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불태(知止不殆)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일정한 한도를 넘어 정도가 심하면 위험함을 이르는 말이다.
知 : 알 지(矢/3)
止 : 멈출 지(止/0)
不 : 아니 불(一/3)
殆 : 위태할 태(歹/51)
출전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第44章
'노자(老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예와 몸은 어느 것이 가깝고, 몸과 재물은 어느 것이 소중하고, 얻음과 잃음은 어느 것이 해로운가?
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이런 까닭에 지나치게 사랑하면 반드시 크게 쓰게 되고, 많이 간직하려하면 크게 잃게 된다.
故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업고, 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갈 수 있다.
옛날 분들이 흔히 하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그림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림보다 더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글씨고, 글씨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시(詩)이고, 시보다 더 어려운 것이 문장이고, 문장보다 더 어려운 것이 책이고, 책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란 말이다.
선거철이 되면 각 당에서는 후보를 내기 위해서 공천(公薦)을 해야 한다. 옛날 힘이 있는 당 대표는 자기 뜻대로 해도 반항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당 대표라도 그럴 힘이 없으니, 대개 공천위원회를 만들어 공천을 한다.
오늘날은 공천을 신청한 사람들의 자질이나 경력 등이 거의 평준화돼 있어, 각 당 공히 공천을 하기가 정말 어렵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기계적 수치에 의한 평가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신청자 가운데 공천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승복하지 않는 경우는, 어느 모로 봐도 공천 받은 사람이 떨어진 자기만 못 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억울하기 그지없다.
공천에 떨어진 경우, 반응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깔끔하게 수용하는 사람, 억울하긴 하지만 할 수 없이 수용하는 사람, 탈당해 출마한다고 선언했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 끝까지 출마하는 사람 등이다.
탈당해서 출마한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도 떨어지고, 자기 당의 사람도 떨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살아 돌아와 다시 당에서 자기 위치를 회복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이렇기 때문에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하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 흠도 없고 능력도 있는 자신에게 공천을 안 주니,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크게 마음을 가지면, 후배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도 있다. 자기도 4년 전, 8년 전, 혹은 10여 년 전 공천을 받을 때 당의 중진을 재끼고, 별 이름도 경력도 없이 운 좋게 공천을 받았다.
그러자 자기 앞의 선배 의원이 무소속 출마하니 어찌니 하여 마음을 졸인 적이 있었다. 자기 아니라도 다른 사람도 자기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은, 4년, 8년, 12년, 혹은 그 이상 좋은 자리를 누렸으니, 다른 사람이나 후배에게 양보해도 크게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
'노자(老子)'에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에, "고소하게 먹으려고 하다가 태운다"는 말이 있다.
적당한 위치에서 멈추면 지금의 명망이나 경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조금 더 하고 욕심을 내다가 앞에 쌓은 훌륭한 경력까지 다 망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많은 분들이 성공적인 정치생애를 보냈는데, 마지막 관직을 다시 맡는 바람에 앞에 쌓아올린 공적을 다 망쳐버리고 말았다.
⏹ 知足不欲 知止不殆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名與身孰親?
이름과 몸 중에서 어느 것이 친한가?
身與貨孰多?
몸과 재물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가?
得與亡孰病?
얻음과 잃음 중에서 어느 것이 괴로운가?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이럼으로써 너무 소중히 여기면 반드시 크게 해치게 되고, 많이 감추어 두면 반드시 많이 잃게 된다.
知足不欲(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이렇게 하면 길고 오래 살 수 있다.
(老子/道德經 第44章)
노자는 인위적인 수단을 쓰는 정치, 예법을 가지고 다스리는 정치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명예와 재물에 대한 욕심은 정치적 수단의 동기이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그 끝이 위태롭습니다.
