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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는 장시간의 수술이 몇 시간이나 더 이어졌고 수술실에서 나올 때는 죽다 살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해진 상태였다. 태하의 모습에 은하는 꽤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꽤 꿋꿋이 태하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지만 태하는 좀체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들은 태하의 상태에 의아해하는 반응들이었고 그런 반응에도 태하가 깨어날 거라며 믿고 있는 은하였다. 은하는 김정태가 죽었을 때만큼 힘들어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니, 힘든 정도를 양질을 따질 수야 없지만 아마 은하는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책임감으로 이 상황을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났다.
태하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채, 태하의 친구인 박진이 다녀갔고 태하를 한참이나 보며 무언가 혼자 중얼거리다 가버렸다. 은하에게는 잘 해결되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은하는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은하의 반응에 괜히 머쓱해하며 박진은 병원을 떠났다. 박진이 다녀가고 얼마 후, 뉴스에서는 '안수만'사건을 특집으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었다. 미해결사건이 아닌 종결사건으로 말이다.
또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다.
태하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고 혹시 태하가 영원히 깨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지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있었다. 깨어나지 않은 태하, 그를 바라보는 은하,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민재와 민서. 시간은 가랑비가 오듯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 새, 태하가 누워 지낸지 한 달이 되었다.
"은하야, 뭐해?"
민서가 은하에게 말을 놓기로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은하는 어색한지 괜히 웃으며 말했다.
"흠.. 태하씨한테 읽어줄 거 찾아."
"태하 깨어 있지도 않은데 말 놔. 그냥."
"그래도..."
"하긴 저 새끼는 다 듣고 있다가 나중에 복수할지도 몰라."
"참, 민서야. 나 도서관 사서 당분간만 일하기로 했어."
"오! 정말?"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잘됐다. 잘 생각했어."
은하가 사서 일을 다시 시작해도 될지 민서에게 고민을 털어 놓은 지 일주일 지나서 민서에게 답을 내 놓았다.
"응!"
은하는 사랑스럽게 웃으며 대답했고 몇 가지의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박태하, 이 자식은 언제 깨어나려나."
민서는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기댔다.
"그러게. 아, 물 떠와야겠다."
"내가 떠올게. 넌 좀 쉬어"
민서가 태하를 등지고 물통을 들고 서자, 민서가 다가와 물통을 가로챘다.
"아! 괜찮은데~ 그럼 같이..."
은하가 같이 가자고 발을 움직이려는 순간, 은하는 약하게나마 자신의 손을 잡는 기척에 놀라 멈칫했다. 은하가 뒤를 돌아 선 순간, 민서는 물통을 집어 던지고는 의사를 찾으러 밖으로 빠르게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은하는 울컥하는 마음에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으...아ㅏ...."
"이...은하...."
은하의 손목을 힘없이 잡고 있는 태하의 손길을 놓칠까봐 은하는 태하의 손을 잡아버렸다.
“......”
"으헝......으..앙....흑흑...."
은하는 울고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하는 그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입술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을.....보...”
“흑흑...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고마워요.....”
“....보...고..싶.....었.....어.”
너무나도 느리게 대답하는 태하의 목소리를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듣는 은하는 태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물을 세차게 닦아내며 ‘나도요.’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또한 모두들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태하는 재활훈련을 꾸준히 받아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회사에 출근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 몇 주 더 쉬기로 했다. 민재와 민서의 가게가 TV에 출연하더니 유명해졌고 꽤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은하 또한 일을 틈틈이 하면서 세상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약은?”
태하는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며 묻는다.
“태하씨는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먹었어요. 이젠 괜찮아요.”
은하는 하루에 한 번 태하가 재활훈련을 할 때마다 찾아와 옆에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댔다. 재활훈련이 끝나고 가까운 커피숍에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둘은 헤어졌다. 누가 봐도 사귀는 사이였지만 태하는 이 관계가 꽤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나 자신 때문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이렇게 자신이 건강해질 때까지 책임지고 찾아오는 건가하고 말이다. 이은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법하기에 태하는 불안했다.
“태하씨, 오늘 시간 돼요?”
“말 좀 놓을 수 없어?”
