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볼때 블록버스터급 영화 라고 광고하는데
정작 블록버스터의 뜻을 몰랏을분을 위해..
# 블록 버스터 (block buster)의 시초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 총사령관으로 1942년에 아더 T 해리스가 취임합니다
이 사람이 취임하기 전까지 영국공군은 완전한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한채 군사 및 군수시설에 야간공습으로 폭격을 시도했으나 그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았고, 많은 폭격기와 조종사만 희생됐습니다.
이에 아더 T 해리스가 영국 공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자 영국 공군의 폭격 양상은 180도 변합니다.
" 적국의 민간인도 적은 적이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그런 적을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
이런 말을 한 사람이 공군의 총 책임자로 있으니 적국인 독일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으로 자신의 도시가 초토화되기 시작합니다. (영국의 독일 공습에 비하면 독일의 런던공습은 새발의 피?)
그 유명한 융단 폭격이란 말이 생겨난 폭격 작전을 시작합니다.
그 취임후 첫 폭격인 쾰른 대공습을 1942년 5월 31일 시작합니다.
- 중략 -
그후 마지막 대공습이 시작되는데...이 것이 유명한 드레스덴 대 폭격입니다.
드레스덴은 독일 문화의 정수가 집약돼 있는 곳으로, 엘베 강의 플로렌스라 불렸고, 건축물과 예술품들로 유명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여 많은 독일인들이 연합국의 폭격기가 민간인과 문화유산이 많은 이 도시를 폭격하지 않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이곳에 피난을 와 있던 상태였습니다.
아더 T 해리스는 바로 이점을 노렸던 것입니다.
영국공군은 미국과 연합하여 무려 3000대의 폭격기를 동원하여 드레스덴을 폭격합니다.
이 공습으로 인해 확인된 시신만 무려 4만에 달했으며... 엄청난 화염으로 인해 시신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희생자까지 생각해본다면 대략 13만5천여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인 이곳의 상당부분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는 데는 성공했으나, 군사적으로는 거의 얻은 것은 없었습니다. 있다면 군인이 이곳에선 더이상 충원되지 않았다는 정도...
전후 이곳의 복구 계획이 세워졌는데 너무 심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복구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 장소를 완전히 허물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이라는 제안이 나올 정도였고, 여러가지 제안의 절충으로 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유명한 바로크식 건물들을 재건하고 바깥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폭격 전후 사진
바로 아더 T 해리스의 명령에 의해 폭격을 했을때 사용했던 폭탄(무게 4000~12000파운드)
의 이름이 블럭 버스터 였습니다.
아더 T 해리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독일 민간인의 숫자는 5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출처

전세계 한민족 커뮤니티의 중심 '한열사'
첫댓글 영국놈들 잔인하네... 신사는 무슨...
영국애들이 아일랜드 식민지 하면서 1,200백만명 아사 시켰는데요뭘!네이팜탄(불지르는폭탄)터지는거 봤는데 도시가 불바다가 되면 기압이나 온도때문에 바람이 시외곽에서 시내로 불기시작합니다 이때 모든건 타들어가는 거죠, 몇십미터 불기둥을 볼수도 있을지도
영국인들 대학살사에서 한몫 단단히 했지만 독일인들도 자신들의 댓가를 치룬것이라 보이네요. 물론 민간인 사망은 안타깝습니다만...
임진왜란으로 조선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그전쟁만 막았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인구1억6천만명에 한반도와 만주를 영토로하는 강대국이 되었을겁니다
저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의 댓가를 치뤘다는 뜻인데요.일본도 전범국이자 아시아에 대한 침략으로 패전과 원폭이라는 결과를 얻은것 아니겠습니까.폭격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댓글을 해주신것 같은데 그렇다면 독일과 일본 군부에 의한 다른 수많은 국가의 민간인들의 사망은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그리고 1억 6천만명이라는 인구는 어떤 근거로 말씀하시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임진왜란때 인구가 반이 줄었다는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건 전쟁으로 호적이 불타고 행정력이 무너지면서 파악이 안돼면서 생긴 현상이죠
실제로 임진왜란 7년간 실제로 싸운해는 2년밖에 안됩니다
게다가 실제로 조선을 석권했던건 개전 1년남짓이었고 이 기간에는 학살이라던가 하는일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왜냐면 참전한 영주들이 자기네 영지로 받기로 예정된곳을 초토화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개전 1년후부터 일본이 점령한 지역은 경상도 뿐이었구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고 한건 정유재란때부터입니다
원래 전쟁에서도 압도적으로 이기는 군대는 그다지 민폐를 안끼칩니다
지거나 전선이 고착되기 시작하면 변하지만요
그리고 학살이 일어난 전라도로의 침공역시 칠천량해전이 끝난 1597년에서야 가능했습니다..
30년전쟁때 독일이 독일국내의 내전뿐아니라 각국의 군대가 다 쳐들어와서 살인 약탈 강간등을 저질러서 인구가 반이 줄었는데 단 2년 전쟁하고 인구가 반이 준다는게 말이 안돼는거지요...
종전후 영국이 독일에게 유일하게 사과한 사건이죠, 영국여왕도 재건을 위해 성금을 내고, 나치에 묻혀서 그렇지 당시 유럽의 소위 지들끼리 말하는 문명지역에 대한 무차별 학살로는 최고인 사건일듯, 아시아나 러시아쪽은 야만인들로 봤던때니.....
다른 유럽국에 비하면 그래도 독일이 착한편이었는데;;;;; 몇백년을 식민지전쟁 벌이며 전세계를 불지르고 다니던 놈들이, 막판에 기지개좀 펴려고 깔짝거린 독일을 완전 범죄인 취급하는게 참;;; 아이러니함.
그런데 인류사의 최대 대재앙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퍼부은 폭탄량보다 625전쟁 3년간 쏟아부은 양이 더 많았다는데 이해가 안가네요.
그게 사실인가요?
원래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기 하나에 화약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남.
어느글에서 일부 발췌 "이것은 2차대전 당시의 폭탄투하규모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엄청난 투하량입니다. 세계대전을 통해 광범위한 지역의 여러 국가에 걸쳐 투하된 폭탄의 양과 한국전쟁 당시의 폭탄 투하량이 비슷하다는 부분은 말 그대로 산업생산이 가능한 어느 하나도 남김없이 국토 전역이 완전히 초토화, 아무것도 없는 폐허의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윗글은 비슷하다고 나오지만 예전에 본 다른 글에선 더 많다고 나오더군요. 625전쟁이야말로 엄청난 비극이었는데 증언할 생존자는 대부분 죽어서 잊혀져 가는거 같네요. 이런거 보면 당시 미군은 전쟁승리할 의지보다 무기성능시험이 더 중요했던건가요.
전우의 생명을 장약 파운드와 바꾸자..라며 폭탄을 그냥 들이 부은 전쟁이라니...뭐...... 그냥 배에 싣고 와서 막 들이 부은 전쟁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전쟁따우..ㅠ