노자는 만족을 아는 지족의 정치가 비록 교묘한 수단이 없지만 올바른 정치이고, 욕심이 없는 정치는 모자라 보이지만 오래 갈 수 있는 다스림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말을 개인적인 삶에 적용해도 좋습니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생명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도덕경에서 반복해서 말합니다.(29, 32, 33, 46장)
명예와 재화를 쌓으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습니다.
토끼는 주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쁘게 도로 위를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왜 그렇게 급하게 가니?" 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내 일을 쫓아가고 있어."
토끼가 계속 물었다. "그런데 네가 일을 쫓아가야 할 정도로 일이 너를 앞서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일이 네 등 뒤에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그냥 멈추기만 하면 만나게 될 텐데, 지금 너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18세기 하시딤의 우화 중에서)
우리의 현실에서 명예와 재물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정치를 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의 말로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기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동조자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어려움을 당하였고 힘들어 했습니다.
한 사람의 족함을 모르는 욕심과 그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공동체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고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해코지를 합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막대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얕보거나 경멸적인 언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중심은 가장 약한 곳이고 아픈 곳이 듯이 공동체의 중심은 스스로 잘 낫다고 하는 사람보다는 연약하고 작은 사람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잘못은 결코 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행동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칩니다.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든지 자기를 걸려 넘어지게 하든지 그것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관계로 얽혀진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합니다. 자기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의 선택을 요구하는 유혹들이 언제나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 유혹은 외부에서 밀어닥치는 것도 있지만, 공동체 안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공동체는 자리다툼, 특권의 추구,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로 인해서 실제적인 위협받습니다.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는 선택을 요구합니다.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거나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거나, 손과 발로 걸려 넘어지게 했다면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게헨나에 들어가거나 그것을 잘라버리고 생명에 들어가거나, 눈으로 걸려 넘어지게 했다면 게헨나에 들어가거나 그것을 빼버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거나. 선택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손발과 눈을 잘라 버리고서라도 생명 혹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는 단호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게헨나와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언제나 존재합니다. 벌레와 불이 언제나 존재하는 게헨나처럼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유혹과 위협이 언제나 그렇게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과 욕망으로 실재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선택으로 현실을 게헨나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나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소금과 불은 그것을 견디어 극복한 사람들에게는 연단을 상징합니다. 소금과 불은 소멸시키는 힘뿐만 아니라 정화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스스로(너희 가운데) 소금을 지녀라. 그리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50절)
우리 속에 시련과 연단의 불과 소금이 있을 지라도 그것을 지니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선택은 나,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우리의 현실을 게헨나나 하느님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 知足不辱하고 知止不殆하니, 可以長久하리라.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길이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으리라.
知足不辱(지족불욕) :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명예욕이나 재물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올바로 지키고 보존할 수 있는 처세(處世)의 방편으로 무욕(無慾)을 주장하고 있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노자 전편에 흐르는 '知足'의 가치는 앞서 제시했던 '지족자부(知足者富)'처럼 역설적인 수양의 가르침으로 되새길 수 있습니다.
知止不殆 可以長久(지지불태 가이장구) :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길이길이 오래도록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역시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좇아 끊임없이 멈출 줄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길만이 참된 자아를 보존하고 지킬 수 있는 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解)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성(名聲)과 자신의 생명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절실한 것인가? 또 자신의 생명과 재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또 얻는 것과 잃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괴롭고 고통이 되는가?
(老子/道德經 第44章)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재물에 대한 탐욕이 지나쳐 자신의 생명까지 잃는 무모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 속에서 탐욕에 대한 경계의 가르침을 되새기곤 합니다.
