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jhimā paṭipadā 란 무엇인가?
중도란 불선법을 버리고 선법을 증진하면서 세간의 정견과 노력을 원만히 하면서 출세간의 정견과 팔정도를 증득하면서 정정을 갖춰 정혜로 나아가 올바른 해탈의 길을 의미한다.
빨리어에서 h(i)는 생략과 삽입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김형준 빨리어 문법 54쪽)
majjhimā 에서 Majj란 닦아내다, 문지르다, 청소하다, 깨끗하게 하다. 의미 √majj (rub, polish)로서 마음의 중립성을 의미한다. 이는 맛지마 117 출세간의 정견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yā kho, bhikkhave,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 에서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에서 논증된다.
mā란 ~한 만큼, 제다, 제어하다, (matta - adj. amount of; as many as; measure of; consisting of [√mā–ta]) 의미이다.
Majjhimā 란 마음을 “닦아냄의 한에서’ 의미이다.
paṭipadā에서
paṭi란 ~함께, 묶어, 동시에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법과 세간의 정견 그리고 출세간의 팔정도와 함께라는 의미이다.
참고 : 맛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ṭipadā)에는 단지 ‘중간 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도취함’(‘맛지_majji’, 즉 감각적 쾌락/즐거움에 도취됨)의 위험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마(ma)’는 ‘삼마(samma)’가 ‘산(san)’ + ‘마(ma)’를 의미하는 것에서와 같이, ‘~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majjhimā paṭipadā는 평범한(세간적) 의미에서는 ‘중간 길’이다.
극단과 중간에 대한 용례들
♦ 7. majjhesuttaṃ (AN 6.61) 중간 경(A6:61) Majjhe-sutta
♦ “yo ubhonte viditvāna, majjhe mantā na lippati .
♦ taṃ brūmi mahāpurisoti, sodha sibbini maccagā”ti.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194)
194) “바느질 하는 여인(sibbani)이라 불리는 갈애(taṇhā)를 건넜다는 뜻이다.”(AA.iii.403)
♦ “katamo nu kho, āvuso, eko anto, katamo dutiyo anto, kiṃ majjhe, kā sibbinī”ti?
도반들이여, 여기서 어떤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극단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고 어떤 것이 바느질하는 여인입니까?”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there bhikkhū etadavoca —
2.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phasso kho, āvuso, eko anto, phassasamudayo dutiyo anto, phassanirodho majjhe, taṇhā sibbinī;
“도반들이여, 감각접촉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195
3. 이렇게 말하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과거가 첫 번째 극단이고 미래가 두 번째 극단이며
현재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도반들이여, 즐거운 느낌이 첫 번째 극단이고 괴로운 느낌이 두 번째 극단이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정신nama이 첫 번째 극단이고 물질이 두 번째 극단이며
알음알이[識]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끄리고 초전법륜경의 고락중도는 수행의 태도를 의미하고, 상윳따 12.15 경 등에서의 일이중도, 유무중도 등은 세계의 탐진치로 한계 지어짐과 개별화됨을 의미한다.
majjhimā paṭipadā 란 무엇인가?
중도란 불선법을 버리고 선법을 증진하면서 세간의 정견과 노력을 원만히 하면서 출세간의 정견과 팔정도를 증득하면서 정정을 갖춰 정혜로 나아가 올바른 해탈의 길을 의미한다.
빨리어에서 h(i)는 생략과 삽입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김형준 빨리어 문법 54쪽)
majjhimā 에서 Majj란 닦아내다, 문지르다, 청소하다, 깨끗하게 하다. 의미 √majj (rub, polish)로서 마음의 중립성을 의미한다. 이는 맛지마 117 출세간의 정견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yā kho, bhikkhave,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 에서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에서 논증된다.
mā란 ~한 만큼, 제다, 제어하다, (matta - adj. amount of; as many as; measure of; consisting of [√mā–ta]) 의미이다.
Majjhimā 란 마음을 “닦아냄의 한에서’ 의미이다.
paṭipadā에서
paṭi란 ~함께, 묶어, 동시에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법과 세간의 정견 끄리고 출세간의 팔정도와 함께라는 의미이다.
참고 : 맛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ṭipadā)에는 단지 ‘중간 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도취함’(‘맛지_majji’, 즉 감각적 쾌락/즐거움에 도취됨)의 위험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마(ma)’는 ‘삼마(samma)’가 ‘산(san)’ + ‘마(ma)’를 의미하는 것에서와 같이, ‘~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majjhimā paṭipadā는 평범한(세간적) 의미에서는 ‘중간 길’이다.