“흠... 이게 더 편한데..”
“노력해.”
“히히, 네~”
말뿐이라는 걸 알지만 ‘네’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태하였다.
“시간은 왜?”
“술 사줘요!”
“술?”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모르지만 술을 사달라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 심각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것인데 이 여자는 도대체 가늠할 수가 없다.
“몸 많이 안 좋을 까요? 딱 한 잔 만인데.”
“먹자.”
무슨 일이 있는지, 일어날지 뭐 일단 들어나 보자라는 생각에 태하는 와인을 시켰다. 지금 먹자고 한 건 아니었는데 라는 말을 중
얼거리는 은하였지만 깔끔하게 무시하는 태하 덕택에 낮술을 먹게 되었다. 태하는 분명 한 잔 먹고 몸을 가누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태하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2잔이나 먹었다.
“태하야”
“그래.”
태하는 와인잔을 둥그렇게 굴린 후,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고 쌉쌀한 향이 입 안에 가득해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와인 때문만이 아닌 술만 먹으면 반말을 하는 은하의 귀여운 모습 때문인지도 몰랐다.
“난 평범해지고 싶었어.”
“평범? 그게 뭐 어려운가?”
“나한테는 어려웠어.”
은하는 앞에 놓인 잔을 빤히 바라보더니, 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난 너무 힘들었어.”
“모두들 힘들지.”
“나만 힘든 줄 알았어.”
“다들 힘들어해. 그리고 너도 힘든 거야.”
“그래, 나만이 아니야. 나도 힘든 거야.”
‘우리가 힘든 거야.’라는 말이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난 평범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생각했기 때문에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고 ‘나만’이 가장 힘들다는 생각으로 우월해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은하는 그 동안 자신이 자기연민에 빠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저 해결할 힘이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들었고 희생당했다.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구나 모두 다르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은하는 너무나도 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심각했던 자신의 삶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해질 수 있어.”
“......”
“평범해지고 싶어?”
“어떻게?”
술에 취했는지 눈이 반쯤 풀려 태하를 바라보는 은하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입술을 훔치고 싶은 걸 태하는 앞에 놓인 와인을 벌컥 마시는 걸로 만족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자신을 바라보는 은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나랑 네랑 연애하고.”
태하의 시선은 은하의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혼도 하고 그리고 애도 낳고 하면 돼.”
은하는 태하의 말을 한참 듣더니, 너무나도 해맑게 웃더니 말했다.
“바보네.”
“너무 쉽지?”
* * *
이렇게 가슴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는 은하였다. 목이 타는지 계속해서 물을 마신 테이블 위에는 빈 잔만 덩그러니 있었다. 잠을 설쳤는데도 불구하고 은하는 피곤한 기색은 살펴볼 수 없었고 오히려 생기가 있어보였다.
"99번! 이은하"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은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당당한 발걸음 뒤에 설레고 긴장된 기운이 감돌았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자, 은하는 문 안으로 들어섰고 인사 후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이런저런 시시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곧 본격적인 질문에 은하는 눈을 감았다.
"저도 걱정됩니다. 제가 다시 그 때의 삶으로 돌아갈까 봐요. 하지만 제게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꿈이 있었어요. 그 꿈을 평생을 복수에 사용했습니다. 그 복수의 죄 값으로 몇 년간 제 꿈을 쫒아가지 못해요. 그렇다면 또 좌절하고 사회쓰레기처럼 살아야할까요?"
말을 고르며 하고 싶지 않았다. 은하는 느껴지는 대로 그저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나도 꼭꼭 자물쇠를 잠그고 살아와서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좌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지은 실수, 죄를 잊고 싶지도 않아요. "
한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로 인해 피해 받았어요. 나로 인해 주변이 변했죠. 내가 바뀌지 않으면 주변도 바뀌지 않아요. 즉 죄 값을 치루기 위한 그 이유가 하나, 그리고..... 내가 뿌린 도움이 어느 샌가 그 사람들에게 닿아지길 원해요. 내가 도와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그 사람들을 구원해주길."