그럼에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는 더 큰 재물과 더 큰 명성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곤합니다. 물론 목표를 향한 노력이나 성취에 대한 자세 자체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나 자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얻어내는 결과에 대해서만 집착하고 욕심을 내기 때문에 만족할 줄 모르는 병폐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가치를 실현하라고 주장하는 노장(老壯)의 역설이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실현을 위해 정진하라고 가르치는 공맹(孔孟)의 주장 모두 인간의 부족한 점과 왜곡된 현실 모습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금주의 명언에서 말하고 있는 '知足'의 가치는 개념적 가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는 유가와 도가의 주장을 동일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안분(安分)에 대한 구절들을 보면 노자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알아 언제나 만족스럽게 여기면 한 평생 욕됨이 없을 것이고, 그칠 줄 알아 항상 그친다면 한 평생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
(明心寶鑑)
이제 작은 것이나마 知足의 가치를 실천했으면 합니다. 자신의 주변 동료들 관계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손해보고 자신만 고생한다고 투덜대기 보다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이 더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 주면, 언제나 서로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정이 흐르지 않을까 합니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나이 50세를 말함으로 50세에 드디어 천명을 알게 된다는 나이를 달리 이르는 말을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 또는 서로 뜻이 통하는 친한 벗을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지명인사(知名人士), 지식과 행동이 한결같이 서로 맞음 또는 지식과 행동이 일치함을 일컫는 말을 지행일치(知行一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뜻으로 믿는 사람에게서 배신당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지부작족(知斧斫足), 알면서 모르는 체함을 일컫는 말을 지이부지(知而不知),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물러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난이퇴(知難而退), 모든 일에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생각하면 모욕을 받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족불욕(知足不辱),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함을 이르는 말을 지은보은(知恩報恩), 지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혹(知者不惑), 사리에 밝은 사람은 지식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언(知者不言),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대우大愚의 덕을 지키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백수흑(知白守黑), 대우를 잘 받아서 후의에 감격하는 느낌을 이르는 말을 지우지감(知遇之感), 족한 줄을 알아 자기의 분수에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지족안분(知足安分), 족한 것을 알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부자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족지부(知足知富) 또는 지족자부(知足者富), 간악한 꾀가 많아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꾸며 대어 상대방을 곧이 듣게 함을 이르는 말을 지족식비(知足飾非) 등에 쓰인다.
▶️ 止(그칠 지)는 ❶상형문자로 止(지)는 사람 발자국의 모양으로,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있다'의 뜻과 '발을 움직여 나아간다'는 뜻의 두 가지로 썼으나, 나중에는 주로 '머문다'는 뜻으로 썼다. ❷상형문자로 止자는 '그치다'나 '멈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을 나온 止자를 보면 엄지발가락이 길게 뻗어 있는 발이 그려졌었다. 이것은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지만 사전적으로는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발걸음이 멈추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止자는 '금지(禁止)하다'와 같이 무언가를 멈추거나 억제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止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가다'나 '이동하다'처럼 사람의 움직임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렇기에 止자가 단독으로 쓰일 때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뜻이 달라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止(지)는 ①그치다, 끝나다 ②그만두다, 폐하다 ③금하다 ④멎다, 멈추다 ⑤억제하다 ⑥없어지다, 없애다 ⑦머무르다 ⑧숙박하다, 투숙하다 ⑨붙들다, 만류하다 ⑩모이다, 모여들다 ⑪사로잡다, 손에 넣다 ⑫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⑬되돌아오다 ⑭병이 낫다 ⑮떨어버리다 ⑯만족하다, 자리 잡다 ⑰꼭 붙잡다 ⑱기다리다 ⑲예의(禮義), 법(法) ⑳거동(擧動),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㉑한계(限界) ㉒겨우, 오직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칠 료(了), 머무를 정(停), 끝 말(末),끝 단(端), 마칠 종(終), 그칠 철(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이다. 