극단과 중간에 대한 용례들
♦ 7. majjhesuttaṃ (AN 6.61) 중간 경(A6:61) Majjhe-sutta
♦ “yo ubhonte viditvāna, majjhe mantā na lippati .
♦ taṃ brūmi mahāpurisoti, sodha sibbini maccagā”ti.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194)
194) “바느질 하는 여인(sibbani)이라 불리는 갈애(taṇhā)를 건넜다는 뜻이다.”(AA.iii.403)
♦ “katamo nu kho, āvuso, eko anto, katamo dutiyo anto, kiṃ majjhe, kā sibbinī”ti?
도반들이여, 여기서 어떤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극단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고 어떤 것이 바느질하는 여인입니까?”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there bhikkhū etadavoca —
2.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phasso kho, āvuso, eko anto, phassasamudayo dutiyo anto, phassanirodho majjhe, taṇhā sibbinī;
“도반들이여, 감각접촉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195
3. 이렇게 말하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과거가 첫 번째 극단이고 미래가 두 번째 극단이며
현재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도반들이여, 즐거운 느낌이 첫 번째 극단이고 괴로운 느낌이 두 번째 극단이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정신nama이 첫 번째 극단이고 물질이 두 번째 극단이며
알음알이[識]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그리고 초전법륜경의 고락중도는 수행의 태도를 의미하고, 상윳따 12.15 경 등에서의 일이중도, 유무중도 등은 세계의 탐진치로 한계 지어짐과 개별화됨을 의미한다.
첫댓글 맛지마 1 모든 것의 뿌리의 경.
mā의 용례
sopi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mā maññi , pathaviyā mā maññi, pathavito mā maññi, pathaviṃ meti mā maññi,
pathaviṃ mābhinandi . taṃ kissa hetu? ‘pariññeyyaṃ tassā’ti vadāmi.
그는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알아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땅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땅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땅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는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설한다.”
中(majjha)이란 ‘<법(法)의> 集(samudaya)과 滅(nirodha)’이라는 ‘두 방향’을 다 보는 것 ...... 즉 ..... ‘쌍차쌍조(雙遮雙照)’ ............
쌍차(雙遮)라는 것은 양변을 막아서, 서로 막아서 서로 숨겨주는 것, 양변을 떠나는 것, 극단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쌍조(雙照)라는 것은 그 반대로 이 양변이 서로 비추어서 .......
이것은 저것을, 저것은 이것을, 서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양변이란 모두 변견(邊見)인데 변견을 버리면 곧 중도(中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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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의 ....... 견해이기도 하고 ........... 전통적인 견해 이므로 ..........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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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有爲)의> 集(samudaya)’이 ‘유전문(流轉門)’.
‘<법(法, =有爲)의> 滅(nirodha)’이 ‘환멸문(還滅門)’.
그래서 .......... 12연기가 ......
여래가 ........... ‘中에서(majjhe) 드러낸 法(dhamma)’이 아니던가요?
@아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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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有爲)의> 集(samudaya)’이 ‘유전문(流轉門)’이라는 paṭipadā(방도, 道)
⇒극단(anta)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micchā-paṭipadā(사도)’
⇒magga적인 측면에서는 ‘八邪道(aṭṭhaṅgiko micchāmaggo)’
⇒界(dhātu)의 측면에서는 ‘無明(avijjā)-界(dhātu)’를 따름.
즉 <법(法, =有爲)에 대한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이 없는 상태[=무명 상태].
@아위자
‘<법(法, =有爲)의> 滅(nirodha)’이 ‘환멸문(還滅門)’이라는 paṭipadā(방도, 道)
⇒‘中에서(majjhe)’의 ‘sammā-paṭipadā(정도)’
⇒magga적인 측면에서는 ‘‘八正道(ariyo aṭṭhaṅgiko maggo)’
⇒界(dhātu)의 측면에서는 ‘明(vijjā)-界(dhātu)’를 따름.
즉 <법(法, =有爲)에 대한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이 있는 상태[=명 상태].