* * *
태하는 며칠 전부터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몸은 예전처럼 좋아지고 있었다. 오늘 중대 발표를 하겠다던 은하의 말이 생각나 피식하고 웃음이 새여 나왔다. 태하가 몸이 서서히 나아지자, 은하는 자신을 피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이해해달라는 은하의 말에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사람은 이 회사의 사장도 회장도 아니었다. 이은하, 그 녀석이었다.
"한 번은 튕겨야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퇴근준비를 했고 한 시간 뒤 민재네 가게에 도착했다. 은하는 먼저 와서는 이것저것 준비해놓고 있었다. 와인까지 들고 와서는 한 명 한 명 따라주는 은하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덩달아 행복해지는 셋이었다.
"은하야, 뭐야? 빨리 말해봐."
민서가 고새를 못 참고 물었지만 태하나 민재는 말리지 않았다. 그 둘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흠... 한잔 마시고"
잔을 억지로 부딪쳐오며 떨리는 목소리로 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합격했어요. 해외봉사단. 일주일 뒤 바로 떠나요."
탁!
와인잔을 식탁위에 올려놓는 소리가 꽤 컸고 와인잔을 붙잡고 있던 손의 힘에 깨질 것만 같았다.
"은하야. 이렇게 갑자기...."
"은하야."
민서와 민재가 은하에게 서운한 기색을 비추며 말했고 태하는 가만히 듣더니 가게를 나가고 있었다. 은하는 태하를 불렀지만 태하는 대답이 없었다. 가게 분위기는 싸해졌고 은하는 앉아있는 그 둘에게 사과하고 밖으로 나갔다.
"태하씨!"
멀리 가는 태하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 태하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날이 서 있었다.
"놔."
"미안해요."
꼭 쥔 은하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녹여주기에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네 뭐야? 병신 만드는 것도 정도가 있어. 도대체 난 너한테 그 정도였어?"
"상의 못한 건 미안해요. 상의하면 못갈 것 같았어요."
"도대체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해해달라는 말이야?"
"..........미안해요."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너무 미웠다.
“무얼 하든 이해해줄 수는 있어. 하지만 뭘 하든 내 옆에 있어 달라는 게 그렇게 힘든 거야?”
“.............”
"더 할 말 없지? 이젠 안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태하는 은하를 등지고 돌아갔다. 은하는 멀찍이 떠나는 태하를 잡아야만 했다.
"태하씨!"
은하는 태하를 다시 한 번 붙잡았다.
"기다려달라는 말 안 해요."
이 여자가 정말
"그런데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태하씨를 잡을 거예요. 물론 그때는 태하씨가 절 선택 안 하셔도 원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
“당신만 보여요. 내 인생에서 당신이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당신이 날 잊어도 난 당신을 찾을 거예요.”
정말 이 여자 때문에 미치겠다.
화가 나기도했지만 이 여자의 고백에 미치도록 두근거리는 심장이었다. 나만을 보겠다는 이 여자가 너무 사랑스러워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이 괘씸한 여자를 난 사랑하고 있다. 상처 받은 날개를 퍼덕이고 싶어 하는 이 여자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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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찾아왔죠.....
죄송합니다. 글도 써지지 않았고 그 동안 너무 바빴답니다.
이젠 다음 34편이 마지막 회(외전도 포함될 듯 해요.)가 되겠네요.
조금 더 일찍 찾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BIYA-
P.S. bestq님, 사랑,,, 뭘까님 꾸준히 댓글 감사드립니다. 그 글로 인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답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신 분들도 감사드려요~^^
첫댓글 은하너라는 여자는 참멋있는 여자인것 같단 말이지...!!
자유여행님,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마지막편을 늦게 가지고 와 죄송합니다. 끝가지 읽어주신 점 너무 감사드려요~~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좀 더 밝은 글을 쓰고 싶네요 하하하. 그럼 더위 조심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너무 기다렸어요ㅜ 마지막이라 아쉽긴해도 다 행복해졌음하는 바램이드네요 감상잘했어요 고생하셨어요~^^
사랑,,,뭘까님. 안녕하세요. ㅠㅠ 글을 쓰면서 걱정되었던 분 중에 사랑뭘까님입니다. 늦어져서 죄송하고요. 마지막 편도 재미있게 읽으세요!!^^ 요즘 더위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