용례로는 목마른 것이 그침 또는 그치게 함을 지갈(止渴), 하던 곡(哭)을 그침을 지곡(止哭), 전쟁을 멈춤을 지과(止戈), 흐르지 않고 괴어 있는 물을 지수(止水), 어떤 곳에서 머물러 잠 머물러 묵음을 지숙(止宿), 진행하여 오던 현상이나 병의 증세 따위가 잠시 그침을 지식(止息),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하여 어떠한 것을 하지 아니함을 지양(止揚), 병으로 말미암아 생긴 열이 내리거나 또는 그 열을 내리게 함을 지열(止熱), 잠시 몸을 의탁하여 거주함을 지접(止接), 머물러 삶을 지주(止住), 피가 못 나오게 함 또는 피가 그침을 지혈(止血), 실시하던 제도나 법규 및 일을 그만두거나 없앰을 폐지(廢止), 금하여 못하게 함을 금지(禁止), 막아서 그치게 함을 저지(沮止), 하던 일을 중도에서 멈춤을 정지(停止),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게 막음을 방지(防止), 내리 눌러서 제어함을 억지(抑止),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하려고 하는 일을 말리어서 못하게 함을 제지(制止),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람은 최고의 선에 도달하여 그 상태를 유지함을 이상으로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어지선(止於至善), 제 분수를 알아 만족할 줄 아는 경계를 일컫는 말을 지족지계(止足之戒), 목마름을 그치게 하는 꾀라는 뜻으로 임시변통의 꾀를 이르는 말을 지갈지계(止渴之計), 일정한 숙소가 없이 어디든지 이르는 곳에서 머물러 잠 또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마땅히 그쳐야 할 데서 알맞춰 그침을 이르는 말을 지어지처(止於止處),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사념이 전혀 없는 깨끗한 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명경지수(明鏡止水), 몸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이르는 말을 행동거지(行動擧止), 매실은 시기 때문에 이야기만 나와도 침이 돌아 해갈이 된다는 뜻으로 매실의 맛이 아주 심 또는 공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음을 일컫는 말을 망매지갈(望梅止渴), 행동을 덤비지 말고 형용과 행동거지를 조용히 생각하는 침착한 태도를 가져야 함을 이르는 말을 용지약사(容止若思),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자행자지(自行自止)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殆(거의 태/위태할 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재난(災難)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台(태, 이)로 이루어졌다. 위태함을 뜻한다. 또 似(사)에 통하여 '가깝다', '거의'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殆자는 '거의'나 '위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殆자는 歹(뼈 알)자와 台(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歹자는 부서진 뼛조각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台자는 수저와 입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迨(미치다 태)자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니 殆자는 '죽음'을 뜻하는 歹자와 迨자를 결합해 '거의 죽음에 이르다' 즉 '위태롭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다만 지금의 殆자는 '거의'나 '장차'라는 뜻만 남아 있다. 그래서 殆(태)는 ①거의, 대개(大槪: 대부분) ②장차(將次) ③반드시, 마땅히 ④위태하다(危殆--), 위험하다(危險--) ⑤위태(危殆)롭게 하다 ⑥해치다(害--) ⑦의심하다(疑心--) ⑧피곤하다(疲困--), 지치다 ⑨두려워하다 ⑩게으르다 ⑪가깝다, 비슷하다 ⑫가까이하다, 접근하다(接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위태할 위(危)이다. 용례로는 거의 없음을 일컫는 말을 태무(殆無), 거의 절반을 일컫는 말을 태반(殆半), 몹시 위태로운 일을 태재(殆哉), 형세가 매우 어려움 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음 또는 안전하지 못하고 위험함을 위태(危殆), 곤란하고 위태로움을 곤태(困殆), 위태롭지 아니함을 불태(不殆), 위태로움을 일컫는 말을 기태(幾殆), 의심하고 두려워함을 의태(疑殆), 아주 무심함을 일컫는 말을 태무심(殆無心), 총애를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면 머지 않아 위태함과 치욕이 옴을 일컫는 말을 태욕근치(殆辱近恥), 아주 몹시 위태로움을 일컫는 말 태재태재(殆哉殆哉), 매우 위태함을 일컫는 말을 위태위태(危殆危殆),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일정한 한도를 넘어 정도가 심하면 위험함을 이르는 말을 지지불태(知止不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