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구원한 것은 법이 아니라 은혜였다. 정의는 장발장을 다시 감옥으로 보내려 했지만, 은혜의 사랑은 그를 자유롭게 했다. 법과 정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킬 수 없다.
우리는 공의를 외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분노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의가 생기기도 한다. 모든 것을 법과 공정의 잣대로만 재단하면, 인간적인 온기는 사라진다. 반대로 사랑만을 강조하다 보면, 질서와 기준이 무너지고 만다.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셨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셨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를 가볍게 여기신 것도 아니었다. 십자가에서 죄의 대가를 치르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도 이루셨다. 공의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전도서 3: 16
내가 해 아래서 보건대 재판 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우리는 어떤가? 공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냉정해지고, 사랑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삶의 질서가 흐트러진다.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면, 그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공의와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샬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