@아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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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明(vijjā)의 일부가 ......... ‘samatha(止)와 vipassanā(觀)’
②明(vijjā)은 ‘三明’인데, 세 번째 明(vijjā)인 ‘누진명(漏盡明)’이 <사성제라는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
③그래서 ‘사성제의 3전12행’에서 <增知하고(abhiññā, 수승한 智, =abhi-ñāṇa, =行을 파악한 智, =一切智) 遍知해야(pariññeyya, 철저하게 알아야, 두루 알아야)할 법은 五取蘊이다. / 增知하고 捨斷해야(pahātabba, 버려야)할 법은 無明과 有愛이다. / 增知하고 證得해야(sacchikātabba, 실현해야)할 법은 明과 解脫이다. / 增知하고 修習해야(bhāvetabbā, 닦아야)할 법은 ‘samatha(止)와 vipassanā(觀)’이다.>
@아위자
그런데 ......... 中道(majjhimā paṭipadā)는 ‘아땅가(aṭṭhaṅga, 여덟 가지)에 속하는 paṭipadā로서’[=사성제에 대한 ‘智集滅道’] ........ 학인(=有學)의 ‘계정혜(戒定慧) 수준’이고, 아라한(=無學)의 ‘계정혜(戒定慧) 수준’은 ‘다쌍가(dasaṅga, 열 가지)’에[=사성제에 대한 ‘苦集滅道’] 도달하여야 함.
"쌍조(雙照)라는 것은 그 반대로 이 양변이 서로 비추어서 .......
이것은 저것을, 저것은 이것을, 서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아윗자님.. 중도 수행은 37조도품으로 니까야에서 제시 됩니다.
중도란 쌍조가 아닌 쌍조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것이지, 자기 견해로 부처님 법을 꿰어 매는 것은 사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장의 근거는 항상 니까야 이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공부하면서 부처님 법을 빌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은 타인과 자신에게 오랜 동안 불이익이 됩니다.
@아위자 맛지마9번 경을 보면, 12연기 요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고 보고 이후 사마디를 증득하여 나아가는 것이 중도입니다.
즉 팔정도 실천 입니다.
@아위자 아윗자님 도과의 지혜를 언급하시는데 아윗자님께서는 어떠한 수행법으로 도과지혜 개발을 하고 계십니까? 몸kāya으로 체험하는 방법을 권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위자 명지 개발은 칠각지로 증득되는 것이고, 칠각지 개발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통하여 부처님 교법을 이해와 수용하여 가는 과정입니다.
@아위자 ‘samatha(止)와 vipassanā(觀)’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말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그러한 수행을 하지 않으시면 잠시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사념처 수행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2. 형용사
(1) 형용사의 비교급과 최상급
(가) 형용사 비교급/최상급의 규칙적 형성
5) 기타 형성방법
일부 형용사의 최상급[or 비교급]엔 조사 'ma'가 사용되며, 어간말음인 모음은 'i'로 대체된다.
bāhira(. external, outside) > bāhirima(. outer, external, outside)
anta(. near; last) > antima(. final, last)
majjha(. middle) > majjhima(. middle, medium) [봉숭아학당]
Majjhima,(adj.) [Vedic madhyama,with sound change °ama›°ima after Geiger,P.Gr.191,or after analogy with pacchima,with which often contrasted] 1.middle,medium,mediocre,secondary,moderate
Majjha,(adj.) [Vedic madhya,cp.Lat.medius,Gr.mέssos,Goth.midjis=Ohg.mitti,E.middle] middle,viz.1.of space:of moderate height D.I,243 (contrasted with ucca & nīca).-- 2.of time:of middle age Sn.216 (contrasted with dahara young & thera old).-- 3.often used adv.in Loc.majjhe in the middle
[https://dictionary.sutta.org/browse/m/majjha/]
감사합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되나 언젠가 본 적이 있어서 문의 드립니다.
'중'을 뜻하는 majji의 어원 중에서 '씻어낸다 혹은 닦아낸다'라는 의미의 근원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게 맞다면 '중'이라는 위치가 '닦아내서 새롭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을까요?
♦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중도 바른견해
yā kho, bhikkhave,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paññā paññindriyaṃ paññābal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o sammādiṭṭhi maggaṅgaṃ —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도의 구성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마음을 가졌고 번뇌 없는 마음을 가졌으며
성스러운 도를 구족하여 성스러운 도를 닦는 자가 있으니,
그가 가진 통찰지, 통찰지의 기능, 통찰지의 힘,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
바른 견해, 도의 구성요소103) -
이것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도의 구성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이다.
@형성의 바탕을 초월한다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두 어휘가 중도의 핵심어 입니다. 마음이 세속을 떠나고 번뇌/유루/유입이 없는 마음이 팔정도 즉 중도의 정견이라고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형성의 바탕을 초월한다 √majj (rub, polish) 어근입니다.
@형성의 바탕을 초월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