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죽 먹고 동지 나이 먹고 ...
죽마고우, 어릴 적 내고향,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승을 살면서
강신영(신성일)과 손용호(손시향)같은 운명적, 숙명적 죽마고우도 드물 것이다.
손시향의 "검은 장갑"
1958
손석우 작사 작곡
인생은 선택의 기로에서 늘 ...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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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신성일)의 형
강신구는 승승장구하여 68년 전치범 대령(공사2기) 인솔하는 조종사 16명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일 년간 F-4D(팬텀기) 조종 훈련을 받는다.
소련제 미그에 당할 전투기가 없어 한동안 전전긍긍하던 미국이 만든 회심의 전투기가 ’F-4D‘ 이다.
별명인 ’미그기를 잡는 도깨비‘ (미그킬러 팬텀)을 줄여 팬텀이라고 불렀다.
(* Phantom(풴텀) 은 유령(幽靈) , 귀신 아니던가 ㅎ~)
당시 최신예 전투폭격기인 이 비행기는 미국과 가장 친한 우방 3개국만 보유하고 있었다.
팬텀기 훈련 조종사들은 모두 공군사관학교 출신들인데 유일한 조종간부 출신(6기) 강신구가 있었다.
조종 훈련을 마친 이들은 미국대륙에서 3번의 공중급유를 받으며 한국으로 온다.
69년 8월 28일 마중 나간 후배 조종사들의 전투기들이 제주도 상공에서부터 팬텀기를 칸보이하는 가운데
15시에 팬텀기 8대가 태극 문양을 뻔쩍이며 대구 비행장에 착륙한다.
(* 대구 비행장은 대구 동촌(東村)에 있는 K-2 이다.)
이날의 감격은 강신구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는 중장으로 전역하여 말년에 동생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보고 세상을 떠났다.
제 16대 (한나라당 대구 동구) 강신성일 국회의원
그동안 강신영의 주먹에 꽉 쥐어져 있던 이름 없던 돌들이 빛을 쪼여주자 신성일의 보석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데뷔 작 ’로멘스 빠빠‘는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고 무명의 촌뜨기 신성일은 스스로 전국을 비추는 별빛이 된다.
그 당시는 한국인은 외국 여행은 아무나 할 수가 없는 가난한 시대였다.
운좋게 신성일이 촬영하러 일본 요코하마에 간 일이 있다.
요코하마는 일본의 삼대 도시답게 만물이 그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하는데 그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빨간 스포츠카 ’포드 머스탱‘ 이었다. 그 차를 갖고 싶었다.
한국 최고의 스타가 가져야 될 자동차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귀국하여 밤낮으로 그 차를 손에 넣을 궁리를 하고 다녔다.
이미 돈은 흔전만전 쓸 수 있게 된 그였지만 외화는 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허용해 주었다.
대기업의 총수가 외화를 많이 벌면 외국차 한 대를 사게 해주는 특혜를 주었다.
대우 김우중 회장이 수출을 많이 했다고 외제 차 한 대를 사서 갖고 있었는데 그해 업적이 좋아 또 한 대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차를 신성일이 우격다짐하여 자신의 차로 만들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서울서 부산까지 완전 개통 공사가 끝났다.
공식 기념식이 있기 전 대통령 전용차가 텅 빈 고속도로를 부산서 서울로 기운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의 차가 추풍령 부근을 통과할 무렵 서울서 빨간 외제 차 한 대가 고속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아직 모든 차 운행금지 상태였다. 대통령 차와 빨간 포드 머스탱이 서로 비껴 달려갔다.
이 지점에서 이런 교차는 신성일의 세밀한 계산하에 실천된 노름이었다.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난 박정희가 외쳤다.
“저 새끼 어떤 놈이야?”
경호원들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신성일 같은데요”라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오래 살라 그래” 박정희가 뜻 모를 지시를 한다.
욕한 건지 걱정한 건지 아무도 그 말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모택동이 임표가 도망가는 날 똘만이들이 ’어찌할 깝쇼?‘라고 묻자 ‘비는 오고 엄마는 시집가네.’ 라는 말과 같은 뉘앙스다.
다음 날 중앙정보부에서 신성일이 된통 얻어터졌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박 대통령은 허허 웃고 만듯하다.
신성일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인지 나이 지긋한 남자들을 좋아했다.
지인들에게 속으로 4명의 남자를 아버지로 생각하며 살았다고 자주 말했다.
신성일은 박정희를 아버지처럼 생각해서 그의 통 큰 인격을 믿어 재롱을 떨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미자보다 열 배 이상 세금을 내는 신성일이 귀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둘은 여성 편력에서는 형, 아우할 수 있는 능력자이며 동지들이 아니던가!
훗날 대통령의 혼잣말을 신성일은 이렇게 해석했다.
‘운전 조심하고 오래 살라’는 따뜻한 충고였다고...
* ~ 권영재(정신과 전문의,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님의 글 중에서~
첫댓글 오래 살아라 인명은 재천인데 하늘의 뜻인걸
아까운 사람들은 일찍가고 하는말은 저승에서 필요하니까 데려갔다 좀더 일찍만데려간게 얼마나 다행일까 불세출의 스타들은
아쉅게도 요절을 하거나 좀더살아도 되는
안타까움을 유발하고 쓸데없는 늙은이는
왜 안가나 하는 지청구속에 세상살이 오래 삽시다
늙은이가 가던 말던
젊은이가 가던 말던
인명은 인간의 소관사항이 아니죠. 지청구 대상도 아니고요 ㅎ
논밭에는 잡초가 더 잘 자라고
사람사는 세상엔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 더 우글거리고 오래 살고...
백해무익한 인간이라면
동서고금 남녀노소 관계 없이 가능한 빨리~ , 서둘러~ㅋㅋㅋ
강신영이었군요 ㅎㅎ우리는 저번에 이야기하다가
진짜 이름이뭐지? 강신성일? 하고 웃었는데..
강신구 강양구 강남구 강상구 강윤구 강인구..우리 조카들이에요 ㅎ
강신영이 원래 아름인데 강신영이라니 유권자들이 잘 몰라서
강신성일로 이름을 바꾸어서 강신성일이가 마지막 정식 진짜 이름으로...ㅎ
우리의 정이님이 강서방네시라는,,,ㅎ
강서방네 잘 지내시지요,
진짜루 방가부러네요
60년대부터 많은 활동을 했던 풍운아 신성일은 당시 대단했죠.
특히 젊은 여성들은 미칠지경으로 좋아했었죠.
그 바람에 원래 여탐을 즐기던 신성일은 많은 일화를 남기며 탐닉생활도 했었다고.....
이제는 땅에 뭍힌지 몇년 되었지만 그래도 신성일이라고 하면 간첩말고는 다 아는 이름을 남기셨네요.
보면 준수하고 잘 생겼어요.
남자되었다가 신성일만 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대단한 스타라고 공인 아니할 수도 없지요.
신성일은 99%가 알고
강신영은 1%가 알고 ㅋㅋㅋ
누가 불렀어도
다 좋습니다.
옛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아련히 젊은 날이 생각나고
그 때 그 추억들을
회상하며 미소짓습니다.
젊었을 때는
신성일이 그렇게 좋더만유~ㅎ
아익운아
로기님, 안뇽???
차 한잔과 사색과
아름다운 추억의 오솔길을...
신성일 멋있고 연기 잘 하고
인상까지 좋으니 뾰옹 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자나요.
팥죽 혼자 다 드셨나요.
@좋아요 오실라우?
팥죽 남았는데유 ㅎ
@초록이
ㅎㅎㅎ
전나번호? 가락동 몇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