라색의 꽃이 요염하게 피어난다. 잎과 꽃이 서로 보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상사화(相思花)라고
부른다.
상사화는 절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상사화의 특별한 성분 때문이다. 예로부터 제지술, 표구 술이 발달한
곳이 절이다. 다양한 탱화나 고승들의 영정을 제작하는데 상사화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상사화 전분으로 만든 풀을 이용하여
표구를 하게 되면 수천 년이 지나도 좀이 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 주위는 스님들이 심어놓은 상사화가 많이 있다. 상사화의 잎은 약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상사화의 강한 독성은 해열작용을 도와주며 항암 효과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상사화는 강한 독성을 지닌 유독성 식물이기에 많은 양을 접하게 되면 중독이 되어 구토 증상이 일어나게 되고 심하면 중추신경의 마비 증상까지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상사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니 불갑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알림판에 적어 놓았다. 불갑사(佛甲寺)는 인도 간다라
지방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해 서기 384년 (침류왕 원년) 중국 동진에서 배를 타고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근처
모악산(불갑산) 자락에 처음 지은 절이다. "불교가 전해진 뒤 처음 건립됨으로써 모든 사찰의 으뜸이 된다" 고 하여 이름에 부처 불(佛)에 첫째
갑(甲)자를 쓰는 절이 되었다. 고려말 각진 국사가 주석할 때는 수행승이 1,000명가량에 달해 가람을 대규모로 중창했다. 본사에 40여 동
500여 칸 규모의 가람을 갖추고, 산 내에 암자 31곳을 세워 마치 불국세계를 연상시키는 도량이 되었다. 이때부터 호남 서쪽 지역의 불교
세력이 왕성해지기 시작해 불갑사를 불지종가(佛之宗家)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법릉, 연화, 해릉, 채은, 청봉, 용암, 원단, 설두
대선사가 차례로 주석하면서 가람을 중창.중수하고 "조계선풍(曺溪禪風)"을 드날렸다. 근세에는 금화, 학명, 만암 대종사가 주석하며 불법(佛法)을
널리 펼쳤다. 절에서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112호인 참식나무를 만날 수 있다.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상록활엽수인데,
불갑산은 참식나무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하다. 꽃무릇(상사화)이 지천으로 붉게 피어오르는 9월에는 꽃무릇 축제가 열린다. 불갑사가 자리한 곳은
부처님을 공양하는 향과 꽃이 끊기지 않는 "만년향화부절길상복지(萬年香花不絶吉祥福地)" 라고 한다
불갑사에 대해 요약한다면 불갑사의
중심 불전(佛殿)은 대웅전이며, 대웅전은 북방불교의 목조불전 건축양식과 남방불교의 불단배치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와 양식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상과 천왕문의 사천왕상, 명부전의 지장시 왕상, 만세루 등이 중요 문화재이며, 성보박물관에는 귀중한 불경전적문화재와 불화
불교조각존상 및 불교공예 문화재 등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조금 올라가니 불갑사(佛甲寺)라고 쓴 대궐 문 같은 일주문이 있다. 또
불갑산 호랑이의 모형도 만들어 놓고 상사화의 조형물과 하트모양의 조형물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추억을 간직할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상사화의 노랑꽃도 보았고 빨강 꽃도 보았다. 아직 축제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축제 분위기다.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걸으며 불갑사(佛甲寺)까지
왔다. 경내를 들어갔다. 목탁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경내는 고풍스러운 집들이 오몰 조몰 들어섰다. 조용하면서도 엄숙해 보인다. 그곳엔
수다라 성보관(修多羅聖寶館), 유형문화재 제159호인 사천왕상(四天王像),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인 불갑사 만세루(佛甲寺萬歲樓), 보물
제830호인 영광 불갑사 대웅전(靈光 佛甲寺 大雄殿), 보물 제1377호인 목조 석가여래 삼존불 좌상 등을
보았다.
불갑사(佛甲寺)를 구경하고 절 뒤에 있는 호수까지 왔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 불갑산을 등정하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호수의 뚝에서 찰랑대는 물결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한참 동안 웃으며 담소도 나누었다. 김성희 시인은 즉흥적으로 자작시를 지어 멋들어지게
읊어댄다. 회원들의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홍권효 부회장은 사진찍기 바쁘다. 그런가 하면 가을 햇살은 곱게 내려와 대지를 덮었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온다. 우리의 기분을 아는지 고추잠자리 날며 가을을 즐긴다. 처음 와서 보는 불갑사지만 절의 주위가 태고의 숨결이 보이는 듯 매우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불갑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군의 자랑이다. 잠시 영광군의 많은 자랑을 하고 싶다.
영광은 천혜의
자연과 역사가 숨 쉬는 고장이다. 영광군은 전라남도 북서 해안에 위치해 있고 동부는 산간지, 서부는 평야지로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지며 동쪽은
장성군, 서쪽은 서해의 칠산바다, 남쪽은 함평군, 북쪽은 전라북도 고창군에 각각 접해있다. 영광은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답고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부한 지역으로 쌀, 소금, 목화, 눈이 많아 삼백(三白) 또는 사백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옥당고을"
또는"호불여 영광(戶不如靈光)" 이라 지칭되어 왔다. 불갑산과 백수해안도로, 가마미해수욕장, 낙월도 등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령스러운 빛"이라는 지명 그대로 정신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리아스식 해안이란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나팔
또는 나뭇가지 모양을 이루는 방식을 말한다)
영광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기독교순교지, 원불교영산성지, 천주교순교지 등 우리나라
4대 종교 선지가 있고, 종교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법성포 단오제를 비롯하여 우도 농약 등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전승 보존되고 있다.
아울러 상사화를 테마로 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을 축제인 영광 불갑산 상사화 축제, 영광 찰보리 축제, 영광 천일염 갯벌 축제, 해안도로 노을
축제 등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또한, 우리나라 지역 특산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광굴비를 비롯하여 최근 떠오르고 있는 모싯잎 송편, 설도
젓갈, 갯벌 천일염, 그리고 보리 산업 특구를 기반으로 한 청보리 한우, 보리 올 포크, 찰보리빵 등의 특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아름다우면서 볼거리와 먹거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영광군을 온 것이다. 상사화도 보고 불갑사도 보았다. 이젠
리아스식 해안도를 드라이브하며 즐긴다고 한다. 해안 도로를 달리다 조용한 곳에 멈춘다.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홍어회와 막걸리를
즐겼다. 참으로 아름다운 해안이다. 이젠 서울을 향해 갈 일만 남았다. 차에 오르자마자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퍼진다.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가수가 보고 울고 갈 정도다. 이렇게 송우 가족은 가수로 형성된 모임 같다. 영광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흥이 넘치는 노래를 부르며 버스는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